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5.
연회가 끝난 후.
우리 집 앞쪽에 위치한 포장마차에서 2차가 이어졌고, 우리들은 이세민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귀환한 이후로 바랐던 건 딱 한 가지,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복 받은 놈이었습니다. 부인과 아이들이 살아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의 말에 말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자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숫자가 빌런으로 변한다.
가족들, 그러니까 지켜야 할 것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고자 하지만, 지구에 지켜야 할 것이 남지 않은 귀환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디재스터급 귀환자에게 디재스터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들었다.
폭주할 경우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이 돼 버리는 귀환자.
디재스터급조차 그런데, 이레귤러급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세민은 운이 좋았던 귀환자였다.
“저는 그 세계에서 25년 동안 지냈습니다. 검, 마법. 흔히들 말하는 판타지 세계였죠. 그곳에서 살아남았고,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조용하게 살고 싶었지만…… 중국 정부에서 저를 가만히 두지 않더군요.”
“이레귤러를 가만히 둘 수야 있나.”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말했고, 그들은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신기하네. 중국 놈들이 순순히 놔줄 리가 없는데.”
“제가 날뛰는 것보다야 그쪽이 훨씬 감당하기 쉬웠을 테죠. 사실, 반쯤은 협박한 겁니다.”
어째서 이세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은거기인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힘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남이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
그것이야말로 은거기인의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세민의 말을 들으며 소주를 한 모금 넘겼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살짝 눈치가 보여서, 주로 어린 유망주들을 육성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치질에 끼어 달라는 유치한 부탁이 많기는 했는데, 저는 이제 정치질은 신물이 났었거든요.”
이세민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따라 소주를 연신 들이켰다.
그러더니 곧 청록색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소주잔을 잔째로 융해시켜 버렸다.
“저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우한에서 지냈고, 저는 우한과 멀지 않은 곳에서 제자들을 육성했죠. 나름 행복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정말 행복했었어요.”
이세민은 품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시연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웃으면서 이세민을 껴안고 있었다.
“제 딸아이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여태껏처럼 그에게 반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 남자의 눈에서 수많은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움, 후회, 분노.
그리고 마지막으로 증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예쁘네요.”
“제 손으로 딸아이의 시체를 수습했습니다. 마기에 물들어서, 편하게 죽지도 못하는 딸아이를…… 제 손으로, 제 손으로.”
포장마차 안에 있던 최 대표, 나, 라파엘, 자현이.
모두가 말을 멈춘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세민의 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단동에서 거두었던 아이들처럼, 그의 딸 역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늦어도 너무나도 늦었다.
“남아 있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내와 아들은 당분간 한국에서 지낼 예정입니다.”
“……당신은 그러면…….”
“제 딸아이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도움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그 복수를 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세민이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까 전에 제 제자를 이용해서 교황님을 부른 건 사죄드리겠습니다. 교황님께 빠르게 그 빌어먹을 것의 수급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연회장에 들고 들어오기에는 거북한 물건이긴 했으니까 이해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되면…… 제 아내와 아들을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어합니다.”
단장지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같다고 했다.
나로서는 이세민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세민의 가족 중 지금 가장 괴로운 건 아마 이세민일 것이다.
힘이 있었음에도 딸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언제나 인간의 깊은 곳까지 갉아먹는 것은 죄책감이다.
아비로서 자식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끔찍한 죄책감. 지금 이 순간조차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내 잔에 술을 따라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멘 교단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역시 우리들의 가족이죠. 아내와 아들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대주교 한 명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세민은 내가 건넨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곧 힘겹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중국인을 싫어하신다고 들었는데, 제 부탁을 이렇게 들어주시는 걸 보면 마냥 싫어하시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중국인이라면 마냥 싫어합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자식 잃은 아버지까지 마냥 싫어할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아요. 특히, 그 아버지와 같은 적을 두고 있다면 더더욱.”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우리의 동료가 되었다.
나는 자현이의 잔을 내 앞으로 가져와서 잔을 채웠다. 그리고 묵묵히 소주를 들이켰다.
오늘따라 소주가 썼다.
그것도 아주 많이.
6.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유선호 장관에게 중국의 서열 1위 이레귤러가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렸다.
다소 놀랄 수도 있는 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호 장관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렇습니까.
사이가 안 좋은 이웃의 이레귤러가 대한민국에 들어온 셈인데, 솔직히 살짝은 놀라야 정상 아닐까?
하지만 곧 이어진 유선호 장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교황님도 계시고, 천자현 각성자도 있고, 심지어 라파엘까지 있는데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게다가 가족들도 함께 들어왔다면, 사실상 나쁜 뜻은 없을 겁니다. 중국 정부와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거기서부터는 저희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 둔 계획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이세민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분노의 마왕을 단신으로 저지한 이세민의 힘이라면, 상해에 세울 우리 신전의 안전은 어느 정도 확보된 셈이다.
예상치도 못했던 지원군의 합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각성자 국제교류전의 두 번째 날이 찾아왔고, 나는 아침 일찍 레오와 함께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둘째 날의 가장 중요한 일정.
