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80. 분열
1.
그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시우가 신격이 된 이후의 미래는 나도 볼 수 없어. 미안.”
“이번에도 또 회피…….”
“대신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예상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리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은 시우가 다른 고대 신들을 전부 흡수한 모습이었을 거야. 그들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격을 쌓은 자들이고, 그런 격을 시우가 완벽하게 흡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거니까.”
“테라의 권능까지 흡수한 것 같아.”
“그만큼 상황이 안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리멘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테라가 그런 선택까지 내렸을 정도면, 최후의 순간까지 갔던 것 같아. 결국 누군가 ■ ■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까지 갔던 거겠지.”
아까 전에도 들었던 저 ■ ■.
유독 저 단어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과율이 내가 이해하는 걸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앞뒤의 문맥만 보더라도 대충 저 단어가 어떤 단어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희생.”
내 말에 리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를 껴안았다.
“미래의 시우가 큰 결심을 했었네. 순리를 어기고 이쪽으로 넘어온 대가는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할 거야. 차원의 틈에서 영원히 표류하게 될 테니까.”
테라가 아까 했던 말.
리멘의 따듯한 기운이 내 몸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리멘을 놓지 말라더라.”
“나를 놓을 생각이었어?”
“……그럴 리가.”
“어떤 시간에서도, 어떤 공간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언제나 시우 네 편이야. 그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으면 돼.”
그녀를 놓지 말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그녀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집착이 심한가?”
“나를 생판 모르는 세계로 납치했으면, 끝까지 책임은 지셔야죠.”
“그렇지. 내가 또 책임감 하나는 확실하잖아! 시우도 나를 닮아서 책임감이 뛰어난 거야.”
“네가 내 부모님은 아닌…….”
“좋아하면 서로 닮는댔어. 시우는 나 싫어해?”
“……그럴 리가 없잖아.”
리멘은 웃으면서 천천히 몸을 뗐다. 그리고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너무 오랫동안 담아 두지 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야.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언제라도 바꿀 수 있어.”
“정말일까?”
“그러엄. 시우는 더 이상 운명에 얽매이지 않아. 미래의 시우도 그걸 알고 찾아온 걸 거야. 신격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운명을 만드는 존재거든. 그러니까 시우는 지금처럼만 계속해 주면 돼.”
그녀는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집무실 가득 퍼져 나갔다.
“이제 우리 교황님도 독립할 때가 다 된 것 같네. 격도 엄청 늘었구, 이러다가 나를 뛰어넘는 거 아닌가 몰라.”
“불안하게 또 왜 그러냐?”
“나랑 약속하나 하자, 시우.”
“내가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줄게.”
“나중에 내가 시우보다 많이 약해진다고 해서 나 버리면 안 되는 거다? 알겠지?”
그 말에 나는 살짝 짜증을 내면서 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널 왜 버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리멘이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교황님이지. 내가 교황 하나는 잘 뽑았다니까.”
결국,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다.
리멘은 내 손을 잡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만 해 주면 돼.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알겠지?”
나는 리멘의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여기에서 무언갈 더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딱 한 가지는 알겠다.
여전히 나를 위해 진심을 다해 주고 있다는 것.
“시간이 좀 많이 남을 것 같은데…… 오래간만에 산책할까? 페어리들이 정원도 예쁘게 가꿔 줬다면서?”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널 보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여.”
“내일 아침 뉴스에 내가 헛것을 본다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반전 여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교황, 드디어 미치다!
이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벌써부터 눈에 선하구만.
그래도 당분간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산책하기엔 나쁘진 않을 것이다.
“시우.”
“응?”
“아이들이 누워 있는 곳부터 가자.”
아이들이 누워 있는 곳이라면…… 아마도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성기사와 사제 들이 묻혀 있는 곳일 터였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오랜만에 데이트네.”
“……에덴에서 우리가 데이트를 했었던가?”
“기억 안 나? 산속에서 내가 길 알려 줬었잖아.”
“우리는 그걸 조난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런가? 아무튼!”
그녀가 어떤 미래를 보고 있든 간에 상관없다.
내가 지켜야 할 대상 중에는 당연히 리멘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나를 끌고 나가는 리멘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2.
리멘이 다시 돌아가고, 다음 날 아침.
