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5.
이 전장은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그 어떤 전장보다도 혼란스러웠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장르가 섞이면 망하는 건가?”
콰지지직.
퍼어어어어어엉-!
나는 오른손으로는 데스 나이트의 두개골을, 왼손으로는 어떤 로봇의 상체를 일그러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먹구름으로 물든 하늘은 폭죽놀이처럼 다양한 색으로 물든 지 오래다.
비행형 몬스터들이 날아다니고, 그 사이사이를 드론과 비스무리한 비행체들이 채운다.
인간의 비명 소리인지, 괴물들의 비명 소리인지.
슬슬 분간하기가 힘들다.
“형님!”
내가 정신없이 길을 뚫고 있을 때쯤, 전방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자현이었다.
자현이는 가볍게 허공을 밟으면서 내 옆에 착지했다.
허공을 걷는 거 하나만큼은 일류다.
“지금 통신이 안 됩니다. 마정석을 이용한 통신도 불가능해요.”
“다른 곳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라…… 상황을 보면 당연한 거지 뭐.”
마정석을 이용한 통신도 결국에는 마력에 의존하는 수단이다.
지금 이곳처럼 온갖 기운들이 뒤섞이는 곳에서 제대로 작동을 할 리가 없다.
일단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휘 체계가 무너져 내렸다.
흐름이 좋지 않다.
흐름을 빼앗긴 전투에는 당연히 막대한 희생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코어까지 단숨에 돌파한다, 자현아.”
“제가 앞장서서 뚫을까요?”
“저기 저 검은 원, 코어가 느껴지냐?”
그러자 자현이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형님이랑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게 하나 있습니다.”
“게이트 자체가 고대 신들이 손을 써 둔 거야. 내가 그놈들 중 한 놈을 잡아먹었으니까, 비슷한 것도 맞겠지.”
내 대답에 자현이가 슬쩍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먹다가 탈 나요.”
“내가 위장이 튼튼해.”
“형님이 거기서 더 이상해지면 일단 지구로는 감당 안 되는 거 알죠?”
나를 얼마나 미친놈으로 보고 있으면 저런 말이 나와?
전투가 끝난 후에 교육을 좀 시켜 줘야겠다.
나는 힘을 주어 녀석의 등을 후려친 다음, 손가락으로 게이트의 중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까지만 뚫으면 된다.”
“그럼 함께…….”
“무슨 소리야. 너 혼자 뚫어야지. 형은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해서 힘을 비축해야 해.”
저 안개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는 나조차도 예상이 안 간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힘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내 뻔뻔한 목소리에 자현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말했다.
“핑계가 너무 성의가 없…….”
“닥치고 빨리 뚫어.”
“……예.”
내가 슬쩍 주먹을 들어 올리자 곧바로 내공을 끌어 올리는 자현이.
자현이의 몸에서 보랏빛의 연기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가 천마신공이라고 소개했던 무공.
무공의 이름 따위는 사실 크게 궁금하지 않았지만, 위력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콰드드득.
오로지 파괴만을 위한 힘.
자현이의 몸에서 뻗어 나간 보라색 실들은 아주 효율적으로 적들의 숨통을 꿰뚫는다.
자현이가 휘두르는 검에서는 쉴 새 없이 바람이 뻗어 나갔고, 그 바람에 닿는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흘러내린다.
무엇이든지 극한에 이르면 아름다운 걸까?
녀석의 전투는 흡사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는 솔직히 너무 갔고.
아무튼 아주 쓸 만했다.
“좋네.”
나는 자현이가 뚫어 주는 길을 따라 부지런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6.
“하아, 진짜 뒈질 것 같네.”
“고생했다.”
자현이를 갈아 넣은 덕분에 나는 게이트의 중심에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게이트의 중심 구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안개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안개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이 안개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안개가 아니라 에너지 같은 거였네.”
서로 다른 기운들끼리 충돌하는 과정에서 흩어진 일부 기운들.
그 기운들이 안개처럼 중심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자현이는 한쪽 눈을 찡그린 채로 검을 잠시 자신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몸 상태는 어때?”
“이 안개 같은 것들이 자꾸만 제 몸속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예민하죠. 딱 그 정도. 아직 더 싸울 수 있어요.”
아무래도 이 안개가 각성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다.
“형님은요?”
“나야 뭐 괜찮지. 기분이 나쁘긴 한데, 불편하진 않아.”
내가 지난번에 고대 신 한 놈의 격을 흡수한 덕일까?
불쾌한 안개기는 했지만 내 신성력이 흩어진다거나 흐릿해진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천히 앞을 주시했다.
한 치 앞을 겨우 분간할 수 있는 안개.
게이트의 코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데.”
직감이 쉴 새 없이 위험을 알려 온다.
안개 속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안개 밖과는 달리,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이 죽어 버린 것처럼.
툭.
내 발에 무언가가 차였다. 고개를 내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는데, 그것은 목이 없는 이종족의 사체였다.
몸뚱어리만 덜렁 남아 있는 기괴한 사체.
사체의 목 부근은 마치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 불규칙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짐승 새끼가 한 마리 있는 것 같다?”
나는 자현이를 향해 넌지시 말했고, 자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피 냄새가 나요. 에너지는 가릴 수 있겠지만, 냄새까지는 완전하게 지우진 못하는 것 같은데요?”
