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7. 당신의 신전에 투표하세요
1.
다음 날 아침.
“흐으으음.”
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신성력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레오가 지구로 넘어올 때 가지고 온 성유물, 리멘의 증표>.
연녹색의 보석이 인상적인 목걸이며, 리멘이 직접 축복을 내렸던, 리멘 교단에서 보관하고 있던 대표적인 성유물 중 하나였다.
원래는 교황청의 지하에 보관되고 있던 성유물이었는데, 생뚱맞게 지구로 넘어오게 되었다.
레오가 무단으로 침입해서 성유물을 훔쳐 왔을 리가 없었고, 레오 역시 리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리멘이 이유까지 말해 주진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레오로부터 목걸이를 넘겨받자마자 리멘이 어떤 의도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메인 퀘스트 교세 확장>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교세 확장 – 신전]종류: 메인
설명: 당신은 에덴에서 넘어온 선교사를 통해, 당신이 모시는 신의 힘이 담긴 성유물을 획득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신에게 새로운 목표가 설정됩니다.
교황이시여. 기꺼이 교단의 신도가 되어 준 이들을 위하여 신전을 건축하십시오. 신전은 신도들이 함께 믿음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신앙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완료 조건: 신전을 건축할 것.
보상: 1. 특성 세례> 레벨 +1
2. 신성 점수(DP) 500점
대충 예상은 했던 전개다.
교단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신전이란 아주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장소.
교리를 배우며, 다른 신도들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
신전의 역할은 종교에 있어서 아주 필수적인 역할이기도 하며, 그건 지구의 기성 종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독교의 교회, 불교의 절, 이슬람교의 사원 등등.
그 시설들이 하는 역할들을, 에덴에서는 신전이 수행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결국 이 메인 퀘스트>라는 것은 정말로 리멘 교단이 지구에서 자리를 잡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한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에 잠겼을 때였다.
“교황 성하. 잠시 발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 그래.”
“감사합니다.”
“……잠깐만. 뭐가 좀 이상한데.”
나는 레오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나면서 눈앞을 직시했다.
하와이안 반바지에다가 터질 것 같은 하얀색 반팔티를 입은 레오가, 진공청소기를 통해서 거실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청소를 하는 것 정도야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체 레오가 좀 깔끔한 성격이라서,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너 진공청소기 사용하는 법은 또 어디서 배웠냐.”
지구에 도착한 지 하루도 안 된 레오가 능숙하게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엘리베이터라는 신문물에 경악성을 내뱉었던 레오였다.
그래서 지구에 적응하기까지는 좀 오래 걸리겠다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연 님께서 등교하시기 전에 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책자를 건네주시더군요.”
레오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진공청소기의 매뉴얼 책자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황 성하를 직접 모시게 된 이상, 처소의 정결함은 제가 담당할 일입니다. 심려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빨래도 네가 개어 둔 거야?”
나는 눈짓으로 소파에 곱게 개어진 옷들과 수건을 가리켰고,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인욱 님께 여쭈어보았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더불어, 세탁기와 건조기라는 기계의 사용법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곰도 잡아먹을 비주얼의 소유자지만, 알고 보면 집안일에는 진심인 남자.
거기에 S급 헌터쯤은 가볍게 땅에 처박을 수 있는 전투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집사란 말인가.
원래는 여유가 되는 대로 레오를 집에서 독립시켜 둘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레오야.”
“예, 교황 성하.”
“넌 에덴에서도, 여기에서도 내 든든한 오른팔인 거다. 알겠지?”
“성심성의를 다하여 사역을 돕겠습니다.”
난 빨래랑 청소를 주로 오른팔로 하거든.
나는 레오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청소 대충 마무리하고 슬슬 나갈 준비나 하자. 인욱이가 30분 전에 네 옷 사러 나갔으니까 곧 돌아올 거야.”
그 말에 레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레오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썩 괜찮은 대답을 떠올렸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새신자 상담.”
2.
이곳은 마포구 합정에 위치한 어떤 회사의 사옥.
“제가 직접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정말 죄송합니다.”
“바쁜 사람을 오라고 할 수는 없죠. 원래 여유 있는 사람이 오는 게 맞습니다, 형제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교황님께서 직접 오시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줄로 압니다.”
“어후, 정말 괜찮다니까요? 오랜만에 서울 구경하고 좋았습니다.”
나는 민수 씨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미튜버의 회사라고 해서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다.
서울, 그것도 홍대에 근접해 있는 5층짜리 사옥에다가 대충 봐도 많아 보이던 직원들까지.
대표실이 있는 이 5층으로 오면서 인사를 나눈 직원만 해도 30명은 훌쩍 넘기는 것 같았다.
확실히 구독자가 많은 미튜버답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보니 마냥 광신도처럼 보였던 민수 씨가 다시 보인다.
나는 민수 씨가 직접 내려 준 예멘 모카 마타리인가 뭔가 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넌지시 물었다.
“회사가 생각보다 크네요.”
내 질문에 민수 씨는 부끄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저희가 미튜브 업무만 처리하는 건 아니기에 생각보다 규모가 조금 있습니다.”
