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67)
87. 불경한 전쟁
1.
시작은 자현이의 이기어검이었다.
푸우우욱.
산의 어둠 속에 스며든 자현이의 검이 선두에 서 있던 백명교 성기사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료가 죽은 걸 확인한 백명교도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매복이다!”
“전군 전투준비!”
백명교의 성기사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꺼냈다.
철퇴나 검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 교단의 성기사들과는 달리, 백명교의 성기사들은 주로 창을 들고 있었다.
우리 교단과는 편제부터가 달랐다.
특히 사제.
백명교의 사제들은 딱 봐도 후방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 교단의 사제들 중 일부가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투 사제들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휩쓸어!”
곳곳에 매복해 있던 우리 교단의 병력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부터는 순수한 물리력의 승부다.
우리 교단을 항상 악으로부터 보호해 줬던 신성력은 이번 전투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카아아아아앙-!
신념과 신념의 충돌.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물리력의 충돌.
“리멘님을 위하여!”
“갈망이시여! 내 몸을 가져가시옵소서!”
원초적인 형태에 가까운 순수한 전투가 시작된다.
어둠으로 가득 찼던 산어귀는 순식간에 찬란한 빛에 물든다.
서로 다른 신앙을 품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내뿜는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하지만 어둠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성스러운 정의나 가슴 뜨거워지는 희망이 아니었다.
“끄아아아악!”
고통과 비명.
신념끼리 맞부딪친 자리는 결코 숭고하지도, 명예롭지도 않았다.
핏빛으로 물든 신념들.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충돌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불경할 정도로 섬뜩한, 그런 전투가 말이다.
“하아.”
나는 숨을 크게 뱉어 내면서 모든 전장을 눈에 담았다.
나보다 앞서서 전장에 뛰어든 자현이는 그 누구보다 신속하게 전열을 흩뜨려 놓는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자현이 역시 일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게 보인다.
적들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줄 안다.
지도부를 우선적으로 섬멸한 후, 적들의 사이사이에 뛰어들면서 이음새를 끊는다.
적들은 서로 같은 전장에 있음에도 철저하게 고립당한다.
그리고 그 고립의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선발대를 제압하는 건 쉬운데…… 형님은 도대체 언제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슈트에 내장된 통신기를 통해 자현이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나는 몸을 풀면서 간단하게 답했다.
“원래 보스는 가장 마지막에 움직이는 거야.”
-대교구장은 감지됩니까? 대교구장이 이레귤러급이라면서요.
“글쎄다. 아직까지는…… 안 보이네.”
대교구장이 보유한 힘은 분명히 이레귤러급이다.
정부에서 공인하진 않았지만, 나는 지난 만남들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고대 신들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은 여자.
그녀가 만약 이번 전투에 가담한다면?
아름다운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세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저 멀리서 접근하기 시작한 백명교의 본대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백명교의 본대가 전투에 참전한다.”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선발대 정리에 집중해. 본대 쪽은 내가 직접 나설 테니까, 너는 우리 교단 식구들 좀 신경 써 줘라. 한 명 다칠 때마다 너한테 책임을 가중해서 물을 거야. 알겠지?”
어느새 공기에 피 냄새가 진득하게 섞여 들어갔다.
백명교의 신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부르짖으며 죽어 나갈 때, 드디어 본대가 산어귀로 진입한다.
“신속하게 움직여!”
“숫자는 우리가 더 많…….”
백명교의 지휘관들이 병력을 독려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려던 찰나, 나는 곧바로 뛰어올랐다.
쿠우우웅.
백명교의 선발대와 본대의 합류 지점.
그 지점에 가볍게 안착했다. 그다음, 조용히 백명교의 본대를 바라보았다.
빠르게 전장에 진입하던 그들은 나를 마주하자마자 돌처럼 그 자리에서 굳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살폈다.
대교구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병력 말고 다른 병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대교구장만 따로 한반도에서 빠져나간 걸까?
“직접 심문해 보면 알겠지. 내가 너희들한테 물어봤자 순순히 대답해 주진 않을 거잖아?”
“김시우우!”
수우우우우욱-.
녀석들 사이에서 건물 기둥만 한 거대한 창 하나가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공성 병기를 떠올릴 만큼 엄청난 크기.
그러나 나는 그 거대한 창을 가볍게 주먹으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주먹과 창이 맞닿는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창날은 종이처럼 구겨졌고, 창날을 지탱하던 창대는 먼지처럼 바스러진다.
“살짝 매콤하네. 더 없어?”
내가 보여 준 차력쇼를 두 눈으로 목격한 백명교 신도들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이 빠르게 전염됐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신념으로 무장한 광신도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범주에서 아득히 벗어난 힘을 마주하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디에나 별종은 있는 법.
백명교의 본대 사이에서 누군가의 처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김시우! 네 녀석이 우리의 정의를 거부하고, 우리를 핍박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결국, 새로운 질서가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니, 네 녀석이 모시는 신 역시 그 질서 밑에-.”
나는 단숨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녀석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핍박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니지.”
내 주위를 둘러싼 백명교의 신도들은 떨면서 무기를 쥐고 있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나를 향해 뻗지 못했다.
녀석들도 이미 안다.
나에게 공격을 하는 순간, 본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말이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떨고 있는 백명교의 신도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현 시간부로 대한민국의 이레귤러로서, 내란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을 제압할 거야. 시작하기 전에 한 번만 물을 테니까 잘 들어. 저항할 의지가 없으며 협조할 의사가 있는 인원들은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라. 딱 5초 준다.”
