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6.
나는 순리처럼 도시 한복판에서 싸우고,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례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성인군자도 아니다.
순리, 이놈이 아까 나를 소인배라고 불렀었는데, 사실 나는 소인배가 맞다.
뒤끝이 무척이나 길고, 받은 만큼은 무조건 돌려줘야 성이 풀린다는 소리다.
“내가 반드시 네 오만한 콧대를 짓눌러 주마.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동북아교류전이 개최되었던 이능관리부의 훈련장.
그때 거의 반쯤 박살 났던 훈련장은 예전보다 훨씬 넓고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그만큼 이능관리부의 예산이 여유롭고, 그만큼 정부 내에서의 입지가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 앞에서 창을 꺼내는 순리를 바라보면서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왜 이렇게 자꾸 웃음이 나올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 꼴이구나. 내가 너에게 대륙의 강자가 어떤 존재인지 반드시…….”
“그 자리야.”
“……뭐?”
“왕웨이가 불구가 되어 버린 장소. 내가 이 자리에서 왕웨이를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지. 다른 중국 각성자들도 마찬가지고. 레오는 아예 접어 버렸고, 루나는 뿅망치로 박살을 냈어.”
나는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순리를 바라보았다.
순리는 어느새 묵빛의 경갑을 걸치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순리의 별명이 ‘관우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런 거 보면 중국 사람들 관우를 참 좋아한다.
물론 나도 어렸을 때 읽었던 삼국지의 인물 중에서 관우를 제일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놈을 관우의 화신으로 부르는 건…… 관우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딱 그게 너희들 수준이지. 우리 교단이 이곳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이능관리부에서도 부르는 별칭이 하나 있다.
나는 라파엘이 만들어 준 반지를 손에 끼면서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의 무덤.”
“네 이놈-!”
“오늘 무덤에 한 명 더 묻히겠네.”
이 녀석을 이곳까지 끌고 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당히 자존심 좀 긁어 주고, 그럴듯한 베팅을 걸어 주고.
뭘 걸었냐고?
별거 없다.
-네가 대련에서 나를 이기면 천벌 2를 3백 발 양도해 주겠다.
마기 한정 최강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천벌 시리즈.
그 천벌 시리즈의 둘째, 천벌 2.
우리 교단에서 중국의 사태에 대비하여 열심히 비축하고 있는 천벌 시리즈를 판돈으로 걸었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깜짝 놀랐겠다만,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그리고 라파르트 대주교조차도 아까 전 이놈의 주둥아리에서 나온 소리를 들었다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대장부라면 말한 건 지키겠지.”
“급하긴 한가 봐? 고작 미사일 몇 발에 눈 돌아가는 걸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보이네.”
그래도 나름 정보력은 있나 보다.
순리는 천벌이 마기를 지닌 존재들에게 거의 쥐약과도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능관리부나 정부 내부에 여전히 중국의 정보원들이 숨어 있다는 뜻.
이번 일이 끝나면 유선호 장관에게 스파이들을 한 번 더 색출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까지 끝낸 다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순리가 전신에서 청록색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거세게 기세를 올린다.
“금방 끝내 주마.”
저 녀석이 어떤 세계에서 왔는지, 어떤 힘을 지녔는지, 그딴 건 궁금하지 않다.
수준은 이미 눈에 보인다.
왕웨이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
다시 말해서 샌드백으로 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란 뜻이다.
서열 2위라.
아무리 봐도 실력은 서열 2위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도 마침 잘되었다.
“이번 기회에 테스트나 좀 하자.”
안 그래도 요새 몸을 못 풀어서 욕구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번 기회에 화끈하게 풀어 볼 생각이다.
라파엘이 선물해 준 ‘천망’의 성능을 테스트해 볼 좋은 기회기도 하고.
“나중에 약속은 꼭 지켜라.”
내가 천벌 2를 베팅한 것처럼, 저쪽에서도 나름 먹음직스러운 걸 베팅했다.
내가 이기면 우리 교단은 평화 유지 명목으로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활동에 소모되는 비용은 전액 중국 정부에서 부담하게 될 것이며, 우리 교단에 소속된 전투원들은 치외법권을 부여받게 된다.
한마디로 중국 땅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천벌 3백 발보다 훨씬 맛있는 조건.
중국에 전진 신전을 세우는 거? 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반지를 만지작거렸고, 곧 내 검은 사제복 위로 일명 ‘드래곤 슈트’가 덧입혀졌다.
그리고 곧바로 사출되기 시작하는 12기의 천망.
내 등 뒤에서 천망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영광인 줄 알아.”
이레귤러라면 딱 적당한 실험체지.
그리고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순리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30m 정도의 간격을 단숨에 좁히면서 찔러 오는 창.
창끝에서 청록색의 파동이 일렁거린다.
날카로운 일격.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그 공격을 방어해 냈다.
끼드드드드득.
거대한 힘이 담겨 있던 창날을, 천망 네 기가 힘을 합쳐서 막아 낸다.
토비의 장인 정신이 갈려 들어간 천망은 거대한 에너지 앞에서도 거뜬하게 버텨 냈다.
방패 느낌으로 응용해 봤는데,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잔재주!”
그래도 이레귤러는 이레귤러.
순리는 순간적으로 창대에 에너지를 불어 넣으면서 천망으로부터 창을 빼냈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공격을 이어 나갔다.
노련한 전투 운영이다.
내가 완전히 근접하는 걸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듯, 집요한 찌르기가 이어진다.
휘리리릭.
휙.
눈 깜짝할 사이에 이어진 수십 번의 창격.
