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3.
천자현.
그가 꿈꾸던 귀환은 이런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그가 학생이었던 시절에 많이 읽었었던 웹소설의 고전 클리셰.
그중에는 천마가 되어 지구로 귀환하는 클리셰도 포함되어 있었다.
엄청난 힘을 쌓고 지구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그 상상은 그가 20년 동안 낯선 세계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세계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천마라고 불리는 괴팍한 스승을 만나서, 운이 좋게 천마신교라는 집단의 소교주가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힘도 제법 많이 강해졌다.
스승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건 스승의 경지가 너무 높았을 뿐.
지구의 최강자가 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거라.
20년 동안 고향을 그리워했던 그에게 스승이 건네준 마지막 선물.
우화등선을 앞둔 스승의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더 없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천자현은 주저없이 귀환을 택했다.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으니까.
그렇게 스승의 도움으로 지구로 귀환하게 된 천자현은 자신에게는 앞으로 꽃길만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의 핑크빛 상상은 귀환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천자현 귀환자는 아주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런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되는 친구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예. 이레귤러로 판정될 가능성도 높구요.”
“이레귤러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저기에서 아버지에게 쉴 새 없이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검은색 사제복의 남자.
김시우.
바로 저 사람이 그의 상상을 박살 낸 장본인이었다.
스승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천마기’는 저 남자가 사용하는 흰색의 기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
그의 스승이었다면 양상이 달랐겠지만, 천자현 그의 경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차이였다.
아직도 저 남자에게 얻어맞은 상처가 욱신거렸다.
게다가 더 악질인 것은 저 남자가 겉으로 보이는 상처들을 말끔하게 치료해 주었다는 것.
병 주고 약 주는 놈들만큼 지독한 놈들이 없는 법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저희 아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게 정말인가요, 김시우 교황님?”
“그럼요.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자현이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이레귤러가 되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습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죽일 듯이 두드려 팼던 저 남자가, 이번에는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해 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
그러나 천자현은 잠시 후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족분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다음, 나중에 자현이와 함께 많은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자현이는 아마 대한민국을 지탱해 줄 또 하나의 기둥이 되어 줄 겁니다.”
“우리 자현이가…… 김시우 교황님처럼?”
“그렇습니다.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있나.”
제주도에서 이곳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천자현은 몇몇 계획을 세웠다.
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일단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갈 것.
이 힘을 가지고 해외로 나간다면 그 어떤 국가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천자현의 판단은 정확했다.
실제로 이레귤러급의 귀환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으니까.
다만, 그가 계산하지 못했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자현이가 우리 리멘 교단과 함께 일했으면 합니다.”
“리멘 교단과 함께…….”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김시우가 이끄는 종교의 신도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의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팬이 아이돌 스타를 보는 것만 같은 표정.
동경의 극에 다다른 표정이 여동생에게서 보였다.
천자현은 그제야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당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차기 행선지가 결정되고 있었다.
중원에서는 소교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누려 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비열하게 가족들을 먼저 포섭하다니?
저게 정말 교황이란 말인가?
지금 당장에라도 가족들 앞에서 ‘저놈이 절 죽일 듯이 때렸어요!’라고 소리쳐 봤자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 중요한 법이죠. 그렇지, 자현아?”
김시우는 어느새 친근하게 천자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슬슬 정신이 드냐?”
“형님…….”
“앞으로 쭈우우우욱 함께하는 거야. 부모님들이 저렇게 너를 자랑스러워하시는데, 안 그래? 그래도 일단 귀환 첫날이니까 검사 대충 받고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고. 앞으로 너랑 할 일이 아주 많다. 형이 기대해도 되겠지?”
그 말을 듣자 10년 전, 그에게 스승이 해 주었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제자야, 검만큼이나 혀를 조심하거라.
스승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천자현이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제가 자현이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하하!”
그는 이미 혀로 만든 천라지망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4.
성공적인 하루를 보내고 신전으로 복귀했다.
그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라파르트 대주교.
“성하, 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
“호구 하나 잘 낚았거든요.”
“그렇습니까?”
“이레귤러 하나를 무료로 주워 온 느낌이랄까요. 결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천자현의 표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혼이 쏙 빠진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천자현.
그쪽 세계에서 소교주라고 했으니 2인자의 위치였을 거다.
그런 놈이니 세상 물정에 무감각해질 만하지.
방심하는 순간 먹힌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
김 실장에게 빠르게 붙어서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다만, 이런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신성력에 꼼짝도 못 하니까 통제하기도 쉬울 거고.
거기에다가 가족들도 나에게 호의적이니, 아마 높은 확률로 우리와 일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인재를 영입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등장했다던 그 귀환자 역시 이레귤러였던 겁니까?”
