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3.
에덴에서의 기억을 잠시 되짚어 보면, 그 기억들에는 오로지 전투뿐이었다.
마수를 박살 내고.
마족을 박살 내고.
마족 측에 가담한 배신자도 박살 내고.
마지막에는 마왕 놈들까지 박살 내고.
모든 전쟁을 끝낸 뒤에는 잠시나마 쉴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대부분을 전쟁 속에서 살아왔던 건 분명하다.
내 꽃다운 20대의 대부분을 말이다.
이게 인간이란 게 그렇다. 꼭 도박이나 약물, 이런 거에만 중독되는 건 아니다.
목숨을 내건 전투, 승리 후의 희열감 등등.
전투 역시 엄청난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지구로 돌아와서는 전투다운 전투를 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이 그냥 몇 방 후려치면 죽거나 기절했었지.
어쩌면 내가 귀환한 순간부터 금단 증상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콰아아아아아앙-.
부우우우욱.
“하아아아.”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재밌구나.”
“너도?”
“자신의 살이 갈라지는데도 미소를 짓다니……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었어.”
나는 일단 녀석을 플루토라 부르기로 했다.
내 주먹은 녀석의 복부를 강타했고, 녀석의 낫은 순간적으로 내 오른쪽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낫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잘려 나가더라.
미스릴 갑옷보다 더 단단하고 질긴 사제복이 갈라진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피가 번져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르륵.
환부 주위로 검은색의 점액질이 퍼져 나간다.
그 점액질에는 신성력임에도 불구하고 끔찍할 정도로 음산한 느낌을 선사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다. 내 신성력은 죽음으로부터 피어올라, 죽음으로써 완성되지.”
망자의 비명 소리들이 들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원혼들이 낫에서 비명을 내질렀고, 매 순간마다 그 비명 소리가 내 귀를 괴롭힌다.
끼야아아아아악.
플루토의 그림자에서는 그 망령들의 손이 뻗어 나왔다.
마치 그림자에서 죽음이 퍼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질서에 거역하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즉, 이 세계의 질서는 나로 인해 유지되었던 셈이야.”
방금 전 내가 녀석의 복부에 꽂아 넣었던 공격이 그리 큰 피해를 주진 못했나 보다.
플루토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분명히 강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보다도 더 강했다.
보유하고 있는 신성력부터 시작해서 높은 격까지.
한 차원의 주신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한 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녀석 역시 아직까지는 100프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
우우우우웅.
녀석의 뒤에서 일렁거리는 균열에서 쉴 새 없이 신성력과 격이 흘러나왔다.
아마 균열을 통해 연결된 차원이 그동안 플루토가 지냈던 차원인 듯하다.
녀석은 쉴 새 없이 균열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실력을 견주어 보니 더욱 마음에 든다. 형체를 잃어버린 내 형제들보단 네가 훨씬 든든한 가족이 되어 줄 것 같은데……. 어떠냐? 내 제안을 받아들여 준다면, 너에게 못난 형제의 생사여탈권을 주겠다.”
“생사여탈권이라면 대충 내가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거냐?”
“그렇지. 격을 흡수하여 네 것으로 만들라는 거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지 않나?”
류 하오쥔을 꼬실 때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창의성 없는 놈.
나는 플루토의 제안에 피식 웃으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처먹는 건 내가 알아서 처먹을 테니까, 너는 나한테만 좀 집중해라.”
“뭐?”
“이제 막 싸우기 시작한 거잖아. 벌써부터 딴 길로 새면 안 되지.”
발바닥에 뭉친 신성력을 폭발시키듯이 방출하자 순간적으로 가속력이 엄청나게 붙었다.
그 가속력 그대로 플루토의 공격 범위 내로 파고들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일반인이었다면 반응조차 못 하고 공간을 내주었겠지만, 플루토는 예상했다는 듯이 낫을 비스듬하게 세웠다.
콰르르륵.
1초 만에 이어진 공방.
나는 건틀렛을 착용한 오른손으로 플루토의 허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손끝에 걸리는 감각은 없었다.
툭.
플루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낫을 찍어 내리면서 내 공격을 방어한다. 그리고 살짝 균형이 무너져 내린 내 몸을 곧장 발로 걷어찼다.
“쿨럭.”
나는 저항할 새도 없이 뒤로 ‘발사’되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곧 그나마 멀쩡했던 빌딩의 중간층에 처박혔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 정도의 충격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동시에 목구멍 너머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퉤.”
뱉어 보니 새빨간 선혈이었다.
가벼운 발길질에 일부 장기가 파열된 모양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느끼는 고통이 스물스물 등을 타고 올라온다.
그런데 왜일까?
“재밌네.”
두렵다기보다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저 플루토라는 놈, 그간 상대했던 고대 신들과는 전혀 다르다.
싸울 줄 아는 놈이다.
단순히 신성력과 격으로 밀어붙이던 기존의 고대 신들과는 전혀 다르다.
공방을 몇 번 주고받다 보면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저 녀석은 싸움에 아주 능한 놈이다.
내가 에덴에서 마왕들을 상대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퉤에.”
다시 한번 피를 바닥에 뱉어 냈다.
그리고 소매로 대충 입가를 닦아 낸 다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싸우면서 피를 토해야 제대로 된 싸움이지.
그리고 그때.
우우우우우우웅-!
나를 이곳으로 날려 보낸 플루토가 다시 한번 낫을 휘두르면서 허공에 거대한 흑색 반월을 생성해 냈다.
신성력과 격이 잔뜩 담긴 에너지 덩어리.
나는 그 반월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손에 창을 소환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드는 반월을 향해 창을 있는 힘껏 던졌다.
회색빛의 창과 검은색의 반월이 맞닿은 순간.
