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90. 보은
1.
선양의 한가운데 생성된 우리 교단의 신전.
온갖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즐비한 이 주변은 플루토에 의해 쑥대밭이 된 이 황량한 도시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구호물자를 나눠 드립니다.”
“배가 고프신 분들! 이곳에 오셔서 식량을 받아 가세요.”
성지 간 통로를 통해서 서울에서 이곳까지 운송된 식량들의 배급도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사정이 괜찮았다는 점.
나는 그 구호 현장을 눈에 담은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려 성지 앞 공터에 도열한 우리 교단의 병력들을 바라보았다.
“제2신전성기사단 총원 6백 명. 지난번 전투에서 부상자 없습니다!”
루나가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보고를 했으며.
“제3전투사제단 총원 4백 명. 이상 없습니다!”
레오 역시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채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그들 뒤에 서 있던 나머지 병력들도 나를 향해 일제히 예를 표한다.
에덴에서 나와 동고동락한 에덴의 병력들도.
지구에서 나와 간부들이 직접 육성한 1기, 2기, 3기 교육생들도.
그들은 리멘의 이름 앞에 하나가 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이다. 언젠가 한번 이런 그림을 보고 싶긴 했었는데, 이렇게나 빠르게 소원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신전의 계단 위에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곳에 와 줘서 고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바라본다.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다른 세계로 건너오는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리멘은 이들 모두가 스스로 자원해서 넘어왔다고 했다.
차원을 열어 주는 것까지가 그녀의 선택이었을 뿐.
그 차원을 넘어 이곳에 오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의 선택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기꺼이 나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와 주었다.
기껏 평화를 되찾은, 에덴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두고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행했던 모든 일에 대한 결과가 바로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이들은 이번에도 나와 함께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말이 안 통하는 세계고, 모든 게 어색한 세계일지라도 내 옆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어찌나 고맙던지.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내려다보고 있을 때, 루나가 예식용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성하의 적이 곧 교단의 적입니다. 리멘 교단은!”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성기사들 역시 칼을 높이 들어 올리며 복창했다.
“리멘 교단은!”
“은혜를 반드시 갚는다!”
“은혜를 반드시 갚는다!”
나는 한참을 그 장면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지구에 있는 동안 부디 이곳의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내려 줬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용기와 경험, 지닌 모든 것들을 형제자매들에게 전수해 주십시오. 비록 태어난 세계는 달라도…… 우리 모두 리멘의 품속에서 하나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단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실전 경험을 완벽하게 해소시켜 줄 한 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의 합류는 곧 비약적인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상으로 연설을 끝내고, 성지에서 대기하며 추후 이어질 병력 재배치를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간단한 환영 연설을 끝낸 다음, 내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말했다.
“에덴에서 건너온 병력이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딱 한 가지.
저들도 다른 세계로 넘어온 셈이니 잠깐의 적응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세계로 처음 넘어온 건데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지.
그러나 라파르트 대주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저희가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이 있습니다.”
“……준비요?”
“은혜롭게도 리멘님께서 직접 저에게 신탁을 내려 주셨습니다. 원정대가 사용할 장비들을 미리 준비해 달라, 그리 말씀하셨지요. 형제자매님들, 어서 원정대원들에게 물품을 지급하도록 하십시오.”
“예, 대주교님.”
“엥?”
현재 리멘은 테라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녀들만의 공간으로 돌아간 상황.
도대체 리멘이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무엇을 따로 전달했다는 걸까?
“……어?”
나는 잠시 후 이어진 장면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준 덕에 당일 개통이 끝났습니다. 정부 측에서 신원 보증을 서 주었고, 그 신분을 통해 개통된 스마트폰들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비록 최신 기종들이긴 하나 교단의 재정 상태에 별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요.”
라파르트 대주교와 교단의 직원들은 원정대원들에게 스마트폰을 나눠 주고 있었다.
에덴에서 막 넘어온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나눠 준다고?
어차피 줘도 못 쓸 텐데?
“사용법이라도 알려 주고 나서 보급을 하든…… 어?”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왜냐고?
“드디어 개인 스마트폰을 직접 만져 봅니다.”
“어떻습니까, 형제님. 에덴에서 미리 예습해 오길 잘했지 않습니까?”
“역시, 리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저희들에게…… 아아, 감사해라!”
에덴에서 막 넘어온 사실상 시골 촌놈이나 다를 바 없는 녀석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원을 켜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고,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기 시작하는 진풍경.
슬슬 인지 부조화가 오기 시작했어.
이거 맞나?
“리멘님께서는 원정대로 선발된 병사들에게 지구의 지식들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들 모두가 오늘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했지요. 지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원정대원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이었다고 합니다.”
“언어 장벽은…… 아, 언어의 축복을 내려 줬겠구나.”
“그렇습니다.”
“기분이 이상해.”
에덴에서 막 건너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이라…….
저 모습에서 위화감을 못 느끼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도대체 리멘은 언제부터 이번 원정을 준비했던 걸까?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에덴 출신 원정대와 지구 출신 본대가 과연 잘 어울릴까 걱정도 많이 했다만.
“선배님들! 리멘 교단의 1기 교육생 오재민이라고 합니다! 루나 레벤톤 경께서 선배님들의 위대한 업적을 저희들에게 항상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배님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배님들!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재민이를 필두로 1기 교육생들이 일제히 에덴 출신 원정대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들 위의 기수를 따라 2기, 3기 교육생들 역시 허리를 숙였다.
후배들의 극진한 예의가 흡족했던 걸까?
