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3.
중국 내전 당시, 전쟁의 흐름은 꽤나 답답했었다.
협조해 주지 않는 시민들.
거기에 방해를 일삼는 반군들까지.
전투 이외의 영역에서도 충돌이 잦았던 기억이 눈앞에 선했다.
그래서 이번 전쟁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동의 시민들, 두 팔 벌려 대한민국과 리멘 교단을 맞이하다!>
단동의 참상, 신의주의 비축 물자 긴급 투입!>
단동에 사는 이순자(51) 씨, ‘리멘 교단이 와 주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질병과 굶주림에 죽어 나갔을 것.’>
내 고정관념은 단동의 무너진 장벽을 넘어선 순간 뒤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고구마 같은 전쟁?
그딴 건 없었다.
애초에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전략이 뭔지 아는가?
그건 그냥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다.
적이 저항 의지를 지닐 수 없을 만큼, 아주 압도적인 힘으로.
“단동 부근에 있는 모든 적들이 투항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용병으로 참가한 에이든 님께서 재미가 없다고 하시면서 산 하나를 박살 내고 계십니다!”
“라파엘 님 역시 새로 개발한 무기를 시험하시겠다면서 사람 없는…….”
“라파엘, 에이든 그 두 새끼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와!”
전투는 없었다.
압록강을 넘는 순간, 그리고 무너진 장벽을 넘는 순간.
피를 잔뜩 흘리는 혈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내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보통 전쟁에 휩싸인 도시는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가득해야 하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만 봐도 그렇다.
저기에서 단동의 시민을 인터뷰하고 있는 어느 종군기자.
그 인터뷰 내용을 잠깐 들어 보도록 하자.
「기자 : 지금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축제라도 있는 겁니까?」
「주민 1 : 아니요. 전쟁입니다!」
「기자 : ……예?」
「주민 1 : 리멘 교단이 우리를 구원해 주었으니 기쁨의 춤을 추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기자 양반,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사랑합니다, 김시우. 사랑합니다, 리멘 교단!」
「주민 2 : 우린 이제 살았소! 들어와서 내가 죽기 전에 마시기로 했던 술이라도 한잔합시다.」
「기자 : 갑자기 저를…… 으아아악! 마실게요, 마시겠습니다! 으아아아-!」
딱 지금 이 도시의 분위기를 잘 설명한 인터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여간에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놓이게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온갖 환대 속에서 단동에 입성했다.
도대체 꽃가루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일부는 꽃가루까지 날리더라.
누가 보면 우리가 점령군이 아니라 개선식에 참가한 병력인 줄 알겠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 속.
루나는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광개토태왕님, 보고 계시죠? 저희 후손들이 드디어 민족의 고토를…….”
“루나야, 너 에덴 출신이야. 정신 차려.”
“마음만큼은 한국인이거든요!”
갑자기 광개토태왕님을 찾는 루나까지.
그야말로 이곳은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단군 이래 이만큼 혼란스러운 곳이 있었을까?
“압록강 철교 임시 복구가 끝났습니다.”
“열차를 통해서 구호물자 운송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땅을 수복한 뒤, 가장 먼저 실시했던 것이 바로 철도 복구공사였다.
원래라면 연 단위의 계획을 세워서 진행되어야 했지만, 대한민국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에 마법, 그리고 라파엘의 기술 협조까지 더해지니 경의선의 복구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서울에서부터 신의주까지를 잇는 경의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경의중앙선’으로 유명했던 그 선로가 드디어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철도, 항공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물자를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좋네요.”
나는 내 옆에 딱 붙은 김 실장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설화가 말을 보탰다.
“압록강 철교는 내 마법을 통해서 임시적으로 복구한 거라서 빨리 공사에 들어가야 해, 오빠.”
못 보던 새에 대마법사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수준까지 성장한 설화.
나는 그런 설화를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많이 컸네. 그런데 철교를 빙결 마법으로 복구하면 문제없나?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거 아니야?”
“그건 걱정할 거 없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고생했다.”
내가 대한민국 곳곳에 뿌려 두었던 씨앗들이 이렇게 든든한 나무로 자라나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다.
처음에 나를 도와주었던 민수 씨는 어느새 글로벌 MCN을 이끌면서 리멘 교단의 전도를 도와주고 있고.
설세명 씨 역시 교단의 언론홍보부에서 활약하고 있고.
설화 역시 이제 강채아 씨의 뒤를 잇는 마법사로 주목받고 있고.
아주 감개가 무량하다.
동량지재를 양성하는 스승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전쟁 같지가 않아.”
설화는 지난번 중국 내전 막바지쯤에 참여했고, 자신의 두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그런 설화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그녀가 봐도 전쟁 분위기가 아니란 거다.
나는 설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백명교와 중국 정부가 이곳에서 쓰레기같이 굴었다는 거지.”
한때 죽음의 도시였던 단동.
우리 교단이 이곳을 정화시켜 준 이후, 중국 정부에서는 다시 이곳에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원래 단동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던 이들.
강제로 다시 이 땅에 몰아넣었으면 적어도 지원이라도 잘 해 줬어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몰골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수도 시설 복구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지 위생 상태도 별로 안 좋아 보였고, 식량도 부족한 듯 보였다.
예로부터 청야 전술이라는 게 있다.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들을 없애서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도 문제지만, 이렇게 많아도 문제다.
극과 극은 맞닿아 있는 법.
만류귀종이라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 꼴이 아닐까.
백명교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들어온 이상 민생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저희 아이 좀 치료해 주세요. 애가, 애가 어제부터 구토를…….”
“사제님들! 부탁합니다.”
딱 봐도 이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불쌍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손을 들어 레오를 호출했다. 그러자 레오가 내 옆에 와서 고개를 숙인다.
