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
28화
3.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이능관리부였다.
유선호 장관은 내가 일부 지역 정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팀을 투입시켰다.
그들이 가장 먼저 확보한 것은 유세혁을 포함하여, 전각련 측의 의뢰를 받았던 범죄자들의 신병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지명수배를 받은 흉악범들이었다고 하니, 나름 괜찮은 결말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직접 손 본 유세혁 말고도 나머지 녀석들 역시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할 거라고 한다.
레오의 흉악한 인간 차력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내가 예상했던 영역이었는데, 그 이후에 전개된 상황은 나로서는 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일부 지역의 정화를 완료했다고 한들.
“이 늙은 놈의 몇 안 되는 소원을 이룬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도 아닌 유선호 장관이 이렇게 그라운드 제로 내로 불쑥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참 대단한 노인네다.
물론 이건 리멘의 세심함이 반영된 결과다.
리멘은 그라운드 제로로 진입하기 힘든 신도들을 위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출입문부터 성역까지 오는 길을 만들어 두었다.
그녀가 직접 신성력을 부여하여 정화시켜 둔 길.
이름도 지어 줄 법하지만, 그녀는 그냥 그곳을 순례길이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리멘이 만들어 둔 순례길을 통해서 유선호 장관이 도착한 것이다.
“이 조그마한 비석은 무엇입니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긴 듯해 보였던 유선호 장관이 나에게 물었다.
유선호 장관 앞에 자리잡은 비석.
비석에는 「꿈들이 잠시 쉬는 곳」이라는, 아주 단아하고도 부드러운 필체의 한글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시선을 그 비석 위에 둔 채로 말했다.
“이곳에 잠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라더군요.”
“어떤 귀인께서 이런 것을…….”
“이곳을 만든 분께서 하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슬픔을 극복하되, 잊지는 말라는 의미에서 남기신 비석입니다.”
푸르른 정원 위에 자리잡은 비석. 그리고 그 비석 너머로 보이는 신전까지.
그 풍경은 누가 와서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심지어 저 멀리 보이는, 아직 정화되지 못한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조차도 극명한 대비를 통해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유선호 장관은 한참 동안을 말없이 그 풍경을 감상하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유선호 장관은 나를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약속드렸다시피 이곳에서 얻으신 것 모두가 시우 님의 것입니다. 땅이든, 그 무엇이든. 저희들의 약소한 성의 표시라고 봐 주시면 됩니다.”
“재산권 문제나 뭐 그런 문제는 없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때, 이곳에 대한 재산권은 정부 측에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었지요. 정부로서는 유명무실한 권리였지만, 이리 사용되니 참 마음이 좋습니다. 허허.”
털털한 웃음소리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 땅의 원주인이라든가, 건물주라든가, 그런 사람들 말이다. 확실히 연륜이란 게 무시 못 할 것인지, 유선호 장관은 단번에 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분주히 무언갈 준비하고 있는, 민수 씨의 촬영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미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까 합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게 있는 모양이군요.”
“라이브 방송에 기자분들도 참여시킬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제의에 유선호 장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곧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으로 기자회견을 대체하실 계획이시군요.”
“굳이 같은 일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안 그래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려 두긴 했습니다. 30분 내로 도착할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하지요.”
유선호 장관은 뒤에 있던 본인의 비서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고, 그러자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실행력 한번 화끈하다.
도저히 70이 넘은 노인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의 행동력이었다.
노익장이라는 말이 그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순식간에 내 고민들을 싸그리 해결해 버린 유선호 장관은 한층 여유로워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급한 일은 대충 처리한 듯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잠깐만.
“……본론이요?”
“앞으로 전각련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실 것인지, 또 교단을 어떻게 운영하실 것인지. 그리고 언제쯤 그라운드 제로 전역을 정화할 수 있는지 등등, 아직 나눌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도대체 언제 준비한 건지, 유선호 장관의 수행원들이 간이 탁자와 의자를 우리 앞에 설치해 주었고, 유선호 장관은 나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말을 맺었다.
“기자들이 오기까지 꽤 시간이 남았으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지요. 시우 님도 이참에 한번에 처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이능관리부 직원들이 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4.
