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5.
김 팀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라운드 제로는 마냥 쓸모없는 불모지가 아니라고 한다.
마력 폭주로 인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은 맞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마력 저항력을 보유한 플레이어라면 활동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라운드 제로 내부에 질 높은 마정석 광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정석.
마력이 결정화되어 만들어진, 마력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광물.
주로 마력을 사용하는 몬스터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주요 부산물 중 하나이기는 했으나, 고품질의 마정석들은 대부분 마정석 광산에서 생산된다.
에덴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던 지식이었기 때문에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마정석 광산이 그라운드 제로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정석 광산은 주로 마력 오염 지역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마정석 광산과 지금 이 상황이 어떤 관계가 있냐면.
“그라운드 제로 내부에서 마정석 광산을 두고 플레이어들 간의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까지 추정되는 사망자 숫자는 최소 다섯 명. 그라운드 제로 내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저항력을 지닌 플레이어들이었으니, 최소 A급 헌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대단들 하네요. 대단들 해.”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할 수 있는 고품질의 마정석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플레이어들이 마정석 광산을 두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김 팀장의 설명을 들으며 커피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커피가 씁쓸한 건지, 이 상황이 씁쓸한 건지.
“시우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마정석은 플레이어들의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광물입니다. 1년 전,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정석 광산이 발견된 이후로 대형 길드들은 각각 전문팀을 꾸려서 채굴에 참여하고 있었죠.”
“처음부터 정부가 상황을 통제했으면 된 거 아니었습니까?”
내 당연한 질문에 김 팀장은 힘겹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활동이 가능한 마력 저항력의 보유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대형 길드에 속해 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던 건 그저 그라운드 제로의 출입을 기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통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통제를 못 하는 거였구나.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서려는 걸 정부에서 왜 막고 있는지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우 님께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가신 순간, 저희 정부로서는 그 어떤 것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무법지대.
김 팀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나에게 계획을 설명해 줬던 민수 씨 역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소린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김 팀장이 말해 줬다.
“대형 길드들은 제외하고서, 그라운드 제로에 마정석 광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원은 극히 소수입니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마정석은 전략 자원으로도 분류되기에 충분한 값어치를 지녔다.
지금까지는 그 값어치가 오히려 기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이다.
김 팀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갔다.
“지난 1년 동안 대형 길드들이 구성한 협의체를 통하여 채굴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얼마 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힘을 합쳐서 채굴에 열중하던 길드들끼리 충돌이 일어날 만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채굴량이 줄었나 보네요.”
“……맞습니다.”
“재밌네. 재밌어.”
이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 거다.
이능관리부에서 내가 그라운드 제로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는 이유 역시, 그 싸움에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제야 이 전체적인 그림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밥그릇 싸움에 끼어들어서 괜히 피 보지 마라, 이런 뜻이잖아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시우 님을 먼저 생각하는…….”
“하아.”
이렇게 될 거면 진작에 물어보고 투표를 시작할 걸 그랬나.
민수 씨를 탓하기에는 민수 씨 역시 현재 그라운드 제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인지를 못 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것도 빌어먹을 인과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그럴듯한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 지랄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투표 번복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가는 ‘희망을 상징하는 교단’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는 교단’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게 뻔했다.
따라서 그 방법은 최악이다.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궁리해 봤지만, 결국 답은 딱 하나뿐이었다.
나는 커피 컵에 들어 있던 얼음을 씹어서 목으로 넘긴 다음, 주먹을 움켜쥐면서 말했다.
“종교인과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거짓말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받으려면 당연히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번복?
굳이 내가 대형 길드 놈들이 밥그릇 싸움하는 거 무서워서 번복을 해야 해?
어디까지나 내가 내린 결정이긴 했으나, 고작 대형 길드들의 천박한 이권 다툼 때문에 결정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정부에서도 저 그라운드 제로라는 무법지대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 아닙니까?”
“맞긴 합니다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는 김 팀장을 바라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 곤란한 상황 끝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하하, 김 팀장님도 잘 아시면서.”
어떻게긴.
로마에 가면 로마에 법을 따르랬다고, 무법지대에선 무법을 따라야지.
6.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김 팀장도 반대를 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입장 승인이 떨어졌다.
승인이 통과된 이유는 간단했다.
최소 S급 헌터 이상의 각성자가 두 명이 포함된 전력이므로 안전상의 이유로 입장을 불허하는 것은 이치에 옳지 않음.>
이능관리부에서는 레오가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와 호각,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최종승인권자인 이능관리부 장관과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내 약속은 간단했다.
정말로 그라운드 제로를 정화해 보겠다는 것.
물론 일종의 수고비는 따로 챙기기로 했다.
리멘의 증표를 사용하면 분명히 일부 지역의 오염은 제거할 수 있었으니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 입장 승인이 떨어졌고, 이틀이 지났다.
“높네.”
