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3.
백명교의 잔당을 산속에서 추격하는 임무는 레오와 루나에게 일임한 다음, 나는 곧바로 자현이와 함께 세종시 신청와대 지하에 위치한 벙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NSC의 구성원들이 모조리 소집되어 있는 상태였다.
“상황 보고부터 시작하지.”
회의를 주도하는 건 당연히 서 대통령이었다.
서 대통령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숙이면서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 신의주 북부 지역에서 중국 정부 소속의 각성자들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아군 사망자는 현재 60명이 넘어가고 있으며, 국경검문소를 점거당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강채아 각성자를 비롯한 전담팀을 구성, 검문소 수복을 위한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적의 병력 규모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정보원에서 파악한 중국의 S급 헌터 목록 중, 다섯 명이 포함된 규모입니다.”
“강채아 각성자 혼자만으로 가능한 겁니까?”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를 비롯하여 각 길드의 S급 헌터들도 이번 작전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후.”
서 대통령은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더니, 곧 그 약을 물과 함께 목으로 넘겼다.
“예의도 없는 새끼들. 새벽에 이딴 짓을 벌여?”
시간은 새벽 4시.
아직 잠에 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중국의 기습은 이 야심한 시각을 틈타 이루어진 것 같다.
서 대통령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정원장과 외교부 장관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중국 정부 측에서는 별말 없습니까?”
“현 시간까지 그 어떤 반응도 없습니다.”
“하.”
S급 헌터들이 동원될 정도의 작전이라면 절대로 우발적인 게 아니다.
이레귤러나 디재스터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S급 각성자들 역시 핵심 전력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와 연결은 됩니까?”
“응답이 없습니다.”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서 대통령의 머리숱에 흰머리가 유독 늘어난 것 같은 건 단순한 기분 탓일까?
나는 서 대통령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자현이를 파견해서 싸그리 몰아내 버리시죠.”
“천자현 각성자가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명교와 전투를 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대통령님.”
자현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쉬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하죠. 지금 강채아 각성자는 어디쯤입니까?”
그 말에 국방부 장관이 답했다.
“현재 개성 전초기지를 지나고 있을 겁니다. 헬기를 이용해서 이동 중입니다.”
“지금부터 부지런하게 뛰면 따라잡겠네요. 대통령님, 저를 신의주로 파견해 주십시오. 빠르게 일을 끝내겠습니다.”
“좋습니다, 천자현 각성자. 부탁합니다.”
자현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벙커 밖으로 나갔다.
자현이의 경공술이라면 아마 강채아 씨보다 훨씬 더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검문소를 되찾느냐 마냐가 아니다.
“확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대로라면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것도 중국과의 전면전.
반전 여론의 휩싸였던 대한민국이었지만, 중국 쪽에서 국경을 넘어 우리 검문소를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보도된다면 상황은 뒤바뀌게 될 것이다.
“불법적인 군사행동으로 유혈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서 대통령은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서 대통령은 호전적인 인물이 아니다.
계산이 빠른 사람이고,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그가 지금 이렇게 강경하게 나서는 건 절대로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이미 저들은 전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그건 너무 앞서간 의견이 아닐지…….”
“글쎄요? 일방적인 군사행동 뒤 어떤 입장 표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려야 하는 판단은 하나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김시우 각성자님?”
NSC가 진행되는 자리인 만큼, 서 대통령은 이번엔 나를 ‘교황님’이 아닌 ‘각성자님’으로 호칭한다.
이곳에서만큼은 나를 ‘리멘 교단의 교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레귤러’로 대우하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나는 서 대통령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NSC 참석자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중국 정부에서 무슨 생각으로 전쟁을 벌이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정화자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면 전선을 열겠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자살행위라고밖에 안 보여서요.”
백명교가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는 건 맞다.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빠르게 밀려났지만, 중국 북부 일대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리 백명교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전선을 두 개나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번 내전을 통해 중국 정부군은 큰 손실을 입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중국 남부의 병력도 제대로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레귤러의 숫자도 둘뿐입니다.”
중국이 자랑하던 네 명의 이레귤러 중 그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둘뿐이다.
이세민은 중국 정부에게서 독립했으며, 왕웨이는 내 손에 의해 사망했다.
남은 이레귤러는 나와 안면이 있는 순 리, 그리고 류 하오쥔이라는 순 리의 부하 둘뿐.
중국 정부 단독으로 우리와 겨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중국과는 달리 전력이 대폭 강화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들은 전쟁을 일으킬 기세다.
그렇다는 말은 둘 중 하나다.
“진짜 단체로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두 전선 모두를 감당할 수 있다거나.”
“정말 그들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대통령님. 저희들은 아직까지 백명교가 숨겨 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니까요.”
고대 신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지금.
어쩌면 백명교의 힘은 우리가 파악한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서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설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9시까지 엠바고를 걸겠습니다. 국방부에서는 이런 경우에 상정한 작전 계획을 수립해 뒀습니까?”
“예, 대통령님. 현 상황과 관련된 작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작전 계획 브리핑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피할 수 없는 물결이 거세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걸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그런 거대한 물결이 말이다.
4.
오전 9시.
엠바고가 풀리면서 언론사들이 일제히 보도를 시작했다.
「속보)신의주 국경검문소, 한때 중국의 각성자들에게 불법 점거 당해!」
「아군 피해 상황 : 전사 67 부상 110」
「데프콘 2 격상! 국방부 대변인 ‘예비군 소집은 아직 계획 없다. 최근 현대전의 양상에 따라 불필요한 병력 소집은 최대한 자제할 것.’」
「서신우 대통령, ‘중국의 불법 군사행동을 규탄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어떠한 외세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내전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중국 내전과 전혀 경우가 달랐다.