대부분이 ‘드래곤 슈트’에 의해 차단되었지만, 그래도 총 세 번의 공격이 정확히 내 살을 갈랐다.
오른쪽 옆구리, 왼쪽 옆구리.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
창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확실히 왕웨이보다는 한 수 위다.
창끝이 요사스럽다고 부르기에 충분할 만큼 더럽다.
끝이 휘어 들어가는 느낌.
나는 상처 부근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핥았다.
순리의 에너지가 신성 보호를 순간적으로 뚫을 정도는 된다는 뜻.
하지만 딱 그게 끝이다. 한 방이 없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공격은 그저 잔재주에 불과하다.
[패시브 스킬 급속 회복 Lv. Max>가 발동합니다.]스르르륵.
상처는 순식간에 아문다.
이깟 상처들은 흉터조차 남지 않는다. 이 정도로 흉터가 남았다면, 이미 내 전신에 흉터가 빼곡하게 들이찼어야만 한다.
까드드드득.
나는 기세를 올리던 순리의 창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순리가 다시 한번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나와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창끝이 매콤하네. 마라탕이냐?”
“뭐?”
“그렇다면 나는 김치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봐라.”
“미친놈이 자꾸 뭐라고 지껄…….”
“미친놈이니까 자꾸 지껄이는 거지.”
재료의 상태를 대강 파악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할 차례였다.
7.
순리는 대한민국의 이레귤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서방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한들, 태산 같은 중국의 각성자들에 비해서는 과대평가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왕웨이를 패배시킨 것?
애초에 왕웨이는 중국의 초월자, 그러니까 이레귤러들 사이에서도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놈이었다.
그런 버러지 따위는 자신 역시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순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쓸모가 있으니 내버려 뒀을 뿐.
그렇기 때문에 김시우의 힘은 그다지 위험한 수준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김시우와 힘을 겨루어 보니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미친놈이다.’
눈앞의 괴물은 고통 따위는 모르는 듯 보였다.
창을 녀석의 몸에다가 찔러 넣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처를 꾸준하게 내면서 체력을 소진시키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아무리 찔러 대도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창에 찔릴 때마다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을 뿐.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야, 너 팔 반대로 붙였다, 미안. 내가 오랜만에 팔을 붙이는 거라서, 이해 좀 하자?”
방금 전 김시우의 손에 의해 꺾여 버린 왼팔.
시간만 조금 있었다면 알아서 회복되었겠지만, 눈앞의 미친놈에 의해 문제가 생겨 버렸다.
뼈가 180도로 돌아간 상태로 붙어 버린 왼팔.
김시우에게 치유 능력이 있다는 정보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시우가 이런 식으로 치유 능력을 사용할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180도 돌아간 팔에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치명적이었다.
잘못 붙어 버린 팔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른팔로 어떻게든 창을 잡고 있지만, 왼팔에 문제가 생긴 이상 창끝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딱 하나.
거리를 벌려서 빠르게 팔을 다시 꺾어 맞추는 것.
순리는 기운을 담아 발을 구른 후,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오른팔로 자신의 왼팔을 꺾었다.
뚜둑.
“크으으.”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애써 참았다.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팔이 원상 복구 될 것이다.
하지만 괴물은 그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기껏 치료해 줬는데, 자해를 하면 어떻게 하냐.”
김시우가 거침없이 순리를 향해 쇄도했다.
순리는 떨리는 팔로 창을 휘둘러서 바람을 일으켰다.
날붙이와도 같은 바람.
철조차 끊어 버리는 예기를 지닌 바람이 순리의 주위를 휘감았다.
‘시간을 조금만…….’
그는 바람이 김시우를 잠시나마 막아 주기를 기대했다.
10초.
딱 10초면 된다.
10초만 기다리면 팔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10초 뒤에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저 괴물의 가슴팍에 창을 찔러 넣으면 된다.
김시우가 인간인 이상, 심장을 뚫는다면 저 끔찍한 재생력도 사라질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이레귤러를 정리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대련 중에 일어난 사고.
왕웨이가 대련 중 김시우에 의해 폐인이 되었듯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방심을 틈타 한 번이면 된다.’
일격필살.
김시우를 지금까지 과소평가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전력이 담긴 일격이라면 충분히 목숨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6초, 4초, 2초.
‘거의 다 되었…….’
왼팔의 신경이 복구되어 가는 것이 느껴지던 찰나, 바람 틈으로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공포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피로 범벅이 된 팔.
그 팔은 거침없이 순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바람 틈 사이로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잡았다.”
순리는 그 팔을 내려다보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
“왜?”
“대인전은 내가 패배했다. 하지만 내 능력은 대인전보다는 거리를 둔 화력전에 특화되어 있다. 즉, 내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군자보구 십년불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참아도 늦지 않는다.
비록 지금은 치욕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일단 이 상황을 회피해야만 했다.
원거리로 자웅을 겨룬다면, 그나마 할 만할 것이다.
몸으로 겪은 결과, 김시우는 대인전에 특화된 이레귤러.
화력전으로 끌고 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패배를 한 번 인정해서일까?
김시우로부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화력전 좋지.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거 나도 좋아해. 그렇게 하자.”
김시우가 멱살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본 순리가 입꼬리를 올렸다.
‘멍청한 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하지만 순리는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걷힌 후, 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
넓은 대련장 안을 셀 수 없이 많은 새하얀 창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시우가 반쯤 넋이 나간 순리를 향해 말했다.
“한국인만큼 화력에 미친 사람들도 없지. 기대해라.”
“……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