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3.
역시, 겉바속촉이 최고다.
아니지.
이런 경우에는 겉단속촉이라고 해야 하나?
쿠우우우우웅-!
“안쪽은 별거 없네.”
나는 한때 ‘펜리르였던 것’의 아가리를 벌린 다음, 천천히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형님.”
아가리 밖의 상황은 완전히 정리되어 있었다.
자현이는 백명교 신도의 몸에서 검을 뽑아낸 다음,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뭔가 좀 달라지신…….”
“아, 포식을 좀 했거든. 그것 때문에 기분이 살짝 안 좋다.”
“포식을 했는데, 왜요?”
“맛없는 걸 억지로 삼키는 느낌 알지? 딱 그 기분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여 입안 가득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 냈다.
펜리르의 격을 흡수하면서 몸에 무리가 많이 왔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격을 흡수했던 건지, 펜리르의 신격은 내가 여태까지 경험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불순물이 많이 껴 있었다.
뭐, 내가 경험한 신격이라고 해 봤자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격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몸 내부에 피해가 축적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이렇게 각혈로 튀어나온 것 같다.
“피 색 좀 봐라.”
“먹물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붓이라도 가져올까요?”
“붓은 갑자기 왜?”
“서예라도……. 하하, 형님, 그거 내려놓으시죠. 그건 또 언제 챙겨 오셨대?”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펜리르의 이빨을 바닥에 던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다, 자현아. 형 짜증 나게 만들지 마.”
“죄송합니다.”
자현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내가 방금 전에 뱉어 낸 피는 먹물만큼이나 까맸다. 즉, 오염된 피라는 뜻이다.
“코어나 끝장내자.”
“예.”
펜리르의 숨은 확실하게 끊어졌다.
녀석의 아가리 속에 있던 수정을 파괴한 순간, 이 녀석의 몸에 깃들어 있던 생명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사르르륵.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흩어지는 안개를 가만히 주시했다.
“자현아, 백명교도들 시체는……”
“아, 얘네들이요? 이건 걱정하지 마십쇼.”
화르르르륵.
자현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 자현이에게 당한 백명교 신도들의 시체가 빠르게 불타올랐다.
무협에서는 저걸 삼매진화라고 하던가?
“완전범죄. 아까 형님께서 말하신 그대로잖아요.”
“너도 공범이다.”
내 말에 자현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저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전부 다 이 덩치만 큰 늑대 새끼가 한 짓인데.”
“……합격.”
“감사합니다.”
자현이 이 녀석, 눈치가 참 빠르다.
이 녀석이 어떻게 천마의 수제자가 되었는지 대강 알 것 같다.
천마, 그 사람도 이 녀석의 눈치를 보고 받아 준 게 아닐까?
“형님이 최고십니다. 저는 형님 앞에서는 그저 태양 앞의 반딧불이일 뿐입니다.”
알량방귀까지.
어쩌면 이 녀석, 중원에서 아주 힘든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좋아.”
백명교의 신도들을 모두 처리해 버리자 이 자리에는 펜리르의 사체만이 남았다.
이 사체는 성지로 가지고 돌아가서 우리 교단의 소중한 자원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드래곤의 사체보다 훨씬 단단하기도 했고, 내가 격을 빼앗아 가자 정화도 알아서 되었다.
이런 귀중한 사체를 남겨 둘 수는 없지.
게다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증거’가 이 배 속에 남아 있기도 했으니까.
“배 속의 시체들은…….”
“소중한 증거잖아. 그리고 그곳에는 억울하게 당한 희생자들도 있으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자.”
“예.”
나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다음, 천천히 게이트의 코어를 향해 다가갔다.
【김시우.】
수많은 색으로 일렁거리는 게이트.
그 게이트 너머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우리의 대적자.】
【흐름을 거부할 순 없다.】
【우리의 일원.】
【어째서 순수함을 버리고 이계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결국에는 너도 우리의 옆에 서게 될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저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신탁이었다. 즉, 저들 모두가 신격에 이르렀다는 소리다.
“너희들이 기르는 똥개는 내가 잘 잡아먹었다. 고맙다, 새끼들아.”
펜리르를 흡수하면서 꽤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곳으로 돌아오려는 고대 신들이 어떤 놈들인지, 정확히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테라로부터 들었던 막연한 정보보다 훨씬 상세한 정보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창조를 위해선 파괴가 필요하다. 결말을 맺어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저 녀석들은 결국 이 세계를 남김없이 파괴할 것이다.
하얀색 도화지의 세계로 만들고, 그 세계 위에 자신들의 권능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갈 것이다.
녀석들은 오로지 그 목적으로 다른 세계를 잡아먹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차원의 인과율을 무너뜨렸고, 그곳을 자신들의 실험장으로 삼았다.
그들이 스스로 행한 파괴의 역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펜리르의 눈으로 담았던 흔적들.
필멸자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나갔고, 그들을 광신하며 따랐던 이들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지구에서 쫓겨난 괴물들은 주린 배를 채운 뒤 마침내 이 땅에 돌아왔다.