그것은 바로 ‘특강’이었다.
“성하, 특강 준비는 따로 하셨습니까?”
레오는 차를 운전하면서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했겠냐?”
“성하께서는 언변도 뛰어나시니까 저는 딱히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내가 다녀오라는 곳은 다녀왔어?”
“예.”
“고생했네. 항상 고맙다, 레오.”
내 말에 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처받은 이를 돌보는 것은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레오는 아침 일찍 이세민의 아내와 아들을 보러 다녀왔다.
라파르트 대주교를 보낼까 했는데, 바티칸에서 넘어온 교육생들을 관리하느라 바쁘다더라.
그래서 그냥 레오를 보냈다.
“최상급 신성석까지 사용해서 축복을 걸어 주고 왔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겠지만, 그래도 악화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생했어. 가족이 될 사람들한테 돈을 아끼면 안 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서울이 바쁘게 움직인다.
아주 오랜만에 진행되는 국제 행사 때문일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활력까지 느껴진다.
그 모습이 보기 참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가 탄 차는 마침내 특강이 예정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성하.”
“사람이 좀 많네?”
“아무래도 공식 일정이라 그런 듯합니다. 성하께서 오늘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건 거의 전 국민이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주차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이 참 많다.
기자들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시민들, 거기에다가 대학생들까지.
대학생들이 많은 이유는 별거 없다.
이곳이 한국대학교였기 때문이다.
“김시우! 김시우!”
“여기 좀 봐 주세요!”
내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부담스러워서 숨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레오야, 내리자.”
“예, 성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관심이 정말 좋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차에서 내렸고.
“꺄아아아아!”
“김시우!”
“김시우!”
사람들이 보내 주는 열렬한 환호를 만끽했다.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계속 커져만 갔다.
나는 그 뜨거운 열기 속을 레오와 함께 걸었다.
미리 주차장에 나와 있던 이능관리부의 직원들이 인파를 통제해 주지 않았다면, 사고가 일어나고도 남았을 열기였다.
인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면서 한 3분쯤 걸었을까?
김 실장이 나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김시우 교황님.”
“좋은 아침입니다, 김 실장님.”
“인원들은 다 모여 있습니다. 들어가셔서 바로 특강을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강의 시작까지 20분 정도 남았는데요?”
“강사가 강사지 않습니까. 늦게 와서 무슨 소릴 들으려구요.”
한마디로 내가 무서워서 다들 일찍 모였다는 건데…… 내가 그렇게 무서운 이미지인가?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 말이지.
내가 외국인들을 함부로 대했던 적이 없……지는 않구나.
지난번에 LA에서 외국 각성자 한 명을 공으로 만든 적도 있었으니까, 이유는 있구나.
“저는 그래도 나쁜 놈들만 막 대하는데, 나쁜 놈들이 많이 왔나 봐요?”
“그것보다는 교황님의 이름이 그만큼 유명하고 무게감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을 이쁘게 포장하는 우리의 김 실장.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왔으니 그냥 강의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도 되겠죠?”
“강의 시간은 애초에 미정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강의하시면 됩니다. 강의료는 시간에 상관없이 입금될 예정이구요.”
“좋네요.”
“교황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시지 않습니까? 저는 교황님을 믿습니다.”
은근한 말투로 ‘돈 받고 튀지 마라.’라고 말하는 김 실장.
단 몇 마디로 5분만 강의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내 계획을 사전에 방지해 버렸다.
“그럼, 강의하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레오도 같이 들어가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그래도 제대로는 해야지.
대한민국이랑 리멘 교단을 대표해서 나가는 건데 말이야.
나는 강의실의 문 앞에 선 다음, 가볍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대학교에서 신경을 썼는지, 강당이 꽤 넓었다.
그 넓은 강당 안을 빼곡하게 채운 각국의 유망주들.
하나같이 열정이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열정이 화를 불러왔는지,
“야 이, 개새끼야!”
“뭐? 다시 말해 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인 것 같아?”
강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고 있는 유망주들이 보였다.
한두 명이 시비가 붙은 게 아니었다.
떼거리로 욕을 내뱉으면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은 미국의 성조기를.
다른 쪽은 영국의 유니언 잭을.
딱 봐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갔다.
“성하, 가서 말리겠습니다.”
내 옆에 있던 레오가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레오를 제지했다.
그리고 강당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지. 안 그래?”
그러자 싸우고 있던 두 무리를 비롯한 모든 유망주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올라와서 싸울래? 나 싸움 구경 좋아해.”
그러자 그 무리 중 성조기를 달고 있던 한 유망주가 기합이 잔뜩 든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든 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데이…….”
대놓고 에이든과의 친분을 자랑하는 미국 유망주.
나는 그 녀석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든에게 말을 많이 들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그럼 이야기가 더 빠르겠네. 올라와.”
“예?”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는 데이 뭐시기.
나는 녀석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을 맺었다.
“뒈지기 싫으면 올라오라고.”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