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3.
내가 알던 승우는 아주 예의 바르고 얌전한, 그야말로 바른 어린이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승우는…….
“네가.”
콰아아아아앙-.
“우리.”
콰아아아앙-!
“교황 성하를!”
콰아아아아아아앙-!
“함부로 입에 담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공사장을 무너뜨릴 기세로 주먹을 내려치고 있었다.
파운딩 자세 그대로.
공사장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아서 내가 일부러 신성력을 펼쳐서 충격을 완화시켜야만 했다.
리멘 교단의 선지자로서 지녀야 하는 전투 능력.
내가 처음 교육받았을 때를 꼭 빼다 박은 듯한 모습.
게다가 광기까지 느껴지는 것이…….
“살, 살려 줘, 제발!”
승우는 일부러 중국 소년의 얼굴을 피해서 주먹을 내리치고 있었다.
머리가 놓여 있는 곳 바로 옆.
그 바닥을 쉴 새 없이 주먹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폭탄 같은 승우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 옆을 계속 스쳐 지나가자, 쓰러져 있던 그 소년의 전의는 빠르게 꺾여 버렸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보면, 아마 오줌까지 지려 버린 모양이다.
기절시키면 끝나겠지만, 승우는 지독할 정도로 일관되게 주먹을 내리치고 있었다.
“리멘 교단은 왜 하나같이…….”
“지독하군.”
옆에서 경악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최 대표와 자현이가 혀를 내두르면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생명은 중요하게 여겨야지. 그래도 명색이 교류전을 위해서 넘어온 친구인데,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안 되잖아?”
내 말에 자현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건 그냥 죽이는 게 좀 더 나을 것 같은데요, 형님. 평생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부모 욕을 들었다잖아.”
“……형이 승우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진서준 씨, 그분이 승우 아버지인데.”
“나는 항상 우리 승우를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어. 레오나 라파르트 대주교도 마찬가지라니까? 그러면 뭐 아버지지.”
콰아아아아앙-.
우리들의 잡담은 다시 한번 울려 퍼진 폭음에 묻혀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을까?
승우는 마침내 주먹을 멈췄고, 승우가 깔고 앉았던 중국 소년이 검을 저 멀리 던졌다.
째애애애앵.
“그, 그만. 내가 졌다. 내가 졌어…….”
그래도 근본은 좀 있는 놈인 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검은 움켜쥐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정신을 차리기도 했고.
그 말을 들은 승우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교황 성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은 것도 사과해.”
“미안…….”
그때였다.
“황쉬안, 대련에서 패배한 것도 모자라서, 네 자존심마저도 버리는 거냐? 내 제자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다.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고 다니지 마라.”
어둠 속에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 남자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슬슬 나오시지요, 김시우 교황님. 애들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자현이가 허공에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저거 이레귤런데, 슬쩍 실력 좀 봐 볼까요?”
“공사장 무너뜨릴 일 있냐? 여기 무너지면 내일 대서특필이야. 내가 승우 보호자니까, 내가 해결한다.”
“의외네. 형님이라면 바로 싸우실 줄…….”
그 말을 가볍게 씹어 주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 남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애들 싸움 끝났으니까, 이제 어른 싸움 하면 되나?”
눈앞의 저 후줄근한 남자.
겉으로는 빈틈이 많고, 심지어 의욕조차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한량.
그 남자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머리에서 떠오르는 단어였다.
“이곳에서 싸우기에는 피차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곤란한 걸 즐기는 타입이라서 상관없을 것 같은데?”
“서울 한복판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걸 원하시는 분은 아니잖습니까.”
“사전 조사는 꽤 정확하고…… 네가 중국 이레귤러 서열 1위지?”
“서열 따위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만, 일단은 제가 중국에서 가장 센 놈은 맞습니다.”
여태까지 봤던 중국의 이레귤러들은 하나같이 오만한 놈들뿐이었다.
왕웨이, 순리.
그래서 당연히 1위도 비슷한 놈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세민입니다.”
“한국어를 쓰네?”
“중국식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친숙하잖아요? 제가 연변 출신이라서,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 좋아합니다.”
“사투리도 안 쓰고.”
“제 부인이 한국인이라서요. 하하…… 제 서울말이 꽤 괜찮죠?”
순리는 서열 1위 이레귤러를 두고 ‘내가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남자의 눈에서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욕심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세계에서 귀환한 놈일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기껏해야 30대 중반쯤.
미국에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는데, 한국에 넘어왔을 줄이야.
“제가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저, 혹시 괜찮으면 교황님의 제자분께 제 제자를 놔줄 수 있냐고 물어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아직까지도 파운딩을 풀지 않은 승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못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요새 가르치는 녀석이라.”
“승우야.”
“예, 성하.”
“다음부터는 위협만 하지 말고, 그냥 부러뜨리고 생각해. 치료야 다시 하면 되니까. 알겠지?”
“……네.”
“그래, 고생했어. 풀어 줘.”
승우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밑에 깔려 있던 황쉬안이 재빠르게 일어서더니, 이세민의 등 뒤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김시우 교황님.”
“한국에 넘어온 이유는 뭐지? 무슨 꿍꿍이야?”
