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6.
사방에서 시체들이 몰려든다.
노인도, 어린아이도.
하나같이 처참한 상태로 죽어 나간 그 불쌍한 이들의 흔적이 매 순간 나를 압박해 들어온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시체들은 저마다 처절하게 외치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취미다.
그들은 이미 목숨이 끊어졌으니, 저 뒤에서 이 상황을 연출해 내고 있는 벨페고르의 짓이었다.
나태의 마왕.
그녀의 주특기는 연출이다.
직접 움직이는 걸 선호하지 않는 탓에 미리 전장을 조성해 두고, 그 전장으로 자신의 적을 끌어 들인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개인의 전투력이 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분석도 이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개 분석이었을 뿐.
파아아아아아앙-!
내가 직접 맞상대했던 벨페고르의 전투력은 전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마왕들보다 까다로운 편이었다.
나는 내 앞에서 폭발한 시체의 살점을 성화로 불태우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콰르르르르륵!
사방에서 검은색의 가시들이 솟아난다.
가시의 끝에 묻은 극독이 희미한 조명에 의해 번들거렸고, 엄청난 속도로 내 몸을 향해 뻗어 온다.
이곳은 이미 벨페고르의 덫 한복판.
“사랑스러운 교황아, 얌전히 나의 인형이 되어 주련?”
벨페고르는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나를 이곳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사실, 이 전투는 처음부터 불공평했다.
저 녀석은 어디까지나 마왕의 화신체에 빙의한 상태라, 이 자리에서 저 녀석을 죽이더라도 또다시 부활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에 반해 나는?
죽으면 여기서 끝.
내 쪽은 목숨을 베팅했는데, 저쪽은 아무것도 베팅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괘씸하네.”
열이 받는다.
지난번에 릴리스도 그렇고, 바알도 그렇고.
죽으면 다른 화신체로 부활하면 된다는 저 썩어 빠진 마인드.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오르는군.
“일단 한 대 맞아.”
벨페고르의 30m 앞까지 도달한 나는 곧바로 뛰어오르면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심판의 검을 단순무식하게 내리쳤다.
검술은 사실 복잡할 게 없다.
비록 내가 에덴에서 두 달짜리 속성 강의를 받았을 뿐이지만, 검술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들고 있는 검을 목표를 향해 정확하고 강력하게 꽂아 넣는 것.
그것이 바로 검술이다.
촤르르르르륵!
벨페고르의 앞에 수십 개의 눈알로 뒤덮인 장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면 하나로 이루어진 장막처럼 보이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200개 이상의 장막이 중첩되어 있었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부우우우욱.
말도 안 되는 희대의 사기 성유물, 심판의 검> 앞에서는 그저 종잇장에 불과하다.
내가 휘두른 검은 그 장막을 부드럽게 베어 버렸고, 그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벨페고르의 육신 역시 가차 없이 베어 버렸다.
검 끝으로 살을 베는 물컹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툭.
벨페고르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흥미로워. 원래 검은 안 쓰지 않았나?”
목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벨페고르는 바닥에 목이 떨어진 채로 미소를 지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인간은 취향이 바뀌기도 하는 법이니까. 좋아, 바뀐 네 취향은 확인했어.”
바닥에 떨어진 목이 입을 나불거리는 꼴이 참 괴이했다.
나는 가차 없이 녀석의 대가리를 발로 으깨 버렸다.
콰지직-.
보통 이 정도면 죽어야 정상이긴 한데, 마왕놈들 중에서 정상이 있을 리가 있나.
내가 녀석의 대가리를 박살 내 버린 순간, 급속도로 재생이 시작된다.
목을 잃어버린 몸뚱어리.
깨끗하게 절단된 목 부근에서 벨페고르의 머리가 재생되었고, 곧바로 반격이 시작되었다.
녀석의 갑주에 박혀 있던 수백 개의 눈알.
그 눈알들이 동시에 나를 주시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시야가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패시브 스킬 신성 보호 Lv. Max>가 강력한 정신 간섭을 방어합니다.]……정신 간섭?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
그때였다.
이 지하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검은색 구체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도구라면 나도 사용할 줄 알거든. 어때, 내 귀여운 인형들은 마음에 들어?”
“이 씨발 놈이 진짜!”
구체에서 걸어 나온 존재들은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이었다.
시연이 또래로 보이는 어린아이들 수십 명.
어린아이들의 몸에서는 강력한 마기가 분출되고 있었지만, 그 어린아이들은 아직까지 숨이 끊긴 상태가 아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거든. 내 역작들이니까 마음에 들었으면 해.”
벨페고르의 입가에 실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와 동시에 자그마한 어린아이들이 맹렬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벨페고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게 네가 준비한 전부야?”
“저 아이들을 죽이고, 나도 죽여. 네 손에 어린아이들의 피를 묻히는 거야.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어린아이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교황! 아아, 생각만으로도 너무 황홀해.”
벨페고르의 눈빛이 광기로 일렁거린다.
“그거 알아? 지금 여기 생중계 중이다? 이제 지구의 모든 인간들이 네 본모습을 알아차리는 거야. 선의로 포장된 네 모습을 벗어던져, 사실 너는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놈이었잖아.”
나를 향해 달려오는 저 아이들.
벨페고르가 직접 주입한 마기의 양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저대로 나에게 다가와서 폭발한다면, 나조차도 멀쩡할 자신이 없었다.
“완벽한 전개야. 흥분을 참을 수가 없어.”
