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86. 타오르다
1.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주인, 내 거는?』
-교황! 나도 그 츄르 맛있던데, 나도 줘!
『야, 너는 사슴 주제에 무슨 츄르야? 내 츄르 먹을 거면 네 녹용이나 나 주든가, 몸보신 좀 하게.』
-흠흠. 사실, 그것은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다.
평소처럼 평화롭고 소란스러운 아침.
중국에서 복귀한 루돌프와 베스 덕분에 우리 집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애들 밥은 따로 안 챙겨 줬어?”
“오늘 당번은 시연인데.”
“시연이는?”
“신전에서 아침 운동 해야 한다면서 대충 시리얼 말아 먹고 나갔지.”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도 시연이랑 같이 나가셨어?”
“어, 오래 살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시연이랑 같이 나가셨어. 아마…….”
“라파르트 대주교를 만나러 가신 거지 뭐.”
“그렇겠지?”
요새도 틈틈이 만나고 계신다고 했는데, 아침에 만나는 거였어?
역시 노인들이 아침잠이 적다더만.
그래서 연애도 아침에 하는 건가?
“요새 그레이스는 안 만…… 아, 잠시 바티칸으로 복귀했지.”
인욱이는 의자에 앉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게. 언제쯤 돌아오려나?”
“이참에 유럽으로 휴가라도 다녀오든가.”
“그래도 돼?”
“생각해 보니 안 되겠다.”
그레이스와 여전히 이쁘게 사귀고 있는 인욱이.
그레이스는 바티칸의 호출을 받고 잠시 바티칸으로 복귀했다.
유럽 쪽에서도 고대 신의 힘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 바티칸으로서도 모든 전력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레이스는 내가 틈틈이 지도를 해 주었고, 실제로 잃어버린 땅 수복전과 중국 내전을 통해서 많은 발전을 거두었다.
아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거다.
“순식간에 장거리 커플이 된 기분이야.”
“기분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그래도 연락은 자주 하지?”
“물론이지.”
“그럼 된 거지. 적어도 바람은 안 피우겠다.”
“내가? 아니면 그레이스가?”
“둘 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둥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인욱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너 바람피우면 그레이스한테 맞아 죽을 것 같은데, 자신 있냐?”
“내가 바람을 왜 피워.”
“그렇긴 해. 내 동생 놈 데려가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그레이스한테 많이 고맙거든. 꼭 결혼해라.”
“꼭 결혼하……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식빵을 마저 삼킨 다음, 사과를 하나 꺼내서 베어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역시, 집이 최고다.
『주인! TV 같이 봐』.
-나도!
-개껌 어디 없나? 중국 가기 전에 시연이가 사 뒀던 것 같은데 말이지.
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나란히 내 옆에 앉는 우리들의 축생 세 마리.
꽃사슴, 고양이, 개가 소파에 앉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반려동물이 있어야 집이 꽉 찬 느낌이긴 하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쉬고 싶다.”
양쪽으로 부드러운 털이 느껴진다.
어느새 내 옆구리를 파고든 백설이의 부드러운 털.
그리고 베스와 루돌프의 털까지.
얘네들이 참 좋은 게, 이렇게 털 감촉이 좋으면서도 털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애초에 영물들과 신수는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최고의 반려동물이 아닌가?
“중국은 어땠어?”
나는 베스와 루돌프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 교단의 주 병력이 중국에서 후퇴한 이후에도 루돌프와 베스는 그곳에 남아서 자신들만의 일을 했다.
정화자가 파괴한 자연의 영기를 회복시키면서 본인들의 동료들을 찾아다녔다던가?
이 녀석들이 다시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에선 동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맞아.
-무명, 그놈을 잡아서 물어봤어야 했거늘. 왜 우리가 녀석을 쫓는 걸 막은 거냐, 교황?
베스가 으르렁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슬쩍 녀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았어, 베스. 그때도 약속했지만, 네가 혼자 싸우게 하진 않을 거야.”
소중한 노…… 아니, 친구를 쉽게 잃을 수는 없다.
무명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협에 노출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정화자 놈들이 중국 서부 지대로 숨어들었으니, 거기서부터는 내 영향력 밖이다.
“완전하게 궤멸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짓을 저지를지도 몰라. 그러니까 잠시 미뤄 두자고. 막타는 꼭 너한테 양보할 테니까, 알겠지?”
-고대 신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니……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고대 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주적인 놈들이니까.
영물들은 아주 오래전, 고대 신과 치열하게 싸웠던 존재들이다.
베스가 말한 것처럼 영물들은 고대 신의 위험성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의 추적을 멈추고 이렇게 대한민국으로 복귀한 것일 테지.
나는 베스의 등을 한번 쓰다듬어 준 다음, 천천히 시선을 TV로 돌렸다.
-일명 백명교 게이트의 파급력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연일 쇄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시끄러운 대한민국.
정말 다이나믹 코리아다.
뭔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건 확실하다. 원래 기존의 것들을 바꿀 때 불협화음이 나는 법이다.
