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75. 나의 여신님
1.
리멘은 내 앞에 나타나자마자 와락 나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스킨십에 헛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살짝 토닥이면서 말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저 눈깔 좀 끄집어내 줘. 내 가족들을 모욕하더라.”
“가족들을 모욕했어? 죽일 놈이네.”
“가능할까?”
내 질문에 리멘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곱게 찌푸렸다.
“내가 그래도 한 세계의 주신인데, 저깟 퇴물을 어떻게 못 할까 봐? 나는 현역이라고, 현역.”
내가 그토록 좁힐 수 없었던 거리.
그러나 리멘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파아아앗-.
엄청난 신성력과 격이 리멘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까드드득.
왜곡된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좁쌀만큼의 틈이었으나 리멘은 가차없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잔뜩 일그러져 있던 이곳의 질서가 바로잡혔다.
“질이 나쁜 놈이네. 남의 신상에 스며들어 있고 말이야…… 안 그래?”
리멘은 자신의 신상마저 파괴했다.
신이 자신의 신상을 스스로 파괴하는 귀한 모습.
일그러진 신성력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신상이 파괴되었고, 그 안에 있던 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흉측할 정도로 거대한 눈.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불가해. 어떻게?】
이유를 묻는 듯한 목소리.
그 질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라 리멘이었다.
“시우는 나의 대리자야. 그리고 우리 둘의 관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결속되어 있어. 하긴…… 이런 사도를 만나 본 적이 없는 너희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
【이곳. 나의 세계.】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만 보면 리멘의 성격도 참 많이 바뀌었다.
옛날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적극성.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 ‘눈’의 진명을 읊었다.
“허기진 갈망. 격을 건 싸움에서 패배해서 도망갔으면, 적어도 돌아올 생각은 하면 안 되지. 퇴물 새끼가 어디를 넘봐?”
리멘이 진명을 말한 순간, ‘눈’의 형상이 흔들렸다.
잠깐이었지만 그 눈 속에서 짐승의 형상이 느껴졌던 것 같다.
곰.
정확히는 검은색의 곰.
리멘은 그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나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원래 뭐였는지 알아, 시우?”
“글쎄다.”
“곰이었어. 아마도 인간들로부터 숭배를 받고, 격을 얻게 된 놈이었을 거야.”
신격은 언제나 신앙심으로부터 피어오른다.
저 녀석이 처음부터 저렇게 일그러진 놈은 아니었을 것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저 녀석을 저렇게 만들어 버린 걸까?
이런 내 의문을 읽어 냈는지, 리멘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왕의 편에 넘어간 신격들도 있었는걸. 시우, 신격이라고 해서 모두가 선하고 완벽하지 않아. 다만, 그들이 필멸자와 다른 건 하나뿐이야.”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리멘의 뒷모습에서 찬란한 빛이 일렁거린다.
그 빛은 신전 안을 드리웠던 어둠들을 빠르게 몰아내었다.
“필멸자들의 일탈은 세상을 뒤틀 수 없지만, 신격들의 일탈은 세상을 뒤틀어 버려. 그들에게 부여된 막대한 책임감을 배신한 대가지.”
마왕들의 편에 섰던 신들과 최 대표를 구해 줬을 당시 마주했던 그 잊혀진 신격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자신의 신도들을 죽은 것만 못한 상태로 만들어 존속하려고 했던 그 버러지만도 못했던 놈들.
나는 리멘의 말에 담긴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눈’에 걸려 있던 강력한 환각을 해제해 버렸다.
‘눈’의 형상 자체도 현실을 조작했던 것일까?
곧 녀석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검은색 곰.
녀석에게 처음 신격이 생겨났을 때의 모습.
순수했던 그때의 모습이었으리라.
【다른 차원의 격. 흡수 불가.】
곰은 리멘을 향해 말했지만, 리멘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너를 죽이는 건 내가 아니야. 안 그래, 시우?”
“고마워, 리멘.”
화르르륵-.
내 온몸에서 성화가 타오른다.
평소와 같은 새하얀 빛의 성화가 아닌 회색빛의 성화였다.
나는 몸에 불을 두른 채로 그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전혀 좁혀지지 않았던 그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그리고 마침내.
“닿았다.”
내 주먹이 녀석의 실체에 닿았다.
화아아아아악.
내 몸을 둘러싼 성화가 검은색 곰에게 옮겨붙었고, 순식간에 녀석의 전신이 불에 휩싸였다.
쿠어어어어!
곰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온다. 녀석은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내 가슴팍을 후려쳤다.
갈비뼈가 골절되는 듯한 통증.
그러나 나는 녀석의 목을 움켜쥔 채로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고통엔 영 익숙하지 않은가 봐? 나는 익숙한데.”
【우리와 공존. 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다른 형제들로부터. 보호.】
궁지에 몰려서인지 녀석의 말이 길어졌다.
제 딴에는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던진 말이겠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패드립을 처갈겨 놓고, 내가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랐던 거냐?”
쿠웅.
곰의 거대한 앞발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내 시야를 붉게 물들였고, 입가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더욱 짙게 웃으면서 손에 힘을 넣었다. 그리고 녀석의 노란색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신격이잖아. 쉽게 죽지 마라.”
잠시 후.
우드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가 신전 가득 울려 퍼졌다.
2.
[격을 흡수합니다.] [특수 능력치 격>이 200 증가합니다.] [지구의 고대 신 허기진 갈망>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합니다.] [새로운 패시브 스킬 끝없는 허기>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의 공격은 종류 : 신격>의 격을 강탈할 수 있습니다.]세상에서 묶어 두고 패는 것만큼 위력적인 건 없다.