“아내의 친정에 들르기 위해서 겸사겸사 왔습니다. 덤으로 김시우 교황님과 안면도 트고……. 인맥이 중요한 건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아, 그리고.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세민은 기둥 뒤에서 미리 준비해 둔 듯한 특수 용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앞에다가 내려놓은 다음, 입꼬리를 올렸다.
“교황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선물입니다. 보시면 압니다.”
“폭탄을 설치해 둔 건 아니고?”
“못 미더우면 제가 열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됐어.”
초면부터 선물을 들고 왔다라…….
중국인치고는 예의가 뭔질 아는 녀석일지도.
“자현아.”
“예, 형님.”
“네가 까라.”
원래 위험할지도 모르는 건 남의 손을 빌려서 까는 거다.
자현이는 투덜거리면서 나 대신 그 용기를 열었다.
그 순간 용기로부터 느껴지는 끔찍한 마기.
그것은 틀림없는 분노의 마기였다.
“형님, 이거…….”
“이리 줘 봐.”
용기 안에는 형체도 알 수 없이 훼손된 누군가의 목이 담겨 있었다.
그 머리의 정체는 따로 고민할 것도 없었다.
화신체. 정확히는 분노의 마왕의 화신체.
“제가 적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떠십니까?”
분노의 마왕은 마왕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던 놈이다.
아무리 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들, 무시할 만한 놈이 절대 아니란 소리다.
나는 그 용기를 다시 봉인한 다음, 이세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중국 놈들과 다르게 성의는 좀 있는 것 같네.”
잠시 후, 이세민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중국인들 싫어합니다.”
“……너도 중국인 아니냐?”
“중국인이면 중국인 싫어하면 안 됩니까?”
“그건 아닌데…….”
“그럼 오케이 아닙니까?”
“……기다려 봐. 생각 좀 해 보게.”
아무래도 미친놈이 또 내 주위에 꼬인 것 같다.
4.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반갑습니다, 이세민입니다. 중국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 이세민이라는 놈, 제정신은 아니다.
고급스러운 연회장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뻔뻔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
주위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모습.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눈치 따위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놈이다.
게다가 더 이상했던 건 연회장에 있던 다른 중국인들조차 이세민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중국의 은거 기인이라는 말이 진짜 맞는 듯했다.
“자 자, 한잔하시죠.”
이세민은 샴페인 잔을 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최 대표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대인배시구만. 한잔합시다.”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이세민이라고 합니다.”
이세민은 최 대표와 잔을 맞부딪힌 다음,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도 잔을 맞부딪혔다.
내가 내민 건 아니다.
가만히 잔을 들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가져다 댔다.
“아까 그 용기는 어디로 가져가신 겁니까?”
“우리 신전의 지하실. 그곳에 다른 마왕의 화신체를 잡아 뒀거든.”
“아, 통째로 말입니까? 역시, 리멘 교단이 이쪽으로는 전문가군요. 저는 통째로 포획할 자신은 없어서 그냥 죽여 버렸습니다.”
“그 화신체는 어디서 죽인 거야?”
“우한에서 죽였습니다. 그 유명한 코비드 19의 시발점, 아시죠? 그곳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더라구요. 엄청 힘들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오른쪽 팔을 아예 못 쓰게 될 뻔했어요.”
이세민은 붕대가 감긴 오른팔을 슬쩍 들면서 웃었다.
대화를 계속 나누는데도 이놈이 정확히 어떤 놈인지를 모르겠다.
게다가…….
“라파엘 님,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저야 좋지요. 중국 친구들은 미국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요.”
“저는 좋아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하하! 친하게 지냅시다. 나중에 팔 못 쓰게 되면 말씀하십쇼. 이것도 인연인데, 괜찮은 의수 하나 뽑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지금 당장 제 팔을 잘라 버리고 싶은데요?”
“안 아프게 잘라 드립니까?”
“하하하!”
“하하!”
미친놈이 한 명 더 추가되면서 진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저 대화 좀 봐라.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다.
진짜 골수까지 미친, 아주 그냥 제대로 미친놈들의 대화였다.
이런 게 바로 집단 광기인가?
어째서 내가 이런 미친놈들 사이에 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라파엘과 어울리고 있던 이세민을 향해 말했다.
“이세민.”
“예, 교황님.”
“아내 친정 방문 같은 핑계는 집어치우고, 진짜 목적이 뭐야?”
구태여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세민 본인도 시간을 끌 생각은 없어 보였고.
“음.”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이세민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던 제 마음을 몰라봐 주시니 섭섭합니다.”
“시기가 공교롭잖아.”
“그렇긴 하죠. 뭐, 상황이 이러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세민은 테이블 위에 자신의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트레이닝 상의의 소매로 자신의 입가를 닦은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교황님과 리멘 교단이 상해로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순리 놈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상해를 중심으로 정화자를 소탕하실 계획 아니십니까?”
그 말에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해는 한때 정화자 놈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아주 위험한 곳이죠. 그래서 말인데…….”
웃고 있던 이세민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적의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 적의는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향한 적의.
순간적으로 연회장이 조용해졌고, 그 침묵 속에서 이세민이 말을 맺었다.
“사냥견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얼마든지 그 사냥견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사연이 담긴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미간을 지그시 좁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