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5.
도플갱어를 마주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저기 서 있는 ‘나’는 도플갱어와 근본부터가 달랐다.
살짝 거리가 있음에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신성력과 격.
그 신성력은 분명 내 몸속의 신성력과 같았으며, 입고 있는 옷 역시 내 사제복과 동일했다.
그렇다면 저건 내가 맞을까?
모르겠다.
확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면서 손을 털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
“증명부터 해라.”
“증명?”
“진짜 내가 맞는지, 증명부터 하라고.”
당연한 절차였다.
저 녀석을 제압하고 나서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제압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저 녀석은 내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딱 내가 몇 년 후에 지니게 될 힘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내 질문에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뭐든지 의심하는 게 좋지. 고대 신들이랑 싸우려면 그런 마인드가 필요해.”
“말 돌리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랑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이거면 되려나?”
영화에서는 이런 경우 보통 본인들만 아는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본인이 맞는지를 확인한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올 때 호두과자를 사 온다고 하셨지. 더 말해 줄까?”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러면 가능성은 두 개네?”
“뭔데?”
“네가 진짜 ‘나’거나, 아니면 고대 신이나 정화자의 장난질이거나.”
“섭섭하네.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 날 의심하는 거냐? 나답긴 하다.”
‘나’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신전에 있는 의자와 똑같이 생긴 의자가 솟아올랐다.
녀석은 손짓으로 착석을 권유했다.
그러더니 내 의자 맞은편에 의자를 하나 더 소환한 뒤, 그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모든 걸 의심하는 건 좋은 자세야. 항상 그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도록 해.”
“시간 없다면서? 빨리 본론이나 말해.”
“성격 급한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난 2년 뒤의 너다. 우리 쪽의 인과율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
인과율이 무너져 내렸다?
인과율을 관장하는 건 결국 테라.
테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단 소리인가?
“■ ■가 실패로 돌아가 버렸…… 아, 인과율 때문에 너에게는 안 들리는구나. 이것 참, 우리 세계는 인과율이 무너져 내려서 문제고, 이쪽은 여전히 강해서 문제고.”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너머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녀석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식을 바꿔야겠다. 리멘은 잘 지내지? 리멘한테 잘해 줘라.”
“……리멘은 왜?”
“너도 리멘 사랑하잖아. 나도 마찬가지였고.”
어째서 과거형일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녀석이 정말 ‘미래의 나’라고 가정한다면,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시간을 역행하는 능력을 보면 내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격을 획득했을 터였다.
리멘이나 테라 정도의 신격이 아니고서야 저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언젠가 리멘이 나에게 해 줬던 이야기가 있다.
-시간을 역행하는 건 신격에게조차 엄청난 부담이 돼. 잘못하면 신격이 소멸할 수도 있어. 최악의 결과야.
그녀의 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녀석은 지금 소멸될 걸 각오하고서라도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리멘에게 자세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답을 제대로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말은…… 아, 진짜.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파지지지직-.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긴다.
그리고 그 허공을 찢고 익숙한 존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만…… 무법자 하나가 깽판을 치고 있었네?”
“이런 곳에서 만나니까 너무 반갑다, 테라. 잘 지냈어?”
“흐으으으응.”
공간을 찢고 등장한 테라는 ‘나’를 바라보면서 콧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를 슬쩍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놈이 너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어? 뭐…… 인과율이 알아서 걸렀겠지만.”
“마침 딱 들으려던 참이었는데, 좀 빠져 주지?”
“그건 곤란하겠는데. 교황, 네 눈에는 안 보이냐?”
“뭐가?”
“안 보이면 내가 보이게 해 줄게.”
테라는 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 눈에 가볍게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있었던 ‘나’의 등 뒤로 회색빛의 촉수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고대 신?
아니, 저건 고대신 따위가 아니다.
고대신 들 따위가 줄 수 있는 위압감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마치 내가 모든 고대 신을 먹어 치운 듯한 모습.
셀 수 없이 다양한 신격이 녀석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의 말을 믿어? 교황, 저건 네가 아니야. 한때 너였던 괴물일 뿐이지.”
“동시에 네가 맞이하게 될 미래야.”
테라의 말에 ‘내’가 덧붙인다.
테라는 허공에서 창을 벼려 냈다. 그리고 곧바로 ‘나’의 목에 겨누었다.
“우리 귀여운 교황 마음 심란하게 만들지 말지? 너와는 달라.”
“뭐, 내가 최악의 경우인 건 맞지만…… 그래도 좀 섭섭하네. 나를 이렇게 만든 데엔 네 탓도 있는데, 테라. 너는 대충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나’는 맨손으로 테라의 창을 잡는다.
그리고 그 순간,
촤르르르륵-.
