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5.
작전 시작 5분 전.
“위대한 우리 교황이시여, 분부를 내리시옵소서.”
“안 어울리는 말투는 그만두고.”
“이건 사실 망치와 모루가 아니야. 그냥 나눠 죽이기, 그런 거지.”
“네가 전술을 알아?”
“수십만의 부족을 이끌며 수차례의 대회전에서 승리를 거둔 나다. 내가 전술에 통달해 있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전술에 통달해 있단 말이지?”
에이든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도끼를 가볍게 휘두른다.
“이딴 건 전술이 아니야.”
“맞아, 전술 아니야.”
“……그렇게 쉽게 인정하면 내가 뭐가 되나?”
“굳이 세세한 전술이 필요할까?”
숫자는 비슷하다.
하지만 전력의 격차는 현저하다.
저쪽은 오합지졸이었고, 통일되지 않았다.
이세계에서 끌어모은 병력들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이레귤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거칠 것 없었다.
그냥 늘 그랬듯이 철저하게 분쇄하면 될 뿐.
“그래, 뭐 좌익을 찢고 뒤로 돌아가서 각개격파를 한다…… 나쁘지 않아. 그런데 말이다, 시우. 그거 아나?”
“뭐?”
“에덴에서 넘어온 네 부하들의 강함은 이미 알고 있다. 루나와 레오 역시 놀랍도록 강해졌지. 하지만 강하다고 해서 기동력이 뛰어난 건 아니야. 인간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무거운 갑옷을 입고는 기동력을 살릴 수 없어.”
“맞는 말이지. 애초에 뚜벅이가 뚜벅이인 이유가 있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보병으로서 망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불가능이다.
기동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적들의 대응을 뚫지 못할 것이다.
에이든의 지적은 당연한 거다.
하지만 녀석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누가 우리가 뚜벅이래?”
“뭐?”
“내가 설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리가 망치 역할을 하겠다고 했겠냐?”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강을 쳐다보았다.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
도저히 도하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도하 작업 시작합니다.
까드드드드득.
무전기에서 울려 퍼진 설화의 목소리와 함께 강이 통째로 얼기 시작했다.
마정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들이 엄청난 속도로 강을 얼려 버렸다.
콰우우우우우-!
마력을 감지했는지, 강 너머에서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몬스터와 이종족 들이 거칠게 포효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전운이 감돈다.
나는 발을 살짝 내디뎌서 강에 드리워진 얼음을 밟아 보았다.
꽝꽝 얼어서, 탱크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
도하 준비는 이걸로 끝.
이제 남은 건 병력을 투입해서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다.
-화력 지원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라파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이어 우리 뒤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포격이 시작된다.
라파엘이 이번 전투를 위해 손수 개조한 K-9자주포도 발사되고, 라파엘의 광자포를 비롯한 각종 화력이 방어선을 두들겨 대기 시작한다.
적들은 화끈한 포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우우우웅.
마법을 사용하는 이종족이 있다는 예상대로, 그들 역시 마력장을 비롯한 각종 방어 수단을 가동한다.
“에이든, 우리나라 국방부의 별명이 뭔지 알아?”
“포방부.”
“잘 아네.”
대한민국이 포에 집착했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사실 이는 전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로 효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레귤러인 라파엘이 개입한 이후로는 상황이 아예 달라졌다.
이번 전쟁은 일종의 무기 시험을 겸한다.
미국에서 비밀리에 라파엘과 함께 개발했던 대몬스터 전용 기술들이 아낌없이 사용되어, 왕년의 포방부를 재현해 내고 있었다.
적진이 술렁거리기 시작할 때.
우우우우웅-!
사전에 파악했던 적들의 거대한 전투 병기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포탄을 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든은 그 거대한 병기를 바라보면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술이 발달한 세계가 라파엘의 세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부수는 맛이 있겠어. 우리가 첫 번째로 노릴 곳은…… 저긴가?”
에이든은 턱짓으로 방어선의 가장 좌측에 위치한 적들을 가리켰다.
창을 들고 있는 원시적인 트롤 부족들.
우리가 평소에 상대했던 트롤들보다 덩치는 최소 1.5배였고, 창의 길이 역시 그 이상으로 길었다.
고대 신이 개입하게 되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 종족인 듯한데…….
알빠야?
그냥 그대로 찍고 나가면 되지.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린 다음, 내 품속에서 머리를 부비고 있던 백설이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백설이가 기지개를 켜면서 답했다.
『간만에 사냥놀이네.』
“신수가 피 맛을 그렇게 좋아하면 안 돼.”
『피 맛이라니? 나는 리멘님의 명령을 받아 나쁜 놈들을 혼내 주는 거잖아.』
“됐고, 슬슬 가자.”
『오케이.』
작은 먼치킨 고양이가 순식간에 늠름한 백호로 자라난다.
백설이의 등 위에는 안장이 올려져 있었다.
“안장 뭐냐?”
『리멘님께서 주인이랑 싸울 때 쓰라고 직접 달아 주셨어.』
안장에 하트 자수가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나는 가볍게 백설이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옆에서 이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에이든이 한마디 거든다.
“뛰어가는 거 아니었나?”
“발정 난 개처럼 뛰어다닐 순 없잖아. 그래도 명색이 전쟁인데, 안 그래?”
“……그럼 나는?”
“너는 원래부터 개니까 뛰어다녀도 이상할 것 없지.”
“섭섭하군.”
정말 섭섭해하는 에이든.
저럴 줄 알고 내가 미리 준비해 온 게 있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뒤쪽에서 흑우 한 마리가 맹렬하게 달려왔다.
당연히 베스였다.
