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3.
리멘이 나에게 숨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껏 리멘은 나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었다.
그것은 나와 그녀가 맺은 암묵적인 룰이었고, 그녀가 나에게 신뢰를 쌓기 위해서 택했던 방식이었다.
나를 에덴으로 납치해 갔던 리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야 그녀를 많이 원망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나를 에덴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내 가족들을 지킬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겉으로는 툴툴거리더라도, 마음속으론 그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까 리멘이 테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걸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히 리멘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하아.”
테라와 리멘 사이의 일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답답할 뿐.
“성하, 방금 전에 리멘님께서 오셨다가 가셨는지요.”
“맞아, 리멘이 문을 열어 줬어.”
“그저 은혜로울 따름입니다.”
어비스 던전이 자연스레 소멸하였고, 우리들은 곧바로 던전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어비스 던전은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를 텅 빈 구덩이가 대체할 뿐.
나는 레오를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친 곳은 없……지는 않네.”
레오는 피로 물든 손으로 자신의 복부를 막고 있었다.
복부 위에 올려 둔 손을 비집고 피가 흘러내린다.
완벽하게 지혈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레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레오의 환부 위에 가볍게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상처가 꽤 깊다.”
“내장이 흘러내리려는 걸 급히 손…….”
“……거기까지. 굳이 설명 안 해 줘도 돼.”
“알겠습니다.”
레오는 몸을 아끼지 않는 전투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번 부상을 당하면 꽤 심하게 당한다.
이건 에덴에서 오랫동안 함께 싸워 오며 경험했던 것이기도 하다.
레오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사망 플래그 세우지 말고.”
“제가 성하의 잘린 팔을 주워서 가져다드린 걸, 웃으시면서 붙이셨잖습니까?”
“루시퍼랑 싸울 때?”
“예. 그때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뜁니다.”
북방 출신의 선지자답게 성향 자체도 야만 전사에 가까운 레오.
진짜 이렇게 레오를 치료해 주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떠오르긴 한다.
그때는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싸웠는데 말이지.
“성하.”
그렇게 내가 레오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레오에 비해 그나마 상태가 멀쩡했던 루나가 건물 잔해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왜?”
“이세민 씨, 그냥 우리 교단에서 종신 계약 하면 안 돼요? 진짜 장난 아니던데. 에덴에 저런 사람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몇만 명은 더 살았겠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적들의 피로 온몸을 흠뻑 적신 이세민을 가리켰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살기가 진득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넘어선 남자.
그가 지닌 강함은 결코 온실 속에서 자랄 수 없는 것이었다.
적을 물어뜯고 분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힘.
그가 전투를 하면서 보여 주는 야성은 분명히 끔찍한 수준이었다.
지구로 돌아와서는 가족들 때문에 그 야성을 억누른 듯 보였지만, 그걸 정화자 놈들이 건드려 버렸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건드려도 하필이면 저런 남자를 건드릴 줄이야.
“탐나는 인재예요.”
루나가 입맛을 다시면서 이세민을 쳐다보았고,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부남이다.”
“아니, 그런 쪽으로 말구요. 이세민 씨가 우리 교단에 투신만 해 준다면…… 업무 강도가 굉장히 낮아질 것 같은데.”
“인건비는 네가 책임질 거냐? 이레귤러 몸값이 싼 줄 알아?”
“라파엘처럼 어떻게 뭐 안 되나? 아쉬워서 그러죠, 아쉬워서.”
전투에 한해서만큼은 칭찬에 인색한 루나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나는 온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이세민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한 원군이야.”
자현이를 한반도에 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그의 미소 뒤에 잠들어 있는 증오심을 경계해야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이세민은 증오심에 잡아먹혀서 실수를 할 남자가 아니다.
그런 남자였으면 지구로 돌아오지도 못했으리라.
“그래도 가장 급한 불은 껐네요.”
루나는 무기를 자신의 옆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땀에 살짝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석양빛에 물든다.
“위험 요소를 모두 제거한 셈이지.”
“백명교 놈들은 왜 안 왔을까요? 고대 신이랑 관련된 곳이면 빠지지 않는 녀석들일 텐데요. 설마 잘 몰랐나?”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아.”
정화자 놈들은 일찍이 이 어비스 던전의 정체에 대해서 파악했을 것이다.
고대 신의 성소.
녀석들이 제압을 하려고 했다면 제압은 했겠지만, 신성력과 마기의 상성을 생각해 봤을 때 손해가 막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짬을 때려 버린 거다.
그런 건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이 성소가 소멸되지 않고 지구에 영향력을 뻗혔다면…… 상해는 도시 전체가 성소, 그러니까 고대 신의 생텀이 되었으리라.
“우리한테 은근슬쩍 정보를 노출한 놈들이 백명교에도 같은 짓을 안 했을 리가 없지.”
분명히 백명교에서도 이 어비스 던전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 백명교에서 이 어비스 던전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라는 고대 신이라고 해서 같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어쩌면 이 허기진 갈망>이라는 놈은 백명교의 적에 해당되는 놈이 아니었을까?
