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5.
모습을 드러낸 집단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백명교였다.
흰색 로브를 입은 집단의 등장.
성지 곳곳에 퍼져 있던 우리 교단의 병력이 한곳으로 모였고, 곧바로 성지 내부에는 전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병력을 이끈 채로 성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전에 본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금색 머리카락의 소녀.
그녀는 백명교의 교도들을 잠시 뒤로 물린 뒤, 혼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성하, 제가…….”
“괜찮아.”
레오가 먼저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걸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잖아?”
백명교도들의 숫자는 얼추 50.
그들은 전부 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적의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김시우 교황님.”
금색 머리카락의 소녀, 그러니까 백명교의 대교구장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빛난다.
그 눈동자에서 불쾌한 신성력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왔다.
사람을 홀릴 것만 같은 분위기.
그러나 그녀의 신성력은 주위로 살짝 퍼져 나가기만 할 뿐, 어떤 작용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백명교가 이곳에는 어쩐 일일까?
“무슨 꿍꿍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장은 한배를 탔으니,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한배라……. 대한민국에서 도망친 다음, 러시아 찍고 중국에 붙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지?”
미국으로부터 얻어 냈던 정보들 중에는 백명교의 행방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내 질문에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답니다.”
“그럼 그 추운 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중국까지 넘어오셨나?”
“정화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때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녀는 바닥을 스치는 자신의 하얀색 사제복을 추슬렀다. 그리고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상해의 시민들에게 줄 구호물자도 챙겨 왔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 성지 내부로 수십 대의 차량이 들어왔다.
차량들은 임시로 설치되어 있는 주차장에 정지했고, 곧바로 백명교의 신도들이 발을 옮겼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차에서 구호물자들을 하차시켰다.
“전투 의지는 없습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죠.”
나는 그녀의 뻔뻔한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적의 적은 적일 수도 있는 거지.”
“그런가요?”
“왜 싸우고 말고를 너희가 정해? 그건 우리가 정하는 거야.”
이곳은 우리들의 홈그라운드다.
이곳에서 우리가 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이곳에서 싸우지 못할 것이란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김시우 교황님께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실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당한 시민들.
질병에 신음하는 자들.
아직까지 배급을 받지 못해 배를 굶주리고 있는 자들.
그 시민들 한 명 한 명이 이 도시에 남겨진 흉터였으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었다.
수법이 참 악랄하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저 죄 없는 자들이다.
“그리고 저희들 역시 저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왜지?”
“정화자들은 혼란을 추구하는 자들. 그들은 살육을 즐기고, 세상을 망가뜨리려고 하죠. 하지만 저희들은 아니에요. 이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 저희들의 목표죠. 그리고 저 불쌍한 자들 역시 이 세계의 일부랍니다.”
“여전히 개 같은 소리를 잘도 지껄이네.”
인간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소리를 저렇게 포장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었다.
“백명교도 우리 교단의 적이야. 그 사실만큼은 바뀌지 않아. 아마 이곳이 성지가 아니었다면, 너희들을 반드시 제거했을 거다.”
개인적으로 정화자와 백명교는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한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질서?
이 녀석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에 거역하는 사람들이 맞이하게 될 최후는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당장은 정화자를 제거하고 있지만, 결국 이 녀석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최악의 적이 될 것이다.
신념과 신념의 충돌.
그것보다 더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은 없으니까.
소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더욱 짙게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해 볼까 해요. 제가 모시는 분께서 저를 통해 당신에게 건네는 제안이랍니다.”
그녀는 손에서 작은 보석 하나를 소환해 냈다.
불길한 신성력이 잔뜩 응축된 검은색 보석.
그 보석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신격에 도달한 자여, 우리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질서에 동참하라. 지구에서 태어난 그대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성력을 움직여, 소녀의 손에 놓여 있던 검은색 보석을 끌어왔다.
파스스스-.
보석을 움켜쥐어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루를 바닥으로 흘리면서 말했다.
“내가 신격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또 어디에서 들으셨대?”
“그분들께서는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
“잘 들어.”
나는 천천히 소녀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내 몸에서 회색의 신성력이 피어올랐고, 곧 소녀의 몸에서도 비슷한 색의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우우웅-.
서로 다른 신성력이 맞부딪히면서 주위의 대기가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를 향해서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이 정화자들과 전쟁을 하건 말건, 우리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라.”
적의 적은 친구라는 오래된 말.
하지만 백명교 놈들에게 그런 건 적용되지 않는다.
저놈들에 한해서만큼은 적의 적도 그냥 적이다.
“전장에서 우리 병력과 만나지 마라. 우린 너희들과 손을 잡지 않아.”
“리멘 교단은 전쟁을 선호하는군요.”
“아니.”
나는 소녀의 붉은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를 갈면서 말했다.
“전쟁을 피하지 않을 뿐이야.”
정화자와의 전쟁 뒤에는 결국 이 녀석들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공존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결국 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구호물자들만 놓고 꺼져.”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강도가 따로 없네요.”
“나쁜 놈들한테는 그래도 돼.”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소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로 걸어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들이 오십니다. 당신이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반사.”
