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5.
김 팀장의 수완은 역시 대단했다.
아버지는 위대하다고 했던가.
딸이 해 줬다는 작은 팔찌를 착용하고 있던 김 팀장은, 극한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훌륭하게 교통정리를 완료하였다.
“그럼, 이번 일은 서로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두 분 다 동의하시죠?”
이곳은 이능관리부 안양지청의 회의실.
불과 1시간 전, 안양 게이트에서 있었던 사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단락되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인 도깨비 길드의 대표가 일방적으로 땅에 처박혔던 사고.
이렇게 보면 참 대형 사고는 대형 사고다.
이계인의 출현부터 시작해서, 땅에 두 번이나 처박힌 최서진 대표까지.
밖으로 새어 나가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을 들썩이기에 충분한 사건들이었으나.
“사내들끼리 몇 번 치고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흐하하! 저는 유감없습니다. 간만에 매운맛을 봐서 그런가, 속이 시원합디다.”
“대표님께서 정말 큰 양보를 해 주셨습니다.”
“양보라니요. 따지고 보면 제가 흥분해서 생긴 일입니다. 우리 애들 입단속이야 시켜야겠지만…… 병아리들은 기절해 있었고, 정신 붙잡고 있던 우리 애들이야 어디가서 떠벌릴 놈들도 아니고! 불만 없습니다.”
놀랍게도 최서진 대표는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땅에서 나오자마자 나에게 사과를 했을 정도였다.
간만에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참을 수 없었다고 그랬던가?
아무튼 그렇게 급한 불은 꺼졌고, 그 이후 우리는 이곳으로 이동해서 차후 처리에 관해서 논의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덮어 두는 걸로 정리하면 되겠군요.”
김 팀장은 한시름을 놓았다는 듯, 크게 숨을 뱉어 내면서 말했다.
“게이트에서 나온 부산물들은 전부 도깨비 길드에서 챙겨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시우 님도 이의 없으시지요?”
“네.”
“그리고 최서진 대표님. 기밀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항인지라…….”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최 서진 대표는 물 한 컵을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곧 또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우리 애들은 본인들이 도깨비 소속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지닌 녀석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밖에 나가서, 우리 대장이 발정난 개새끼마냥 달려들다가 대판 깨졌다, 이렇게 말하고 다니겠습니까? 흐흐.”
“……발정난 개새끼는 좀…….”
내 말에 최 대표는 오른손을 흔들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하나만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시우 씨?”
“그러시죠.”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최 대표는 눈빛을 빛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저희 도깨비 길드와 제휴를 맺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이곳에 제휴 협약을 증명해 주실 분들도 계시고, 서로만 동의하면 간단할 겁니다.”
“제휴 협약이요?”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란 말인가.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연합해서 레이드에 참가하거나, 던전도 공유하는 등,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해가 좀 있으신가 본데, 저희는 길드 같은 거 아닙니다? 교단이라구요, 교단.”
내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S급 랭커를 압도할 수 있는 각성자가 둘이나 소속된 집단입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이 단순한 종교 집단으로 바라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김 팀장.”
갑작스러운 최 대표의 지적에,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 팀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이능관리부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흐흐, 보십시오. 시우 씨. 이게 그렇게 막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시우 씨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십시오. 몇몇은 이미 움직이고 있고…… 아, 제휴는 천천히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본인의 용건을 끝낸 최 대표는 거침없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곧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우 씨.”
“아…… 예.”
“덕분에 오래간만에 뜨거운 열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 꼭 갚도록 하지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흐하하!”
최 대표는 특유의 웃음과 함께 머뭇거림 없이 회의실에서 퇴장했고, 나와 김 팀장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쿠웅-.
문이 닫힌 후.
나는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쉽지 않은 사람이네요.”
“제가 미리 경고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누가 저 정도일 줄은 알았나?”
