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3.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군.”
“네가 봐도 그러냐?”
“원래 명분이란 게 그렇다. 전쟁의 명분이 약화되어 버리면, 당연히 전쟁의 동력도 상실하게 되지. 그건 시대를 막론하고 그렇다. 너도 경험했을 거 아니냐?”
“나는 마왕이라는 절대악이 있었어서 말이야.”
“……부족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전쟁이…… 뭐, 됐다. 과거 이야기나 한가로이 할 때가 아니야.”
에이든은 상해에 위치한 내 집무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전 여론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의 핵심 거점 난징까지 함락.」
「중국 내전에서 정화자의 흔적이 많이 옅어졌다.」
「이제 중국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문제. 도대체 우리들은 언제까지 피를 흘려야 하는가?」
「백명교와 중국 정부, 시안 점령!」
예상외의 변수는 역시 백명교였다.
난징을 점령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줄 알았던 백명교와 중국 정부는 본대를 돌려서 곧장 시안을 타격했다.
우리가 상해 일대를 정리하는 동안 힘을 추스린 중국 정부의 전력투구.
거기에 백명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니, 시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시안을 지키고 있던 마왕, 레비아탄은 백명교에 의해 포획당했다고 한다.
더불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개입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제3세계의 이레귤러이자 빌런, 마테우스 역시 오늘 아침 미국 측에 인계되었다.
즉.
“우리로서도 슬슬 빠져야 할 때라는 거지. 본국에서는 라파엘에게도 이번 내전에서 발을 빼라는 지시를 내렸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일 거다.”
“라파엘은 딱히 내색하진 않더라.”
“그 양반은 원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양반이니까. 하여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거다.”
에이든은 스마트폰을 옆에 내려 둔 채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리멘 교단 혼자서 부담하게 될 영역이다. 정화자의 잔당은 중국의 서부 산악 지대로 스며들어 갔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쪽의 전폭적인 지원도 더 이상 힘든 상황 아닌가?”
“……그렇지.”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태까지 엄청난 지지율을 자랑하던 서신우 대통령과 여당이었지만, 야당 쪽에서는 전쟁의 명분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용병의 형식으로 대형 길드의 각성자들을 데려간 거긴 하다.
하지만 작정하고 달려드니 정부 쪽에서도 대응하기 힘든 상황.
그러니까 이 상황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전쟁을 지속해 나가기에는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 우리가 해방시킨 지역을 안정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빠듯할 거다, 시우.”
에이든은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을 것만 같지만, 그 누구보다 냄새를 잘 맡는 놈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에이든과 생각이 비슷했다.
“빠져야 할 때지.”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
정화자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순순히 물러나고 있었고, 여론은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난징까지 해방시킨 것으로 만족할 건가?”
에이든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더 가겠다고 하면?”
“본국의 명령을 거스르고, 내 친구를 돕겠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정화자를 끝까지 추격한다는 불확실한 결정을 내릴지, 아니면 여기에서 잠시 멈출지.
정화자의 핵심 거점을 모두 파괴했고, 루시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마왕들이 소멸하거나 포획되었으니 이걸로 된 걸까?
“하아.”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병력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교단 병력만으로 전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
의미 없는 피해만 늘릴 게 뻔했다.
무명 그놈이 갑자기 정신이 나가 버려서 내 앞에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 전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선택의 시간이다, 시우.”
“나도 알아, 이 새끼야.”
“무슨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도록 하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는 딱 질색인데.
어쩔 수 없이 간부들을 소집해서 의견을 모아야겠다. 아마 간부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많이 갈릴 것이다.
에덴과 지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다.
에덴에서의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지만, 지구에서의 우리는 잃을 게 너무나도 많았다.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간부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4.
간부들과의 회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들 후회는 없는 겁니다?”
“성하께서 선포하신 성전입니다. 저희들은 전적으로 성하의 선택에 따릅니다.”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휴전이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예전부터 현실적인 면모가 있어서 예상은 했지만, 호전적인 루나와 레오마저도 휴전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간부들이 원하는 것은 현상 유지와 재정비.
무엇보다 루나가 휴전을 요청하는 걸 보고 의아해서 직접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담금질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담금질이 끝나면 우리 병력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돋음할 수 있겠죠. 예정되어 있던 3기 교육생 훈련도 진행할 시기구요.”
재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루나.
레오 역시 루나와 비슷한 이유로 휴전에 동의했다.
우리 교단의 병력 숫자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우리 단독으로 모든 걸 진행하기에는 벅참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무리해서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이 무너질 테니까.
무리해서 정화자를 정리했다고 치자.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닌 힘을 상실하게 될 텐데, 그 틈을 타고 고대 신들이 들어온다면?