바로 지금.
“앞으로 많이 재밌어질 거야. 니들 똘마니들은 보이는 족족 내가 먹어 치울 거거든.”
지켜야만 하는 것.
지키면 좋은 것.
이 둘에는 아주 명확한 차이가 있다.
지켜야만 하는 것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키면 좋은 것은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는 것들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지키지 않아도 큰 문제 없다는 거지.”
딱 그거다.
우우우웅.
수많은 색이 코어에 섞여 들어간다. 그리고 까매진다.
검은색을 닮아 가는 코어.
나는 허공에서 심판의 창을 소환한 다음,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보라고.”
코어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그러자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4.
코어는 파괴되었다.
코어가 파괴되자 더 이상 괴물들이 튀어나오지 않았고, 살짝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 병력들이 재빠르게 중심부로 투입되었다.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한 병력은 강채아가 이끄는 각성자 특수부대였다.
“교황님!”
강채아는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중심부에 자욱한 먼지를 날려 보냈다.
시야가 깨끗해지고 천천히 전장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잔존해 있었고, 각성자들은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시체도 즐비하다.
A급 헌터 이상으로만 소집했음에도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자현아, 너는 힘 좀 남았지?”
“예, 형님.”
“형 힘들다.”
“쉬고 계세요. 제가 뒤처리 빠르게 하고 오겠습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몸을 움직여서 사상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다.
새롭게 흡수한 격으로 인해서 신성력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방금 전 코어를 파괴하면서 받은 충격도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현이는 이런 내 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별말 없이 빠르게 전장으로 몸을 날렸다.
마지막 순간에 결계를 쳐서 자현이까지 보호하길 잘했다.
“채아 씨.”
“말씀하십시오.”
“코어는 성공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적의 추가 증원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채아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아군 피해 상황은요?”
“……보시다시피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피해가 꽤 큽니다. 올해 등장한 게이트 중 최악입니다.”
“하아.”
코어를 빠르게 부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피해라…….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성하!”
채아 씨가 이쪽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교단의 병력도 이쪽에 합류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루나와 반쯤 해진 사제복을 입고 있는 레오.
그리고 그 둘이 이끄는 성기사와 사제 들이 빠르게 내 앞으로 모여들었다.
“성하, 입가에 피가…….”
레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호들갑 떨지 마. 그냥 가볍게 피 한 번 토했어.”
“아, 그렇군요.”
이런 우리 둘의 대화가 이질적으로 느껴진 걸까?
채아 씨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각혈을 하셨다는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물론이죠. 적어도 신체 부위 하나가 절단된 건 아니잖아요?”
“……예?”
“옛날 생각나네. 그때 오른팔이 잘려 가지고, 겨우 붙였거든요. 조금만 늦었으면 의수 달 뻔했다니까요?”
내 솔직한 대답에 충격을 받았는지, 채아 씨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아…… 팔이…….”
“그런 것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죠. 안 그러냐, 루나야?”
“저는 손목 정도만 잘려 봐서요.”
“아, 그래?”
“그때 기억나시죠? 마수 한 놈이 뜯어 먹은 손, 그거 성하가 직접 목구멍에 손 넣으셔서 빼 주셨잖아요. 저 그때 진짜 감동 먹었다니까요?”
그런 적이 있었나?
비슷한 일이 하도 많아 가지고.
하여튼.
후발대로 합류한 우리 교단의 병력은 빠르게 나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성했다.
우리가 경계하는 건 비단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병력이 이렇게 철저히 대비를 하는 이유는 바로 저기에서 걸어오는 놈들 때문이었다.
“백명교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얀색 로브와 하얀색 판금 갑옷을 입은 백명교의 전투부대.
그러나 그들의 순백색 곳곳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이 지금의 백명교의 처지와 참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그들은 조용히 우리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곧 그 무리에서 순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는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나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백명교 제2전투단의 단장 나효주입니다. 중심부에 저희 전사들이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혹시 보셨습니까?”
백명교의 전투원들은 전투태세를 풀지 않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무기를 꺼낼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펜리르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봤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 늑대 배 속에. 의심 가면 배 갈라서 확인해 보든가.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저 녀석이 사람들을 다 잡아먹고 있던데?”
물론 백명교 신도들은 내가 직접 아가리로 던져 넣어 주기는 했지만 말이지.
내 대답에 나효주라는 성기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날이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김시우 교황님께서 손을 쓰신 건 아닙니까?”
“나효주 씨, 지금 교황님께 무슨…….”
“아아, 괜찮아요, 채아 씨. 백명교랑 리멘 교단이 앙숙인 건 유명하잖아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백명교의 일부 전투원들이 몸을 움찔했지만, 나효주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덕분에 아무런 저항 없이 그녀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늑대가 아주 사나웠어. 구분 없이 다 잡아먹더라.”
천천히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웃으면서 속삭였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너희들이 더 잘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지금 이건 리멘 교단의 명백한…….”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아, 이게 좋겠군.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X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