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3.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테라라고 소개했다.
“누군가는 나를 가이아라고도 부르고, 그 밖의 많은 이름으로도 불렀어. 그런데 어떻게 불렀는지가 중요하겠어? 사실,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 중요할 뿐이지.”
뭐라고 부르는 게 편하겠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테라’라고 답했다.
테라.
그 밖에 그녀가 가졌던 수많은 이름이 지닌 의미는 모두 한 가지를 의미했다.
땅. 우리가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
“너희 인류에게 시스템이라는 선물을 건네준 장본인이기도 해.”
“본인이 이 사태의 원흉이라는 말을 떳떳하게 하네.”
“원흉이라…… 좀 억울한데?”
그녀는 자신의 비어 있는 잔에 다시 금빛의 액체를 채웠다.
그리고 그 액체를 단숨에 비운 다음,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굳이 너에게 변명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너희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야.”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의 변명치고는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그렇게 들렸다니 다행이네. 아, 그리고 리멘과 거래를 한 당사자도 나야. 내가 너를 리멘에게 팔아넘겼어.”
내 동의도 없이 나를 이세계로 팔아넘겼다는 이야기를 뻔뻔하게도 내뱉는 테라.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테라는 내 빈 잔에 식혜를 리필해 주면서 말했다.
“촌뜨기 차원계의 머저리 같은 신에게 미물을 하나 대여해 줬는데, 이렇게 크게 돌아올 줄은 몰랐지. 이걸 인간들은 떡상이라고 표현하던가?”
“리멘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
“둘이서 눈이라도 맞았나 봐? 아까 내가 리멘을 흉내 내고 있을 때도 굉장히 화가 난 표정이었거든. 신과 그를 모시는 인간의 사랑이라…… 그런 건 드라마로 나와도 재미없겠다. 현실성도 없고, 소재도 옛날 소재고.”
“그 주둥아리로 신이 된 거냐? 쓸데없이 말이 많아.”
“재밌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서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거야?”
테라의 눈이 흑색으로 빛난다.
그녀의 신성력이 나를 향해 난폭하게 몰아친다.
당장에라도 내 목숨을 끊을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신성력을 묵묵히 견뎌 냈다. 그리고 테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너에게 필요한 존재잖아?”
“왜 그렇게 확신해?”
“필요 없는 놈에게 튜토리얼까지 내 주고,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눌 리가 없잖아.”
“내가 오랜만에 미물이랑 놀고 싶은 생각일 수도 있지.”
“그럼 죽여 보든가.”
“무서워하는 척이라도 해 줘. 그래야 재미가 좀 있잖아? 너는 가만 보면 항상 오늘만 사는 놈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이라도 살아야 내일이 있지. 오늘 죽으면 내일도 없어.”
“제법 그럴듯해.”
“다 떠나서, 지금 나를 압박하고 있는 이 신성력. 그 고대 신이라는 놈들이 사용하는 신성력과 비슷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이냐?”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
이 녀석이 시스템이고 뭐고를 떠나서, 이 불쾌한 신성력부터가 짜증이 났다.
지구 밖으로 쫓겨났다던 고대 신이 사용하는 신성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성력이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테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착각이 아니라, 비슷한 거 맞아. 나 역시 그 녀석들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래. 뿌리가 같으면 신성력 역시 비슷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그 녀석들과 내가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녀석들은 쫓겨났고, 나는 지구에 잠들었다는 것뿐이야.”
“왜 너 혼자만 지구에 남은 건데?”
“간단해.”
테라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내가 배신자였으니까.”
“배신자?”
“나는 이 땅을 믿는 이들로부터 태어난 존재. 그 땅을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놈들과 뜻을 함께할 수는 없었어.”
그녀는 몸을 빙글 돌리면서 리멘의 신상으로 다가갔다.
리멘이나 베스로부터 들어 본 적조차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과연, 그녀가 말하는 것들이 진실일까?
그러나 나는 곧 그 말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네 자유고. 어차피 네가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거야.”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득히 먼 과거의 이야기.
고대에 어떤 전쟁이 있었는지 따위는 사실 내 관심 밖이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
테라가 고작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렇게 직접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아, 갑자기 든 생각인데.”
테라는 리멘의 얼굴 없는 신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내 신성력을 불쾌하게 느끼는 이유는 별거 없어. 리멘의 신성력에는 불순물이 없어. 그녀의 신성력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라서 그래. 그에 반해 내 신성력은 꽤 잡다한 것들이 섞여 있어. 다른 신격의 신성력을 흡수했단 말이지.”
“딱히 안 궁금했어.”
“그래? 궁금한 표정이었는데?”
신이라서 그런가, 눈치가 제법이다.
나는 의문점을 하나 해결했다.
다른 신격의 신성력을 흡수했다라.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융화되지 못한 불순물들 때문에 내가 불쾌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쉽게 이해가 된다.
한마디로 잡탕찌개였다는 뜻.
“그럼 차원을 연 것도 네 짓이냐?”
“그건 쫓겨난 놈들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서 벌인 짓.”
“배신자라면서 그것도 못 막았어?”
“그놈들이 다른 차원에서 힘을 길러 온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인류에게 시스템을 준 거잖아. 그리고 일부는 다른 차원으로 유학도 보내 주고……. 내 딴에는 열심히 했어.”
그 유학이라는 게 설마 다른 차원으로 던져 버리는 건가?
유학치고는 너무 살벌하다.