벨페고르는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거다.
녀석이 원했던 건 바로 이 장면.
저 마기에 물든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지워 버리는 것.
“아저씨…… 저, 저 너무 아파요. 저 좀 구해 주세요.”
“아저……씨, 저희 구하러 오신 거 맞죠?”
“제발요. 여기 어딘가에 저희 부모님도…….”
아이들이 지옥을 넘어서 나에게로 달려온다.
아이들의 몸을 잠식해 들어간 마기는 마치 조롱이라도 하는 듯, 아이들의 뇌까지는 잠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몸뚱어리가 두려울 것이고, 시체로 가득한 이 지옥이 두려울 것이다.
“뭐 해? 어서 나를 죽이고, 저 귀여운 아이들도 죽여야지. 그래야 나의 교황님이지. 저 가여운 어린 양들을 해방시켜 줘야 하잖아?”
저 아이들은 신성력으로 정화하면 반드시 죽는다.
몸의 침식이 심각한 수준이라 신성력에 닿는 순간 부서져 내릴 것이다.
“에덴에서 기억나지?”
벨페고르의 끈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에덴에서의 끔찍했던 기억.
내가 애써 기억의 저편에 눌러 두었던 그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다.
마기에 침식됨으로 인해 내 손에 죽어 나갔던 사람들.
“그때처럼 똑같이 저지르는 거야.”
나는 벨페고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검을 들었다.
그리고 벨페고르를 향해 히죽였다.
“이제야 알겠네.”
“……뭐?”
“테라가 나에게 격에 대해서 알려 줬던 이유 말이야. 이제 알 것 같아.”
푸우우우욱.
나는 심판의 검을 벨페고르의 심장에 꽂아 넣었고, 곧바로 왼손으로 벨페고르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앞에 메시지창이 하나 떠올랐다.
[당신의 격이 일시적으로 상대의 격을 압도합니다.] [마왕 벨페고르>가 당신의 격에 굴복합니다.] [하지만 에너지 : 마기>와의 상성이 좋지 않은 관계로 종속시킬 수 없습니다.] [상대가 보유한 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습니다!]“……에덴에서는 격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교황, 넌 지금…….”
“산 채로 회 떠 준다는 말은 취소.”
나는 내 손에 잡혀서 몸을 버둥거리는 벨페고르를 노려보면서 말을 맺었다.
“어차피 죽이면 다른 화신체로 부활할 거니까…… 발상을 전환해 보자고. 너는 교보재가 딱이겠어. 불만 없지?”
“내 귀여운 인형들이 너를…….”
“그것도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잘 지켜봐라.”
어느새 지옥을 건너온 아이들이 내 앞에 도달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아이의 몸에서 마기가 거칠게 폭발하려던 그 순간,
[시스템이 당신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권속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내 몸에서 흘러나간 회색빛의 기운이 아이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회색빛 테두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혼돈 : 선>으로서의 신격이 완전하게 개화합니다.]털썩.
지옥을 건너온 아이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들의 얼굴을 잡아먹었던 두려움 역시, 아이들과 함께 쓰러졌다.
7.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고, 내 호출을 받은 우리 교단의 일부 병력이 내가 있던 건물의 지하로 진입했다.
벨페고르가 내 손에 완벽하게 제압된 순간, 이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던 괴물들 역시 소멸했다고 한다.
마왕을 제압하는 것.
에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지구에서는 굉장히 수월했다.
이게 전부 격> 덕분이었다.
“그게 벨페고르의 화신체예요?”
루나는 이번에는 피를 닦아 낼 시간도 없었는지, 붉게 물든 철퇴를 등에 멘 채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죽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죽이기에는 좀 아깝지 않냐? 교보재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차피 죽이면 또 다른 화신체로 부활할 거야. 그럴 바에 이곳에 봉인시켜 두고, 영혼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아.”
“위험한 것 같은데.”
“심판의 검도 있으니까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야. 내가 따로 조치도 해 뒀어.”
내 말에 루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성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큰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성하.”
“응?”
“그 회색빛의 기운, 처음 보네요.”
루나는 내 몸에서 일렁거리는 회색빛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리멘의 신성력은 새하얀 빛이었지만, 지금 내가 내뿜고 있는 신성력은 회색빛이었다.
이건 나도 사실 영문은 모르겠다.
격>을 개방하면서 내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인데, 일단은 신성력이다.
“이상하냐?”
“이상하진 않고, 오히려 친숙해요. 성하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해야 하나?”
파아아앗.
나는 왼손에는 회색빛의 신성력을, 오른손에는 새하얀 리멘의 신성력을 각각 끌어 올렸다.
리멘의 신성력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회색빛의 신성력은…… 아무도 내가 리멘의 하위 신이 된 것과 관련이 있는 색깔인 듯싶다.
“정화자 놈들이 이곳을 생중계하고 있었어.”
“왜요?”
“내 손으로 저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모습, 그걸 생중계하려는 계획이었던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 교단 소속의 병력이 아이들을 부축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여간에 나쁜 쪽으로는 대가리가 참 잘 돌아가. 그 모습이 생중계되었다면…… 후폭풍이 상당했겠지.”
상황이 어쨌든, 내가 저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모습이 송출되었다면,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교단과 내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저놈들이 원했던 그림이었을 테고.
만약 내가 신격을 얻지 못했었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쓸 만한 정보를 많이 얻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벨페고르의 화신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화자 놈들이 우리에게 선물을 줬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선물을 줄 차례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