피이이이잇.
회색빛과 주황빛으로 나뉘어 있던 하늘에 또다른 균열이 생성된다.
폭발음조차 잡아먹을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균열이 말이다.
시야가 온통 회색으로 물든 그 순간.
“그래, 그리 쉽게 쓰러지면 안 되지.”
플루토가 내 앞의 공간을 찢으면서 모습을 드러냈고, 곧장 낫을 휘둘렀다.
촤르르륵.
몸을 숙여서 공격을 회피했다.
그러나 플루토는 내가 회피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낫을 가볍게 한 번 더 휘둘렀다.
직감적으로 그 공격의 의도를 감지했다.
내 몸을 단번에 양단하려는 살의가 가득한 공격.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그 공격을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회피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회피하지는 못했다.
툭.
오른쪽 손목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든다.
그리고 동시에 건틀렛을 끼고 있던 오른손이 바닥에 떨어진다.
플루토의 낫이 내 손목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 오른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손을 주워 절단 부위에 가져다 댄 다음,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우우우웅.
작은 빛과 함께 다시 깔끔하게 붙은 오른손.
오른손을 쥐었다 펴 보니 멀쩡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플루토가 혀를 내두르면서 말했다.
“방금 전에 손이 잘렸는데 놀랍지도 않나? 보통 인간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두려워했다.”
나는 그 말에 입꼬리를 히죽이면서 답했다.
“예전에 팔이 한번 잘려 봐서 이 정도야 뭐. 전투 도중에 손목이 잘려 나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잖아? 장기가 흘러내려도 다시 집어넣고 싸운 적도 있는데 뭐.”
“목을 잘라 내야 멈추나?”
“생각해 보니 목이 잘린 적은 없네. 네가 한번 잘라 볼래?”
“네가 만약 내 형제가 된다면, 우리들 중에서 광기로는 손에 꼽을 것 같구나. 내가 직접 너에게 신의 이름을 지어 주마. 숨길 수 없는 광기, 이런 이름은 어떠냐?”
“네가 뭔데 내 이름을 지어 주냐. 부모님이 주신 김시우라는 이름이 있잖아.”
“내가 너의 부모가 되어 주-.”
빠르게 방금 전에 녀석이 사용했던 기술을 모방했다.
신성력을 통해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
나에게 주어진 형성>이라는 권능을 통해서 공간을 이어 버린 후, 문을 넘듯이 넘어가는 것.
마법사들의 순간 이동과 효과는 비슷했지만 걸리는 시간은 압도적으로 빨랐다.
콰아아앙!
내 주먹이 다시 한번 녀석의 복부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랐다.
쩌저저적.
녀석이 입고 있던 정장이 순식간에 쪼개지더니, 곧 녀석의 흰색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플루토의 몸이 붕 떴다.
나는 볼품없이 나가떨어지는 플루토를 향해 말했다.
“패드립은 선 넘었지.”
선은 지켜야지.
“안 그러냐, 테라?”
『전적으로 동의한다. 패드립이라…… 부모가 없는 놈이라서 그러는 거니 네가 이해 좀 해 줘라, 교황.』
주황빛과 끝없이 싸우고 있던 회색빛 하늘에서 무언가 땅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친다.
벼락이 내리친 자리에서 곧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곧장 플루토의 멱살을 잡아 올리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 내 형제.”
테라의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플루토가 반갑다는 듯이 화답했다.
“저 인간이 너에게도 그렇게나 중요했나? 매사에 신중하시던 우리 배신자께서 친히 나오실 줄이야……. 설마설마했어. 아, 혹시 예전처럼 인간과 사랑에 빠지셨나?”
“그 혓바닥은 여전한 것 같아서 보기 좋아.”
테라는 자신의 신성력을 있는 힘껏 방출하면서 플루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루토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테라, 너 혼자서 우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 말에 테라가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빛내면서 답했다.
“누가 혼자래?”
그때였다.
테라가 뚫고 들어온 하늘에서 거대한 신성력이 꿈틀거렸다.
고대 신들의 신성력과는 전혀 다른 신성력.
그 신성력을 감지하자마자 내 몸속의 신성력도 함께 꿈틀거린다.
나는 그 신성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테라는 여전히 플루토의 멱살을 잡은 채로 말했다.
“나, 지구의 주신 테라는 차원을 관장하는 인과율의 관리자로서 에덴의 주신 리멘에게 맹약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느껴진다.
그동안 나와 리멘을 가로막고 있던 차원의 통로가 빠른 속도로 확장된다.
파아아아아앗-!
하늘에서 새하얀 빛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새하얀 빛은 지상을 좀먹고 있던 플루토의 하수인들을 순식간에 휩쓸었고, 곧 내 앞으로 모여들었다.
찬란한 빛의 기둥.
그 기둥에서 한 여자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문득 내가 처음 에덴으로 납치되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도 이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던 빛줄기, 그 속에서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가 걸어 나왔더랬지.
그녀와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홀려 버렸었다.
바로 지금처럼.
빛을 머금은 그녀가 나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예전에 내가 시우를 에덴으로 데려간 다음, 마왕을 죽여 달라고 했었잖아. 그때 시우가 나한테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
“적어도 밸런스는 맞아야 하지 않냐고.”
“시우 혼자서 저 많은 신격들과 싸우는 건 공평하지 못하잖아. 그래서 내가 이번에는 밸런스를 맞춰 주려고.”
리멘은 까치발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시우는 생판 모르는 세계로 건너와, 생판 모르는 세계를 지켜 줬어.”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우리 에덴이 시우와 시우의 세계를 도와줄 차례야.”
잠시 후.
“……좀 감동인데.”
예상치도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