유선호 장관과의 30분은 정말 짜릿했다.
그가 플레이어가 아닌 몸으로 어떻게 이능관리부를 휘어잡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해야 하나?
“부쩍 피곤해 보이십니다. 괜찮으십니까, 교황 성하?”
“안마라도 해 주게?”
“원하신다면.”
“……아니다. 나도 접혀 버릴 것 같아서 사양할래.”
사제복에 가려진 레오의 근육을 보고 있자니 아까 전에 반으로 접힌 흉악범들이 떠오른다.
나는 손을 가볍게 내저은 다음, 레오의 옆에 서 있던 민수 씨를 향해서 말했다.
“기자들도 도착했답니다. 어때요, 미튜브 반응은 좀 괜찮은 것 같습니까?”
민수 씨의 채널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공지를 남겼었다.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긴 한데, 사실 민수 씨의 저 멋쩍은 듯한 표정만 봐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어그로 좀 적당히 끌라고 합니까?”
“그라운드 제로라는 장소의 이미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교황님.”
“민수 형제님이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불신이 팽배한 이 사회가 잘못된 거지. 크게 신경 쓰지 마십쇼. 어차피 라이브 방송 켜면 알아서 해소될 겁니다.”
유명 언론, 공중파 기자, 외신 등등.
이능관리부의 연락을 받고 벌써 신전 앞에 자리 잡은 기자들만 수십이다.
그들은 내가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이곳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쏟아 낼 것이다.
그런 상황에 시청자들이 안 믿고 배겨?
나는 살짝 시무룩해진 민수 씨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준 다음,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준비 다 끝났으니 슬슬 일 시작합시다. 인터넷 방송은 10년 만이라 좀 떨리네.”
지구의 시간으로는 5년 전쯤이었을 거다.
군대 다녀와서 동생들 어떻게든 먹여 살리겠다고 정신 없이 일을 했던 시절.
누군가에게 넋두리라도 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서 인터넷 방송을 켰던 적이 있다.
내 기분 내킬 때마다 켰던 거라 시청자가 한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지.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긴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라졌다.
“오늘 할 일이 아주 많으니 방송도 빠르게 해치웁시다.”
나는 기분 좋게 말한 다음, 그들을 데리고 천천히 신전 현관을 나섰다.
우리가 대리석 기둥을 지나 외부로 나선 순간.
촤르르르륵-!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사진기의 셔터를 경쟁적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지난번 기자회견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확실히 이것도 내성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형제님들. 사진 이쁘게 찍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는 기자들을 향해 어느 정도 너스레를 떨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 다음, 민수 씨의 촬영팀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신전 앞에 위치한 자그마한 정원.
리멘이 좋아하는 리시안셔스라는 꽃들이 잔뜩 심어져 있는 그 동화 같은 정원에서는 이미 촬영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적당한 높이의 의자와 내가 직접 시청자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태블릿 PC가 세팅된 탁자.
거기에 조명 같은 본격적인 촬영 장비들까지.
지난번 여주의 던전에서도 느꼈지만, 인터넷 방송이라고 무시할 수준이 전혀 아니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민수 씨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오늘 방송의 형식은 인터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민수 씨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
민수 씨네 회사 작가들이 미리 작성해 온 질문지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 와서 크게 중요한 질문들은 아니었다.
“그럼 미리 이야기 나눴던 대로 시청자들의 질문들 위주로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바로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내 말에 민수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 촬영팀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태블릿 PC 속에 우리들의 모습과 채팅 화면이 떠오르면서,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ㅋㅋㅋㅋ그라운드 제로에서 방송 켠다더니만 어디 촬영장 하나 빌렸나 보네
-플케형;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주작할 거면 성심성의를 보여야지
-어휴ㅋㅋ 이럴 줄 알았다
-원래 주작도 잘 안 하던 사람인데……
-사이비 논란 터지고 나서 초심 잃었네 ㅇㅇ
-구독 해지함 ㅅㄱ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는데,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매웠다.
역시, 이게 K-채팅창이지.
