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3.
“이 새끼들이 진짜 무슨 생각인 거지? 성하, 회담이 뭐 필요하겠어요? 어차피 죽일 놈들인데, 그냥 전장에서 죽이죠.”
“아닙니다, 성하. 이건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에 사악한 악적들을 한데 모아 죽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단의 병력을 일거에 투입하여 휩쓰는 것 또한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듣고 보니 레오의 말도 맞는 것 같은데, 그냥 확 저질러 버리시죠.”
개판이다.
진짜, 개판이 따로 없다.
지도자급 회담 제안이 들어온 이후로, 집무실에서는 회의가 이어졌다.
전쟁 중이라서 그런가?
망나니 기질을 지니고 있던 루나의 광증이 도진 것 같다.
무기라도 손에 들려 있었어 봐.
진짜 집무실 가구 몇 개는 박살 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루나는 원래 그렇다고 치고, 레오 너는 갑자기 왜 이러냐?”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레오가 어쩐 일일까?
내 질문에 레오는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백명교와 정화자, 이 두 세력의 난립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성하께서도 지난번에 보셨잖습니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거나, 방패로 삼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
이미 종군기자에 의해서 정화자의 참상은 많이 보도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를 뽑아 의식을 치르던 끔찍한 모습까지.
그리고 백명교 놈들도 요새 빠른 속도로 여론이 악화되고 있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어린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교리 학교를 건설해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레오의 눈이 저렇게 돌아 버린 것 같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레오 네 말을 정리하자면 이거지, 회담까지는 가되, 거기에서 싸그리 나쁜 놈들을 토벌한다?”
“그렇습니다.”
“진짜 죽창 대결을 하자고?”
수행원을 무려 세 명이나 데려가는 회담이다.
백명교나 정화자에서 어떤 수행원을 데려올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이레귤러급은 데려오겠지.
핵폭탄 아홉 개가 동시에 터진다?
쾅! 그냥 그대로 멸망이다.
게다가 김 실장이 뒤에 전해 온 소식은 나조차도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정화자 측에서는 이에 응했습니다. 백명교와 리멘 교단을 배려하여 회담 장소는 리멘 교단 측이 정한다, 이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백명교 역시 이 조건을 수용했습니다.
단칼에 거절할 줄로만 알았던 정화자 놈들이 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수용한 것이다.
우리가 함정을 팔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그만큼 본인들의 힘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진원지를 내 땅으로 해 두면…… 내가 내 땅에서 핵폭탄을 터트릴 일은 없을 거다, 뭐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 되는군.
백명교에서 제의한 거니까, 우리까지만 수락하면 회담은 성사되는 거다.
한데 본질적인 질문은 이거다.
“도대체 왜?”
삼자 회담을 통해서 평화로운 해결법을 모색한다?
그딴 건 명분이 될 수야 있겠지만, 숨은 속뜻이 되지는 못한다.
이미 세 집단은 공존할 수 없다.
그런 마당에 이렇게 셋이서 만나서 하하호호 웃자는 건 아닐 테고.
내가 머리를 싸매면서 이 회담의 의미를 찾고 있을 때,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호기심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호기심이요?”
“전장에서 숱하게 맞붙은 자들은 한 번쯤 자신의 적수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합니다. 정화자 지도자의 성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정말 즉흥적인 인물입니다. 자신의 적수와 직접 만나고 싶었을 테지요.”
“몇 번 만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본체로 오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힘을 눈대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눈대중이라.”
대한민국의 인터넷에서 지금의 판도를 두고 ‘신삼국지’라고 표현했던 게시글을 봤었다.
서쪽의 정화자, 북쪽의 백명교, 남쪽의 리멘 교단.
얼추 삼국지랑 비슷한 양상이긴 하지.
장강을 경계선으로 분단된 상황이긴 하니까.
“백명교의 대교구장과 정화자의 무명은 만난 적이 없을 겁니다.”
“머리가 복잡하네요.”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시지요.”
라파르트 대주교는 고개를 정중히 숙이면서 말을 이어 갔다.
“평화를 위한 회담을 이쪽에서 거절했다고 한다면, 백명교는 그 즉시 리멘 교단에게 전쟁광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겁니다. 즉, 이번 회담은 백명교로서도 잃을 게 없습니다. 본디 가진 게 많은 자들이 잃을 게 더 많습니다.”
“가진 걸 지키려다가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죠. 게다가 회담을 진행할 중립 지역도 마땅찮아요. 최소 핵폭탄 아홉 발을 대한민국에다가 수용하기에는…… 아.”
중립 지역이야 있지,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중립 지역.
“상해?”
상해.
현재, 소위 ‘남중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리멘 교단의 신전까지 있는 곳.
이세민이 이끄는 병력이 북진을 하고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반란군 토벌’이 명분이다.
형식상 중립 지역은 맞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놈들과 회담을 진행하는 건 미친 짓입니다.”
“저는 그저 성하께서 속으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듯하여 대신 이야기를 꺼냈을 뿐입니다.”
“제가요?”
“예, 성하.”
라파르트 대주교는 눈을 슬며시 감으면서 말했다.
“성하께서도 내심 가슴이 동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아.”
어차피 깨부술 놈들 면상을 한번 보고 싶기는 하지.
게다가 적의 지도부들이 어떤 역량을 지녔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 역시 전쟁의 당사자기도 했으니, 아무래도 서 대통령에게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툭툭.
전화를 꺼내서 서 대통령의 번호를 눌렀다.
아마 지금쯤이면 서 대통령 역시 전달을 받았겠지.
