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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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화
3.
서울 신전에는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가 있다.
지하 3층에 위치한 어느 밀실.
원래 이곳은 교단의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지만, 지구에서는 아직까지 보관할 만한 성유물이 몇 개 없기 때문에 꽤 널찍한 장소기도 했다.
에덴에서 지구로 처음 넘어온 성유물이라고 해 봤자 세 개뿐이다.
하나는 이곳에 자리 잡은 리멘의 증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저기에 있는 신목.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로 뽑아 온 심판의 검까지.
“신성력은 충분하고.”
심판의 검까지 이곳에 배치해 둬서 그런지, 지금 이곳은 성지의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한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심판의 검과 함께 벽에 꽂혀 있는 벨페고르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때, 당분간 네가 갇혀 있을 곳인데. 마음에 들어?”
벨페고르의 상태는 단동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 좋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지의 신성력은 마왕이 감당하기엔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100프로의 컨디션으로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신성력인데, 대부분의 힘을 나에게 뺏긴 상태면 어떻겠어?
부들부들.
몸을 벌벌 떠는 것만 보더라도 대강 알 수 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고통.
아니, 실제로도 영혼이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나는 벨페고르에게 천천히 다가간 다음, 녀석의 턱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 봐.”
원래의 계획은 화신체에서 도망가는 거였을 거다.
하지만 심판의 검에 몸이 꿰뚫린 이상, 녀석의 계획대로 흘러갈 수가 없었다.
심판의 검은 단순히 육체만 꿰뚫는 검이 아니다.
육체에 결속되어 있는 영혼.
그것까지 꿰뚫어 버린다.
심판의 검이 마왕들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최후의 병기로 거론되었던 것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나를 묶어 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교황. 내 형제들이 이미 이 땅에 강림했다. 너 혼자서 내 형제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래도 꼴에 마왕이라고, 벨페고르는 고통을 참으면서 내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고작 이 작은 땅에서 안주하는 네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기가 차.〉
“내가 넓은 땅에서 살든, 작은 땅에서 살든. 네가 알 바는 아니고.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줄게, 벨페고르.”
나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먹여 준 다음,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마기에 물든 영혼들은 신성력과 닿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해. 너희 마왕들의 영혼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노출이 된다면……. 아마 너도 지금쯤 깨닫고 있을 거라고 본다.”
에덴에서는 리멘의 도움으로 마왕의 영혼들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혼들의 조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을 좀 바꿨다.
신성력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녀석들의 영혼에다 투사할 것이다.
그리고 벨페고르야말로 그 방법을 실험하기에 충분한 실험체기도 했고.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심판의 검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문제도 빠른 시일 내로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라파엘과 토비에게 부탁을 해 뒀거든.
라파엘이 진행하는 마기 연구가 진척도도 빠른 상황이고, 정 안 되면 심판의 검을 계속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심판의 검을 꽂아 둔 자리에다가 마왕의 영혼들을 모아 두면 되는 거니까.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벨페고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참 쓸모가 많을 때 잡혀 줘서 고마워. 안 그래도 요새 교보재가 부족했거든. 중국 가서 마족들을 잡아 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단 말이야.”
〈……그건 무슨 소리야?〉
“레오, 교육생들 데리고 들어와라.”
내 부름에 레오가 문밖에서 대답했다.
“예, 성하.”
레오가 성유물 보관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레오의 옆에는 이은택 씨를 비롯하여 이단심문관 교육생 5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성하께서 명하신 대로 이단심문관 교육생들 중에서 성과가 좋은 교육생들을 간추렸습니다.”
“잘했어. 때마침 좋은 교보재가 들어와서, 이단심문관들 교육에 사용해 보려고.”
완벽하게 무력화된 마왕의 화신체.
이단심문관들에게 있어서 이만한 교보재가 얼마나 있을까?
단언컨대 이것만큼 좋은 교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레오의 옆에서 벨페고르를 쳐다보고 있는 이은택 씨를 향해 말했다.
“이은택 형제님.”
“예, 성하.”
“이리 와 보세요.”
내 말에 은택 씨는 순순히 내 옆으로 왔다.
현재, 은택 씨는 이단심문관 교육생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교육 성과도 좋다.
이번에 중국에 파견되는 인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내가 기대를 많이 거는 사람이다.
우리 교단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재상이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이은택 씨를 비롯한 이단심문관 교육생들은 이 마왕의 화신체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학습하게 될 거예요. 효과적으로 마기를 억제하는 법, 마기를 지닌 존재를 심문하는 법.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이단심문관 교육생들이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마음이 쓰였는데, 벨페고르를 포획해 온 것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물론 취급할 때 주의 사항이 있다.
“레오, 이곳에 출입할 때는 무조건 네가 동행해. 알겠지?”
내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물 보관실의 신성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한 구조입니다. 간부들과 동행하지 않는 이상, 출입은 불가능합니다.”
“뭐, 실수로 이 녀석이 뛰쳐나가도 상관은 없긴 해.”
나는 벨페고르의 화신체를 바라보면서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심판의 검이 꽂힌 채로 나가는 순간, 베스가 물어뜯어 버릴 거야.”