그러나 아무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새끼들, 꼴에 자존심은 있네.
“그래, 이래야 재밌지.”
순순하게 무장을 해제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만약 녀석들이 쉽게 항복할 거였다면 애초에 이 한밤중에 금강산을 통해서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끄아아아아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놈을 하늘 높이 던져 버린 다음,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백명교의 신도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강제 집행에 들어간다. 항복하고 싶으면 두 팔 들어.”
그 두 팔 모두 내가 부러뜨리겠지만 말이지.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졌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날이 금방 밝아지기도 했는데, 문제는 백명교의 잔당들이 도주를 선택하면서 발생했다.
“샅샅이 수색해!”
“단독 행동은 금물이다. 혼자서 다녔다가는 각개격파 당한다!”
“예!”
당연하게도 전투의 승기를 잡는 건 쉬웠다.
자현이와 나, 이 쌍두마차를 통해 전장을 뒤집어 놓았는데, 전투가 어렵게 흘러갈 리가 없다.
전술핵급의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서도 전투를 어렵게 끌고 나가면 그건 그냥 머저리나 다름없다.
문제는 전투 이후에 발생했다.
패잔병이 되어 버린 백명교의 잔당들은 저항을 이어 나가는 대신 금강산의 산세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졸지에 유격전이 시작된 거다.
“이 새끼들이 무슨 빨치산도 아니고, 어? 유격전이 뭐야, 유격전이!”
“형님, 근데 빨치산이 뭡니까?”
“어떻게 빨치산을 몰라. 너, 군대 안 갔다 왔어?”
“군대 대신 중원 다녀왔는데요.”
“나는 이세계도 다녀오고, 군대도 다녀왔어.”
“역시 형님이십니다. 대단하십니다.”
“……너, 요새 머리가 많이 컸다?”
애초에 이런 식의 유격전은 승리를 위한 유격전이 아니다.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겠다는 의사 표명이었다.
아무리 우리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이 드넓은 산속으로 숨어든 녀석들을 완전히 색출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
라파엘의 기술력을 빌리면 모를까.
이럴 때마다 참 라파엘이 그립다.
라파엘이 있었으면 진작에 드론으로 싸그리 잡아 줬을 텐데.
“대놓고 시간을 끌겠다는 거네. 이제는 아예 노골적이다.”
백명교는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일부 광신도들이나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싸웠지, 녀석들이 세워 둔 전략과 전술에서는 승리에 대한 야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로지 지연책.
어떻게든 우리 교단의 발을 묶고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었다.
“대교구장은 끝내 안 나타났네요.”
자현이는 흙바닥 위에 검을 꽂아 넣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로 빠졌는지 원.”
“어쩌면 이미 한반도에서 떴을 수도 있겠다.”
“지금 현상 수배 되지 않았나? 음…… 현상 수배가 의미가 없긴 하겠다.”
이레귤러급의 강자에게 현상 수배가 먹힐 리가 있나.
탈출하고 싶으면 탈출하는 거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이레귤러급의 각성자다.
이로써 대교구장이 국내에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이미 한반도에서 발 뺀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가정해 보자.
이 녀석들은 우리 교단의 발을 묶기 위해서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지연전을 펼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게릴라, 그러니까 유격전만큼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이런저런 추론의 과정 끝에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중국 북부 쪽으로 진격해야 하나?”
백명교의 제단들이 빠르게 건설되고 있는 중국.
우리 교단이 중국 대륙에 신경을 못 쓰게 만든 다음, 그곳에서 무언가 시커먼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정화자 놈들이 시안을 급습한 것도 꺼림칙한 상황이고 말이지.
“세민이 형은 중국에서 대기 중이죠?”
“그렇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그 정도인가……. 중국이 둘로 나뉘었다고는 해도, 겉으로는 아직 하나잖아요. 북경의 정부가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맞고.”
“문제가 바로 그거야.”
백명교에게 잡아먹혔다고 하더라도 일단 중국은 아직까지 주권국가다.
중국 남부가 아니라 중국 북부 내륙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단의 병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즉, 이번에도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 진짜 복잡한 문제다.
“나조차도 확신할 순 없어.”
정보도, 명분도 없다.
중국 내륙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니까 명분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서 상황이 아주 혼란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들려오는 정보에 따르면 일본도 비슷하고.
“이러다가 골든 타임을 놓칠 것 같은데.”
여태까지 안일하게 백명교를 내버려 두었던 결과가 이번 소요 사태였다. 즉, 질질 끌수록 더욱 큰 재앙이 일어난다는 소리다.
틈틈이 고대 신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주던 테라조차도 2주째 연락이 없는 상황.
여기서부터는 정말 미지의 영역이다.
“골치 아프네.”
“같이 머리 싸매고 고민이라도 해 보죠, 형님.”
“그러면 뭐 답이 나올까?”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지금부터는 교단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전략을 구상해야만 한다.
어쩌면 정화자와의 전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단순히 중국에서 끝날 문제가 아닐지도.
그렇게 내가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띠리리링-.
주머니에 넣어 둔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인은 이능관리부의 김 실장.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 묻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걸까?
“예, 김 실장님. 현재 백명교의 잔당을 추격하고 있는 중입…….”
그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지금으로부터 7분 전, 신의주 일대에서 중국 정부군과 소규모 국지전이 발생했습니다. 전투 규모는 양측 합쳐서 3백 명 정도고, 전면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에 NSC가 소집되었습니다. 교황님과 천자현 각성자에게도 소집 명령이 떨어져서, 이를 통보하기 위해 급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 새끼들이 뭘 잘못 처먹었나.”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