나는 갈기갈기 찢겨 나간 곰의 사체를 바닥에 던진 다음, 그 사체 위에 침을 뱉었다.
“전투력은 백설이만도 못한 놈이.”
우우우우웅.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 공간의 신성력이 나에게로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내 고유 신성력이라고 할 수 있는 회색빛의 신성력.
이번 전투에서 소모한 신성력의 빈자리가 고스란히 채워졌다.
원래의 신성력 비율을 따지자면 리멘의 신성력 90프로, 내 신성력 10프로 정도.
하지만 지금은 리멘의 신성력이 60프로, 내 신성력이 40프로 정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고작 절반 정도 흡수했을 뿐인데 이 정도다. 내 능력으로는 50프로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다.
이 녀석이 보유하고 있던 신성력의 양이 그만큼 방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허공에서 흩어지는 신성력들을 바라보면서 리멘에게 말했다.
“아깝지 않아? 차원 넘어오느라 힘 많이 소모했을 텐데, 저거라도……”
그러자 리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차원의 신격이 쌓아 둔 신성력은 흡수할 수 없어. 호환되지 않는 혈액형이라고 해야 할까?”
“……이해가 쉽게 되네. 그럼 나는?”
“음, 시우가 비록 내 하위 신이긴 하지만, 결국 출신 차원계는 지구잖아. 게다가 신격을 획득한 곳도 지구고. 나와는 경우가 아예 다르지.”
어비스 던전에 진입한 후 쉴 새 없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격을 흡수해서인 것 같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리멘을 향해 물었다.
“평소보다 훨씬 간절하게 기도하긴 했는데, 그래도 늦지 않게 와 줬네.”
“이곳은 엄밀히 따지면 지구가 아니라서 그렇지. 급조된 세계라 빈틈도 많았어.”
“에덴 상황은 어때?”
“안정적이야. 더 이상 침범하는 적들도 없고, 이제 조금씩 전쟁의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아.”
리멘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곧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나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왜 요새는 연락 자주 안 해? 엄청 기다렸단 말이야.”
“아무 때나 연락하기가 힘들어. 그때 말했잖아? 국제통화료가 너무 비싸다고.”
나라고 연락하기 싫어서 연락 안 하나.
매번 통화할 때마다 수천억씩 깨지니까 그렇지.
리멘은 내 말에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축성소 있으면 돈 많이 벌지 않아?”
“지구에서 교단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넌 몰라.”
“하긴, 에덴에서도 돈이…… 어, 시우.”
“왜?”
“불청객이 왔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둘이 하던 것들 해. 뭘 그리 신경을 쓰시나?”
무너진 신상의 뒤쪽에서 낯이 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라였다.
테라는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곰의 사체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돼지 새끼, 잘 죽었다. 고생했다, 교황.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겠네. 아주 보기 좋아. 내가 너 엄청 믿고 있는 거 알지?”
“테라,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리멘은 내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
그러자 테라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형제가 죽었잖아? 병신 같은 놈이라고 하더라도 조문은 해야지. 그게 예의야. 안 그래, 교황아?”
“저놈은 정말 여기에서 끝인 거냐?”
“물론. 네가 남김 없이 먹어치웠잖아. 그러면서 이 녀석이 지니고 있던 권능도 일부 흡수했을 테고.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야. 이 던전이 폭주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오지 못했을 결과기도 하지.”
테라는 그렇게 말하며 피처럼 붉은 꽃 하나를 곰의 사체 위에 던졌다.
“축생으로 시작해서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 신격에 이르렀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배가 고팠는지, 쯧.”
테라의 손에서 검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그 불은 곰의 사체를 남김없이 불태웠다.
“쫓겨났으면 그냥 그곳에 처박혀서 살 것이지, 왜 고향에 돌아오겠다고 지랄들인지 몰라. 교황,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깨달은 게 아닐까?”
“유머 있는 남자. 매력 있지. 어이, 리멘, 행복하겠어.”
리멘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테라에게 말했다.
“테라, 찾아온 이유가 뭐야?”
“아, 이번에는 교황이 아니라 너한테 용무가 있어서 왔어. 그러니까-.”
테라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언어의 축복이 나에게 있는 이상 못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리멘이 잠시 나로부터 언어의 축복을 거두어 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테라는 리멘을 향해 무어라 계속 말했다.
그리고 리멘은 테라의 말을 들으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그 둘은 나를 옆에 둔 채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그 둘의 대화가 끝이 났고 테라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좋아. 리멘, 그건 네가 선택할 문제니까.”
“이제 용무가 끝났으니 돌아가.”
“이 차원을 소멸시키는 건 네가 알아서 할 거냐? 지구와 연결되어 있기는 해서, 내버려 두면 곤란해.”
“알겠어.”
“좋아, 그럼 불청객은 다시 사라져 주지.”
테라는 허공에 푸른 빛의 문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로 나에게 말했다.
“교황, 저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마라. 그럼, 난 다시 간다.”
테라는 조용히 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녀가 문을 닫자마자 푸른 빛의 문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리멘.”
나는 나지막하게 리멘의 이름을 불렀다.
“응.”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리멘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로.”
기분 탓일까?
그렇게 말하는 리멘의 얼굴 위로 잠깐이나마 슬픔이 묻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멘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동료들이랑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지? 내가 길을 열어 줄게.”
“리멘.”
“또 보자, 시우. 기다리고 있을게.”
나를 서둘러 돌려보내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리멘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