어차피 심판의 검은 내가 아니고서는 뽑을 수 없다.
애초에 그런 검이니까.
즉, 여기서 벨페고르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벨페고르의 얼굴에 주먹을 한 번 더 날린 다음, 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리 이단심문관 형제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항상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 있는 이단심문관 교육생들의 대답.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훌륭한 이단심문관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여 교단의 적을 분쇄하겠습니다!”
“교단의 이름을 더럽히는 이들에게 응당한 벌을 내리겠습니다!”
“리멘님에게 영광이 있기를!”
“리멘님에게 영광이 있기를!”
순식간에 열렬한 신앙 고백의 현장이 되어 버린 이곳.
우리 교단의 미래가 아주 밝구나.
내가 만족스럽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렸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김시우 교황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 서신우 대통령님.”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차 한잔 어떻겠습니까?
내가 아는 장사꾼 중 최고의 장사꾼, 서신우 대통령의 목소리.
이 양반이 이번에는 무슨 일이려나?
아직 퇴근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잠깐 이야기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좋습니다.”
-김동식 실장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두었습니다. 구 청와대에서 뵙겠습니다.
구 청와대면, 우리 신전 바로 옆.
어째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만.
나는 전화기를 끊은 다음, 천천히 성유물 보관실 밖으로 나섰다.
4.
김 실장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도착한 구 청와대.
정비 작업이 끝나서 그런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깔끔하고 수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셨습니까, 김시우 교황님.”
회의실 내부로 들어온 나를 서 대통령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나.
나는 그가 건네는 손을 맞잡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새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바쁘다는 말은 그만큼 나라가 활기차게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 아닙니까?”
“대통령님에게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역시, 리더의 고충은 리더가 알아주십니다, 하하!”
유머러스하게 농을 주고받은 우리는 곧바로 의자에 착석했다.
나는 비서가 내어다 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하시는 겁니까?”
“음, 일단은 임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 구 청와대는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는 상징이 되었으니까요.”
서울의 심장부를 관통했던 그라운드 제로.
그 그라운드 제로를 딛고 내일로 향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깃든 장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구 청와대가 부활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상징은 중요한 법이다.
특히,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서의 상징은 더더욱.
그래도 서 대통령의 밝은 안색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예전의 서 대통령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그러니까…….
“회춘한 것 같지요?”
“이제는 독심술까지 습득하셨네요. 최근에 각성하셨습니까?”
“요새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진짜 회춘한 것 같다.
표정에서 활력이 엿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보기 좋다.
“이게 전부 다 김시우 교황님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상생의 효과가 좋아 보여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제 말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서 대통령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많이 강해졌습니다. 신의주까지의 북진은 완료되었고, 이제 남은 건 신의주, 평양을 중심으로 동진을 이어 가는 겁니다. 마지막 단계지요. 강한 힘에는 그만큼 강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강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 대통령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엿보였다.
내가 돌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정부는 유명무실하고, 주변국의 압박이 거셌던 걸 생각해 본다면…… 정말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기회는 내가 많이 만들어 주기는 했다만, 기회를 준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여기까지 올라온 건 서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님께서 고생 많이 하셨죠.”
“모두가 고생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밤을 새워 작전을 계획하고, 또 누군가는 밤을 새워 물자를 준비하고. 저는 그저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 숟가락을 올렸을 뿐입니다.”
가식적인 멘트라고 하기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 나오는 말.
공을 아래로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리더라는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더 목으로 넘긴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중국 정부 측에서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김시우 교황님께서 중국 측에 인계한 천벌 미사일이 목표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했다고 합니다.”
서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며 회의실의 앞에 설치된 스크린에 사진을 띄웠다.
중국 정부에서 직접 촬영한 자료.
사진 속에는 천벌 미사일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보시다시피 물리적 파괴력은 제한적입니다. 미사일이 타격한 원점을 제외하고서는 민간인 피해도 전무합니다.”
미사일에 폭격당한 도시라고 하기에는 건물들이 대부분 멀쩡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적 파괴력은 최대한 억제하고, 신성력을 퍼뜨리는 것에 중점을 둔 미사일이니까요.”
천벌 미사일을 설계했을 때부터 그렸던 그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큰 피해가 없으나, 마기를 보유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미사일.
물론 사진 속의 모든 건물들이 멀쩡한 건 아니었지만, 그 건물들이 멀쩡하지 않은 이유는 대강 예상이 갔다.
“마기에 침식당한 건물들이 무너졌네요.”
“중국 쪽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
천벌이 마기를 타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인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우리 교단의 전략적 선택지가 더욱 다양해졌달까?
“선물이 제대로 배송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정화자 놈들에게 배송한 선물이 성공적으로 도착해서 그런가, 마음이 아주 흐뭇하다.
“사실, 제가 오늘 김시우 교황님을 이곳까지 모신 건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보통 대통령의 부탁이 거창하지 않은 경우가 없던데요.”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내 대답에 서 대통령은 곧바로 ‘부탁’을 말했고, 나는 그 ‘부탁’을 듣자마자 다시 되물었다.
“……제가요?”
“예, 그렇습니다.”
“……진짜 이게 맞나?”
예상치도 못한 ‘부탁’이 서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