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70. 이 시대의 참교육자
1.
녀석은 스스로를 데이비드라고 소개했다.
그래도 싹수가 좀 있는 놈이었는지, 내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올라왔습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쯤.
다부진 몸에 단단한 눈빛.
거기에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한 것이, 딱 잘라 말해서 ‘재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데이비드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마력 보유량도 상당한 편.
게다가 슬쩍 보인 손바닥에 박혀 있던 굳은살은 녀석의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신경 쓰고 있는 유망주인 것은 틀림없었다.
미국.
우리 교단과도 사이가 아주 좋은 우방국 중에 하나기도 하고, 대한민국과의 동맹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우방국의 유망주를 가볍게 꾸짖고 넘어가……기는 개뿔.
“데이비드라고 했냐?”
“예! 김시우 교황님.”
“에이든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데?”
그러자 데이비드가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하면서도 자비가 없는 실력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대놓고 인맥 팔이 하는 놈들을 혐오한다는 이야기는 안 해 줬냐?”
나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전에 자신의 지인을 팔아 대며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놈들을 정말 싫어한다.
딱 이런 놈들이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 대한민국의 첫 국제 행사인 만큼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 주려고 했건만…… 시작부터 싸움질이라고?
그리고 내가 한 소리 하려던 찰나에 에이든의 이름을 파는 것까지.
하나같이 내 성질을 건드리는 일들이었다.
나는 데이비드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자 데이비드 역시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엎드려.”
“……예?”
“대가리 박고 엎드리라고.”
급작스러운 내 명령에 혼란스러워하는 데이비드.
하지만 그래도 눈치는 좀 있는 모양인지, 곧바로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엎드렸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 걸까?
“푸흡.”
“풉.”
방금 전까지 이 녀석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영국 측의 각성자들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그 영국의 꼬맹이들을 향해서도 손가락을 까딱였다.
“방금 웃은 두 새끼. 나와.”
그러자 두 명의 남녀가 재빠르게 무대로 올라왔다.
녀석들은 제법 신속한 속도로 데이비드를 따라 머리를 박았다.
다들 각국의 유망주들이라서 그런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구만.
올라와서 얼타고 있었으면 제대로 쓴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너희 셋은 내 강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머리 박고 있는다. 알겠냐?”
“예!”
“예에!”
“알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데이비드 너는 강의 끝나고 따로 얼굴 좀 보자.”
에이든이랑 전화했을 때 ‘별로 안 친한 놈인데?’라는 반응 나오잖아?
그날이 저놈 제삿날이다.
나는 그 셋을 향해서 이를 부드득 갈아 준 다음, 재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표정으로 앞을 둘러보았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얌전해진 우리의 유망주들.
자유분방하던 자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하나같이 의자에 올바른 자세로 앉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래서 어? 본보기가 참 중요하다고.
“반갑습니다, 여러분. 정식으로 제 이름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이레귤러이자, 리멘 교단의 교황. 김시우라고 합니다.”
내가 기분 좋게 첫 마디를 내뱉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들.
분위기가 마치 초상집에 온 것 같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유망주들을 향해 다시 한번 웃어 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손이 없어요? 박수 안 쳐요?”
나름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 장난을 쳐 봤는데,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짝짝짝-.
짝짝.
4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들 하나같이 간절한 표정으로 손벽을 친다.
각성자들이라서 그런지 박수 소리도 엄청 우렁찼다.
나는 이 넓은 대강당을 가득 메우는 박수 소리를 만끽하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칠 때까지 손뼉을 치려는 유망주들을 향해 가볍게 오른손을 들었다.
“그만.”
그러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대강당.
“다들 이제 편하게 앉읍시다.”
유망주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았고, 그 어느 때보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수강생들의 열의가 이렇게나 뜨거우니 특별 강사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오늘 무슨 주제로 특강을 해 줘야 잘해 줬다고 소문이 나려나?
그래도 대한민국 정부에서 나를 믿고 맡겨 준 건데, 이번 특강을 잘 끝내야 다음번에도 또 특강을 맡겨 주지.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전문 강사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나만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해 줘야만 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에덴에서 어떤 나날들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왔는지.
그 이야기를 이 유망주 녀석들에게 해 줄까 한다.
지금의 지구는 에덴과 비교하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에덴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이었고, 어쩌면 에덴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마왕들부터 시작해서 이계의 신들까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 유망주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뿐이다.
“여러분들은 동료의 시체를 품에 안아 본 적이 있습니까?”
차디찬 현실을 직시시켜 주는 말을 시작으로, 내 특별 강의가 시작되었다.
2.
그 이후 진행된 특강의 분위기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망주들은 내 말에 집중해 주었다.
다들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언어의 축복’을 통해서 그들 모두에게 내 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다른 강사들이라면 통역을 사용했어야겠지만, 내 강의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 유망주들이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전쟁 속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면서 버텨 냈는지.