중국 내전은 그저 남의 나라 전쟁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토가 침범당했고, 대한민국의 각성자들이 살해당했다.
그것도 무참히.
당연히 대한민국의 여론은 분노로 들끓어 올랐다.
제목 :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내용 : ‘그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게 진짜 맞음
-지금이라도 피난 가야 하냐?
└장담하는데, 지금 대한민국보다 안전한 나라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걍 죽더라도 여기에서 죽어야지 뭐.
-지금 중동 상황 끔찍하던데…….
-저쪽에서 그냥 대놓고 전쟁하자는데 어떻게 피함?
반전 여론?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나.
“녀석들은 피를 원하는 거야.”
이곳은 우리 교단의 집무실 안.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내 허락도 없이 미니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마시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바로 테라였다.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겼다가, 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하는 짓이 콜라 도둑이냐?”
“콜라 맛있잖아. 너도 한잔하든가.”
“하아.”
“요새 리멘으로부터는 연락 따로 없지? 차원 연결이 불안정하거든. 저쪽에서 에덴과의 연결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어.”
“리멘을 의식하고 있다?”
“그래도 한 차원의 주신이니까, 당연히 의식할 수밖에 없지.”
이쯤 되니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신성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신격과의 연결을 통해서 유지된다.
신앙을 담보로 신격으로부터 신성력을 빌려 오는 개념.
즉, 차원 간의 연결이 멀쩡해야지만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현재 에덴과 지구는 단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연결이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교단의 신성력이 유지되고 있는 걸까?
“중개기 성능이 확실하잖아.”
테라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리멘이 너에게 신격을 어느 정도 이전해 둔 상태기도 하고…… 너도 내심 알고 있었을 텐데.”
“뭐가?”
“신도가 많아질수록 네 힘이 불어나고 있다는 거.”
테라의 말이 맞다.
그 누구보다 교단의 성장세를 실감하는 게 바로 나다.
지금까지 리멘의 힘이 강해지니까 그 밑에 있는 나도 강해지는, 그런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상 지금도 리멘 교단이라기보다는 김시우 교단에 더 가깝지. 아니야?”
그녀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리멘과의 연결이 아예 끊긴다고 하더라도 너는 계속 신격으로서 존재할 수 있어. 무게추가 네 쪽으로 많이 기울었거든. 일종의…… 그래, 독립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리멘이 나를 독립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냐?”
“거기까지는 이야기해 줄 수 없지. 둘의 문제는 둘이서 해결하라고. 연애 상담 들어 줄 처지는 아니라서.”
테라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그녀의 형체에서 빛 가루와 비스무리한 게 살짝 휘날렸다.
“2주 동안 정신없이 차원 균열을 막고 다니기는 했는데, 빌어먹을 형제자매님들께서 작정을 하고 밀고 들어오시더라. 좀 힘들다.”
테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홀로그램창이 떠올랐고, 그 홀로그램창을 통해 두 곳의 상황이 생중계된다.
한 곳은 중동.
한 곳은 시안.
두 곳 다 현재 전쟁에 휩싸인 장소였다.
“중동 지역의 상황이야, 보다시피 저항이 거세.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해 주고 있어.”
통합된 중동의 힘.
지구의 그 어느 지역보다 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지역인만큼, 그들은 고대 신들에게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직까지 고대 신들의 진격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시안.
끼기기기긱.
끼기긱.
시안에서는 언데드들이 거칠게 신성 결계를 압박하고 있었으며, 그 선두에는 수려한 외모를 지닌 흑발의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무명.”
나는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정화자의 리더.
증오해 마지않는 적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명은 얼굴 가득 미소를 품은 채로 학살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손에서 뻗어 나온 흑색 발톱이 백명교의 신도들을 무참히 찢어 버렸고, 녀석의 뒤로 마족들과 언데드들이 끝도 없이 몰려온다.
“원래는 이놈이야말로 내가 준비하고 있던 또다른 보험이었지. 뭐로 막든, 일단 고대 신들을 막는 게 우선이었거든.”
“내 앞에서 저 새끼 세탁기 돌릴 생각하지 마라.”
“뭐…… 그렇다고. 지금은 나도 너한테 올인하고 있잖아? 그런데 저 인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움직였어. 영물을 둘이나 처먹었단 말이야.”
베스와 루돌프가 경고했던 바로 그 지점.
역시, 예상대로 영물들을 죽였던 건 저놈의 소행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명이 어째서 백명교를 공격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물을 먹으면서 힘을 키운 저 녀석이 백명교, 그러니까 고대 신을 공격하려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고대 신마저도 집어삼키겠다는 거네.”
“맞아. 저 인간은 내가 지금까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탐욕스럽거든. 인간의 용어를 빌리자면…… 교황, 네 안티테제랄까?”
테라는 들고 있던 콜라를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먼지를 가볍게 숨을 불어 날려 보냈다.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 다르긴 하지만, 결국 무대는 완성되었어. 그리고 이제 주연과 조연도 모두 입장했지.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네 몫이야, 교황.”
테라가 나를 바라본다.
호박색으로 물든 그녀의 눈동자 너머로 내 모습이 보인다.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래.”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너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니까 착각은 집어치워라.”
“나쁜 남자네. 이래서 리멘이 넘어간 건가?”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거야.”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전쟁이 다가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다.
내가 그저 지금까지 해내 왔던 것처럼, 그대로 해내면 될 뿐.
나는 숨을 죽이며 눈을 감았다.
역시, 나에게 휴식이 허락될 리가 없었다.
……불쌍한 내 인생.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