「추방자들과의 전쟁에서 나를 빼놓을 순 없지. 준비 끝났다, 교황.」
“이번 전투에서 둘이 파트너.”
“오, 우리 영물님 아니신가. 잘 부탁합니다.”
흑우에 올라타고 적진을 휘젓는 에이든이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에이든은 능숙하게 베스의 위에 올라탔고, 베스 역시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콧김을 몇 번 내뱉으면서 발을 굴렀다.
“둘이 잘 어울리네.”
황소 위의 야만인.
꼭 옛날 신화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인걸.
“그런데 우리 둘만 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부터 이 전략은 다수의 기동력을 살린…….”
“거, 종알종알 되게 시끄럽네. 꼬우면 네가 지휘관 해.”
“그럴 수야 없지. 나는 야인이거든. 그저 친구에게 조언을 했-.”
“백설아.”
『알았어.』
그때였다.
백설이의 몸에서부터 찬란한 빛이 뻗어 나간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 교단 병력의 앞에 자리 잡았다.
잠시 후.
“……시우.”
“왜, 에이든.”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우리 여신님께서 자식들을 무척이나 예뻐하시거든. 빈손으로 보냈을 리가 있겠냐?”
축성받은 마갑으로 무장한 전투마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병력은 모두 그 위에 탑승했다.
“전투 사제들은 성기사들에게 축복을 걸어 준 이후, 곧바로 본대에 합류한다.”
“예, 성하!”
순식간에 1,500에 달하는 기병대가 생겨난다.
기마술?
그딴 건 필요 없다.
저 말 하나하나가 리멘의 의지가 깃든 신수.
성기사들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둔 거다.
대신.
『주인, 나 쟤네들 유지하는 거 엄청 힘들거든.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자.』
백설이의 힘을 갉아먹는다는 단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저 전투마 한 마리마다 백설이의 힘이 주입된 셈이니까,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지구에서 잔뜩 신성력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
나는 백설이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며 입꼬리를 올렸다.
“좀만 버텨. 금방 끝내 줄 테니까.”
가볍게 백설이의 등을 두드린 다음,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돌격 준비를 끝낸 병력을 향해 기세 좋게 소리쳤다.
“가자!”
“리멘을 위하여!”
“리멘을 위하여!”
투두두두두두두두.
얼어 버린 강 위로 성기사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적의 좌익이었다.
6.
강채아는 본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리멘 교단 적 좌익 돌파 완료!”
“곧바로 적의 측방을 타격합니다!”
도하를 시작한 리멘 교단의 기병대는 압도적인 속도로 적의 좌익을 무너뜨렸다.
변종 트롤로 보이는 이종족이 괴성을 내지르며 그들을 막아 내고자 했으나, 그들의 반항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리멘 교단의 기병대는 가차없이 적을 짓밟는다.
새하얀 빛을 내뿜는 섬광이 적의 좌측 날개를 인정사정 없이 찢어 버렸다.
‘도대체 전략 전술이 무슨 의미가…….’
리멘 교단의 최선두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날뛰고 있었다.
라파엘이 제공해 주는 드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장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백호를 탄 김시우와 흑우를 탄 에이든은 물 만난 고기처럼 전열을 흩트려 놓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숫자의 차이는 무의미해 보였다.
‘……이레귤러.’
강채아는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붙은 ‘이레귤러’라는 이명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불규칙한 존재들.
일반인의 범주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는, 규격 외의 존재들.
공격자가 방어자보다 불리하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비록 조악한 방어선이었으나, 방어진을 구성한 이후부터는 당연히 방어하는 쪽이 유리하다.
병력 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큰 손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밤을 새워서 세워 둔 전술은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망치와 모루?
‘아니.’
그냥 저건.
“……망치로 다 깨부수는 거잖아.”
망치에 닿는 순간 적들이 가루가 되어 버린다.
-리멘님을 위하여!
-리멘님을 위하여!
이레귤러 둘이 만들어 낸 길을 따라 신앙심으로 무장한 성기사들이 과감하게 파고든다.
사방에서 그들을 막기 위한 공격이 쏟아져 내린다.
마법, 화살, 심지어 출처를 알 수 없는 첨단 무기까지.
하지만 성기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정면을 꿰뚫는다.
방어진의 좌익에서 시작된 균열은 빠른 속도로 적의 중심까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Wha! Ka ki kun!
적들은 괴성을 내지르면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으나, 리멘 교단의 말발굽은 그걸 용납지 않았다.
마치 현대의 탱크가 장애물을 짓밟고 지나가듯.
쿠구구구구구궁.
도망치는 적들은 전투마의 말발굽에 의해 깔려 곤죽이 되어 버린다.
강채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난생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더 이상 전술은 무의미하다.
힘.
압도적인 힘만이 이 전장을 나타내는 유일한 수식어였다.
“라파엘 님, 천자현 님.”
강채아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파엘과 천자현을 향해 말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쯤되니 강채아는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전술?
그딴 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라지.
“적의 중심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즉각 병력을 이끌고 중심을 헤집어 주세요. 리멘 교단과 양쪽에서 밀어붙여야 적들을 완전하게 섬멸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피해를 최대한 줄여 주세요. 부탁합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저 사람들만 재미 보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나던 차라.”
“무기를 실험할 좋은 기회로군요.”
몸이 근질근질하던 이레귤러들의 전격 투입 결정.
전투가 처음 세웠던 계획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나, 강채아는 어쨌든 좋았다.
‘역시, 전투는 어떻게든 이기는 게 장땡이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치 김시우처럼.
강채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리멘 교단의 방식에 적응해 버린 강채아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