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5.
전투 시작 20분 뒤.
우리는 결국 신전 내부까지 진입했다.
얼굴 없는 자들의 시체로 가득한 계단을 넘어, 천천히 본당 안으로 들어섰다.
신전 내부는 외부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꼴에 신격은 신격이라고, 성지의 중심에 그 누구도 들여놓지 않았다.
“우리 신전이 이렇게 넓었었나요?”
루나가 신전 내부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훨씬 거대해. 대충 봐도 알잖아.”
“이런 게 말이 되나?”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는 소리지.”
인과율에서 벗어난 세계.
이런 현상 따위는 이 세계에선 당연한 축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모두 부정되는 세상.
이곳의 신격은 마침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광기. 순응.】
우리가 신전에 들어서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신탁이 더욱 강렬해진다.
나와 이세민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들의 정신력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지독한 집념이었다.
최 대표야 이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쳐도, 루나와 레오는 몇 차례 겪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둘이 고통스러워한다.
그 정도로 이곳에 자리 잡은 신격의 힘이 강대하다는 뜻이다.
만약에 이곳이 폭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저 역겨운 놈이 이 정도까지 힘을 불리진 못했을 것이다.
골든 타임을 놓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나는 이번에는 회색빛 신성력을 끌어 올려서 그 세 명을 감싸 주었다.
그제야 그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성하. 너무 끈질기고도 집요한 목소리입니다.”
“나도 충분히 이해해.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라.”
회색빛 신성력에는 내 격이 담겨 있었다.
그 격을 나누어 주니 그나마 살 만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다음, 다시 시선을 돌려 신전의 본당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장막으로 가려진 본당.
저 안에서부터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세민 씨.”
“예.”
“나머지 인원들을 데리고 이곳을 막아 줄 수 있겠어요?”
내 물음에 이세민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막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겁니다. 얼마나 버티면 되겠습니까?”
“시간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저 장막 너머에 어떤 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 표정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던 것 같다. 이세민은 빠르게 본인의 에너지를 갈무리했고, 몸을 뒤로 돌렸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찍 이 사태에 개입하지 못한 제 잘못이 가장 큽니다. 악을 방관하는 것 역시 악이다. 언젠가 교황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죄가 있습니다. 그 죄를 속죄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평소에 항상 유쾌한 얼굴로 표정을 숨기고 있었으나, 이런 순간마다 본심이 드러난다.
후회와 자책 속에 파묻힌 한 아버지.
지금의 그에게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옆에 있던 세 사람에게 말했다.
“저 사람 혼자서 감당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내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무기를 정비하며 이세민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동료들이 모두 입구를 막기 위해서 떠났고, 나는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장막 너머에서 소용돌이치는 신성력들이 조금씩 흘러나와 내 몸을 휘감는다.
온몸이 타르 속에 묻히는 기분.
그 불쾌감을 이겨 내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갔다.
【상실.】
짤막하게 끊기는 단어들의 나열.
신격으로서의 의지가 담긴 신탁이 울려 퍼질 때마다 신전 전체가 요동친다.
나는 그 모든 신성력들을 떨쳐 내며 마침내 장막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일절 고민 없이 장막을 찢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리멘의 얼굴 없는 신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신전에 위치한 신상과 똑같은 생김새였으나, 딱 한 가지가 달랐다.
꾸르르르르륵.
리멘의 신상으로부터 검은색의 점액질이 뻗어 나간다.
더없이 성스러워야 할 본당 곳곳에 검은색이 덧칠되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형제조차 흩어지고 있었다.
【너의 결말.】
다시 한번 신탁이 울려 퍼졌고, 곧 신상에서 검은색 점액질이 뿜어져 나왔다.
불규칙하게 분출되던 다른 점액질들과는 달리, 그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뒤바뀐다.
그것이 뚜렷한 형상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은 어린아이, 한 젊은 남성. 그리고 한 할머니.
순식간에 신상 앞에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들의 보자마자 주먹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선 쎄게 넘네.”
그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시연이.
인욱이.
그리고 할머니.
내가 이를 악물고 지구로 돌아오려고 했던 이유들.
“오빠.”
시연이의 형상을 지닌 것의 입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손주.”
시연이를 뒤따라서 한마디씩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는 이 성당 안을 메아리쳤다.
마치 나를 미쳐 버리게 만들겠다는 듯, 끊임없이 귓가를 괴롭혔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꿈이라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현실이라기에는 차라리 악몽에 가까웠다.
촤르르르륵.