이번 특강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유망주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에덴에서의 내 기억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들을 너무도 많이 잃었다.
그리고 잃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지켜 냈다.
만약 내가 지독한 상실감에 파묻혀서 나아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1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유망주들에겐 꽤 고마웠다.
지루할 수도 있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관심 있게 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제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딱 2시간만 특강을 해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남은 시간은 질문을 받으면서 보낼까 합니다. 혹시 쉬는 시간 필요하신 분?”
그 말에 손을 드는 유망주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좋을 때다.
집중력이 참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곧바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유망주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고, 나는 가장 먼저 손을 든 유망주를 지목했다.
“거기, 일본 여학생.”
내가 지목하자 그 여학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옆에 있던 레오가 빠르게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마이크를 건네주었고, 곧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강당 내부에 울려 퍼졌다.
“일본에서 온 나츠키라고 합니다. 김시우 교황님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에덴에서는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서 싸웠다고 하셨는데, 그럼 지구에서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계신 건가요?”
어떻게 하면 강해지는지에 대해서 질문이 쏟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꽤 의외의 질문이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냐라…….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다.
권력, 출세.
이딴 건 처음부터 관심 없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을 지켜 주기 위해서 그저 싸우고 있을 뿐.
내 단호한 대답에 나츠키라는 여학생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 갔다.
“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럼…….”
“가족들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저를 믿어 주는 모든 이들을 위해 싸웁니다.”
나에게 있어서 ‘내 사람들’이라는 건 바로 그런 거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을 뿐이다.
내 대답에 그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면서 물었다.
“만약에 제가 김시우 교황님을 믿는다면…… 저도 지켜 주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유망주로서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내 팬으로서 온 것 같은데?
나는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그 여학생을 바라본 다음, 손가락으로 턱을 슬쩍 긁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강해지는 법,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 등등.
예상했던 질문들도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고, 나는 최대한 성실하게 그 질문들에 대답해 주었다.
간만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3.
내 특별 강의는 2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유망주들이 호응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막판에 질문이 쏟아진 걸 감안하면 괜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나중에 그 유망주들을 우리 교단의 훈련소로 초청해서 견학을 시켜 주기로 약속했다.
“성하. 그런데 유료로 견학시켜 주겠다는 말씀을 안 하신 이유가…….”
“그건 이제 어른들의 일이잖아.”
“……아.”
“우리가 돈을 안 받고 무료로 견학시켜 주면 바티칸에서는 뭐라고 생각하겠어? 우수 고객님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되지.”
“이렇게 가르침을 또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하.”
특강을 끝내고 레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엎드린 채로 따라나서는 세 명.
데이비드를 포함해서 아까 강의 시작 전에 엎드려 있던 그 셋이었다.
“내 시간은 끝났으니까 이제 일어서도 된다.”
내가 말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 셋.
나는 그 셋 중에서 영국 유망주 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다시 강당 안으로 들어가. 다음부터는 남의 불행을 보고 비웃지 말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당 내부로 뛰어들어 갔고, 결국 나와 레오의 앞에는 데이비드가 남게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데이비드.
나는 그런 데이비드를 향해서 넌지시 물었다.
“뭘 잘못했는지는 알지?”
그러자 데이비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함부로 남의 이름을 팔지 않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제일 나쁜 짓이야. 네가 잘못하면 그 사람 이름에도 먹칠을 하는 거잖아?”
“죄송합니다!”
“기다리고 있어 봐. 간만에 친구 목소리 좀 들어야겠다.”
“예?”
“에이든한테 물어봐야지. 너 에이든이랑 안 친하면…… 알지? 가중처벌이야.”
전화기를 들어 에이든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 연결음 후, 곧 전화기 너머로 에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 어쩐 일이야. 전화를 다하고.
“아, 오늘 특강을 했는데 여기에 너랑 친한 유망주가 있다더라고. 데이비드. 알아?”
-데이비드? 귀여운 애송이지. 데이비드가 너한테 무례라도 저질렀나?
“무례까지는 아닌데, 내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영국 유망주들이랑 싸우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한 소리 해 주려니까 냅다 네 이름 팔던데?”
-하하하!
내 말에 전화기 너머의 에이든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에이든은 한참 동안 웃은 다음,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송이가 뭐 다 그렇지. 시우. 나를 대신해서 따끔하게 혼 좀 내 주길 바란다. 그래도 내가 꽤 이뻐하는 놈이야. 싸울 때 배짱이 있어.
“아, 그래? 내가 혼을 내 줘도 돼?”
-물론이다. 나 대신 애송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가로 비싼 술 한 잔 사도록 하지.
“나야 좋지.”
-다음에 길게 통화하자. 지금 테러리스트 목을 조르고 있어서 말이야.
“어, 그래. 수고하고.”
전화가 끝난 후,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데이비드를 바라보면서 해맑게 웃었다.
“들었지?”
“……아아아아아.”
데이비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귀여운 녀석.
이걸 어떻게 요리해 주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