자현이의 말대로 피 냄새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사체에서 나는 피 냄새인지는 모르겠다만, 무언가 이곳에서 피를 흘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볍게 성화를 피워 올렸다.
내 손에서 피어오른 하얀색 불꽃은 안개를 빠르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시야가 확보되어 갔다.
이곳에 흩어져 있던 사체는 고작 한 구가 아니었다.
“……하.”
수백, 수천의 사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한 사체.
마치 길처럼 놓여 있던 사체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의 끝에는 검붉은 색의 털을 지닌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늑대의 옆에는 익숙한 신성력을 지닌 인간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숨기질 않겠다는 거냐?”
백명교.
틀림없는 백명교의 신도들이었다.
녀석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 한 명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희고 밝은 질서를 따르는 종, 박중근입니다, 김시우 교황님. 현재 이 지역은 저희 백명교가 통제 중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치 감정이 없는 듯한 무뚝뚝한 목소리.
그 남자는 나와 자현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이 늑대는 저희가 모시는 분께서 저희들에게 내려 주신 펜리르입니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을 제거하라는 사명을 받아 이 땅에 강림한 사도지요.”
자현이는 그 남자의 말을 듣더니 곧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는데요?”
“그렇다네.”
오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웃긴 말이다.
녀석들이 ‘펜리르’라고 부른 존재는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저 선홍빛의 털은 피를 잔뜩 뒤집어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희들은 인류의 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펜리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를 백명교의 신도라고 밝힌 박중근의 입에서 드디어 희대의 개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자현이가 큰 소리로 웃더니, 곧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형님, 드디어 저 새끼가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데요?”
“내버려 둬 봐. 어디까지 하나 들어 보게.”
나는 건틀렛을 소환해 착용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희들이 주장하는 건 뭐냐?”
내 질문에 박중근은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리멘 교단에게 있어서 저희들은 적일지도 모르나, 당신의 뒤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을 생각하십시오. 펜리르와 싸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펜리르로부터는 분명한 신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즉, 저 늑대 역시 신격이라는 뜻.
“펜리르는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던 어리석은 신격을 잡아먹고, 마침내 신격에 도달한 존재.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자들로부터 인류를 지켜 줄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요.”
“처음부터 이 녀석을 데려올 생각으로 너희들이 게이트를 연 건 아니고?”
내 질문에 박중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볼 뿐.
그르르르르.
펜리르는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녀석의 이빨 사이에서 선홍빛의 피가 주르를 흘러내린다.
녀석의 아가리에는 미처 씹지 않은 사체들이 들어 있었다.
인류를 수호해 주겠다는 놈치고는 지나치게 흉악하고, 지나치게 포악한 모습이었다.
나는 천천히 펜리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옆의 백명교 신도들을 바라보면서 히죽였다.
“내가 여태까지 가만히 너희들이 하는 짓을 지켜봤어. 야당이 너희들을 도와 정권을 창출하려고 하든, 언론들이 너희들을 비호하든, 사실 내 알 바는 아니었거든.”
안개가 자욱해진다.
마치 이 장면을 은폐하기라도 하려는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참혹한 사체들을 지워 내려고 들었다.
그러나 내 몸으로부터 퍼져 나간 성화가 안개들이 재생하는 걸 막아 버린다.
이미 나는 녀석들이 어째서 안개로 사체들을 가리려는지 알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사체들 모두가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나 이종족의 것들은 아니었다.
“증거를 완벽하게 지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이능관리부 소속의 각성자들이나, 대형 길드 소속의 각성자들의 시체 역시 이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시체가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모든 시체들을 저 펜리르라는 짐승 새끼가 먹어 치웠다.
“모든 일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당연히 그에 걸맞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이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깽판을 치기로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백명교와 고대 신 놈들은 본인들의 목적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처럼.
박중근은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보는 것, 들리는 것에 의존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죽였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들은 게이트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을 뿐입니다.”
“증거라. 증거 되게 좋아하네.”
결국, 이 희뿌연 안개가 백명교의 죄악을 이곳에서 지워 낼 것이다.
이 안개는 애초부터 그들의 죄악을 뒤덮고,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던 거다.
나는 그 말에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지 그랬어. 그런데 너희들이 한 가지 까먹은 게 있나 본데…… 내 눈은 증거가 아니냐?”
“리멘 교단은 항상 백명교를 적대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 집단이 헛소문을 퍼뜨리며 백명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걸 수도 있겠지요. 그거 압니까? 당신이 우리를 죽이고 코어를 부수는 순간, 이 안개는 흩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백명교도들의 시체만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의심하겠습니까?”
녀석은 친절하게도 내가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을 해 준다.
우리 교단은 지킬 게 너무 많았고, 그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백명교는 여태까지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왔다.
바로 지금처럼.
나는 박중근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가 방법을 하나 말해 볼게. 한번 들어 봐.”
솔직히 지금까지 할 만큼 했다.
이 녀석들이 내가 끝까지 체면을 차릴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아쉽게도 나는 그런 위인은 못 된다.
차라리 잘됐다.
“그냥 이 자리에서 너희들 시체까지 남기지 않고 처리한 다음, 코어를 부순다. 이 방법은 어때?”
이제부터는 그냥 전면전이다.
교단의 위신?
체면?
그딴 거, 이제 그냥 될 대로 되라지.
“너희들이 먼저 저지른 거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