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62.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1.
스스로를 천마라고 밝혔던 천자현의 힘은 정말 강력했다.
한 세계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남자. ‘천마기’라고 불리는 기묘하고도 불길한 기운을 부리던 그 남자의 힘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굴복하여 리멘 교단을 통째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라는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 대 더 쳐 봐.”
“제가 어찌 하늘 같은 형님께 감히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 있겠소? 저는 이제 앞으로 형님과 평생의 의형제로…….”
“몇 대 더 맞으면 그 쓰레기 같은 말투 교정하려나? 한 다섯 대?”
“아닙니다! 아닙니다, 행님. 제가 20년 동안 저쪽 세계에서 살다가 와서 아직 한국말이 어색해서……. 어? 지금까지 저 중원의 언어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들으셨지?”
“지금 그게 궁금해?”
“예!”
“덜 맞아서 그래. 일단 좀 더 맞자.”
자칭 ‘천마’를 제압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 1분.
분명히 이놈이 지닌 힘은 이레귤러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요사스럽고 강대한 기운.
본인이 ‘천마기’라고 밝힌 기운이었는데, 확실히 굉장한 수준인 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마기는 신성력과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그것도 지독하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저 천마기라는 기운이 마기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나는 그 압도적인 상성을 이용해서 ‘천마’를 맛있게 요리하는 데 성공했다.
퍼어어어어억.
“그러게 선빵을 왜 날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나는 신성력에 의해 에너지가 봉인된 천자현을 발로 밞으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아까 그 공격? 내가 아니라 다른 각성자였다면 절명하고도 남았다.
대놓고 죽으라고 공격한 셈인데, 원래 이런 놈들은 말로 해서는 안 듣는다.
“제, 제발! 말 잘 듣겠습니다.”
“아냐, 내가 너 같은 놈들 잘 알거든. 그런 말이 안 나올 때까지 맞아야 돼.”
“…….”
“이 새끼, 이제는 아예 입을 안 여네? 더 맞아, 그냥.”
“끼아아아아아악!”
하마터면 가족들을 다시 못 볼 뻔했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 괘씸했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을 녀석을 팼다.
언제까지 팼냐면, 내가 이 녀석을 죽일까 봐 걱정된 김 실장이 달려올 때까지 팼다.
“김시우 교황님! 이러다가 사람 죽습니다.”
김 실장의 등장에 방금 전까지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맞고 있던 천자현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김 실장의 뒤로 냉큼 숨어 버렸다.
“살, 살려 주세요. 이 살인자가 저 죽이려고 해요! 20년…… 20년 만에 돌아온 지구인데, 이렇게 죽으면 저 너무 억울해요! 공무원 아저씨, 저 지켜 주실 거죠?”
게이트에서 온갖 허세를 떨어 대면서 등장했던 천마의 비참한 추락이었다.
나는 나를 가로막는 김 실장을 향해서 말했다.
“어차피 걔 그 정도로는 안 죽어요.”
“예?”
“63빌딩에서 떨어트려도 살 놈일걸요. 아까 못 보셨어요? 허공도 떠다니는 거. 그런 놈들은 고작 몇 대 맞았다고 안 죽어요.”
내가 성큼성큼 다가서자 천자현이 이번에는 김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면서 소리쳤다.
“제, 제 힘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저 미친놈 좀 막아 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김 실장이 대답했다.
“천자현 씨.”
“예!”
“천자현 씨가 보기에는 제가 저분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요.”
“그래도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참 대단한 놈이다.
아까 전에는 뭐 자기가 한 세계의 지존이었다느니, 중원을 먹고 있었다느니 잔뜩 무게를 잡더만, 꼴랑 하는 짓이라고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 뒤에 숨어서 보호를 요청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한 놈이 아닐 수가 없다.
지존으로서의 명예 따위는 목숨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가?
원래 저쯤 되면 자존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말이지.
정말 바퀴벌레 같은 생존 본능이다.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강해졌다고 보면 되나? 이렇게 또 깨달음을 얻어 가는구나.
“김시우 교황님, 먼저 공격을 가한 건 천자현 귀환자이지만, 그래도 일단 가족들의 얼굴은 보게 해 줘야지 않겠습니까?”
김 실장은 확실히 나를 잘 알았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려 버리는 김 실장.
나 같은 사람을 설득할 때는 논리보단 감정이 잘 먹힌다는 걸 파악하고 있는 거다.
참으로 유능한 사람이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이 자리에서 천자현을 죽을 때까지 패 버린다면, 나는 가족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의 희망을 꺾어 버린 놈이 된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김 실장의 뒤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는 천자현을 향해 말했다.
“반항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진짜 죽었을 텐데. 운이 좋네, 천마.”
그러자 천자현은 갑작스럽게 김 실장 옆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냅다 나를 향해 절을 하면서 말했다.
“형님, 이 동생을 용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마라니요! 사실 천마 아닙니다.”
“천마 아니야?”
“예! 사실은 소교주로 있었습니다. 교주의 자리까진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직 스승님이 멀쩡히 살아 계셨어 가지고…….”
“네가 32대 천마신교 교주이자 3대 천마라면서?”
“32대 천마신교 교주이자 3대 천마가 될 예정이었다는 소리였습니다. 제가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그냥 천마(진)이라고 말했어야지. 오해할 뻔했잖아. 그럼 네 스승이?”
