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
2화
1. 돌아오기는 했는데…….
1.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김시우 씨?”
“예.”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능관리국의 규정상 귀환자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검증 절차 요구되거든요.”
“아, 예. 뭐 편한 대로 하세요. 그나저나 이렇게 규정까지 따로 마련되었을 정도면 귀환자가 꽤 흔한 편인가 보죠?”
“하하하……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다만, 귀환자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매년 평균 140건 이상 발생하기 때문에 마련된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지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에덴에 처음 굴러떨어졌던 그날보다 훨씬 더 어지럽다.
적어도 에덴은 아예 내가 모르던 세계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이곳은 지구다.
내가 그렇게 돌아오고자 했던 나의 고향 말이다.
언제부터 지구가 이렇게 바뀌어 버린 걸까?
그리고 이곳, 이능관리부 특수조사실>이라는 곳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인 걸까?
내가 지금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딱 하나뿐이다.
대한민국 ‘어딘가’에 위치한 건물의 지하실이라는 점.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다가왔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는데, 그 대화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능관리부에서 나왔습니다.
나: 예? 어디요?
-방금 전에 지구로 귀환하신 분 맞으시죠?
나: 그런데요?
-저희가 다 알고 왔으니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불응 시 형사적 책임을 물으실 수 있습니다.
나: ……예?
-그럼 잠시 저희와 함께하시겠습니다~
나: ???
그러고 나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물론 이곳이 고문실이나 감옥 같은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지하실은 아니다.
곳곳에 자리 잡은 작고 귀여운 꽃과 화분들.
거기에 누구의 취향인지 대체 모르겠는 귀여운 곰 인형들과 구석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공기청정기까지.
고문실보다는 차라리 아이들 놀이방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인테리어를 담당한 사람이 어떻게든 어두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보이는 구조였다.
“자, 그럼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볼까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은 김동식.
본인 스스로를 이능관리부 특수조사국 2팀장>이라고 소개한 남자였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음, 짬을 내서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미션을 받았는데, 그 미션을 준 사람이 알고 보니 리멘이라는 신이었다. 그리고 미션을 받자마자 에덴이라는 세계로 납치당했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 10년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이 정도입니다.”
음. 그 정도면 할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동식 씨는 여전히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내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왔다.
“본인이 10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는데, 혹시 그러면 그 세계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셨습니까?”
“무엇이라는 기준이…….”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직업 활동을 일컫는 겁니다. 그쪽에서 무엇을 하다 오셨는지를 저희가 알아야 적응을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나라에서 귀환자들 적응까지 도와준다니.
진짜 지구가 뭔가 좀 이상하게 바뀐 것 같긴 하다.
일단 뭐 직업을 물어보니까 대답은 해 주도록 하자.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살짝 피곤한 티를 내면서 말했다.
“교황이었습니다.”
그 말에 부지런히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던 동식 씨의 타자가 멈췄다.
“……예?”
“교황이었다니까요.”
“아, 그렇군요.”
타다닥.
확실한 내 대답에 동식 씨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잠시 후.
“에덴이라는 세계에서 교황으로 10년을 지내다가 귀환했…… 푸흡.”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비웃음의 의미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사제복을 입고 계셨던 거군요.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이해합니다. 제가 그쪽 입장이었어도 웃음을 참기 힘들 것 같거든요.”
“제가 주로 귀환자분들 조사를 담당하는데, 이게 아무리 조사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후우.”
“저 말고 특이한 직업을 지니셨던 분들이 계신가 봐요?”
“물론입니다. 당장 지난주만 해도 꽤 특이한 이력을 지니신 분이 귀환하셨거든요. 시우 씨처럼 교황은 아니었지만요.”
나는 그 말에 차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떤 귀환자였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원래는 안 되지만, 특별히 말씀드리도록 하죠. 그분은 대륙 통일 황제의…….”
뭐야. 그 정도면 상당히 강력한 귀환자…….
“내시였습니다. 아주 총애를 받는 내시였다고 하시더군요.”
……는 아니구나.
잠깐만.
“내시라면 설마…….”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오, 저런.”
“참 안타까운 일이죠. 혼전순결주의자셨다던데.”
“맙소사.”
여태까지 내가 이세계로 간 것이 참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부터 그런 생각 안 하기로 했다.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 많겠구나.
아무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푼 우리는 그 이후로 이런저런 대화를 더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꽤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다.
마왕들의 대가리를 손수 뽑아 준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교황에 오른 후, 지구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굳이 이야기를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한국말로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사를 빨리 끝내고 가족들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내 조사는 1시간쯤이 되어서 마무리되었고, 보고서 작성을 완료한 동식 씨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조사에 성실하게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월하게 협조해 주신 덕에 금방 끝낼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 이제 중요한 절차는 다 끝내셨으니 제가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동식 씨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식 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가장 먼저 전해 드릴 소식은 아까부터 궁금해하셨던 가족분들 이야기인데, 남동생분이랑 여동생분 두 분 모두 아주 건강하게 서울에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친할머니께서는…… 미국을 여행 중이시군요.”
