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5.
찬란한 빛기둥에서 군세가 걸어 나온다.
리멘의 광휘를 잔뜩 머금은 순백색의 갑옷이 플루토의 병력을 가차 없이 베어 내며 전진한다.
“귀찮구나.”
플루토가 가볍게 낫을 휘두른다.
그의 낫에서 뻗어 나간 신성력은 그의 이명에 걸맞게 죽음과도 같은 힘으로 군세를 휩쓸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르르르륵.
솟구쳐 오른 흙벽과 압도적인 빛이 그의 신성력을 가로막는다.
리멘과 테라.
그 두 신의 비호 속에서 천을 가뿐히 넘기는 군세가 마침내 이 땅 위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제3신전성기사단의 성기사들이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리멘의 영광이 당신께 있기를!”
“제2전투사제단의 전투사제들이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리멘의 구원이 당신께 있기를!”
그들은 나의 전우였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에덴에서 나와 함께했던 전우들.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일구어 냈던 영웅들이었다.
“차원 간의 연결이 아직 완벽하진 않아. 그래서 일단 1차는 이 정도. 어때, 시우. 내 서프라이즈 선물이 마음에 들어?”
“에덴의 상황은…….”
“에덴을 침범하려던 놈들은 전부 분쇄했어. 정리하느라 너무 정신없기는 했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시간은 잘 맞춘 것 같네.”
그동안 리멘이 바빴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빛기둥에서 걸어 나온 리멘 교단의 병력은 정말 최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마왕들과의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싸운 날이 싸우지 않는 날보다 많은 존재들.
에덴이라는 세계를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쳤던 존재들이 이번에는 나와 내 세계를 구원하고자 이 자리에 기꺼이 나섰다.
“보다시피 제3성기사단과 제2전투사제단을 데려왔어. 한때 루나와 레오가 이끌었던 아이들이기도 하고, 시우 너와도 호흡이 잘 맞는 아이들이잖아? 지금은 차원이 완전히 연결된 건 아니라서 이 정도가 한계야. 다음 후속 병력이 오는 건 지구의 시간으로…… 2주 정도 뒤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지.”
성기사 6백과 전투 사제 4백.
게다가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백전노장의 최정예들이다.
지구의 리멘 교단에게 부족했던 ‘실전 경험’을 완벽하게 전수해 줄 수 있는 베테랑들.
“서프라이즈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
리멘은 살포시 내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리멘을 향해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리가. 내 생애 최고의 서프라이즈 선물인데?”
“그렇게 말해 주니 내가 기분이 좋네!”
그녀는 그렇게 말한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려 플루토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에덴의 주신이여, 그대는 이곳에서 무엇을 이룰 셈인가? 한 차원의 주신이 다른 차원에 현신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 텐데.”
그리고 그때.
리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고향에서 쫓겨난, 버러지만도 못한 패배자가 신경 쓸 만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너, 주신 해 본 적이나 있어?”
“재밌군. 네가 저 인간의 보호자라도 된다는 것이냐?”
“보호자가 아니라 동반자야.”
“눈물겹구나, 하하!”
플루토는 큰 소리로 웃어 젖히더니 곧 낫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낫이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아쉽게 되었어. 이곳이 바로 그 인간의 무덤이 되었을진대, 상황이 이리되니 흥이 식어 버렸어. 여기까지만 해야 되겠군.”
저 녀석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플루토는 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의 강자였으니까.
나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면서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녀석의 기운이 손목 부근에 살짝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재생을 방해하고 있었다.
파아아앗.
“시우.”
리멘이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따뜻한 신성력이 내 몸에서 플루토의 신성력을 몰아내 주었다.
그제서야 이 환각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은 채로 플루토에게 말했다.
“더할 거냐, 잡신?”
나에게는 항상 관대하고 사랑이 넘쳤던 리멘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뭐라고 해야하지, 살짝 갭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리멘의 도발적인 말투에 플루토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럴 리가. 아직 내 형제들이 다 모인 건 아니라서 말이지.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야겠군. 전리품으로 그 인간을 데려가려 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겠어.”
“플루토, 네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언제나 도망뿐이었지.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지 않아?”
“테라, 너는 다른 차원의 신을 끌어들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이번에는 테라가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답했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
“무슨 뜻이지?”
“엿이나 처먹어라, 뭐 그런 뜻이야. 알아들었으면 꺼지려무나. 누나들 바쁘다.”
플루토는 다시 한번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스르륵.
그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문 하나가 솟아올랐고, 플루토는 천천히 그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에서 뻗어 나온 암흑이 그의 몸을 완전히 감추기 전, 플루토는 우리를 향해서 말했다.
“재회할 순간이 그리 머지않았다. 인간이여, 오늘 못다 한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그때까지 부디 내 다른 형제들에게 죽지 않고 살아남길 바란다.”
그 말로 끝.
플루토는 완전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를 따르던 얼굴 없는 괴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적막감에 휩싸인 도시.
하늘을 양분하고 있던 균열은 소멸하였고, 주황빛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회색빛으로 덧칠되었다.
[해당 지역의 인과율이 정상으로 되돌아옵니다.]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고, 리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셋이서 이야기를 좀 해야 하니 잠시 자리를 옮길까?”
그 말에 나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루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성하.
“지금 여기 선양이거든? 레오와 함께 이곳에 와서 선물 좀 받아 가라.”
-선물? 갑자기 웬 선물?
