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9. 첫 신전
1.
[성유물 리멘의 증표>를 중심으로 성역이 선포되었습니다. 차원계: 지구>의 시스템은 관련 협약에 따라 차원계: 에덴>의 성유물이 일으키는 기적을 인정합니다.] [성역이 선포됨에 따라 해당 지역에 드리워져 있던 마력 오염>이 일부 해소됩니다.] [성유물은 신도들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힘을 발휘합니다. 현 차원계에는 아직까지 성유물의 힘을 모두 이끌어 낼 만큼의 신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성역의 범위가 제한됩니다.]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리멘의 증표>는 그라운드 제로 전체를 커버해 주지는 못했다.
어림잡아 반경 500m 정도의 범위.
마력에 오염되어 있는 지역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는 넓이였지만, 나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신전을 세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은 넓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었으니,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후우우우.”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력 오염으로 인해서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던 공기가 한층 편해졌다.
성역이 형성되면서 이곳을 오염시키던 마력들이 전부 사라진 덕분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벌린 채로 감탄사를 내뱉던 오성 씨와 혜림 씨는 이미 정신을 잃고 기절을 한 상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성유물에 담겨 있던 리멘의 힘은 사실 신성력을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람들에게는 버거운 기운이다.
리멘이 직접 불어넣었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신성력.
지난번에 민수 씨가 기절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했다.
그래도 참 웃긴 게, 바닥에 쓰러진 둘의 얼굴은 내가 여태껏 봤던 그들의 표정들 중에서 가장 편안해 보였다.
내 앞에서 서로를 의식하랴, 내 눈치를 보랴, 고생이 참 많았던 그들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대치했다고 들었으니, 지금의 휴식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그토록 기다렸던 것일 터였다.
“정말 슬픈 땅이야. 지구에도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렇지, 시우?”
“미안. 원래는 좀 예쁜 곳에다가 지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어. 그냥, 유난히 슬픈 땅이다 싶어서 말한 거야.”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리멘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하얀색 튜닉 드레스와 보라색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황폐한 폐허 위에 올라선 그녀의 모습은 이 공간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만큼이나 지극히 아름다웠다.
나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푸른색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슬픈 땅이지.”
“어렴풋이 보여.”
“뭐가?”
“이곳에 묻힌 수많은 꿈이.”
리멘은 그렇게 말하며 괴롭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성역을 선포한 걸 보면 내가 레오 그 아이를 통해서 보낸 선물은 잘 받았나 보네?”
“레오를 아이라고 부르는 건 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맞는걸. 너 레오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잘 모르지? 알면 깜짝 놀란다!”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아.”
레오의 어린 시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리멘은 내가 빠르게 머리를 흔들자, 마치 내가 귀엽다는 듯이 내 손을 쪼물락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시우가 더 좋아.”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서 안 되겠다. 나는 슬쩍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말도 없이 웬일이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난번처럼 신탁을 내려줘도 되잖아.”
내 말에 리멘은 해맑게 미소지으면서 대답했다.
“교황님께서 이렇게 고생하고 계시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선물이라도 주려고 왔지.”
“선물?”
성유물을 주려는 걸까?
하지만 내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리멘이 곧바로 ‘선물’의 정체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그것은 단순히 ‘선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손색이 있을지도 모른다.
리멘의 신성력이 이미 색을 잃어버린 폐허 위에 내려앉더니, 곧 물감처럼 주위를 색칠해 나갔다.
황폐한 대지 위에 푸른 나무와 잔디 들이 자라난다.
마력으로 인해 갈라져 있던 곳 위에는 연못이 생겨났고, 연못 주위에는 꽃들이 핀다.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폐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생명으로 차오른다.
나는 리멘이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동의도 없이 나를 에덴으로 끌고 갔음에도 내가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조금은 따뜻해진 것 같아. 안 그래, 시우?”
“……그러네.”
“이곳에 묻힌 꿈들도 조금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베푸는 자애로움 때문이었다.
리멘이 보여 준 기적은 그라운드 제로 전부를 덮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성유물을 통해 형성한 성역 덕분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지난번에 리멘도 본인 스스로 말했지만, 에덴에서만큼 전능할 수 없다는 증거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도 엄청 좋아할 거야.”
마력 오염으로 불모지가 되어 버린 곳. 5년이나 지났음에도 회복하지 못한 땅.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남겨진 재앙의 흉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장벽을 통해 마력을 막는 게 전부였던 이곳에, 이렇게 피어오른 생명들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성역의 범위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우리 교단이 앞으로 지구에서 세를 늘리면 늘릴수록 성유물에 담기는 신앙심은 늘어날 것이고, 성역 역시 따라서 넓어질 것이다.