“오늘은 그라운드 제로 특집 방송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세계 최초로 그라운드 제로의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채팅창의 민심은 정말 밑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인신공격과 각종 비하 발언, 거기에 혼란을 틈타는 어그로들까지.
540만 미튜버답게 순식간에 시청자 숫자는 1만을 돌파하고 있었고, 그만큼이나 채팅창도 뜨겁게 과열되는 중이었다.
저런 걸 보면 진짜 빠가 까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충분히 멘탈이 흔들릴 법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 나와 계신 분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레귤러이자, 리멘 교단을 이끌고 계시는 김시우 님이십니다. 인사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민수 씨의 멘탈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방송을 통해 굳건하게 단련된 540만 미튜버, 아니 이제는 500만 미튜버에게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 듯 보였다.
비록 지난번 간증 영상을 올린 탓에 구독자 수가 가파르게 줄었지만 경험은 줄어들지 않는 법이다.
나는 민수 씨의 뻔뻔한 진행에 잠시 감탄한 다음,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반갑습니다. 리멘 교단의 김시우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저희 교단의 역사적인 첫 신전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렇게 내가 인사를 건넸을 때, 시끄러운 효과음과 함께 태블릿 PC 창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미스터쿼카’님께서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혹시 용역 깡패는 아니죠? 플케형…… 사이비 집단에 납치당해서 강제로 영상 찍고 계시는 중이면 꼭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ㅠㅠ]“흠흠.”
웃을 뻔했다.
용역 깡패라고 하면 아마 레오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솔직히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사제의 비주얼이라기에는 확실히 뭔가 이상한 비주얼이긴 하지.
나는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이렇게 그라운드 제로에 저희들의 첫 신전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이런저런 멘트를 치자마자 또다시 채팅창이 불타오른다.
그중 몇 개 눈에 띄는 채팅들을 뽑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 ㅅㄲ 국가가 인정한 이레귤러 아님? 이레귤러가 이렇게 방송 나와서 시청자 기만해도 되는 거냐?ㅋㅋ
-그냥 번복이나 하지 추하게 무리수 던지네
-여기 근데 어디 세트장임? 이쁘긴 하네
-전문가입니다. 그라운드 제로는 마력 오염으로 인하여 생명이 자라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꽃과 풀들이 자리 잡고 있네요. 따라서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가 아니다에 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대강 예상했던 반응이라 크게 놀랍지 않다.
이때다 싶어서 채팅창에 본인들의 음습한 욕망들을 분출하기 시작하는 수많은 시청자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을 것 같다.
나는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그 매콤함을 잠시 감상한 다음,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여러분들도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건 싫으실 테니 핵심만 정리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자회견도 겸한 라이브 방송이었지만, 원래 이런 건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멋없게만 느껴질 뿐이다.
따라서 그냥 핵심적인 내용만 전달하면 된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현 시간부터 그 누구든지 신청을 통하여 서울 그라운드 제로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이능관리부 홈페이지와 저희들의 미튜브 채널을 통해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말하자마자 카메라의 시점이 바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찍고 있던 카메라들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주위의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들.
정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대리석 신전.
그리고 성역의 경계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와 그라운드 제로를 봉인하던 장벽, 아크까지.
-?
-저기 멀리 저거 창덕궁 아니냐??????
-저건 그라운드 제로 장벽 맞지 않음?
-이왜진?
-님들. 지금 이거 KBC에서도 생방송 중인데요?
-속보) 이능관리부 유선호 장관, 김시우 각성자가 세계 최초로 서울 그라운드 제로 일부를 정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공식 발표. 해당 기사 링크>
-진짜네????
-?
-?
-아니;;; 진짜 여기 그라운드 제로라고? 그게 말이 돼?
빠가 까가 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까가 빠가 되는 것 역시 순식간인 모양이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종 비난 글로 가득했던 채팅창이.
-성지 순례하러 왔습니다.
-진짜 성지 순례하려면 그라운드 제로 신청하면 되나요?
-수능 대박나게 해 주세요 제발 ㅠㅠ
-여자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헌터 아카데미 시험 합격하게 해 주세요! 헌터 아카데미 시험 합격하게 해 주세요!
-면접 잘 보게 해 주세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