“그렇더라구요. 꽤 강해요. 레오랑 루나와 비교해도 확실히 우위일 것 같아요.”
아무리 녀석의 기운이 신성력과 상성이 좋지 않다고 한들, 한쪽의 힘이 압도적일 경우에는 상성 따위는 무시하게 된다.
전력으로 싸우는 걸 한번 봐야겠지만, 그 느낌이라는 게 있다.
루나와 레오는 이레귤러급의 귀환자만큼은 아니다.
디재스터급인 귀환자나 최상위 S급 헌터들보다는 강하지만, 이레귤러와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전투원이 하나 더 늘면 좋죠. 안 그래요, 라파르트 대주교?”
“성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퇴근 시간 전에 어쩐 일이세요?”
“센다이 신전과 관련된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성하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아하.”
센다이 신전을 관리할 관리인도 뽑아야 하고, 정원도 조성해야 하고.
이제 막 건설된 신전이라 당연히 비용이 발생한다.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건네준 보고서를 챙기면서 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슬쩍 보고서를 확인했다.
“초기 예산 10억…… 이 정도는 알아서 진행하시지.”
“교단의 운영비로 사용되는 모든 예산은 성하의 결재 없이는 집행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나저나 참 큰일이다.
지난번에 2,400억에 크게 데어서 그런가? 이제는 10억이…… 당연한 것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 교단의 교세가 커졌다는 거겠지.
자체적인 병력을 키우고 있기도 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예산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단의 재정이 여유롭다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교단의 축성소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미국에 넘길 성물들도 준비 잘되고 있습니까?”
“1기 교육생들 사이에서 축성사제로 적합한 인원들을 선발해 뒀습니다. 축성사제들은 재정부 소속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잘하셨어요.”
컨트롤 타워가 있으니까 교단이 알아서 잘 굴러간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다시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한숨을 가볍게 내쉬면서 말했다.
“이레귤러 하나가 더 추가되었으니까 작전 시기가 좀 앞당겨질 것 같아요.”
“개성 전초기지에 물자를 비축하도록 하겠습니다.”
“2차 원정대에는 2기 교육생들도 다수 참여시키기로 했으니까 절대로 돈 아끼지 마시구요.”
“알겠습니다.”
천자현이 어떤 결정을 내리냐가 중요하기는 한데, 아마도 녀석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이상 위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싶을 테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녀석의 소속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건데…… 개인적으로 우리 교단에 소속되면 좋겠다.
정부에 소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말이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한민국이 한층 더 안전해졌다는 거다.
옆 나라 전체에 불이 번진 상황에서 이쪽에 이레귤러가 한 명 더 추가되는 것만큼 든든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가 좀 기대되네.”
새로운 이레귤러의 등장.
아직까지는 엠바고가 걸려 있긴 한데, 이 사실이 공표되면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게 되려나?
안 그래도 대한민국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또 다른 이레귤러의 등장이 더해진다면, 호랑이 등에 날개가 달리는 셈.
똑똑똑.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집무실에 또 다른 손님이 등장하셨다.
“이레귤러급 귀환자와는 일이 잘 풀리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교황님.”
이레귤러의 등장을 먼저 알렸던 라파엘.
라파엘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회의용 탁자 앞에 앉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두 명의 이레귤러를 보유하게 되었군요.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에는 라파엘이 따로 이야기했겠죠?”
“제가 그래도 여전히 미국 소속이거든요. 미국 쪽에도 당연히 정보는 넘겼습니다.”
“미국 반응은?”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본국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일 겁니다.”
국제 관계라는 게 이렇게나 심오하다.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이긴 하지만,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 마련이거든.
저쪽으로서도 이 상황을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고?
이쪽의 무게추가 무거워질수록 대한민국의 발언권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새로 등장한 이레귤러와는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습니까?”
“두고 보기는 해야겠지만, 일단은 미친놈이긴 해요.”
“교황님 앞에서는 꽤나 얌전했겠어요.”
“어떻게 아셨지?”
“원래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 앞에서 무용지물입니다.”
“그 말은 제가 진짜 광기라는 뜻?”
“노코멘트.”
왜 다들 나보고 미친놈이래?
미친놈들한테 미친놈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나만큼 정상이 또 어디에 있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라파엘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물었다.
“용건은?”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용건이 아니라 다른 걸 들고 왔습니다.”
라파엘은 품속에서 손톱만 한 기계장치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내 앞에 두면서 말했다.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드래곤의 사체를 일부 양도해 주신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주신 것도 그렇고.”
“선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라파엘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개합니다. 드래곤 슈트입니다.”
뭘까, 이 촌스러운 작명 센스는.
하지만 그로부터 5분 후.
“……이거 미쳤는데?”
나는 그 생각을 통째로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장비가 하나 튀어나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