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91. 업보는 돌아온다
1.
게이트의 코어를 파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10분.
거인 50마리, ‘얼굴 없는 자들’ 10마리.
아마도 거인들은 그 일그러진 세계의 원주민이었던 것 같다.
고대 신의 신성력에 의해 영혼을 빼앗긴 존재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했다.
고대 신의 신성력에 의해 영혼이 완전히 타락한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이란 오로지 죽음뿐.
적들을 모두 분쇄한 이후 마주한 게이트의 코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
고대 신들의 권능으로 이어진 두 개의 차원.
통로를 연 것은 고대 신의 힘이었겠으나, 그 통로를 유지하고 있던 건 수많은 제물들의 생명력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제물들이 빨대가 꼽혀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면은 정화자나 이놈들이나 별다를 것 없다는 걸 알려 주었다.
대지 곳곳에서 불길까지 타오르니 지옥이 따로 없었달까.
아무튼.
게이트 너머의 코어를 부수고, 차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지구로 복귀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나를 맞이한 건 몬스터들의 사체로 만들어진 산이었다.
화르르륵.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서 성화를 피워 냈다. 그러자 곧 몬스터들의 역한 냄새를 피우던 사체가 성화의 불길 속에서 재가 되어 휘날린다.
휘이이이잉.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한 재는 마력이 깃든 바람에 휘날리며 사라진다.
그리고 곧 그 사체의 산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 교단의 병력이 보였다.
“돌아오셨습니까, 교황 성하!”
“돌아오셨습니까!”
그들은 피곤한 기색 일절 없이 무릎을 꿇은 채 나에게 예를 표했다.
그들이 입고 있던 갑옷과 사제복은 이미 몬스터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스으으윽.
내 몸에서 흘러나간 신성력이 그들의 몸을 더럽힌 피를 닦아 냈다.
“루나, 레오.”
앞으로 걸어가면서 레오와 루나를 불렀다.
그러자 둘이 재빠르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상자 보고.”
내 질문에 답한 건 레오였다.
“사망자 0, 부상자 117. 목숨이 위급한 중상자도 없습니다.”
성전>의 말도 안 되는 버프 효과.
성지를 막아 내기 위해서는 목숨이 완전히 끊기기 전까지 쓰러질 수 없다.
신념으로 무장한 전사들을 멈추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단숨에 목숨을 끊어 버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노련한 베테랑들이 그런 각을 내줬을 리가 있겠어?
교단의 교육생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바로 ‘최대한 덜 아프게 맞는 법’이다.
“고생들 했다.”
“리멘께 영광스러운 승리를 바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성하.”
“고생하셨습니다, 성하!”
모두가 우렁차게 한목소리로 외치자 바닥이 흔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거 뭔가 분위기가 교단이 아니라…… 진짜 조폭들인 것 같은데?
하여튼 사망자가 없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 자랑스러운 형제자매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시작이다.
“다들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앞으로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백명교, 더 나아가 정화자까지.
끔찍이도 많은 적들이 우리를 짓밟기 위해서 움직일 테지.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겨 내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하나다.
압도적인 무력.
평화?
평화를 가져오는 법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을 제거한다면, 그게 바로 평화다.
“오늘의 전투로 우리의 적들은 리멘 교단의 힘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만 명심해라.”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승리에 취하지는 말아라. 아직 지구에는 너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이 땅을 밟고 있는 모든 적들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우리는 쉴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언제까지 싸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두렵지가 않았다.
“이상. 부상자를 수습하고, 모두 신전으로 복귀한다.”
에덴의 선배들과 지구의 후배들이 함께한 역사적인 첫 전투는 전사자 0명이라는 압도적인 기록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전투가 끝난 지 30분 후, 일본의 수많은 언론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2.
일본, 다시 한번 리멘 교단의 은혜를 입다.>
전사자 0명. 리멘 교단의 믿기 힘든 대승!>
승리의 원동력은 이계에서 넘어온 의문의 병사들?>
갈 데까지 가는 백명교. 한때 리멘 교단을 위협했던 경쟁자의 비참한 추락.>
일본 사사기 히로토 총리, ‘백명교의 추악한 전쟁 범죄를 지탄한다. 리멘 교단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 일본은 그들에게 반드시 죗값을 물을 것.’>
일본 정부, 각성자 동원령 선포.>
전투가 끝나자마자 보도되기 시작한 속보들.
세계의 관심은 당연히 우리 리멘 교단에 집중되어 있었다.
리멘 교단의 교육생들은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는 했으나, 세간의 평가는 ‘그래도 아직 유망주 레벨일 뿐이다.’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간에는 나와 레오, 루나 등 소수의 간부들이 이끄는 소수 정예 느낌이 아주 강했다.
이레귤러가 소속된 집단이니까 어쩔 수 없는 평가였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전투가 끝난 이후, 종군기자가 목숨을 걸고 담아낸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세간의 평가는 확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게이트 코어를 파괴하기 위해 게이트 내부로 진입한 이후, 게이트의 바로 앞에서 펼쳐진 치열한 전투.
오히려 내가 전장을 이탈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교단의 순수한 전투력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장간에서 예산을 추가 배정해 달라는 요청서가 들어왔습니다.”
“재정 상태는?”