‘나’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테라의 전신을 결박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건틀렛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김시우,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둬. 지금 내 모습이 네가 맞이하게 될 최악의 엔딩이야. 너는 같은 길을 걷질 않길 바란다.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몸이 결박된 테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 탓을 하고 싶지 않다, 테라. 너도 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거잖아. 그렇지?”
‘나’는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건틀렛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한 가지만 명심해. 그 어떤 순간에도 리멘을 놓지 마라. 네 여신을 믿어.”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파스스스슥.
녀석의 다리부터 조금씩 먼지로 흩어져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멈춰 있었던 내 시스템이 다시 작동했다.
[인과율을 심각하게 일그러뜨리는 존재를 발견하였습니다.] [경고! 심각한 위반.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저 존재를 말소합니다.] [3…… 2…… 1…… 삭제가 불가능합니다. 해당 존재는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긴급 추방 절차를 진행합니다.]연기처럼 흩어져 가는 ‘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지켜보며 말했다.
“리멘을 놓지 마라. 그것만, 딱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아무리 빡대가리라도 그거 하나 기억하는 건 쉽잖아? 그녀의 ■ ■ 이 결국 너와 그녀, 그리고 이 세상을 살릴 거야.”
그 말로 끝.
녀석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분 탓이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녀석으로부터 흘러나온 먼지 하나가 내 몸속에 스며든 것만 같았다.
“교황.”
테라의 몸을 결박했던 촉수 역시 함께 사라졌다.
단둘만 남게 된 텅 빈 제단.
나는 결박에서 풀려난 테라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지금 궁금한 걸 물어봐도 대답해 줄 생각은 없겠지?”
테라는 대답 대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뻗었다.
[패시브 스킬 신성 보호 Lv.Max>가 상대의 정신 조작 능력을 방어합니다.]“미치겠네.”
“방금 뭐 하려고 했냐?”
“기억 제거. 그런데 한발 늦었어.”
테라는 ‘내’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면서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테라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원의 시간 동안 차원의 틈을 표류할 걸 각오하면서까지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 하긴, 그런 놈이니까 리멘이 너를 선택했겠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공에 문을 소환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지금으로서는 해줄 말이 없다. 미안하다, 교황.”
그 말을 끝으로 테라 역시 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방금 전의 ‘내’가 정말 미래의 나라는 걸 확인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시스템의 관리 권한이 있다는 것도 아마 사실일 거다.
……관리 권한은 지금 테라한테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하아.”
아무래도 긴 고민이 될 것 같았다.
6.
폐기된 제단에서 나온 후, 나는 곧바로 세종시로 날아가서 그곳의 마석 역시 깔끔하게 파괴했다.
일본에 파견한 루나와 레오 역시 성공적으로 마석을 파괴했다고 보고했으며, 부산의 자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을 끝내자마자 시위대 측과 협상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내일 아침에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겠냐고.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주원 씨의 동생을 만나는 것도 내일로 미뤄 두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나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아까 일어났던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장치를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연구실에 가셔서 사이킥 수정을 챙기신 다음, 지난번 사용하셨던 기계에다가 넣으시면 됩니다.
상해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파엘로부터 사이킥 수정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라파엘의 연구실로 가서 수정을 챙긴 다음,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리멘을 호출했다.
아주 오랜만의 국제통화.
우우우우우웅.
사이킥 에너지가 차원 간의 연결을 증폭시켰는데, 리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불안감이 몸을 엄습한다.
리멘에게 무슨 일이 생…….
“시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익숙한 향, 익숙한 목소리.
리멘이었다.
“이렇게 현신해도 돼?”
“오늘따라 차원의 통로가 꽤 여유가 있더라구.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현신하기에는 충분해.”
그건 아마 그 녀석이 잠시 이곳에 왔다가 갔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되었건 리멘이 밝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고생이 많아. 전쟁 때문에 힘들지?”
“괜찮아. 벌써 마왕도 몇 놈 흡수했고…… 아직까진 견딜 만해.”
리멘은 웃으면서 내 집무용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혹시 무슨 일 있어?”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나는 리멘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래도 꽤 오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구의 시간으로 한 30분 정도?”
“뭐라도 마실래?”
“콜라 있어? 나 콜라 마시고 싶었는데.”
책상 밑에 있던 미니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리멘은 콜라를 행복한 표정으로 마셨다.
“돌아갈 때 콜라 한두 병 정도는 챙겨 가도 큰 문제 없지 않을까?”
가벼운 이야기들을 내뱉으며 웃음을 짓는 리멘.
나는 그런 리멘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묻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나를 만났어, 리멘.”
“너를 만났다니?”
“고대 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나를 만났다고.”
그 말에 리멘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그렇구나.”
그녀가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숨김없이 말해 줘.”
그래야 내가 뭘 어떻게 대응이라도 할 테니까.
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