“유학 갔다가 죽는 경우도 허다하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지.”
나는 그제야 그녀가 인류에게 시스템을 준 진정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시스템의 목적은 처음부터 단 하나뿐이었던 거다.
“너는 인류를 키워서 그놈들을 막을 생각이었던 거네.”
“맞아.”
“그럼 뭐 하나만 묻자.”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쥔 채로 물었다.
“마기 사용자들을 이 세상으로 불러들인 것도 너지?”
마왕 놈들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그녀의 허락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 말은 결국 테라가 마왕이 지구로 넘어오는 걸 허락해 줬다는 뜻이다.
그녀는 내 질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건 내 짓이야. 네가 마기로 부르는 그 기운 역시 격에 도달하는 방법 중에 하나니까.”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여 대는 새끼들을 격에 도달하게 해 준다고? 네가 그러고도 신이냐?”
에덴에서 그놈들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부드득 갈린다.
녀석들은 끔찍한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테라는 손에 검은색의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신성력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말했다.
“나에게 선악을 요구할 생각이야? 어차피 그놈들이 돌아오면 선악을 구분할 필요도 없어져.”
그녀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인과율을 관장함과 동시에 인과율에 속해 있는 존재. 지금 내 천칭 위에 놓여 있는 건 선과 악 따위가 아니야. 지구의 존속과 멸망이지.”
그녀는 나의 아군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확한 적군도 아니었다.
아군과 적군, 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회색분자.
“나는 단지 전쟁에서 쓸 총알이 필요할 뿐이야. 그 총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나에게 있어서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사르르르륵.
우리가 서 있던 신전이 천장부터 부서져 내린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의 풍경이 뒤바뀐다.
이제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둥도, 의자도.
리멘의 신상도.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땅. 하늘 위에는 붉은색의 태양이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네가 막지 못하면 맞이하게 될 지구의 미래. 내가 너를 부른 이유가 이거야. 이 모습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갈라진 땅 위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갈색 피부가 태양의 붉은빛에 물들어 핏빛으로 빛난다.
“너에게 동기부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지랄맞은 동기부여네.”
“네가 악을 멸하고 선을 추구하는 걸 막지는 않을 거야. 그 과정 속에서 네가 강해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기억해. 네 적은 마기뿐만이 아니야.”
하늘이 갈라진다.
잿빛으로 물든 하늘 틈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테라는 그 괴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와선 안 될 자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거, 절대로 잊지 마.”
[퀘스트 얼굴 없는 자들의 미궁>이 강제로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신성 점수 3만 점, 무작위 성유물>이 지급됩니다.]잠시 후.
스르르르륵.
검은 빛이 내 시야를 잠식했고, 그 사이로 테라의 목소리가 낮게 내리깔렸다.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 사랑스러운 교황아. 리멘에게 안부 전해 주고.”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성하!”
“형님!”
“오빠!”
어느새 나는 동료들의 옆에 있었다.
4.
우리가 던전에서 나왔을 때였다.
무서울 정도로 깊이 파여 있던 구덩이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신기하네요.”
“바닥이 안 보이는 구덩이가 순식간에 메꿔질 줄이야. 이거 메우려면 한참은 걸릴 줄 알았는데.”
내 동료들은 한때 구덩이였던 그 평지를 바라보면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테라.
그녀에게는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지.
에덴이 리멘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이 지구가 테라의 영역일 테니까.
나는 착용하고 있던 슈트를 해제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고생했어.”
내 동료들 중 그 누구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내 표정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뜻이겠지.
루나조차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까.
“후우.”
머릿속이 복잡했다.
리멘은 나에게 테라의 존재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리멘과 테라 사이에 어떠한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리멘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해 주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뜻대로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테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을까?
지금 내 심정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소문으로만 듣던 악덕 사장을 마주한 기분이야.”
월급을 매번 밀리고,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던 사장을 드디어 마주한 기분이다.
한마디로 기분이 아주 더럽단 뜻이다.
내가 에덴으로 건너가게 된 흑막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턱을 긁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뒤에 있던 루나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하, 성유물, 성유물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 맞다.”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얻게 된 무작위 성유물>.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테라를 만난 게 워낙 충격적이었거든.
나는 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빠르게 명령어를 내뱉었다.
“무작위 성유물.”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무작위 성유물>을 사용합니다.] [리멘 교단>의 성유물 중 한 가지를 무작위로 선택합니다.] [에덴-지구 차원 간의 협약>에 따라 해당 작업은 인과율을 적용받지 않습니다.]딱 신전을 세울 수 있는 수준의 성유물이면 좋겠다.
성유물 사이에도 급 차이가 꽤 나는 편이라서, 일부 성유물은 성지를 생성할 수 없다.
큰 욕심 안 바란다.
중상급 이상의 성유물만, 딱 그 정도면 된다.
우우우우웅.
허공에서 신성력이 모여들더니, 곧 어떤 형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약 1분 뒤, 성유물이 지구에 넘어오게 되었다.
마침내 완성된 형상.
그 성유물을 본 루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큰일 났네.”
“……진짜 큰일 났네.”
나는 완성된 그 ‘검’을 손에 쥔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덴의 교황청, 지금 난리 났겠는데?”
“난리에서 끝나면 다행이죠. 따로 연락 안 해 주면 전쟁 날 것 같은데요?”
[성유물 심판의 검>을 획득하셨습니다.]1등상.
아니, 0등상에 당첨되어 버렸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