에덴 출신 성기사와 전투사제 들이 웃으면서 후배들의 등을 두드려 준다.
“고생이 많습니다, 후배님들.”
“참으로 훌륭한 신앙심과 마음가짐입니다. 후배님들께서 우리들을 이리 대해 주시니 저희들은 너무나도 기쁩니다.”
“리멘의 품 안에서는 모두가 한 가족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선배님들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괜히 걱정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 아니, 리멘에 대한 신앙심으로 철저히 세례를 받은 사람들인데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해서 우리 교단에는 천 명의 에덴 출신 병력이 합류하게 되었다.
2.
에덴 출신 병력이 합류한 날 저녁.
선양의 새로운 성지에서는 이세계에서 도착한 증원군을 위한 조촐한 환영 행사가 열렸다.
“확실히 시우 네가 네 여신님으로부터 이쁨을 받는다는 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여신이 한 명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네 세계의 신은 네 손으로 전부 다 찢었다면서.”
“신이라고 불리기에도 아까운 자들이었지. 명예도 없었고, 신성함도 없었다. 내 손에 죽었을 정도면 알지 않나?”
“그런가.”
“이렇게나 세심하게 챙겨 주는 여신님이라……. 나 같아도 반했겠어.”
성지 곳곳에 배치된 신성석이 조명의 역할을 대신한다.
바비큐와 간단한 음료 정도.
교단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니만큼 주류는 없었지만, 에이든은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고량주를 들이켜면서 입을 닦았다.
라파엘은 에덴에서 넘어온 원정대원들이 궁금했는지 열심히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쟁 속에 잠시 깃든 평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무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리였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분위기가 좋다. 리멘 교단의 전투원들은 항상 유쾌해서 보기가 좋아. 마치 예전 우리 부족의 전사들을 보는 것 같아.”
“그들이 그리워?”
내 질문에 에이든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에게 남은 가족들은 이제 그들뿐이거든.”
“그곳에 두고 온 네 부인들이 그리운 건 아니고?”
“누누히 말하지만 내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다. 그 여자를 위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왔으니까.”
에이든은 다시 한번 고량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술을 거칠게 닦아 내면서 말했다.
“내가 왜 미국에 몸을 담았는지 알고 있나?”
“음, 네 고향이라서?”
“내가 그리 고향에 애착이 있는 성격은 아니다. 내가 미국에 몸을 담은 이유는 별거 없다. 미국에 있으면 더욱 많은 몬스터들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오직 그뿐이다.”
그가 다른 세계에 있는 동안, 그의 부인은 몬스터들에게 살해당했다고 들었다.
에이든이 지금까지 움직이는 원동력은 죄책감, 그리고 몬스터들에 대한 증오심이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그의 눈빛 너머에서는 섬뜩할 정도로 짙은 증오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시우, 네 덕분이다.”
“뭐가?”
“너는 나에게 내가 누구를 증오해야 할지를 알려 주었다.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고대 신. 내 분노와 증오는 그들에게 향한다. 그래서 네 옆에 붙어 있는 거다.”
문득 이 남자의 첫인상이 떠오른다.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지.
무례했고, 또 폭력적이었으니까.
분노와 증오는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었고, 그 끝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나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든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에이든은 모든 결과를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모든 감정들은 나만의 것. 그 감정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 역시 나만의 것이다. 전사에게 있어서 스스로 최후를 선택하는 것만큼 영예로운 일이 어디에 있나?”
“꼭 술 마실 때만 전사인 척한다니까. 술주정이 뭐 그래?”
“흐흐, 가만히 보면 너와 나는 정반대다. 시우 너는 지키기 위해 싸우고자 한다. 그에 반해 나는 지킬 게 없어서 싸우고자 한다.”
에이든은 술만 마시면 가끔 이런 소리를 하곤 한다.
술 마실 때만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에이든의 손에 들린 고량주를 빼앗아 한 모금 들이켰다.
목구멍 너머로 뜨끈한 것이 훑고 지나간다.
“이런 우리가 친구가 된 것도 참 신기해.”
“목적이 같잖아.”
“목적이라……”
“내가 누군가를 지켜 내는 것이 곧 네 복수의 완성이니까.”
그 말에 에이든은 큰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리고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약속하지. 내가 원래 세계에서 그러했듯, 이 세계에서도 신들을 죽여 주마. 그러니 너는 내 복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도록.”
“누가 보면 네가 내 상급자인 줄 알겠는데? 진짜 오늘 여기에서 서열 다시 한번 정해 봐?”
“그건 사양한다. 보다시피 내가 잔뜩 술에 취했어.”
에이든은 다시 내 손에서 고량주병을 가져갔다. 그리고 병에 남은 술을 모조리 목으로 털어 넣은 후, 숨을 크게 내쉬면서 말했다.
“병력도 충원했고, 성공적으로 교두보도 확보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여도 되겠어.”
“성지 간 통로를 통해서 보급도 용이해졌으니까. 이곳을 기점으로 전력을 좀 나눠야겠지.”
최종 목적지는 베이징.
이미 정화자 놈들도 서쪽을 잔뜩 헤집으면서 베이징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중이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광란’이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다더라.
“우리가 먼저 수를 두었으니, 이번에는 저쪽에서 수를 둘 차례야.”
내 말에 에이든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가 된다. 발악하는 적을 갈아 마시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는 법이다.”
“글쎄다.”
녀석들이 발악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게 녀석들의 계획에 있던 일인지.
두고 봐야 알겠지.
나는 어느새 해가 저문 하늘을 바라보며 술기운이 담긴 숨을 작게 뱉어 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