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65. 시스템
1.
천사.
보통 악마의 정반대에 서서 신의 명을 따르는 사자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신의 명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해서 꼭 선한 게 아니다.
아니, 애초에 천사를 선, 악으로 구분하는 것부터가 무의미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하수인. 모시는 이의 뜻을 따를 뿐이다.
그들이 모시는 이가 악의 길을 걷는다면 악. 선의 길을 걷는다면 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 천사 놈은.
“악.”
명백한 악의 길을 걷고 있다.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목숨을 함부로 하고,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괴물로 만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악의 증거다.
이곳의 주인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증거.
나는 녀석의 삼지창을 너클로 튕겨 내면서 입술을 핥았다.
【따라와라. 이곳에서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순 없다. 이곳은 그분만을 위한 신전. 네 동료들을 생각한다면 포기해라.】
“포기하라는 놈이 죽일 듯이 창을 찔러 대고 있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놀아 달라는 거냐? 그리고 네가 보기에는…… 쟤네들이 당할 것 같아?”
천사 녀석은 혼자서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괴물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괴물들을 끌고 왔다.
사제복을 입은 괴물들.
그 괴물들이 파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위대하신 분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친 종들이다. 그 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너희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는 천사 놈.
아까 전부터 모기처럼 날아다니는 게 거슬린다.
이 녀석이 이 던전의 중간 보스인 것 같은데, 솔직한 내 감상을 말하자면…….
“실망이다.”
【뭐?】
“너무 약하잖아.”
부우우우우욱!
나는 왼손으로 녀석의 오른쪽 첫 번째 날개를 뜯으면서 히죽였다.
천사를 상대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에덴에서도 천사를 몇 번 상대해 본 적이 있다.
필멸자들을 버리고 마왕의 편에 섰던 놈들의 천사들을 말이다.
애초에 이 녀석들은 감정이란 게 희미한 놈들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
하지만 그런 놈들도 딱 한 가지, 피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공포.
녀석들도 공포를 느낀다.
부우우우우우우욱.
나는 녀석의 목을 손으로 움켜쥔 채로 날개를 한 장 한 장씩 뜯어 버렸다.
천사는 발버둥을 쳤지만, 내 손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상대방이 당신이 보유한 격>에 압도당합니다.]이 격>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 따위의 격이 무슨…….】
덜덜덜.
이 녀석에게는 아주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삼지창을 들고 기세 좋게 달려들던 천사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자랑하듯 펼쳤던 날개는 벌써 네 장.
그래도 내가 밸런스를 신경 써서 오른쪽, 왼쪽 한 장씩 찢어 줬다.
따지고 보면 이 녀석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
나에 비하자면 손색이 있지만, 이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왜일까?
이 녀석은 지금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키이이이이이이익!
푸우우우욱.
이 녀석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주위의 괴물들을 불러들이는 것.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들던 괴물들을 천망을 이용해서 가볍게 제압해 준 다음, 천사의 연녹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표정 좋네.”
얼굴을 잃어버린 사제들과는 다르다.
천사는 신이 직접 빚어 낸 피조물.
완벽에 가까운 이목구비다.
녀석의 몸에서 반항이라도 하는 듯 간헐적으로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나, 그 신성력들은 모두 내 신성력에 잡아먹힌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내 몸에서 흘러나간 신성력이 천사의 전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가 당신의 격에 완전히 굴복합니다.] [알 수 없음>의 권속을 당신의 권속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 [핵심 키워드 권속>을 획득합니다.]……권속?
그 메시지가 뜬 순간, 천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적의가 소멸한다.
적의로 가득 찬 눈빛을 대체하는 것은 공허한 눈빛.
녀석은 텅 빈 표정으로 내 눈빛을 마주했다.
【제단에 도달하는 통로가 제 안에 있습니다. 당신에게 그 길을 보여 드리겠나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푸우우욱.
천사는 내가 어찌하기도 전에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흰색 피가 흩뿌려졌다.
그 피는 순식간에 괴상한 모양으로 흩어지더니, 곧 그 피 사이에서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법한 크기의 검은색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또 무슨…….”
내가 천사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파스스슥.
천사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흩어져 내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검은색 문을 바라보았다.
끼이이익-.
그 문은 마치 나를 초대라도 하는 듯,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 너머에서 거대한 신성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천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순수하고 끔찍한 신성력이 말이다.
“후.”
나는 그 문과 내 동료들을 번갈아 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큼성큼 문 안으로 들어갔다.
2.
그 너머의 풍경은 내가 예상과는 너무 많이 달랐으나, 동시에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높은 천장, 곳곳에 위치한 거대한 기둥들.
무엇보다도 중심에 위치한 누군가의 신상.
그 신상은 나에게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신상은 리멘의 얼굴 없는 신상>이었으니까.
나는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았다.