[시스템이 당신의 격이 상승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당신의 권속들의 힘이 강해집니다.] [일정 수준의 격에 도달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특수 퀘스트 신화 – 서막>이 생성됩니다.] [당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이 땅 위에서 써 내려가십시오.]백명교가 뭘하고 있건 말건,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메시지창.
신화라.
고대 신들을 죽여 달라는 이야기를 꽤나 거창하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는걸.
나는 퀘스트의 완료 조건에 적혀 있는 또 다른 고대 신을 흡수>라는 문장을 확인하면서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어찌 되었건 상해는 완전히 우리의 영향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4.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할 수 있었던 어비스 던전까지 소멸된 이후, 우리들은 상해 곳곳에 남아 있었던 정화자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소탕 작전 중에 많은 활약을 펼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은택이 이끄는 이단심문관들이었다.
터널, 지하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각종 은신처들.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적들의 시설을 샅샅이 수색해 내는 이단심문관들.
그들은 난민들 사이에 숨어 있던 마기 사용자들까지 남김없이 색출해 내었다.
이단심문관들에게 벨페고르라는 좋은 교보재를 제공한 보람이 있었달까?
부정한 것들은 제거하고, 부서진 건물들은 다시 올리고.
충분한 인력과 자본까지 투입되니 도시는 금세 다시 되살아났다.
“수리가 필요한 장비들을 저렴한 가격에 수리해 드립니다.”
“리멘 재단에서 보낸 구호품들은 충분하니까 필요하신 분들은 질서를 지키면서 대기해 주십시오.”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임시로 설치된 야전병원으로 향해 주십시오!”
“현재 병원들을 비롯한 중요 시설부터 복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간호사, 의사 등의 의료 인력도 급히 구인합니다!”
나는 집무실의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지를 중심으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구역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보급로가 뚫린 덕분에 더 이상 식량이나 의료품 들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생필품 역시 중국 정부가 마련-대한민국과 일본으로부터 구매한-하여 빠르게 공급되는 중이었다.
내전 발발 전으로 돌아가긴 힘들겠으나, 그래도 불과 몇 주 전의 상해와 비교해 본다면 엄청난 복구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치안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우리 교단의 성기사들이 주기적으로 상해를 정찰하고 있었고, 상해시의 공안들도 조금씩 세력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
이런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신호 속에서,
[리멘 교단의 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신성 점수를 획득하였습니다.] [신성 점수를…….]우리 교단의 신도 숫자 역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정식으로 입교 신청서를 제출한 상해 시민의 숫자만 하더라도 집계가 힘들 정도였다.
“……결과는 좋았어.”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 교단의 상해 상륙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상해를 완전히 수복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많은 시민들을 구출했다.
더불어 중국 대륙에 우리 교단의 거점을 마련했다는 것도 엄청난 성과였다.
“성하, 시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그러나 아무리 성공적인 진출이었다고 한들,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레오는 부상을 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레오가 입고 있는 사제복은 전투복과는 달리, 교단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정복이었다.
나는 레오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인 다음, 입고 있던 하얀색 예복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다.”
레오는 조용히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복장을 살펴 준다.
지구로 건너와서는 단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던 하얀색 예복.
리멘 교단 내부에서는 신실한 자의 의복>이라고 불리는, 교황만이 입을 수 있는 예복이었다.
축성된 천으로 만들어진, 성물이나 다름없는 예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까지 안 입었던 이 예복을 오늘에서야 입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오늘은 내가 교황으로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예.”
나는 레오와 함께 신전의 지하 통로를 지나서 서울로 향했다.
성지 간의 통로를 통해서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신전 밖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상해 성지와는 달리, 서울 성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평소와 같으면 기도를 드리러 온 신도들로 가득 찼을 서울 신전이었지만, 오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조용한 복도를 지나서 신전의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곧 예식용 검을 쥐고 있는 우리 교단의 성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일제히 검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태양의 빛이 그들의 검에 내려앉았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전의 계단을 내려갔다.
신전 계단 앞에는 하얀색 천으로 뒤덮인 두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관 옆에 서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에게 성수가 담긴 그릇을 건네주었다.
“성하.”
“고맙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
천천히 그 그릇을 받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에 성수를 받아, 그 두 개의 관 위에 뿌렸다.
한참 동안을 말없이 그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릇이 바닥을 보였을 때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선일 형제님, 김기석 형제님. 약자들을 위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리멘을 위해 행한 그대들의 헌신은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상해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발생했던 중상자 중, 이 두 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나는 그 둘의 관을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에덴에서는 수도 없이 경험했던 순간이다. 함께 싸워 온 전우들의 시체를 껴안기도 했었고, 심지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누군갈 잃는다는 것.
내 사람들을 잃는다는 것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저 견딜 뿐이지.
나는 조용히 그 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 형제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형제가 되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리멘께서 그대들을 품에 안아 주시기를.”
그들은 우리 교단의 공식적인 첫 번째, 두 번째 전사자였다.
그 관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제는 정말로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는 것을.
나는 그 관 앞에서 한참 동안을 말없이 머물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