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5.
이곳은 우리 신전의 지하 심문실.
“비공식 회담인 만큼 좋은 자리로 안내해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렇군요.”
“여러분들에겐 이곳이 딱이야.”
나는 입가에 미소를 품은 채, 이곳에 앉아 있는 각 세력의 지도자를 둘러보았다.
신지혜 그리고 무명.
신지혜는 신성력 사용자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 무명 놈의 반응이 참으로 심상치 않았다.
무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젠틀하게 생겼다.
보라색 양복을 빼어 입은 그는 누구라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 미남이었지만, 녀석의 품속에는 끔찍한 마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놀라운 건 녀석의 멋들어진 외모가 아니었다.
이곳 상해 성지에는 교단 최강의 성유물 심판의 검>이 꽂혀 있다.
이 심문실과 그리 먼 곳도 아니다.
기껏해야 50m쯤 되는 거리.
엄청난 파마의 힘을 지닌 심판의 검>은 사악한 이에게 있어서 극독이나 다름없었다.
“한증막에 온 듯하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간만에 수련을 제대로 하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저놈은 뭔가 좀 다르다.
본인뿐만 아니라 본인의 부하들까지 심판의 검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건 높은 수준의 격>.
결국, 저 녀석도 마기의 극한에 이르면서 격>을 얻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마신, 우리는 그걸 마신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모시는 분께서는 저자를 마신이라고 부르죠.”
“개나 소나 다 신이네.”
“개나 소의 신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어차피 이 세상에는 개, 돼지뿐이지 않습니까?”
무명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미소를 지었다.
저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때리는 맛 좀 있겠어. 다행이야.”
내 호승심을 자극할 만한 놈이라는 거.
정화자는 현재 루시퍼를 제외한 나머지 마왕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저 세력이 유지될 수 있는 건, 무명의 힘이 이미 그들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었기 때문이겠지.
결국, 마왕 놈들은 저놈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 셈이다.
에덴의 위기를 자초했던 놈들의 비참한 최후로 딱 맞다.
인간들을 잡아먹으면서 컸던 놈들이 결국 인간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최후를 맞이한다.
그것만큼 그놈들에게 마땅한 형벌이 어디에 있을까?
“루시퍼는 어디에 있지?”
“회담 자리가 아니라 꼭 심문 현장 같습니다.”
“이곳이 마침 심문실의 역할도 겸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교황님의 팬이기 때문에 순순히 대답해 드리지요. 그는 지금 제 명령을 받아 베이징으로 진격 중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 자리가 평화 회담 자리인데…… 여기에서 할 소리냐?”
“천박하기 그지없군요. 우리 백명교가 이래서 정화자 당신들을 버러지 취급하는 겁니다.”
그때였다.
수우우우웅.
무명의 뒤에 서 있던 여자 한 명이 허공에서 기다란 흑색 검을 뽑아내면서 소리쳤다.
“사이비 교주 주제에 감히 우리의 위대한 분을 음해하려는 것이냐!”
그녀가 칼을 뽑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지혜의 호위병들도 무기를 꺼냈다.
“더러운 악의 추종자들이!”
“그 검을 뽑을 때 천박한 네놈들의 목숨도 걸었을 터!”
평화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
내 뒤에 서서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레오가 조심스레 말했다.
“말씀만 내려 주십시오. 주변에 심어 둔 신성석을 일제히 폭발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루나는.
“심판의 검 뽑아 올까요?”
“……안 그래도 머리 아프니까 다들 가만히 좀 있어라.”
내가 이번에 대동한 인물들은 루나, 레오, 라파르트 대주교다.
내 친구들은 바로 위에서 대기 중이다.
만일의 경우가 생긴다면 일제히 이곳으로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는 모두 끝내 둔 상태다.
“대교구장이시여,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저들을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들의 피를 당신께-.”
긴장 상태가 정점에 다다를 무렵.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백명교와 정화자의 졸개들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주인들도 가만히 있는데 개새끼들이 자꾸 짖어 대네.”
이곳은 리멘 교단의 성지다.