미래의 나를 만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리멘이 정말로 미래를 못 보는 건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녀는 나에게 해가 될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숨기는 거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나는 그저 그녀를 믿고 기다릴 뿐.
언젠가는 알아서 이야기를 해 줄 테지.
똑똑똑.
“성하.”
집무실 창문에 서서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곧 라파르트 대주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임성호 씨가 도착했습니다.”
어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시위대의 대표 임성호 씨가 도착한 모양이다.
나는 몸을 돌리면서 답했다.
“들어오라 하세요.”
“예.”
잠시 후, 라파르트 대주교가 임성호 씨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임성호 씨는 나를 보자마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뵙습니다, 교황님. 신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일단 앉으시죠.”
계절은 어느새 여름에 가까웠다.
밖에 날씨가 꽤 더운지, 임성호 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라파르트 대주교.”
“예, 성하.”
“차가운 차를 내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빠르게 차를 내왔다.
임성호 씨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숨을 가볍게 뱉어 냈다.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는데,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교황님께서 함부로 약속을 깨뜨리는 분이 아니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임성호 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오늘 이 사람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는 반전 여론을 퍼뜨리는 걸 그만둬 달라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때로는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할 때가 있다.
아무리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듣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독선에 불과하다.
어제저녁, 이능관리부의 김 팀장이 시위대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보내 줬었다.
그리고 임성호 씨에 대한 정보를 읽었을 때, 그가 어째서 전쟁을 반대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에게는 동생이 둘 있었습니다.”
임성호 씨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운이 좋게 두 녀석 모두 플레이어로 각성했었죠. 큰놈은 이능관리부에서 일했고, 작은놈은 대형 길드 소속으로 활동했죠.”
임성호 씨는 내가 묻지 않았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큰동생이 장관급 회담 테러 현장에서 경호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작은동생은 정화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목이 타는지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그리고 주먹을 살짝 움켜쥐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일주일 전에 집에 사망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작은동생이 작전 중에 사망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순식간에 동생 둘을 모두 잃은 것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삼형제끼리 투닥거리면서도 열심히 어머니 모시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저 혼자 남아 있네요.”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아직까지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각성자가 되지 못했던 남자. 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
“누군가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가 이르게 된 결론이 이거였다.
누군가에게 전쟁은 기회가 되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잃어버린 비극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 남자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그가 작은동생을 따라 복수를 부르짖는 게 옳은 선택이고,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건 틀린 선택인 걸까?
애초부터 이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입장이 다를 뿐이지.
“교황님께서는 불쾌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고 저희는…… 그래도 계속 목소리를 내 볼까 합니다.”
이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시위대에 포함되어 있던 이들 대부분이 각자만의 사정이 있었다.
사람이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사연이 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인데,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고 짓밟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임성호 씨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내는 걸 막겠다고 부른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내 앞에 놓여 있던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녹차의 씁쓸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아니, 어쩌면 녹차가 씁쓸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지금 내 입이 쓴 걸지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어 주셔야 제가, 그리고 저희 교단이 올바른 길에 가까워집니다. 제가 무식하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효율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체였다면 몰라도, 우리는 결국 교단이다.
약한 사람들을 품고 함께 나아가는 걸 추구하는 교단.
정화자를 끝낸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들의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질 거다. 모든 걸 묵살하면서 지나갈 수는 없었다.
“항상 문을 열어 두겠습니다. 언제든지 들르세요.”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건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것.
이것뿐이다.
내 말에 임성호 씨는 아무 소리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었다고 해서 여론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 여론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론이 형성되는 거다.
임성호 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제 분위기가 바뀔 겁니다. 정화자 놈들이 아주 아픈 구석을 파고들었어요.”
“전쟁의 명분을 공격하는 건 항상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저들이 에덴과는 다르게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는군요.”
“그때 보스는 루시퍼였지만, 지금은 다른 놈이니까요.”
어쩌면 언데드보다 더 무서운 수단이었다.
방금 전에 나간 임성호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신했다.
지금까지는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전쟁을 이어 왔지만, 핵심 거점인 난징을 함락하고 엄청난 전과를 거둔 지금, 전쟁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고대 신들의 등장으로 인해 전 세계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상황.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변곡점입니다.”
한번 퍼져 나가기 시작한 반전 여론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분열은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