이로써 백명교는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후속타로 마약 ‘회개’에 대한 보도가 일제히 시작될 예정이다.
즉, 큰 게 온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인데, 뭐가 이렇게 불안하지?
-교황, 표정이 안 좋다.
“그러게. 방금 먹은 사과가 얹혔나?”
고철도 녹여 버릴 위장이니 그럴 리는 없고.
왜 이렇게 느낌이 더러울까?
마치 화장실에서 큰 걸 보고 안 닦고 나온 듯한 불안감이다.
근래에 이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진짜 큰 게 오나?”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건 분명히 내 동물적인 직감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불안함을 느끼면서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의 하단에서 긴급 속보가 보도되고 있었다.
-긴급 속보) 중국의 시안, 대규모 언데드 침공! 중국 정부 비상사태 선포. 정화자의 소행으로 추정.
그 뉴스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인욱이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 지금 시안이면……”
“백명교의 거점이 된 장소지. 공교로워도 너무 공교로운데?”
잠시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혼돈이 한 발자국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띠리리리링-.
소파 위에 엎어 두었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이능관리부의 김 실장.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았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김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교황님.
“숨 좀 돌리고 말씀을…….”
-부산, 광주 등, 총 열두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소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들어오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모두 마약 ‘회개’에 중독된 자들인 듯합니다!
백명교의 대교구장이 말한 ‘선물’이라는 것이 이제 막 도착한 듯했다.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더럽더라니.
“10분 뒤, 신전에서 대책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신전에서 뵙죠.”
-예!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인욱아, 형 바로 출근한다.”
“무슨 일이길래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그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한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
“선물이 도착했어.”
“선물인데 표정이 왜 그래? 선물에 폭탄이라도 들어 있는 거야?”
눈치 빠르기는.
“폭탄보다 더한 게 들어 있더라.”
“뭔데?”
“……그런 게 있어. 얘들아, 인욱이 잘 좀 부탁한다.”
『우리만 믿어.』
-응!
-알겠다.
오늘도 편하게 쉬는 건 글러 먹은 것 같다.
언제쯤이면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2.
서둘러 신전에 도착했다.
소식을 미리 전해 들은 성지는 이미 전시 상태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다들 빠르게 움직여!”
“1기, 2기 교육생들은 3기 교육생들의 무장 상태를 점검한다!”
“3기 교육생들의 첫 실전 투입이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예!”
무려 천 명에 다다르는 3기 교육생.
3기 교육생들의 훈련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심판의 검>의 특수 효과 덕분에 3기 교육생들의 무기술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고 있었다.
거기에 루나와 레오에게 교육받은 1, 2기 교육생들이 붙어서 전력으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빠른 성장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성하, 오셨어요?”
순백색의 판금 갑옷을 입은, 일명 전투태세의 루나가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연락받았구나?”
“예, 김 실장으로부터 연락받고 곧바로 병력을 준비 중이에요. 3기 교육생들 중에서 훈련 성과가 뛰어난 병력까지 이번 작전에서 합류할 것 같아요.”
“우리가 나서는 건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어.”
“미리미리 준비해 두면 좋죠.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는 태세만 갖춰 둘게요.”
“좋은 자세야.”
3기 교육생들의 투입이 너무 빠르지 않나 싶다.
고작 훈련받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으니까.
하지만 교육은 전적으로 라파르트 대주교와 루나, 레오에게 맡겨 둔 상황.
그들이 아무런 계획 없이 3기 교육생들의 조기 투입을 고려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 교단의 병력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김 실장은?”
“집무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아, 그리고 손님이 한 분 더 오셨습니다. 비공식 방문입니다.”
비공식으로 방문해야 할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손님이라…….
대충 한 명이 그려지는군.
나는 서둘러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차를 마시면서 앉아 있었다.
바로 김 실장와 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님.”
“교황님.”
서 대통령은 늘 그렇듯이 다크서클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인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요 사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능관리부의 보고에 따르면, 백명교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사실입니까?”
서 대통령은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다급한 목소리.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녀석들이 유통하던 ‘회개’는 세뇌 효과가 있습니다. 백명교가 그 약물을 유통하고 있었다는 증언은 이미 확보했습니다.”
“백명교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벌이는 겁니까? 그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정치권과 연관된 스캔들이 터지면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원래 잃을 게 없는 놈들이 막 나가는 법이죠.”
이 대대적인 소요 사태 뒤에는 백명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듯싶었다.
나는 대통령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저쪽에서 시간을 끌려고 합니다. 정화자의 잔당이 백명교의 거점을 타격한 걸 봐서는, 어떤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혹, 약에 중독된 국민들을 치료하는 건 가능합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끝났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새빛교회에서 데려온 중독자들을 통해서 해독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내 말을 들은 서 대통령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군요.”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백명교, 그리고 백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지워 낼 겁니다.”
명분은 완벽해졌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건 하나도 남김없이 녀석들을 제거해 버리는 것뿐.
“청소 시간입니다. 이 기회에 모든 쓰레기들을 치워 버리도록 하죠.”
이번에는 작은 불씨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