“명령하십시오, 성하.”
“사제들을 동원해서 일단 치료부터 시작해. 전염성이 있는 환자들부터 치료하고.”
“그럼 병력은 이곳에서 대기합니까?”
“주 병력은 이곳에서 잠시 대기. 적이 요하를 건너서 후퇴 중이라는 첩보는 들어왔으니까, 정보를 조금 더 취합하고 움직인다.”
그 말에 레오가 침착하게 말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 시간을 끈댔어? 주 병력만 잠시 여기에서 대기한댔지.”
항상 말하지만 압도적인 힘은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게 해 준다.
특히, 이런 전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저 멀리서 잔뜩 욕구불만에 사로잡힌 두 남자를 불렀다.
“라파엘, 에이든.”
그러자 이제는 국적 상실자가 된 두 이레귤러가 나에게 다가온다.
“불렀습니까?”
“시우, 드디어 나랑 놀아 줄 생각이 든 건가?”
처치 곤란의 두 이레귤러.
백명교에서 우리들을 지연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다 사용하려는 모양새지만, 원래 전략이란 건 힘에 기반해서 수립되야 한다.
전략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
그건 두말할 것 없이 힘이지.
그리고 저 둘은 힘 하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놈들이고.
“둘은 오늘부터 단독 행동으로 요하까지 싹 밀어 버립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
“정말 자율권을 보장해 주시는 겁니까?”
“민간인들 피해만 없게.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으시죠들?”
내 말에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법 없이도 살 놈이야, 시우. 내가 저 백명교 놈들의 목을 뽑아다가 네 앞에 바쳐 주마, 흐하하! 간만에 마음껏 날뛸 수 있겠어. 미국에서는 나를 가만히 안 뒀단 말이야. 내 전 조국이지만 응? 안 그래?”
“에이든.”
“왜?”
“라파엘은 적당히를 아는데, 너는 솔직히 못 믿겠다. 최 대표님, 설화.”
에이든은 혼자 보낼 수 없지.
에이든과 잘 어울리면서도 억제를 해 줄 만한 인력을 붙여 줘야 한다.
최 대표와 에이든이 친하니까 붙여 주고, 설화에게 냉철한 판단을 맡기면 될 거다.
내 부름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알았어, 오빠.”
“도깨비 길드랑 백설 길드를 같이 데려가고. 위험한 건 전부 에이든에게 떠넘겨 버려. 아, 그리고 적측의 이레귤러급 각성자가 발견되면, 곧바로 내 쪽으로 보고를 하고. 나는 이곳에서 긴급 호출을 기다릴게.”
저쪽에 이레귤러급이 몇 명 있는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
일단 나는 자현이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의 이레귤러급 각성자가 등장했을 때 가담한다.
내 말에 에이든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면서 말했다.
“혼자서 대놓고 꿀을 빨겠다는 걸 아주 고상하게도 말씀하시는군요, 교황 성하.”
“꼬우면 나보다 세든가. 간만에 좀 맞아 볼래? 나도 요새 전력을 다해서 때린 적이 없어서 욕구불만이거든.”
그러자 바로 몸을 돌리면서 손을 흔드는 에이든.
“다녀오지.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전사로서의 명예다.”
맞기는 무서운가 보다.
새끼, 무게만 잡기는.
4.
우리가 단동에 진입한 지 3시간 후.
단동에 설치된 임시 사령부.
“좋네요.”
나는 천막 안의 지도를 바라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과 에이든은 아주 빠른 속도로 요하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반항군?
이런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반항하는 세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에이든과 라파엘이 진격하는 경로에 있는 모든 도시가 반항 의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곳처럼 환영해 주고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놈들은 여태까지 뭘 한 거야?”
어딜 가나 들려오는 승전보.
전투에서 이겼다는 게 아니라, 무주공산이 된 도시를 일방적으로 점령했다는 승전보였다.
“하나같이 식량이 부족한 듯 보입니다.”
“……지금이 21세기가 아닌가? 경제 규모가 보잘것없는 국가도 아니고 어떻게 식량이…….”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실종자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백명교에서 제물로 끌고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
“그건 확인되기 전까진 공개해서는 안 돼.”
나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정보를 머릿속으로 취합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신없다.
이게 무슨 중세 시대 전투도 아니고, 점령지에서 역병이 도네, 식량이 부족하네, 이게 진짜 21세기에 들어야 하는 소리인가?
“우리에게 잔뜩 짐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이네.”
마치 우리 대한민국의 행정 역량을 시험해 보겠다는 듯, 난민에 가까운 인원들을 자꾸만 밀어 넣는 적들.
이렇게 보니 이것도 나름 인해전술에 속하는 것 같긴 한데…….
“아, 짜증 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들을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령부가 아니라 최전선에 있고 싶다.
최전선에서 적들을 깨부수는 것이야말로 내 사명이고, 리멘이 나에게 힘을 준 이유다.
이렇게 뒤에서 사령관 노릇을 하는 것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적을 박살 내는 게 덜 피로할 것 같…….
웨에에에에에엥-!
그때, 천막 내부에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천막 내부가 굉장히 분주해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강채아 씨였다.
“상황 보고해! 무슨 상황이야?”
강채아 씨의 질문에 정보장교가 서둘러서 대답했다.
“이레귤러 라파엘이 이레귤러와 조우했다는 보고입니다!”
“좋아, 그러면 천자현 각성자가 직접 지원을…….”
“채아 씨.”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
나는 채아 씨의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도 교황님께서 직접 가시는 건…….”
“제가 가게 해 주세요.”
차마 욕구불만이라는 소리는 못 하겠어.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거든.
아, 다 부수고 싶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