내가 내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멈칫거리는 사이, 신전의 바닥에서 검은 손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것은 내 발을 지독하리만큼 꼼꼼하게 묶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시스템이 재부팅됩니다.] [인과율의 관리자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남겨 두었습니다.]-어비스 던전이 폭주해 버린 이상, 그 안은 더 이상 지구가 아니야. 내 권한 밖이라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지? 끝도 없이 처먹어 대는 내 미운 동생에게 안부라도 전해 줘. 그럼, 이따가 보자.
테라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인과율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잖아.”
전력을 끌어 올려도 된다는 뜻.
지구에서처럼 인과율의 제한에 걸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마음이 편한 만큼, 속에서 끝없이 분노가 끓어올랐다.
“가족들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내 몸에서 뻗어 나간 신성력이 내 가족의 형상을 한 괴물들을 집어삼켰다.
신성력끼리 얽히면서 새하얀 스파크가 튀긴다.
나는 그 불꽃 속을 묵묵히 걸어갔다.
시연이의 형상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고사리 같은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유리 조각처럼 깨졌다.
그건 다른 형상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환상 따위에 현혹될 정도로 멍청한 놈이었다면 지구로 돌아오기도 전에 죽었겠지.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이들은 이곳이 아닌 밖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고대 신이든, 병신이든 곱게 끝내 주지 않을게. 약속해.”
리멘의 신상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눈’을 향해 몸을 날렸다.
6.
그 ‘눈’은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많은 환영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내 손에 죽어 나간 마족들부터 시작해서, 전성기 시절의 칠마왕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왕의 편에 섰던 배신자들까지.
여태 내 손에 죽어 나갔던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 나를 몰아붙인다.
그것들은 단순한 환영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실체를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끝도 없는 적들이 나를 몰아붙인다.
공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라는 것을 알려 주는 듯, 본당의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이 넓어져만 갔다.
‘눈’은 리멘의 신상에 숨은 채로 내 모든 감각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이 세계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걸 매 순간마다 증명하고 있다.
내가 적들의 시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신상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신상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그 간격은 결코 좁힐 수 없게 느껴졌다.
“너를 증오한다.”
“리멘의 이름을 앞세웠다고 한들, 결국 너도 우리와 같은 살인자며 학살자다.”
그들이 내 손에 죽어 가며 내뱉은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나는 신성력을 귀에 두른 채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온몸을 적시는 뚜렷한 적의, 증오심.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매 순간 내 몸을 파고들려고 한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정신이 무너지고 말았겠지.
그러나 저 녀석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지랄들을 해요, 그냥. 뒈질 만한 놈들이니까 뒈진 거지. 내가 왜 너희들이랑 똑같냐?”
내 주특기는 정신 승리다.
이미 저 녀석들은 나에게 패배해서 죽어 버린 놈들.
나는 패배자의 말 따윈 귀담아듣지 않는다.
“또 뒈져 그냥.”
파아아아아앙-.
나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을 쉴 새 없이 터뜨리며 계속 나아갔다.
끝이 안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 몸에 잠자고 있던 신성력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맞서 싸웠다.
에덴에서 축적해 온 신성력들을, 제한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폭발시켰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해방감이다.
적어도 이곳은 다 박살 내더라도 상관없는 장소잖아?
이럴 때 힘을 아껴서 어디에다가 쓰겠어.
“오히려 좋아.”
그래서 나는 마음껏 공격을 이어 나갔다.
신전이 부서지든 말든, 이곳은 우리 신전이 아니니까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은 ‘눈’에게 꽤나 충격을 준 듯했다.
【……광기.】
처음과는 다르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
감정이 아예 없는 놈인 줄 알았더만, 그건 또 아니었나 보지?
【……왜?】
녀석은 내가 어째서 즐거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무의미.】
“의미가 없기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이상 내가 저 녀석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애초부터 이 공간 자체가 상식에서 어긋나 있다.
신격의 권능으로 인해 비틀렸기 때문이다.
내 권능으로는 이곳의 규칙을 바로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내 권능’으로는 말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다른 존재의 힘을 빌리면 되는 거야. 그리고 나한테는 든든한 지원군이 한 명 있거든.”
쩌저저저적.
내가 사방으로 퍼뜨려 두었던 신성력들이 이 공간에 빈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허공에 작은 균열이 생기더니, 곧 그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사이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야, 시우. 내가 많이 늦었을까?”
나는 균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의 여신님을 바라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딱 맞춰서 와 줬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