“그래도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이 풀려서 다행입니다. 최 대표가 시우 님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저 근육질의 짐승남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이 왜 이렇게 소름 끼치게 들리는 것일까.
나는 몸을 살짝 떤 다음, 내 앞에 놓여 있던 커피를 마시면서 김 팀장에게 물었다.
“언제쯤이면 레오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이미 기본적인 검사는 끝났습니다. 함께 돌아가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두겠습니다. 각성자 등록증을 비롯한 신분 증명은 저희가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민폐만 끼칩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돈 좀 벌면 가장 먼저 김 팀장한테 보약이라도 지어 줘야겠다.
어찌 되었든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일단, 레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6.
원래 내 계획은 레오의 옷을 갈아입힌 후에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옷집도 없었고, 설령 옷집이 있었다고 해도 레오의 체구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택시를 불러서 타고 왔다.
나와 레오의 능력이라면 뛰어서 올 수도 있었겠다만, 그랬다가는 인터넷에 충격적인 이족 보행 괴물?!>라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올까 봐 참았다.
레오의 체구 때문에 대형택시를 타고 왔고, 택시 기사님이 레오를 두려움의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건 비밀이다.
아무튼.
“형 왔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
아까 전에 게이트에서 힘을 쓰고 커피만 마셨더니 살짝 배가 고프던 차였다.
“오빠아!”
밥을 먹고 있었는지, 시연이가 입가에 밥풀 하나를 묻힌 채로 쪼르르 뛰어왔다.
나는 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웃음을 지었다.
“시연이 학원 잘 다녀왔어?”
“응! 오빠는 뭐 하다가 왔어?”
“오빠는 일 열심히 하고 왔지. ”
“오빠도 빨리 저녁 같이 먹…… 앗? 손님이다! 안녕하세요!”
내 품에서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시연이가 내 뒤에 있던 레오를 발견했고, 곧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리고 그런 시연이의 반듯한 인사에 레오는.
“안녕하십니까?”
저게 웃는 건지, 마는 건지 하는 애매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내 주먹에 땅에 처박히던 순간까지 짓고 있던 무뚝뚝한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무뚝뚝한 놈이었는데 말이다.
“맞다.”
이제야 생각났다.
“너 애들 되게 이뻐하지?”
에덴에서도 레오는 유난히 아이들을 잘 챙겨 줬었다.
틈만 나면 본인이 담당한 교구의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하고는 했었지.
다만, 요령이 없어서 항상 아이들 앞에서 뻣뻣하게 서 있었을 뿐이다.
내 말에 레오는 시연이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야말로 신께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인사해. 내 동생 시연이야. 시연아. 이 아저씨는 레오라고 해. 앞으로 오빠가 하는 일 도와주실 분이셔.”
“안녕하세요, 레오 아저씨. 아저씨는 키가 되게 크시네요! 멋있어요!”
시연이의 칭찬에 레오는 잠시 멈춰 선다.
할 말을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는데, 녀석은 곧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시연 님. 레오 루멘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쯤이었다.
“형 왔…….”
방에서 영상 편집을 하고 있었는지, 인욱이가 작은 방에서 튀어나왔다.
인욱이는 레오를 보자마자 제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확실히 레오를 처음 보면 저런 반응이 대부분이긴 하다. 안 무서워하고 방긋방긋 웃는 시연이의 반응이 좀 특이한 거고.
나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면서 인욱이에게 말했다.
“형이 아까 선교사 데려온다고 말했었지?”
“……저 사람, 아니 저분이 선교사셔?”
“이래 보여도 에덴에서 아주 추앙받는 사제야. 마족과의 전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료기도 했고. 둘이 인사 나눠.”
이번에도 레오는 순순히 내 말을 들었다.
“리멘을 모시는 충실한 종, 레오 루멘이라고 합니다. 김인욱 님.”
“제, 제 이름을 아세요?”
“교황 성하께서 자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음, 그랬었나?
나도 잘 모르겠네. 술 마시다가 이야기해 줬었나?