“맞다. 깜박할 뻔했네.”
“또 뭐를.”
“진짜 선물!”
파아아아앗!
다시 한번 빛이 퍼지더니 곧 연못 뒤쪽에 자리 잡았던 푸른 공터 위에 익숙한 건물이 생겨났다.
하얀색 대리석과 유리창으로 지어진 구조물.
그럼에도 리멘 특유의 소박함과 신성함이 느껴지는 그 건물은.
“교황청의 소신전이네.”
“아무래도 대신전을 그대로 구현해 내기에는 성역의 크기가 부족해. 미안. ”
“아니야, 차라리 이게 낫지.”
에덴의 교황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소신전이었다.
교황청을 찾는 신도들을 위해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건축해 두었던 소신전들.
대성당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소박함이 더 잘 먹혀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교단의 이미지에도 더 잘 어울리고 말이다.
신전을 어떻게 지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 고민도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리멘이었다.
“어때, 선물은 마음에 들어?”
나는 리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최고야.”
안 그래도 신전을 어떻게 지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만족스럽게 우리 리멘 교단의 첫 신전을 바라보고 있을 때쯤이었다.
“시우.”
“응?”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시우가 지구에서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있어. 아마 지금쯤이면 시우도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을 거야.”
그리고 잠시 후.
리멘의 입에서 꽤나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2.
리멘이 해 준 이야기를 세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마지막으로 죽였던 분노의 마왕은 죽기 직전에 본인과 나머지 마왕들의 영혼 편린을 가장 가까운 차원계로 전이시켰다.
2. 에덴과 가장 가까운 차원계는 지구다.
3. 따라서 지구에 마왕들의 편린이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플갱어, 리치, 거기에 아까 전에 확인했던 마정석 광산의 마기까지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리멘은 추가로 지구의 시스템이 본인과 내 계약을 허가해 준 것 역시 그것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곳이 에덴이 아니라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직 많이는 없어. 자세한 건 시우가 이곳에서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에덴에서의 리멘은 주신좌에 오르면서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구는 그녀가 관장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분간은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다.
에덴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교황청 직속 이단심문관들을 통해서 악마의 흔적을 찾으라고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
아직까지 이단심문관들을 양성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
아무튼.
나에게 설명까지 해 준 리멘은 얼마 안 가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폐허에 생명을 일으키고, 또 그 위에 신전까지 세우느라고 본인에게 허용된 인과율 기준치를 초과했다던가?
그래도 앞으로는 신전을 통해서 연락을 취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후우.”
나는 신전의 계단에 잠시 걸터앉으면서 크게 숨을 뱉어 냈다.
리멘의 선물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황폐한 폐허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준 것도 모자라, 그 정원과 어울릴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신전까지.
그녀가 지금 내 상황에 얼마나 신경을 써 주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 급한 목표는 전부 달성했다.
성서를 번역해 줄 레오도 왔지, 그리고 신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신전도 생겼지.
이 정도면 본격적인 교단 운영을 시작할 준비는 갖춰진 셈이다.
그리고 시스템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들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교세 확장>을 완료하셨습니다.] [완료 보상으로 교단 특성 세례>의 레벨이 1 증가하며, 신성 점수 500점이 지급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교단은 첫 신전을 마련함으로써 종교로서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신전 관리> 명령어를 통하여 신전의 시설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차원 간 협약에 따라 신성 점수>를 통하여 다양한 시설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DLC 상점에 시설> 항목이 업데이트됩니다!]에덴에서의 시스템이 RPG 게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면, 지구에서의 시스템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인터페이스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확인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먼저인 것들이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챙겨 온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원래의 그라운드 제로라면 비정상적인 마력 오염으로 인해서 전자 장비의 사용이 불가능했겠지만.
띠리리링-!
휴대폰은 멀쩡하게 켜졌다.
성역 선포를 통해서 마력 오염을 해결했다는 걸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통신 신호가 살짝 약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통해서 민수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을 때, 민수 씨가 힘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았습니다 교황님! 전화를 하신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원하시는 대로 풀리신 모양입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별말씀을. 민수 형제님 혹시 어디 계세요?”
-혹시 교황님께서 부르실지도 몰라서 팀원들과 함께 경복궁 쪽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내가 이래서 민수 씨를 마음에 들어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민수 씨의 힘찬 대답에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생각보다 일이 더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민수 씨 의견을 한번 물어볼까 하는데.”
-편히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우리 라이브 방송이나 한번 할까요?”
-라이브 방송 말씀이십니까?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세팅이 가능합니다만, 혹시 어디서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라운드 제로 미튜브 최초 공개, 어떻습니까.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난 괜찮을 것 같은데.”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