“예, 맞습니다! 31대 천마신교 교주이자 2대 천마, 그분께서 제 스승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당대 교주님이시자 당대 천마셨습니다.”
……미친놈이 또 지구로 기어 들어왔다.
그래도 적당히 미친놈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번 그 마검 들고 귀환한 미친놈은 다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랬건만.
이 정도면 말이라도 통하니까 다행이지 뭐.
“어떻게 귀환한 거야?”
“제가 20년 동안 향수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신 스승님께서 저를 놓아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분입니다.”
향수병에 시달렸던 ‘천마(진)’이라……. 어지간히 골 때리는군.
나는 녀석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김 실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모르니까 이 녀석 기운에 걸어 둔 봉인은 풀지 않겠습니다. 이 상태로 서울로 데려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연락을 넣어 두셨습니까?”
“신상을 파악하자마자 연락을 했습니다.”
“어떻던가요?”
“천자현 씨의 어머니 되시는 분께서 전화를 받으셨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오열하시더군요. 어디로 가면 아들을 만나 볼 수 있겠냐고…… 그래서 일단 이능관리부 본청으로 모시는 중입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구요.”
내가 귀환했을 때 인욱이는 자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는데 말이지.
생각해 보니 또 괘씸하네?
오늘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인욱이를 갈궈야겠다.
나는 나를 향해 굽신거리는 천자현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그냥 제가 함께 가도록 하죠. 안 됩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좋은 생각이 났거든요.”
잘만 하면 쓸만한 노…… 아니, 인력을 확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자현의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넝쿨째 굴러온 이레귤러급 귀환자?
이건 못 참지.
2.
천자현을 데리고 곧장 이능관리부 본청으로 향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한 다음, 곧바로 차로 이동.
아직까지 이레귤러급 귀환자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는 기밀 사항이었다.
이레귤러 판정이라는 게 결국 이능관리부에 직접 가서, 힘을 측정해야지만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래도 내가 바로 붙어 있어서 그런가, 천자현은 이능관리부 본청으로 향하는 내내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숨겨 둔 비장의 한 수?
그딴 건 없었다.
그저.
“귀환하자마자 형님을 만난 건 제 인생의 큰 복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부.
그래도 내가 손을 좀 봐서 그런가, ‘본좌’나 그 이상한 말투는 사용하지 않는다.
역시 말투를 교정하는 데에는 물리력만 한 게 없다니까.
김 실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 천자현의 아부가 어느 정도인지 대강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탑승한 차량은 이능관리부에 도착했고, 우리는 곧바로 천자현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던 접객실로 향했다.
접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천자현의 가족들이 보였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와 눈이 퉁퉁 부은 20대 초반의 여성 한 명.
“자현아, 자현아.”
“아버지, 어머니, 동생아.”
상봉의 순간이었다.
천자현의 가족들은 천자현까지 포함해서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
그래도 가족끼리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 감동적인 상봉의 순간을 만끽했다.
내가 기대했던 가족 상봉도 바로 저런 거였다.
“고맙다. 살아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
“아버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정말…… 그저 고맙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늦게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현아. 우리는 네가, 네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행복해. 응?”
가족들의 감동적인 상봉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김 실장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고, 김 실장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끼리 나눌 이야기가 아마 셀 수 없이 쌓여 있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이니 방해하지 말도록 하자.
나와 김 실장은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뭐가요?”
“천자현 귀환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쉽게 막 나가지 못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최악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이들.
김 실장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지구로 돌아왔을 때 만약에 인욱이나 시연이가 둘 다 이 세상에 없었다?
그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그랬다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가늠이 안 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겠지.
“천자현 귀환자에 대한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라파엘 님께서 한국 정부 측에 특수 측정기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사용해 볼까 합니다.”
“라파엘이 참 재주가 많아요.”
“예. 덕분에 이레귤러를 판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웃음을 짓는 김 실장.
대한민국에 이레귤러가 한 명 더 생긴 순간인데,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겠지.
아마도 무난하게 이레귤러 판정이 나올 거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자현은 왕 웨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무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신성력과 상성만 나쁘지 않았다면, 아마 나를 상대로 1시간은 버티고도 남았을 놈이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이레귤러가 늘어나는 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 이레귤러가 정부 측에 협조적일 때만 적용되는 이야기다.
비협조적이고 적대적이라면? 그만한 재앙이 또 없지.
그렇게 나와 김 실장이 접객실 앞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접객실의 문이 열리더니, 아까 보았던 천자현의 아버지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우리를 향해서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했다.
“제 아들을 데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를 표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한 건 딱히 없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정말…….”
말을 잇지 못하는 천자현의 아버지.
애써 눈물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게 느껴진다.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시겠습니까? 제 안사람이랑 딸도 김시우 교황님께 감사 인사를…….”
“저한테요?”
“예. 사실, 아들이 실종되었던 장소가 서울 그라운드 제로였습니다. 매번 리멘 교단의 성지에 찾아가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아, 그렇습니까?”
“제 안사람이 평소에도 자주 리멘 교단의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고는 합니다.”
“오, 우리 교단의 신도셨군요.”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나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만 하면 날로 먹을 수 있겠는걸.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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