“다른 업무는 어떤 게 있습니까?”
“저희도 나름 길드로 승인받은 회사입니다. 미튜브가 주된 컨텐츠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되고, 저희도 던전 토벌 의뢰라든지, 게이트 토벌전 참여라든지, 길드 단위의 의뢰도 수행합니다. 사실, 매출 자체는 미튜브보다는 길드 의뢰 쪽에서 훨씬 많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확실히 미튜브에만 신경 쓴다기에는 부서도, 직원도 많아 보이기는 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내 옆에서 커피의 맛에 감탄하고 있던 레오를 향해서 물었다.
“어때, 먹을 만해?”
“식견을 넓혀 주는 맛입니다. 지구의 식문화에 더욱더 관심이 생깁니다.”
저 정도면 레오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서 극찬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레오의 대답에 피식 웃은 다음, 아까 전부터 레오를 계속 훔쳐보고 있던 민수 씨에게 말했다.
“제가 어제 전화로 말씀드렸던 사람입니다. 리멘의 교리를 설파하기 위해 에덴에서 넘어온, 레오 루멘 대주교라고 합니다.”
“아! 이분이!”
내가 슬쩍 눈치를 주자 레오는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중하게 일어서더니, 곧 민수 씨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건넸다.
“지구에서 믿음의 형제를 만나게 해 주신 리멘께 감사를. 반갑습니다, 민수 형제님. 레오 루멘이라고 합니다.”
“구민수라고 합니다.”
“민수 형제께서는 이미 리멘 님을 영접하셨군요. 리멘 님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레오의 말대로 민수 씨로부터 리멘의 흔적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지난번에 병원에서, 그리고 구로구 게이트에서 봤을 때도 민수 씨로부터 리멘의 힘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는 했었다.
다만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소멸하겠지 하면서 지나갔을 뿐인데, 확실히 지난번보다 훨씬 리멘의 기운이 강해지기는 했다.
신성력이 발아하기 바로 직전의 단계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민수 씨의 신앙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민수 씨의 상태를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마력 보유자에게 신성력이 생기는 경우는 에덴에서도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본론이 시작되었다.
“이것부터 봐주시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품속에서 리멘의 증표>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렸다.
리멘의 증표>
●아이템 종류: 성유물 – 리멘 교단
●출신 차원계: 에덴
●설명: 리멘의 힘이 담긴 목걸이. 성역>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담겨져 있다. 차원계: 지구>와 맺어진 인과율 협약에 따라, 교단이 정당하게 점유한 땅을 대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사용 효과: 일정 범위 내에 성역>을 선포한다.
*경고! 인과율에 따라, 강제적으로 점유한 땅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역이란 리멘의 권능이 맞닿은 땅을 의미한다.
리멘 교단의 교리상, 교단의 신전은 반드시 성역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에덴의 경우에는 리멘이 축복을 내려 뒀던 대지가 성역이 되어 대륙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
리멘의 축복이 깃든 대지가 있을 리가 있나.
리멘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레오를 통해서 나에게 본인의 성유물을 보내 준 것이다.
우우우우웅-.
“아아.”
성유물에 담긴 신성력이 민수 씨에게 감응했고, 민수 씨는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목걸이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건…….”
“레오 대주교가 에덴에서 넘어오면서 가져온 교단의 성유물입니다.”
나는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 곧바로 말을 이어 갔다.
“교단의 교리를 설파해 줄 대주교도 지구에 도착하였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선교를 시작할까 합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가장 먼저 신전을 건축해 보고자 합니다.”
내 말에 민수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본인의 핸드폰을 집어 들면서 대답했다.
“곧바로 경영지원팀에 연락을 넣어서 자금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리멘 님의 역사적인 첫 신전을 위해서라면…….”
“……돈이 급했다면 굳이 민수 형제님에게 찾아오진 않았겠죠?”
돈은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굳이 빌릴 것도 없이 내가 벌면 되는 문제다.
가진 건 그저 건강한 몸뚱아리뿐이었던 옛날과는 달랐다. 이능관리부의 도움이야 좀 받아야겠지만, 게이트나 던전 등을 통해서 돈을 벌겠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암호화폐 수준의 돈 복사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민수 씨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리멘 교단의 첫 신전이니만큼, 대중들에게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갈 만한 아이디어를 원합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면 더더욱 좋겠네요.”
540만 미튜버라면 뭔가 번뜩이는 재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컨텐츠 쪽으로는 영 임기응변이 부족해서 말이다.
그건 레오 역시 마찬가지다.
원리원칙으로 똘똘 무장한 레오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이 욕심이다.
전장에서의 임기응변과, 이런 임기응변은 아예 종류가 다르니까.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민수 씨로서도 당황스러운 질문일 거라 생각했기에 시간을 좀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에 불과했던 것 같다.
“혹시, 신전이 지어질 장소는 이미 정하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염두에 둔 곳도 없으신지요.”
“네.”
내 짧은 대답에 민수 씨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뒤이어진 민수 씨의 아이디어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됩니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