백명교가 대한민국의 외교부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문서였으니 말이야.
-전화받았습니다, 김시우 교황님.
전화기 너머에서 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손으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이미 내용은 보고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백명교의 삼자 회담 제안 말씀이십니까? 예,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 회담과는 관련이 없으니 말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통령님의 조언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얼마든지요.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께서는 저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리멘 교단의 선택에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요.”
-정치적인 대답을 원하신다면야…… 거절하기도, 승낙하기도 너무 부담스러운 제안이지요. 하지만 제가 만약 김시우 교황님이었다면 승낙했을 겁니다.
“이유가 궁금하네요.”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일단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나 들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쥐어박으면 되잖습니까? 김시우 교황님이라면 가능한 일일 겁니다. 아,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김시우 교황님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해 본 겁니다.
“대통령님.”
-예.
“공감 능력이 정말 뛰어나시네요. 어떻게 저를 그리 잘 아십니까?”
내 질문에 대통령은 큰 소리로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대통령이 되려면 이 정도 공감 능력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기본이지요.
“대통령 되기 참 힘들겠습니다.”
-그럼요. 제가 어떻게 올라온 자린데요. 고스톱을 따서 올라온 자리는 아닙니다.
“저는 낙하산인데.”
-그것까지 공감해 드리기는 좀…….
그것까지는 공감해 줄 수 없나 보군.
어쩔 수 없지.
하여간에 서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아무래도 조만간 나 역시 결정을 내려야겠다.
4.
그로부터 3일 후.
상해에 위치한 리멘 교단의 성지.
“……교황님, 제가 뭐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편히 하세요, 세민 씨.”
“혹시 이 도시가 교황님께 큰 죄라도 저질렀습니까?”
“그럴 리가요. 이제 막 활기를 되찾아가는 곳인데요.”
“자칫하다가는 상해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세민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성지를 둘러본다.
철통 경계에 들어간 성지. 오늘은 민간인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었다.
왜냐고?
오늘이 바로 그 비공식 회담 당일이거든.
나는 이세민 씨의 우려에 손을 가볍게 내저으면서 말했다.
“지키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세민 씨에게 부탁드린 거 아닙니까?”
“저들이 과연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손님들을 어떻게 접대할지는 주인장 마음이죠.”
“이레귤러 넷을 이렇게 한곳에 모아 뒀다는 건…… 애초에 회담 동석자는 셋 아닙니까?”
“회담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셋입니다. 그 셋 모두 리멘 교단의 일원이어야 하구요.”
우리가 회담을 승낙하자마자 일 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장소는 상해로 전격 결정.
경호도 우리가 담당하기로 했다.
도대체 뭔 배짱인지는 모르겠다만, 녀석들은 순순히 우리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오겠다더라.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준비를 다 해 두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억제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단 말이지.
나는 성지 앞 정원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 에이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친구들은 그저 상해에 휴가를 왔을 뿐입니다. 세민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저쪽에서 그 말을 믿어 줄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지들이 뭐 어쩔 건데?”
우우우우웅.
성지 곳곳에는 이미 라파엘의 초소형 드론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에이든과 라파엘, 거기에 이세민까지 상해에 들어와 있다.
자현이는 요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부르지 못했다.
백명교와 정화자가 이레귤러급을 데려온다고 가정했을 때, 이 도시에 총 열 명의 이레귤러가 모이는 거다.
터지면?
상해뿐만 아니라 이 일대가 지도에서 지워지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 녀석들도 감히 공격할 생각을 못 할 거다.
자고로 힘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강력한 힘이 필요한 법.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일어난다면요?”
“……혹시 몰라서 최악의 상황도 가정을 해 두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테라와 리멘에게 일찍이 말을 해 두었다.
만약 이곳에서 폭탄들이 터질 것 같으면 곧바로 성지 전체를 상해와 분리시켜 달라고.
성지를 분리하는 건 리멘의 역할이고, 분리된 성지를 격리시키는 게 테라의 역할이다.
-다치지 마, 시우.
리멘이 저렇게 다치지 말라고 말해 줬는데, 오늘 이곳에서 다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전운이 감도는 성지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세민 씨도 크게 걱정하지는 마세요.”
“걱정하진 않습니다. 교황님께서 이곳에 계시잖습니까?”
“겸손하시기는.”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지.
회담 시간이 30분 남았는데, 시간에 딱 맞춰서 오려…….
우우우우웅.
“성하! 백명교 측의 대표단이 도착했습니다!”
“그렇네요.”
순간적으로 신성력이 폭발할 듯 감지되더니, 곧 성지의 입구에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금발의 소녀와 그 뒤를 따르는 백색 갑옷의 성기사들.
소녀는 백명교의 대교구장 신지혜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통성명을 했더랬지.
그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성지 내부에 있던 모든 병력이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텐데도 백명교의 대표단은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신지혜는 내 앞에 도착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리 또 뵙습니다, 김시우 교황님.”
나는 그녀를 향해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오늘 부디 생산적인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중에게도 평화만큼 좋은 선물은 없지 않을까요?”
“일 이야기는 이따가 회담장 안에서 들어가서 하도록 하고.”
파지지지직-.
“저기, 마지막 손님 오시네.”
허공에서 보라색의 벼락이 일렁거린다. 그 벼락은 상처를 새기는 듯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안에서 세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명.
그리고 족히 이레귤러급은 되어 보이는 여자와 남자 한 명씩.
나는 신성 결계를 노크하듯 두드리는, 뻔뻔한 표정의 무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천하제일죽창대회,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폭풍을 앞둬서일까.
성지 내부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