뭐, 아무렴 어때. 앞으로 더 친해지면 되는 거지.
나는 어색함이 잔뜩 느껴지는 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다음, 손으로 배 주위를 문지르면서 신발을 대충 벗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 인욱이 너는 밥 안 먹냐?”
“먹다가 급하게 메일 보내는 중이었어.”
“잘됐네. 같이 밥 먹자. 레오 너도 같이 먹어야지? 인욱이 얘가 요리 하나는 기깔나게 잘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거 없지. 괜찮지 인욱아? 시연아?”
“어? 어…….”
“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와 레오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고, 곧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형만 올 줄 알고 많이는 안 차려 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장이라도 보고 왔지.”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안 그래 레오?”
“맞습니다. 하나같이 정성을 들인 음식들인 것 같습니다.”
식탁에는 된장찌개와 익은 김치, 그리고 할머니가 추석 때 부쳐주고 가셨다는 전들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 언제 오신다고 했지?”
“맞다. 어제 할머니한테 전화 왔었는데. 미국에서 친구 만드셨다고, 조금 더 있다가 오시겠다던데?”
“내 전화는 받지도 않으시더니.”
“원래 그런 분이시잖아.”
손자가 이세계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데, 살짝 섭섭하긴 하네.
원체 괴팍하신 분이셨으니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식탁에 앉았고, 레오 역시 내 옆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곧 어깨에 레오의 듬직한 삼각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식탁이 좁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거실에다가 상을 펴 두고 먹을 걸 그랬나?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인욱이가 수저를 놓아 주면서 묻는다.
“그냥 거실에서 상 펴고 먹을까?”
“아닙…….”
레오의 대답에 물끄러미 우리를 보고 있던 시연이가 본인 옆의 의자를 끌어 주면서 말했다.
“레오 아저씨! 제 옆에서 같이 먹어요. 제가 작으니까 괜찮으실 거예요.”
어이구, 착한 것.
레오가 슬쩍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시연 님.”
“헤헤, 편하게 시연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교황 성하의 동생분께 함부로 무례를 범할 수 없지요.”
“우리 오빠가 교황이에요?”
나는 시연이의 질문에 그저 미소를 지으면서 수저를 들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프다.”
나중에 시간 내서 시연이에게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 생각해 보니 시연이한테 저쪽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안 해 줬었네.
그런 걸 보면 시연이가 참 어른스럽다.
궁금하다고 먼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럼 다시 잘 먹겠습니다!”
시연이는 다시 수저를 들었고.
“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주신 리멘께 감사드립니다.”
레오 역시 잠시 기도를 드린 다음, 어색하게나마 숟가락을 쥐었다.
나 역시 그 둘을 잠시 살피고 나서 곧바로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이거지.”
워낙 시장했던 탓에 밥은 아주 맛있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프라이팬에 살짝 달군 듯한 전.
거기에 입이 느끼해지려고 할 때마다 적당히 익은 김치를 입에 집어넣으니, 이것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에덴에서 가장 그리웠던 게 바로 이 맛이었거든.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 눈앞에 꽤 재밌는 장면이 펼쳐졌다.
짤그락.
젓가락이라곤 써 본 적이 없었을 레오가 신들린 젓가락질을 보여 주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전과 함께 밥을 해치워 버린다.
“젓가락질 그거 처음 하면 엄청 어려운데 왜 그렇게 잘하냐?”
“마수들과 39시간 동안 싸우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밥이나 계속 먹어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은 된장찌개도 거침없이 숟가락으로 떠먹더니, 곧 눈을 크게 뜨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리멘이시여.”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훅 들어오는 감탄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킥.”
“음, 죄송합니다. 교황 성하. 처음 먹어 보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이 좋아서…….”
“음식이 입에 맞는다니까 보기 좋네. 많이 먹어.”
나는 레오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빡세게 굴릴 테니까 밥이라도 잘 맥여 둬야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잖아?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