정화자.
리멘 교단.
백명교.
이 세 세력의 삼파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6.
상해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갔다.
가오리 녀석 덕분에 중국 측 병력도 내 명령을 잘 듣기 시작했고, 공항 두 곳과 상해를 통해서 구호물자들도 빠른 속도로 밀려들어 왔다.
일본과 대한민국에 있는 공장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간 덕분이었다.
우리 교단이 상해에 진출한 지 일주일째.
마침내 우리는 도시의 절반 이상을 수복하게 되었다.
상해 내부에서 반란군을 상대로 항전하고 있던 각성자들도 합류함에 따라 전력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대륙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의용군?」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용병들, 타국의 내전에 관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대한민국과 일본의 일부 길드들, 중국 내전에 참여 선언.」
「대한민국 청와대 공식 대변인,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다. 우리의 승인 없이 중국 내전에 참여한 길드들에게 법적인 조치가 가해질 것.’」
중국 정부에서는 그동안 모아 뒀던 돈들을 풀면서 각국으로부터 전력을 수급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은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에서 그토록 우려했던 방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우리 교단으로서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명분만 평화 유지였을 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국적으로 처음 중국 내전에 개입한 쪽이 우리 교단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을 지탄한다면, 그냥 그건 누워서 침을 뱉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구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회의.
정부 측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였고, 법무부 장관과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이 참여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빡센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딱히 무리가 되지 않았다. 성지 통로를 통해 좀 걸으면 끝이었으니까.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회의실 안에는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와 설화를 비롯하여, 대형 길드들의 대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익히 알던 얼굴들.
지난번 전각련이 무너지면서 대형 길드들의 대표들이 한번 물갈이되었는데, 어느 순간에 전 대표들이 대표로 복귀해 있었다.
“대표님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서 대통령이었다.
“공문으로도 따로 보냈지만, 일단 대통령으로서의 기본 입장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번 중국 내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개입이란 단순하게 말해서 군사적 개입이다.
중국 내전 발발 이후로 대한민국 정부가 계속해서 지켜 오던 원칙.
명분도 충분하다.
잃어버린 땅이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외부에 병력을 파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대표들 쪽에서는 최 대표가 가장 먼저 답했다.
“중국 쪽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금액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이권들도 내어 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향후 중국에 생성되는 던전들과 게이트들에 대한 우선 입찰권 같은 것들 말이죠.”
땅이 넓은 중국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
각성자들의 성장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게이트와 던전.
원래 저 둘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핵심 자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에 대한 권리를 판매하는 것만 보더라도 중국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 알 수 있었다.
“당장에야 잃어버린 땅에서 발생하는 게이트와 던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만은…… 대한민국 각성자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중소형 길드들이나 개인 헌터들의 불만도 많이 쌓이는 중이기도 하죠.”
최 대표의 지적은 아주 정확했다.
실제로 각성자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B급 미만의 헌터들은 현재 성장의 기회가 제한되고 있었다.
대형 길드나 정부 쪽에서 대부분의 수단을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현재 반란군뿐만 아니라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을 파견하지 않는 건…… 솔직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 대통령은 최 대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대표들도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땅만으로는 만족하기가 힘듭니다.”
“최근 들어 게이트나 던전의 발생 빈도도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의용군 파견을 허락하는 법안을 발의해 주십시오.”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는 우리의 대형 길드 대표님들.
예전에 나에게 한 방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이란 게 참 끝이 없다.
그때, 서 대통령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서 대통령이 어째서 이런 자리에 나를 불렀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치 서 대통령이 ‘부탁합니다, 김시우 교황님!’이라고 말하는 듯한 저 표정.
“에휴.”
나는 한숨을 나지막하게 뱉어 냈다.
서 대통령 역시 파견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를 불렀다는 건 딱 하나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서 대통령이 빠르게 반응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김시우 교황님?”
“의용군의 소속을 리멘 교단에 두면 됩니다. 리멘 교단은 현재 중국 대륙의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대신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들어간다.
“소속을 리멘 교단에 두는 만큼 병력들에 대한 지휘권은 제가 가져갑니다.”
그러자 대표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건 좀…….”
대표들이 욕심만 가득해 가지고 말이야.
나는 그들을 향해서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말했다.
“싫으면 말고.”
학습된 공포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
대표들은 나에게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붙이질 못했다. 그저 조용히 머릿속으로 셈을 할 뿐.
그 뒤로 한 10분이 지났을까?
“……저희 길드는 동의하겠습니다.”
대표 한 명을 시작으로.
“저희 길드도…….”
“부디 잘 부탁…….”
나머지 대표들 역시 마지못해 내 제안을 수락했다.
나는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이리 많으니, 리멘 교단의 교황으로서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군요. 환영합니다, 형제님들.”
안 그래도 상해 쪽에 일손이 부족했는데 잘됐네.
그렇게 우리들은 새로운 인력을 수혈받게 되었다.
잘만 하면 이거, 대형 길드 소속 각성자들도 꿀꺽할 수 있을지도?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따로 말해 둬야겠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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