결국, 우리는 속절없이 밀리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은 만장일치로 일시 휴전이라는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방어 태세를 더욱 견고히 구축하여 혹시 모를 정화자의 공격을 방어해야만 합니다. 각국 정부와 긴밀한 의견 교류가 필요하니 라파르트 대주교가 신경 많이 써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나에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중국 쪽과는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교류해야겠는지요?”
“……어렵네요.”
현재, 북경에 위치한 중국 정부와 상해시의 신경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
각 지역의 반란군은 점차 정리되어 가고 있었으나, 혼란은 여전했다.
정치적으로도 분열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옛날의 중국으로 돌아가긴 글렀어요.”
이들은 봉합되기에는 너무 먼 길을 가 버렸다.
분열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분열을 막을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우리로서는 개입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알겠습니다.”
“3기 교육생 모집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모집에는 중국인들도 받겠습니다. 모집 규모는 총 천 명. 힘들겠지만 다들 고생해 주십시오.”
1기 교육생, 2기 교육생을 합친 숫자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규모다.
대형 길드는 물론이며 각성자 전력만큼은 작은 국가를 방불케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추후의 전쟁에서 충분한 저지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말에 간부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다음 주 수요일, 그러니까 1주 후부터 진행될 겁니다. 교단에 속한 전원에게 일주일간 휴가를 부여합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세종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에 교단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도록 하세요.”
“곧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멈추는 게 아니다.
잠시 쉬어 가는 거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그저 답답하지만…… 뭐, 별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재정비해서 다시 나아가는 수밖에.
5.
「잠시 멈추는 리멘 교단.」
「반전 여론을 의식한 것일까?」
「반쪽짜리 승리? 아니면 반쪽짜리 패배?」
「중국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교단의 입장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는 일단 당분간 군사작전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치안 유지를 도와줄 뿐, 난징 공략 같은 대규모 군사작전은 당분간 자제하겠다는 내용이 공식 성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집이 최고지, 형?”
“당연한 거 아니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TV를 시청했다.
교단 전원에게 부여한 일주일 휴가에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다들 놀 때 나도 일하면 솔직히 좀 속상하잖아.
“할머니는?”
나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서 인욱이에게 물었고, 인욱이는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면서 답했다.
“라파르트 대주교님이랑 놀러 가셨지.”
“흐음.”
“할머니도 연애하는데 형은 연애 안 해?”
“너도 마찬가지……는 아니구나.”
“이따가 그레이스가 나 데리러 오기로 했어.”
“좋겠다, 좋겠어.”
가만 보니 나 빼고 다 연애하는구나.
내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인욱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시연이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나는 그런 시연이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시연아, 오빠에게는 우리 시연이뿐…….”
“오빠들! 나 잠시 밖에서 놀고 올게!”
“밖에? 누구랑 놀러 가는데?”
“요 앞에서 승우 오빠 만나기로 했어!”
……외롭다.
나 빼고 다 다른 사람이랑 놀러 간다.
내가 원하는 휴가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보내는 거였는데…….
솔직히 좀 속상하네.
“시연아, 좀 위험하지 않겠어?”
인욱이가 빵을 먹으면서 시연이에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인욱이를 바라보았다.
“인욱아.”
“응?”
“시연이랑 승우가 붙어 다니는데 뭐가 위험해? 너, 모르나 본데, 시연이 저번에 건물 벽도 박살 냈었다니까? 승우는 시연이보다 더하고.”
장담하건대 시연이랑 승우를 납치하려 들잖아? 대부분은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승우의 전투력은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고, 시연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딱히 시연이의 안전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디가드를 하나 붙여 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나는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백설이를 건드렸고, 백설이가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다.
『귀찮네 증말. 이제 시연이를 걱정할 게 아니라, 시연이를 상대하는 사람들을 걱정할 때라니까?』
“쓰읍.”
『……갈게요, 간다구요.』
백설이까지 붙여 주면 걱정 없지 뭐.
어차피 평소에 백설이랑 놀던 영물 친구들은 중국 땅에 있어서 할 짓도 없을 거거든.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일찍 들어오구.”
“응!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시연이가 빠르게 집 밖으로 나갔고, 내가 다시 숟가락을 들려던 찰나였다.
삑삑삑.
“응?”
방금 전에 집에서 나갔던 시연이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
시연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빠, 큰일 났어!”
“음?”
“우리 오늘 집 밖에 못 나갈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
그때였다.
내 예민한 청각 사이로 창문 밖의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사탄의 자식 김시우는 반성하라!”
“대한민국의 각성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서 잠이 오냐!”
“리멘 교단을 대한민국에서 퇴출하라!”
“퇴출하라!”
창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서 확인했는데,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내가 사는 아파트 앞을 점거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욱이가 한마디 던졌다.
“레오 형한테 전화해서 이단심문관들 좀 불러 달라고 할까?”
“……하아.”
미치겠다, 진짜.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