즉, 내 홈그라운드라는 뜻이다.
원래 똥깨도 홈그라운드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심판의 검이 내뿜는 신성력으로 충만한 이곳.
저놈들이 나름 전투력이 뛰어난 놈들을 데리고 오긴 했다만, 그래 봤자 졸개다.
짜아아아아악-.
나는 백명교의 호위병들의 싸대기를 후려갈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흑검을 들고 설치던 녀석의 싸대기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신지혜와 무명은 재밌다는 듯이 그 상황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졸개들 중 유일하게 이 상황에 관여하지 않고 있던 정화자의 남자 졸개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무기를 안 꺼냈습니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예?”
“기분 나쁘게 생겼어.”
짜아아아아악.
마지막 그놈을 끝으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나는 후련하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신지혜와 무명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콩트는 여기까지만 하고, 그래도 명색이 회담인데 안건이나 말씀하시죠, 대교구장님.”
그러자 신지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대륙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인간들이 전쟁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이쪽의 전쟁을 마무리 짓고, 중동 전쟁까지 저희가 중재를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누가 보면 평화를 정말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인 줄 알겠다.
저 얼굴로 기도를 하면서 저렇게 말하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믿어 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었으니.
툭.
“거짓말도 성의는 있게 하셔야지요, 대교구장.”
바로 무명이었다.
무명은 품속에서 사진을 몇 장 꺼내서 책상 위에 던져 두었다.
사진을 대충 보아하니 백명교가 여태까지 준비하고 있는 엄청난 병력과 무기들에 대한 것이었다.
“증거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평화를 꿈꾸시는 분이 맞습니까? 저도 처음에 확인했을 때는 꽤 놀랐습니다. 백명교에서는 세계 정복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이더군요.”
무명은 실실 웃으면서 말을 내뱉은 다음, 나를 슬쩍 쳐다보면서 말했다.
“원하신다면 자료를 공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화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내 질문에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저희들은 평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혼돈, 끝없는 혼돈만이 저희들의 목표니까요.”
“그딴 마인드면 왜 평화 회담에 응했냐고.”
“심심하잖습니까?”
“……에휴.”
이딴 놈들을 두고 평화를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아니, 사실 나조차도 평화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교황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니, 제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한번 귀를 열어 보기는 하겠습니다. 대교구장, 어디 한번 지껄여 보십시오. 위선자나, 악인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말이죠.”
오늘 이 자리에 평화가 찾아온다?
안 찾아온다에 내 혀를 건다. 만약 정말 평화가 찾아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혀를 깨물고 죽겠어.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6.
다들 예상은 했겠지만, 이 이후 진행된 회의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백명교 : 우리는 항상 평화를 바라고 있었지만, 먼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건 리멘 교단과 정화자 아니냐? 평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지금 당장 병력을 빼고 중국 정부에 배상금을 지급해라.
-정화자 :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냐? 우리는 그냥 다 박살 내고 싶을 뿐이다. 평화는 죽은 다음에나 찾아라. 아니면 너희 백명교가 모시는 고대 신들을 전부 나에게 넘겨라.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처먹어 주겠다.
-리멘 교단 : ……그냥 다 죽어 버려.
지도자급 평화 회담?
평화는 개뿔, 각자가 데려온 수행원들에 의해 투견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병력을 그냥 해산시키라니까?”
“우리가 왜 병력을 해산해. 우리는 처음부터 전쟁, 살육, 이런 걸 좋아해서 시작한 거라니까?”
“여기서 그냥 죽어라.”
“너희야말로.”
주인들이 말이 없어지니 이제는 개들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 두 집단이 실무자를 한 명쯤은 데려올 줄 알았다.
그래서 라파르트 대주교도 일부러 참석시킨 건데…… 저 두 집단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도대체 서부 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선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양측 다 쉽사리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신지혜, 무명.”
나는 두 지도자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예, 교황님.”
“편히 말씀하세요.”
“둘은 왜 말이 없어? 회담하러 온 거 아니야?”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한 건 무명이었다.