나는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제로 마주한 장벽의 크기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욱 거대했다.
“이 장벽의 이름은 아크라고 합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문명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죠.”
오늘 역시 김 팀장이 함께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출입 관리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김 팀장의 설명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참 지구 사람들이 작명 센스가 좋아요.”
에덴이었으면 그냥 대마력 봉쇄벽> 이런 식으로 지었을 텐데 말이지.
김 팀장은 내 감탄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정말 두 분이서만 들어가시는 겁니까?”
오늘 이곳에 도착한 우리 측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은 당연히 레오고.
아마 김 팀장이 저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민수 씨가 없어서인 듯했다.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 지역에서는 전자 기계가 먹통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굳이 촬영팀이 필요할까요?”
“구민수 플레이어의 회사에는 꽤 괜찮은 A급 헌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충분히 전력이 되어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하하, 누가 보면 제가 여기 싸우러 온 줄 오해하겠네요. 저희는 그냥 그 뭐라 해야 하냐…… 사전답사. 신전 부지 사전답사하러 온 겁니다.”
“……아, 제가 실언을 했군요.”
물론 아예 고려를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나와 레오, 둘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괜히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서,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 팀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인터넷에서 몇몇 길드들의 광고를 봤었어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함께 싸운다, 대부분 그렇게 말하면서 홍보를 하더라구요.”
지난 이틀 동안 집에서 쉬는 도중에 내 눈에 들어왔던 광고들.
지금이 길드와 플레이어들의 시대라는 것을 알리듯, 대부분의 광고가 길드를 홍보하는 광고였다.
개중에는 현재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길드들도 꽤 보였다.
“그랬던 놈들이 벽 너머에서 고작 돌 쪼가리 때문에 거리낌 없이 피를 흘린다니, 그게 참 웃기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정의를 집행한다, 이런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리멘의 후광 덕에 교황이라는 자리에 오르긴 했다만, 그것이 내가 다른 이들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란 점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냥, 짜증이 좀 났다.
안 그래도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신경질이 나던 차에 딱 걸린 거지 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고, 내 미소를 본 김 팀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되도록이면 전투를 좀 피해 주십사 합니다. 결국, 그들도 대한민국의 전력입니다.”
“물론입니다. 먼저 싸움을 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것만큼은 리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먼저 싸움을 걸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다면, 그걸 봐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김 팀장과의 대화는 끝났고, 그는 나와 레오를 이끌고 그라운드 제로의 출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방사능 방호복 같은 장구를 착용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경례했다.
“충성. 경계 중 이상 무.”
“수고하십니다. 승인은 끝났으니 출입문을 열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끼이이이익-.
군인들이 버튼을 누르자 두꺼운 문이 미세하게 열렸고 곧 그 안에서 진득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김 팀장에게는 그 마력이 살짝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레오야. 들어가자.”
“예, 교황 성하.”
나는 레오를 이끌고 문 너머로 걸어갔다.
쿠우우웅.
우리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금 문이 닫혔고, 곧 희미한 조명과 함께 꽤 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5겹의 벽답게 상당히 두꺼운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둘만 남게 되자 레오는 나에게 본인이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출입을 기록하는 수단이 있다면, 현재 이 지역 안에 누가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칙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꼭 정문을 이용하란 법은 없거든.”
애초에 정문을 통해서만 모든 절차가 이루어졌다면 정부에서 자세한 정보를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이미 김 팀장이 나에게 백도어>의 존재에 대해서도 일러 줬다.
이곳 어딘가에 숨겨진 통로가 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레오는 내 대답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왜 저 김 팀장이라는 사람에게는 마정석 광산을 어떻게 하실 건지 말씀을 안 해 주신 겁니까?”
“꼭 말해 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래도 일단 같은 편에 서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레오스러운 질문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가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데 수고비 정도라고 생각하자. 지구에는 그런 말이 있다? 기브 앤 테이크. 그리고 걱정하지 마. 이미 더 윗분이랑 이야기도 끝난 거니까.”
“아무리 그래도 좀 불편하군요. 장사치가 된 기분입니다.”
“교리에 수고비를 받지 말라는 내용이 있나?”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마정석은 우리한테도 꽤 필요했잖아?”
마정석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쓸모가 있거든.
레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슬슬 보인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통로의 끝에 도착했고, 우리는 곧 벽 너머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허.”
벽 너머의 풍경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웠다.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들.
원래라면 무성했을 잡초들조차 보이지 않고, 마치 5년 전 그날을 박제시켜 둔 것만 같은 폐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진득하게 피어오르는 마력들까지.
그야말로 아포칼립스의 느낌이 물씬 풍겨 오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꽤 한참을 그 풍경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마력으로 인해 예민해진 내 기감에 무언가 느껴졌고, 레오 역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교황 성하. 이건…….”
“나도 알아.”
[주의하십시오. 마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짙은 마력 사이로, 사악한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