“충분합니다. 제 선에서 바로 허가를 내줬습니다. 미스릴과 마정석을 구매하기 위해서 소비되는 금액입니다. 박지원 고문이 해외 대형 길드와 공급 계약을 즉시 체결했습니다. 거래 가격은 평상시보다 비싸지만, 전시인 걸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료됩니다.”
“장비에 돈을 아끼지 마세요.”
“예, 성하.”
우리들은 재정비를 위해 잠시 서울의 신전으로 돌아왔다.
부상자들의 치료부터 시작해서, 이번 전투로 우리 병력이 보유한 장비가 상당수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요하를 기준으로 형성된 전선은 잠시 정체되어 있는 상황.
전쟁의 목적 자체가 백명교를 징벌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민생을 아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점령 지역의 치안 유지는 물론, 구호 작업까지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와 백명교가 워낙 개판을 쳐 뒀어야 말이지.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건네주는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확실히 전시가 되니 평시보다 처리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졌다.
“한데 성하.”
“예, 말씀하세요, 대주교님.”
“교단의 전투 영상이 확산되고 있는데, 저리 두어도 괜찮겠는지요.”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리멘 교단의 전투 영상이 퍼져 나가고 있다.
게이트에서 몰려 나오는 괴물들을 상대하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내가 봐도 뭔가 가슴이 찡해질 정도로 처절하고, 심지어 고결하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관계자인 내가 그 정도니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덕분에 대한민국,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영상이 되었다.
어딜 가나 우리 교단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나는 보고서를 넘기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버려 두세요. 교단의 명성이 높아지면 좋죠. 솔직히 여태까지는 제 원맨팀이라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으니까요.”
“교단의 전략을 노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적들이 저 영상을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겠습니까?”
영상은 19금 판정이 날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
전략?
그딴 거 없었다.
그냥 적을 부수고, 깨부수고, 박살 냈을 뿐이다.
굳이 그걸 전략이라고 한다면…… 마구잡이로 박살 내기, 정도가 되겠다.
“오히려 저쪽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죠.”
“……그렇군요.”
“어떤 부분을 걱정하시는지는 잘 알겠지만, 어차피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어도 백명교 측은 전력 분석을 시작했을 겁니다.”
센다이시의 토벌 현장에서 살아 나간 백명교의 신도들이 몇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명교는 그들을 토대로 대처 방법을 만들어 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연구를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센다이전은 어디까지나 우리 교단의 단독 작전.
비록 센다이 신전에서 생산한 천벌 미사일의 화력 지원이 있었지만, 실제 전장에서 우리 교단만 움직이는 경우는 많이 없을 것이다.
“데뷔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언제나 최악을 가정해 두는 사람이다.
그만큼 철두철미한 사람이었기에 내가 항상 도움을 받는다.
에덴에서도 그랬다.
그가 만일의 경우까지 생각해 두었기에 수습할 수 있었던 일도 많았다.
나는 보고서를 내려놓으면서 라파르트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모든 전쟁이 끝나면,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약속드립니다.”
나에게는 에덴의 필멸자들을 다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성하.”
“예?”
“저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구에 묻히는 게 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언제부터요?”
“그렇게 생각한 지 좀 되었습니다.”
……할머니 때문인가?
“레오 대주교와 루나 레벤톤 경 역시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 둘은 일찍이 예상하고 있었어요.”
지구 문명의 편리함을 만끽한 놈들이 설마 에덴으로 돌아가려고 하겠어?
레오는 가족이 없고, 루나는 가족이 있는데…… 지난번에 슬쩍 물어봤을 때 뭐라고 했더라?
‘이제 애들도 거의 다 컸는데 지들이 알아서 하겠죠. 여차하면 성하가 우리 애들 좀 데려와 주시면 안 돼요?’라고 하더라.
하여간에 못 말리는 녀석들이라니까.
그렇게 나는 한 30분 정도를 집무실에 앉아서 전쟁 물자와 관련된 서류들을 처리했다.
그동안 교단이 열심히 모아 뒀던 돈들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우리가 뭐 사업체도 아닌데 돈을 많이 모아 둘 필요는 없었다.
쓸 때는 써야지.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쓰겠냐고.
똑똑똑.
내가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한숨을 돌릴 때였다.
“들어오세요.”
내가 신전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이 찾아왔다.
“교황님.”
“아, 김 실장님.”
손님은 바로 이능관리부의 김 실장이었다.
김 실장은 나에게 정중하게 묵례를 한 다음,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전쟁 때문에 바쁘실 텐데 어쩐 일로?”
“교황님께 전달해 드릴 서류가 있어 이렇게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김 실장이 이렇게 다급하게 찾아왔을 정도면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인데…….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자.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를 슬쩍 쳐다보았고, 라파르트 대주교는 섬세한 동작으로 차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라파르트 대주교가 집무실에서 나간 후, 김 실장은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대한민국 외교부로 발송된 공문.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중국 정부에서 대한민국 외교부로 발송한 문서입니다.”
“흠.”
그 서류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김 실장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지그시 찌푸렸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예, 맞습니다.”
김 실장은 차를 마시면서 숨을 돌린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명교 측에서 리멘 교단, 백명교, 정화자, 이렇게 삼자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참석 인원은 지도자와 수행원 세 명. 즉, 지도자급 회담입니다.”
“하.”
……지금 이거 누구 죽창이 더 날카로운지 한번 재 보자는 건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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