에덴의 교황청에 위치한 리멘 교단의 대신전.
원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제들과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곳이었으나, 이 넓은 공간에 나를 제외한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예배당.
나는 아무 말 없이 리멘의 신상을 향해 다가갔다.
마침내 내가 리멘의 신상 앞에 도달했을 때, 신상 뒤쪽에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우.”
귀에 익은 목소리.
검은색 드레스.
숨 막히게 아름다운 리멘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리멘의 외관은 모방할 수 있으나, 리멘의 신성력까지는 모방할 수 없다.
리멘의 신성력은 그 무엇보다 순수하다.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주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신성력.
고작 잡신 따위가 흉내 낼 만한 기운이 아니다.
나는 창으로 그녀의 목을 겨누면서 말했다.
“흉내를 내려면 좀 신경을 쓰지 그랬냐? 아, 신성력은 흉내를 못 내나?”
그러자 리멘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그것’이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우, 나야. 나를 진짜 못 알아보겠어?”
“당연히 못 알아보지.”
푸우우우욱.
그것의 가슴팍에 창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보냐?”
창에 가슴이 꿰뚫린 ‘그것’은 창을 내려다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터프해. 리멘이 너를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마음에 들어.”
촤르르르르륵.
그녀의 발밑에서 검은색의 촉수들이 뻗어 나왔고, 촉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나는 신성 보호막을 두르면서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 촉수들 사이에서 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피부와 붉은색 머리카락의 여성체.
“이 모습은 마음에 들어?”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내 턱을 손으로 쓸었다.
나는 내 턱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은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도대체 뭐냐?”
눈앞의 그녀가 신격에 도달한 존재라는 건 분명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불쾌한 신성력.
그 신성력은 쉴 틈 없이 내 전신을 압박한다. 신성력을 미리 두르지 않았다면 벌써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두려워해야 정상인데…… 배짱도 좋아. 이래서 리멘이 미리 너를 납치해 간 건가? 아쉬워. 나를 먼저 만났다면 내가 완벽하게 사육을 해 줬을 텐데.”
“너를 먼저 만났다면 그냥 혀 깨물었을 것 같은데.”
“그 요물 같은 혓바닥을 깨물었을 거라고? 그러면 안 되지. 네 매력 포인트가 바로 그건데.”
그녀는 미소를 지은 후, 천천히 예배당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내 기대 이상이야. 지금까지 귀환자들이 보여 준 행보 중에서는 네 행보가 제일 눈길이 가. 앉아서 얘기할까? 나는 일단 싸울 생각은 없어.”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런 내 태도에 그녀는 큰 소리로 웃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내 바로 뒤에 의자가 생겼다.
“앉아.”
“그 전에 네가 누군…….”
“안 앉으면 네 동료들 다 죽여 버린다? 응?”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안 그래도 다리 아팠는데.”
내 동료들을 죽인다는 게 마냥 농담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듣네. 농담이었어. 내가 네 동료들을 왜 죽여? 그리고 사실 죽일 수도 없어. 그냥 시험을 좀 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 그리고 뭐라도 좀 마실래? 와인? 샴페인?”
“식혜.”
“식혜 좋지.”
그녀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곧 내 손에 식혜가 담긴 크리스털 잔이 생겼다.
나는 그 식혜를 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살얼음까지 껴 있는 게, 맛 한번 제대로다.
“밑에서는 어땠어, 마음에 좀 들었어? 네 신격을 깨워 주려고 나름 준비를 했어.”
“괴물들과 천사의 정체는 뭐였지?”
“빌어먹을 새끼들이 이 세계로 끌고 들어온 망자들. 내 선에서 처리할까 하다가, 너한테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서.”
그녀는 잔에 담긴 금빛의 액체를 들이켰다.
“권속. 신격으로서 거둘 수 있는 하수인. 자신의 신성력을 나누어 주어, 일부 권능을 대리할 수 있게 해 줘. 아까 전에 네가 경험한 건 일종의 튜토리얼이었어.”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불쾌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위협적인 기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그녀가 정말 나에게 적의가 없거나, 아니면 그녀가 내 직감에서 아득히 벗어난 존재거나.
전자의 경우에는 싸울 일이 없는 거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런 힘이 있음에도 나를 살려 두는 거고.
어쨌거나 양쪽 다 당장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린 다음, 곧바로 말을 꺼냈다.
“너는 도대체 뭐지?”
그러자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내 시선을 마주하면서 답했다.
“방금 힌트를 줬잖아. 이 미궁 자체가 튜토리얼이었다고, 너한테 튜토리얼을 내줄 만한 존재가 몇이나 있겠어?”
그제야 나는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스템.”
내 말에 그녀가 잔에 남은 액체를 모두 비웠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어째서 지금…….”
내 물음에 그녀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말해 주려고.”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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