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5.
서울시 전역에 걸려 있던 경보를 해제시키려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르겠다.
김 실장한테 전화를 넣고, 유선호 장관에게 전화를 넣고.
마지막으로 서 대통령까지.
정부 쪽에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 나서야 서울에 걸려 있던 비상 상황이 해제되었다.
진짜 진땀이 났다.
베스 이 녀석의 트롤링으로 인해서 서울시의 모든 것이 마비될 뻔했으니까.
“대가리 제대로 안 박냐?”
-미안하다, 교황.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나?
“한 번만 죽여 드리면 안 될까요? 영물이라서 부활하실 것 같은데요.”
-열심히 박고 있겠다.
그래도 상황은 얼추 잘 정리가 되었다.
서울시에 걸려 있던 비상 상황은 해제되었고,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대피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딱 막은 게 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내 앞에서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귀여운 흰색 사슴을 바라보았다.
사슴은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털에 윤기도 흐르는 것이, 아무래도 여태까지 잠을 푹 잔 모양이다.
-안녕! 나는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슴이야. 이름은 딱히 없어. 괜찮으면 혹시 네가 이름을 지어 줄래?
“우리 초면인데?”
-나는 초면 아닌데. 나는 계속 너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내가 사는 땅에 왔을 때도 봤었어.
“그렇게 말하니까 좀 무섭네. 네가 사는 땅이라면…….”
-음, 아까 내 친구가 그러던데…… 너희들은 그곳을 일본이라고 부른다면서?
야마타노오로치를 잡으러 갔을 때부터 나를 지켜봤단 걸까?
스토킹에 재능이 있는 영물이라…… 이건 좀 신선하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귀여운 사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까 이곳으로 날아올 때는 진짜 섬뜩했다.
백색의 이무기.
진짜 말 그대로 이무기의 형태였다.
당연히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이 사슴 녀석이 베스보단 나은 점이 하나 있다.
-미안. 솔직히 인간들이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면 몰래 올 걸 그랬나 봐.
그것은 바로 사과를 할 줄 안다는 점이다.
눈치 하나는 제법이다.
베스가 내 옆에서 머리를 박고 있는 걸 봐서 그런가?
“그걸 아는 녀석이 그랬어?”
-나는 인간들이 좋아할 줄 알았지.
“정상적인 인간이면 무서워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가?
영물 놈들이라서 그런가, 공감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말은 통하는 놈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천성이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사슴이다, 사슴.”
“엄청 이쁜 사슴이야.”
“녹용 한번 제대론데? 지구 인간들 녹용 보면 환장하잖아. 인기 많겠다.”
페어리들이 사슴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페어리들은 기본적으로 악한 것들을 싫어한다.
사실상 날아다니는 선악 판별기인 셈이다.
-내 이름을 지어 줘.
“아까부터 자꾸 왜 이름에 그렇게 집착해?”
-베히모스한테는 이름이 있는데…… 나는 없는 게 너무 속상했었거든.
“자꾸 그러면 내 마음대로 이름 짓는다?”
-좋아!
사슴의 이름을 지어 주게 될 줄은 몰랐네.
사슴의 이름이라…….
마침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 있기는 있다.
“루돌프로 하자.”
-루돌프? 무슨 뜻이야?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름이지.”
-희망…… 좋아! 나를 이제 루돌프라고 불러.
이름을 짓는 데 들어간 시간은 5분이 채 안 되었다.
그렇게 해서 새 친구의 이름은 루돌프로 정해졌고, 나는 루돌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이제야 움직인 거야? 이야기 들어 보니까 너 한참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면서.”
그러자 루돌프는 바닥에 슬쩍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내가 잠이 좀 많아. 귀찮음도 많고. 그래서 그랬어. 좀 쉬고 있다가 움직이려고 했는데, 영기가 너무 부족하더라? 그래서 베히모스에게 연락을 했지. 혹시 괜찮은 곳 아냐고. 여기가 괜찮다던데?
“우리 교단의 성지가 요양소는 아니잖아.”
-헤헤,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아! 그래도 빈손으로 오는 게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뭐 좀 챙겨 왔어!
루돌프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 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를 뱉어 냈다.
영롱하게 빛나는 수정들.
그 수정에서는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는데, 굳이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마정석이었다.
그것도 최상급 마정석.
-내가 잠자는 곳 주위에 있던 놈들을 정리하고 주워 둔 것들이야. 혹시 몰라서 따로 챙겨 뒀었는데, 이 정도면 혹시 선물로 괜찮을까?
루돌프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주먹보다 훨씬 큰 크기의 마정석.
그런 마정석이 수십 개라면 금전적인 가치로 감히 환산할 수 없을 정도.
“페어리 친구들, 작은 자루 같은 거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물론!”
페어리들은 나를 위해 마법으로 자루를 하나 만들어 주었고, 나는 그 자루 안에 마정석들을 담았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서 루돌프에게 말했다.
“리멘 교단의 성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객님. 언제든지 편히 쉬다가 가세요.”
-그 물건들이 마음에 들어? 내 둥지에 더 많이 있어. 내가 원래 반짝이는 걸 좋아해서, 보이는 족족 모아 두는 편이야. 나중에 더 가져다줄게!
“어우, 우량 고객님이셨네.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쉬어. 막 뛰어다녀도 괜찮아.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그건 괜찮지?”
-나는 인간 좋아해.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베스와는 다르게 뭘 좀 아는 친구구나.
게다가 베스보다 머리도 잘 굴린다.
내가 마정석을 보고 표정이 바뀌니까, 둥지에 여분의 마정석이 있다고 하면서 본인의 가치를 높여 버렸다.
겉으로는 귀여운 사슴인 척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 좀 봐라.