그 말을 듣자 막연한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내 동생들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더라도 잘살 거라 생각했었지.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을 여행하고 있다는 게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원래 해외여행을 좋아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이상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옛날부터 아주 특이하신 분이셨거든.
그래도 막상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들으니 한시름 놓인다.
가만 보자.
10년은 지났으니까 인욱이 녀석이 27살쯤…….
“두 번째로 전해 드릴 소식은 좀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만, 귀환자분들에게는 흔히 발생하는 일입니다. 시우 씨는 저쪽 세계에서 10년을 보내셨죠?”
“그런데요?”
“지구에서는 시우 씨의 실종 시점을 기준으로 5년이 흐른 상태입니다. 올해는 2033년이며, 시우 씨의 나이는 32세가 아니라 27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동식 씨 말대로라면 지구가 고작 5년 만에 이 사달이 났다는 건가요?”
“안타깝지만요.”
동식 씨는 물을 마시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10년 만에 이렇게 변한 것도 당황스러운 지경이었는데 사실 5년 만에 이렇게 변한 거라고?
도대체 지구에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
동식 씨의 말에 따르면 귀환자는 총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눠진다고 했다.
첫째. 이계에서 이능을 획득하지 못했거나, 귀환 과정에서 이능을 상실한 귀환자들이 해당하는 레귤러(Regular) 등급.
둘째. 이계에서 이능을 획득했으나 그 수준이 위협적이지 않은 귀환자들에게는 언노멀(Unnormal) 등급.
마지막으로 이계에서 이능을 획득했으며, 그 이능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귀환자들이 속하는 디재스터(Disaster) 등급.
처음 동식 씨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나는 세 번째 등급인 디재스터로 분류될 줄 알았다.
시한부기는 해도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판정받은 등급은 다름 아닌 첫째 등급인 레귤러 등급.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측정 기계가 신성력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서 나는 졸지에 차원 이동 간에 이능이 소멸된 귀환자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나는.
-규정에 따라 레귤러 등급은 기본 조사만 끝내고 귀가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시우 씨께서 원하신다면 여기서 계셔도 괜찮지만, 가족분들 보시고 싶으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댁으로 모셔다 드릴 겁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이능관리부에서 진행하는 귀환자 적응 프로그램을 이수하시게 될 겁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동식 씨의 말과 함께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난생처음 와 보는 우리 집으로 말이다.
“동생분들이 살고 계시는 곳은 107동 906호입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이곳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부우우우웅-.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이능관리부의 직원은 그렇게 떠났고, 나는 등을 돌려서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역 부근에 위치한 아파트.
원래 우리 3남매가 살던 빌라가 아닌, 난생처음 보는 곳이었다.
이 아파트 타운을 보고 나니까 내가 정말 지구로 귀환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와이번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마포대교보다는, 이쪽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지구의 풍경이다.
“하아.”
나는 크게 숨을 뱉어 낸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구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내일부터 진행되는 귀환자 적응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시켜 준다고 했으니, 지금은 재회에만 집중하자.
5년밖에 안 흘렀으니까 동생들의 얼굴은 여전할 거다.
인욱이 녀석은 24살, 우리 귀여운 막둥이 시연이는 이제 막 10살. 시연이는 얼굴이 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어린아이들은 몰라보게 크니까.
듣기로는 인욱이 녀석은 아직 내가 귀환한 사실은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내 신원이 확인된 이후부터 수십 번을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되었다더라.
지금 시간이 오후 4시니까 자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띠링! 9층입니다.
돌아온 이래로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다음, 906호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잠시 후.
“뭐야?”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집에 없나?
일단 다시 한번 눌러 보자.
띵동.
여전히 반응은 없는 것 같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까 보니까 요 앞에 카페가 있던데 거기서 기다…….
-누구세요.
그때였다.
적막했던 너머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터폰의 음질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것이 인욱이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인욱이라면 내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자다가 깼는데…… 아저씨. 그냥 가세요. 저희 신 안 믿어요. 하. 경비 아저씨한테 전화를 하든가 해야지. 시대가 어느 땐데 문을 두드리면서 전도를 하고 있어.
“아니, 나는 전도하러 온 게 아니라…….”
-아저씨. 그 이상한 옷이나 갈아입고 그런 얘기 하세요. 지금 안 가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아시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숙여서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장식도 달려 있지 않은 검은색 사제복.
지구에 와서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 옷을 입고 있는 거다.
“하하.”
그래, 옷을 보고 오해할 수는 있지.
오늘 내가 지구로 귀환한 기쁜 날이니까 얼마든지 넘어가 줄 수 있……기는 개뿔.
쾅쾅쾅!
“야! 문 안 열어?”
감히 나를 못 알아봐?
나는 목소리 듣고 한 번에 알아차렸는데, 진짜 괘씸해도 너무 괘씸하잖아.
내가 얼마나 문을 두드렸을까.
벌컥-!
드디어 닫혀 있던 문이 열렸고, 나는 굳었던 표정을 피면서 천천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걸로 내 대가리 후리려고?”
금속으로 된 야구 배트를 들고 있던 내 동생, 인욱이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