“와 보면 알아. 하여튼 빨리 와서 받아 가. 나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까.”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게 이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루나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리멘과 테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대화를 해 볼까? 어디에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야? 마땅한 장소가 있으려나?”
“없으면 만들면 되지. 테라, 가능하지?”
“갈 데까지 간 상황인데 뭐, 안 될 것 없지.”
그때였다.
[해당 지역에 생성되어 있던 성지>가 소멸합니다.] [이 지역에 새로운 성지가 설정됩니다.] [차원계 : 에덴>의 주신 리멘이 직접 강림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해당 지역은 리멘>의 성지로 설정됩니다.]갑작스러운 메시지창과 함께 어느새 우리 앞에 생성된 리멘의 신전.
나는 그 신전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여신님들이랑 같이 있다는 걸 잠깐 까먹었네.”
“이것도 선물. 요새 신전을 교두보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마음에 안들어?”
“그럴 리가 있겠어. 전진 배럭…… 아니, 전진 신전은 언제나 옳지.”
예상하지도 못했던 선물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6.
테라는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허공에서 콜라를 소환했다. 지난번에 콜라를 맛본 이후로 콜라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테라는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굳이 장황하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교황. 나와 리멘은 처음부터 계약을 맺었을 뿐이야. 너희 인간의 말로 표현흘 하자면…… 그래, 상부상조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내가 너를 에덴으로 보내 주는 대신, 에덴은 언젠가 지구를 돕기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 뒀던 거다.”
테라 혼자서 돌아오는 고대 신들을 막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테라는 내가 에덴을 구원하고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던 걸까?
테라는 이런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지금까지 왜 수많은 인간들을 다른 세계로 보냈다고 생각해?”
“유학이라면서.”
“유학 맞지. 하지만 유학을 아무나 보낸 건 아니야. 가능성을 지닌 이들만 보냈던 거지. 이를테면 분산 투자라고 보면 돼. 교황, 너는 내가 투자한 종목 중에서 가장 떡상한 종목인 셈이고.”
애초에 귀환자란 존재들은 모두 테라가 고대 신들을 막기 위해 안배해 둔 존재들이었다.
일종의 보험.
그건 이미 테라가 예전에 말해 줬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다.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이 한둘이었어야지. 나라고 해서 내가 다른 세계로 보낸 모든 인간들을 살펴보진 못해. 그들이 지구를 떠난 순간, 그들의 운명은 내 손을 떠난 셈이거든. 돌아오지 못한 인간들도 많아.”
돌아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든가, 아니면 돌아올 생각이 없다든가.
아니면 최악의 경우에는…… 그 세계에서 죽었다든가.
사유야 많을 것이다.
테라는 다시 한번 콜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나와 리멘을 바라보면서 히죽거렸다.
“나야 그랬는데, 아마 네 옆에 계신 분께서는 얼추 미래를 보고 계셨을 거야. 미래를 보는 능력은 나보다 월등하셔. 그렇지요, 리멘님?”
“나는 내 눈과 시우를 믿었을 뿐이야. 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어.”
“어찌 되었든 윈윈 아닌가? 리멘 너는 네 세계를 지킬 용사를 얻었고, 나 역시 지구를 지킬 원군을 얻었으니까.”
“내 허락도 없이 내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데. 내가 뭐 물건이야? 마음대로 교환하게?”
“그때까지만 해도 물건이었지? 그때는 그저 가능성이 있는 인간 1일 뿐이었다.”
여전히 물건 취급을 하는 테라와,
“아니야, 시우. 나한테는 처음부터 보물이었어.”
어떻게든 내 눈치를 살피며 달래 주려는 리멘.
나는 그 둘의 극명한 반응을 지켜보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다.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었다.
“앞으로 계획이나 이야기해 보자. 원래 에덴과 지구의 연결은 거의 끊어져 가던 상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리멘과의 연결조차 흐릿해져 가고 있던 상황.
이런 상황에서 에덴의 병력까지 넘어올 정도로 연결이 강해졌다는 건 리멘과 테라가 모종의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내 질문에 테라가 대답해 주려던 순간, 옆에 있던 리멘이 손을 들어 테라를 저지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 내 두 눈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내가 대답해 줄게, 시우.”
차원 간의 연결은 주신조차도 아무런 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 연결을 위해 어떤 걸 대가로 치르고 있는 걸까?
“신격이 다른 차원에 간섭을 하게 되면 격을 점차 잃게 돼. 그건 차원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태초부터 존재하던 규칙이야.”
“이번 경우에는 테라도 허락을 한 거잖아.”
“형식상 그렇긴 하지만…… 결국 내가 일방적으로 지구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지.”
격을 소모해서 자원 간의 연결을 유지한다.
그녀의 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랬다.
즉, 지금 그녀는 주신으로서의 격을 대가로 지불하면서 지구와 연결을 하고 있는 거다.
만약 격을 다 잃으면 어떻게 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이미 앞선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에게 모든 격을 빼앗긴 존재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던가.
“리멘.”
“걱정할 거 없어. 나는 에덴의 주신이야. 이 정도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런데 왜일까?
언젠가 마주했던, 본인을 ‘미래의 나’라고 말했던 존재가 남겼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리멘을 놓지 마라. 그것만, 딱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녀석이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리멘의 아름다운 두 눈을 바라보았다.
“시우, 나를 믿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짓는 리멘.
여전히 그녀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뭘 숨기고 있냐고 더 이상 묻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녀의 선택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