하지만 뱀이고 사슴이고 무슨 상관이겠어?
“앞으로 잘 부탁해, 루돌프.”
-영기를 회복하기 전까지 잘 좀 부탁할게!
“나야말로 잘 부탁해.”
복덩이가 굴러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스가 더욱 괘씸하다.
옆 동네 친구는 둥지에다가 마정석이라도 많이 모아 뒀지, 베스는 그런 것도 없었잖아?
“베스야, 너는 백두산에다가 모아 둔 거 따로 없냐?”
-없다. 나는 저 녀석처럼 무언갈 모아 두는 성격이 아니라…….
“좀 모아 두지 그랬어.”
-음?
“계속 대가리 박고 있어.”
-알겠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단의 성지에 친구 하나가 늘었다.
6.
「리멘 교단 성지에 등장한 흰색 사슴!」
「리멘 교단의 새로운 마스코트인가?」
「‘연인과 꼭 가 봐야 할 곳 1위로 선정된 리멘 교단의 성지.」
「페어리들과 동물,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장소.」
날이 가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우리 교단의 성지.
원래 예전에는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요새 들어서는 딱히 없다고 한다.
페어리들이 소환하는 나무 정령들이 성지를 열심히 관리해 주기도 하거니와, 최근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제목 : 리멘 교단에 해명을 요구합니다〉
내용 : 한 달 전, 여자친구와 함께 리멘 교단의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였구요. 제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저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분들과 힘을 합쳐서 리멘 교단에 고소를 할까 합니다. 함께하실 분들은 덧글 남겨 주십시오.
ㄴ님 거기서 나쁜 짓 한 거 아님?
ㄴ작성자 : 쓰레기를 버리고 온 것 말고는 나쁜 짓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ㄴㅋㅋㅋㅋ아저씨 그게 나쁜 짓이에요. 쓰레기 무단 투기.
ㄴ신성한 장소에다가 쓰레기를 버리는 거면 신성모독 아니냐?
ㄴ리멘 교단이 시민들 생각해서 개방해 준 건데ㅋㅋ
ㄴ작성자 : 고작 쓰레기를 버렸다고 머리가 빠지는 건 심한 거 아닙니까?
ㄴ리멘 교단 성지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장소이기도 한데? 솔직히 제사상에다가 쓰레기 버려두고 온 거랑 도대체 뭐가 다름?
ㄴ이딴 쓰레기 같은 놈들을 탈모가 오는 선에서 용서해 주시는 리멘님…… 역시 자비의 여신이시다…….
리멘 교단의 성지에서 소매치기,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리멘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소문이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하다.
성지를 더럽히는 건 신성모독이나 마찬가지인 셈.
덕분에 우리 성지에 방문하는 시민들의 시민 의식이 많이 높아지고 있었으니, 그건 그것대로 긍정적인 효과라고 볼 수 있겠다.
“그건 그렇고.”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가서 어느덧 2주가 지나, 국제교류전이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센다이 성지 개발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숙소를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의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도로 정비 작업도 시작되었습니다.”
“핵심 시설들은 제가 직접 건설이 가능하니까, 부대시설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세요.”
“예, 성하.”
나는 아침 일찍 집무실에서 라파르트 대주교로부터 센다이 성지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센다이 성지는 일본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하에서 엄청난 속도로 개발되는 중이었다.
일본에서는 벌써 성지 순례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정도였다.
내가 센다이 성지에다가 우선적으로 설치한 시설은 축성소를 비롯한 생산 시설들.
서울에 위치한 성지는 이제 여유 부지를 다 사용한 상황이라서, 센다이 성지 쪽을 알차게 사용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성지의 지하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으니 운송과 관련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 벨페고르 덕분에 이단심문관들의 기술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습니다. 중국 파견을 대비하여 실시한 시험의 결과가 굉장히 좋습니다. 다들 이제 마기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벨페고르를 잡아 온 보람이 있네요. 아주 뿌듯합니다.”
역시 실습 재료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마왕의 화신체로부터 흘러나오는 마기는 마기 중의 마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마기를 신성력으로 억제하는 훈련은 이단심문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말했다.
“향후 상해 쪽에 만들 성지에는 심판의 검을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 직접 상륙하는 것인 만큼, 강력한 억제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 부분을 충분히 반영하여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교단 재정 상황은 어떻습니까.”
“충분히 좋습니다. 리멘 재단도 성공적으로 출범하였고, 의료 시설 문제는 기존의 병원 중 일부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벌어 둔 보람이 있네요.”
처음 지구에 귀환했을 때와 비교하면 스케일 자체가 달라졌다.
그때는 신전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여러 인재들을 빠르게 영입한 덕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교단이 커졌다.
우리 교단의 주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축성소의 가치가 에덴에서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헌터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개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축성소에서 나오는 물품들 대부분을 헌터들이 소비하고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상황 보고는 대강 끝이 났고, 나는 벽면에 걸려 있던 시계를 슬쩍 쳐다보았다.
오전 9시 30분.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
“슬슬 다녀오겠습니다.”
“예, 성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돈 많이 벌어 올게요.”
교단에서 관리하는 사업이 많아진 만큼, 씀씀이도 많이 늘었다.
정부에서 이번 행사의 특강비를 넉넉하게 챙겨 준다는데, 거절할 수야 있나.
나는 웃으면서 신전 밖으로 나섰고, 곧 나를 기다리고 있던 김 실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 실장님.”
“오셨습니까, 김시우 교황님.”
“날씨가 좋네요. 싸움 구경하기 딱 좋은 날 아닙니까?”
내 말에 김 실장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시죠.”
“바로 모시겠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제1회 각성자 국제교류전’의 시작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