“말했잖습니까? 오늘 얼굴이나 한번 보러 온 겁니다. 교황 성하의 얼굴은 일찍이 몇 번 봤지만, 대교구장과 이리 만나는 건 처음입니다.”
“소감은 어때?”
“아름답습니다. 그녀가 대교구장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데려가 박제를 해 버렸을지도 모르겠군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외모입니다.”
평화를 논하자는 자리에서 박제를 해 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무명 놈.
예상은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미친놈인 게 틀림없다.
나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무명을 향해 말했다.
“내 소감은 안 궁금하냐?”
“오, 궁금하군요.”
“지금 당장 너를 여기 밑층으로 데려가서, 심판의 검을 통해서 산 채로 회를 떠 주고 싶은 기분이야.”
“생으로 먹는 걸 좋아하시나 보군요. 육회라도 들고 올 걸 그랬습니다. 교황님이면 모든 걸 익혀 드실 줄 알았습니다만…… 흠, 의외군요.”
무명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교황님, 혹시 삼국지를 읽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삼국지는 갑자기 왜?”
“조조의 위를 잡기 위해서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가 힘을 합친 적이 있지요. 백명교 저자들은 교황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강력한 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중동에서 도착한 병력도 합류하게 될 겁니다.”
무명은 이번에는 신지혜를 쳐다본다.
신지혜는 자신의 부하가 직접 타 준 차를 조용히 마시며 무명의 시선을 마주했다.
“저는 이 세계가 혼란스럽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세계가 혼란스럽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계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 세상을 부수고 새롭게 만들려는 자들입니다. 이 지구라는 세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건 교황님이나 저나 매한가지 아닙니까?”
저 말을 듣고 있자니 테라가 어째서 이 녀석을 살려 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줬던 게 떠올랐다.
-내 입장에서 선과 악은 무의미해.
이 녀석이 왜 백명교와 싸우려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었다.
백명교의 입장에서도 이 녀석은 장애물일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테라의 입장이다.
내 입장에서는.
“틀렸어.”
“무엇이?”
“내가 지키려는 세계는 너 같은 버러지들이 없는 세계란다. 그러니까 너도 적이야.”
“아쉽군요.”
“그러는 너야말로 나를 제거하기 위해 백명교와 손을 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하하!”
무명은 크게 웃어 젖힌다. 그러더니 백명교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포식자가 먹잇감과 힘을 합치는 걸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음식과 힘을 합치지 않습니다.”
녀석의 몸 안에서 짐승 같은 마기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곧바로 신성력을 끌어 올렸고, 차를 마시고 있던 신지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신성력과 마기가 얽히고설키면서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일촉즉발의 상황 속, 지상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내 친구들이 라파엘이 미리 설치해 둔 순간 이동기를 타고 심문실에 등장한다.
도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에이든.
슈트를 입고 있는 라파엘.
언제라도 검을 뽑을 기세의 이세민까지.
아무리 이 녀석의 힘이 강대해졌다고 한들, 살아서 나갈 순 없을 거다.
“교황님께서 교우 관계가 원만하셔서 그런지 친우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할 생각은 저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때 저희들도 신세를 졌던 도시인지라…… 게다가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께서도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듯하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테라와 리멘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걸까?
무명은 두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최후의 결전은 베이징에서 하는 걸로 합시다. 백명교가 모시는 고대의 잡신들이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거든요. 대교구장, 대교구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곳에서 여러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손님이 많을 테니, 꽤 성대하게 준비해야겠군요.”
이 자리는 처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자리다.
연극의 클라이맥스 전, 주연 배우들이 서로를 만나서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
이 혼란스러운 자리를 통해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마지막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느꼈다.
나는 신지혜와 무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맺었다.
“평화를 찾을 방법은 찾았으니 회담의 목적은 달성했어. 만족스러운 회담이었다.”
백명교, 정화자.
저 두 집단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 이제 둘 다 꺼져.”
내 단호한 축객령을 끝으로, ‘천하제일죽창대회’는 비루하게 막을 내렸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