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4.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정화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정화자는 방어선을 돌파, 빠른 속도로 북진 중입니다.”
“예상 도착 시간은요?”
“늦어도 7시간. 7시간 내에 이곳에 도착합니다.”
“7시간이라…….”
나는 저 멀리의 베이징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대한 신성력이 느껴진다.
게다가 신성력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압도적인 격>이 당신을 압박해 옵니다.]피부를 강하게 짓누르는 것만 같은 격의 차이.
고대 신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려 주듯, 베이징에서는 숨 막힐 정도의 격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반인들이라면…… 이미 죽었거나, 그들에게 복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우리 쪽 병력들도 테라나 리멘의 가호가 없었다면 지금쯤 분열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리멘 교단은 리멘이.
나머지 본대는 테라가.
두 여신이 우리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덕분에 다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격이었다.
「베이징 전체가 녀석들의 생추어리가 되어 버렸군.」
「테라, 네가 한발만 빨랐어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필연이야. 나 혼자서 저 녀석들을 어떻게 막아? 하여간에 교황, 내가 주신좌를 뺏기면 다 끝이라는 건 계속 명심하도록 해라.」
“내 머릿속에서 둘이서 싸우지 좀 마. 테라, 리멘이 도와주러 온 건데, 좀 예의를 갖춰.”
「이거 솔로는 억울해서 살겠나. 하여간에 나랑 리멘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돕지는 못한다. 전쟁은 네 몫이야. 부탁한다, 교황.」
「시우, 몸조심해야 해.」
여신이 둘이나 내 행운을 빌어 주니 재수가 나쁠 리가 있나.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다음, 다시 베이징을 바라보았다.
도시 전체에 신성 결계가 생성되어 있었다.
거기에 격까지 더해진 신성 결계라, 단순한 화력만으로는 뚫기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더 기이한 건 이 정도로 가깝게 왔음에도 적들의 병력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가능성은 몇 가지 있다.
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신성 결계가 공간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
외부에서 내부를 관측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그 가설의 신빙성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도 몇 개 있었다.
“차원 반응만 강력하게 관측되었을 뿐입니다. 광학 장비를 통해서도 감지되는 건 없구요.”
라파엘이 보유한 장비로도 베이징 내부를 살필 수가 없었다.
즉, 베이징 내부는 완전히 미지의 공간이다.
예전에 몇 번 보았던 고대 신의 능력을 생각해 본다면…… 아예 지구와 다른 공간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급선무다.
“아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도.”
“차원 반응을 고려했을 때,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방법을 강구해 보죠.”
요하 방어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어선이다.
오히려 저쪽이 까다롭다.
요하 때는 압도적인 파워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저건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
“교황님!”
띠리리리링-.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저장하지 않았지만, 눈에 익숙한 번호.
“무명.”
무명, 그 빌어먹을 놈의 전화번호란 걸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보다 먼저 도착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교황님.
“네 목소리 듣는 것도 역겨우니까 빠르게 용건만 말하고 꺼져.”
-전쟁 중이라 많이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쯤 베이징을 둘러싼 결계와 마주하셨을 것 같군요.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프실 텐데, 제가 좀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너희들이 날 도와?”
지나가던 개가 박장대소하고 갈 일이다.
-일단은 오월동주라고 하지요. 저 안에 들어가고 싶은 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과정은 같으니까요. 아, 그리고 이건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전화기 너머의 무명은 작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결계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서쪽의 성소, 동쪽의 성소. 그 두 곳을 무너뜨리면 됩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루시퍼 님을 먼저 선발대로 보내 뒀지요. 성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격이 필요합니다.
회귀자일 가능성이 높은 놈이라서 저놈의 말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
루시퍼.
정화자 측에 남아 있는 마지막 마왕이었고, 마왕 놈들도 격을 보유한 놈들이니까 말은 된다.
하지만 내가 저 녀석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뭘 믿고…….”
-하지만 루시퍼 님은 제게 격을 많이 빼앗기셨기 때문에 성소를 박살 내기엔 좀 부족한 감이 있지요.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장치?”
이 정신 나간 놈이 도대체 뭘 준비했을지 감도 못 잡겠다.
그러나 나는 곧 이어진 녀석의 말에,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퍼 님에게 남은 격을 일시에 폭발시킬 겁니다. 마왕이나 되는 놈을 자폭시키는 거니, 성소 하나쯤은 박살 낼 수 있습니다. 그쪽에는 이레귤러가 넷이나 되니까…… 동쪽 성소는 부탁하도록 하지요. 지금쯤이면 라파엘 그 양반이 위치를 추적했지 싶은데요.
녀석이 성소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 순간, 라파엘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비정상적으로 차원 반응이 높은 지역이 두 곳 있기는 합니다.”
“모르는 게 없는 놈이네. 그래, 무명 놈아, 그래서 루시퍼 놈을 자폭시키겠다고?”
-물론이지요. 흔적도 없이 자폭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교황님도 만족하시는 거 아닙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
-지금 자폭시키겠습니다.
그때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엄청난 에너지 파장이 우리가 있던 곳을 휩쓸었다.
마기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건 분명 격이었다.
폭발적으로 주변을 휩쓰는 격의 파도.
그리고 그 순간.
스으으으으으.
베이징을 격리하고 있던 신성 결계가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보셨습니까?
“너, 설마 루시퍼를 남겨 뒀던 이유가 이거였냐?”
-마왕들은 아주 훌륭한 불쏘시개가 되어 주었습니다. 리멘 교단을 성장시키기도 했고……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한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놈에게 있어서 그저 수단에 불과했다.
루시퍼는 마왕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격을 지니고 있던 존재.
그런 존재의 최후라기에는 이건 너무나도 허무하지 않은가.
-자, 성역이 코앞입니다. 성역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무명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고, 난 다시 전화기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라파엘.”
“예.”
“차원 반응이 강하게 느껴졌던 곳, 그곳으로 곧장 갑시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에이든도 부를까요?”
“이번에는 자현이까지.”
어차피 격이 없으면 타격을 줄 수 없다.
이레귤러급이 아니라면 어쩌지 못할 테니까, 딱 그들만 데려가기로 했다.
에이든의 투기와 자현이의 천마기에서는 격의 흔적이 느껴졌으니, 아마 그들로 충분할 것이다.
“빠르게 움직입시다.”
지금부터는 시간이 생명이다.
그렇게 죽음의 치킨 런이 시작되었다.
5.
이레귤러들을 전부 동원한 나는 곧장 동쪽의 성소로 향했다.
성소라고 해서 뭔가 신성한 분위기가 날 것 같지만, 사실 그딴 건 없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시설.
그 시설에는 온통 검은색 점액질과 회색빛의 촉수로 가득했다.
“꼭 외계인 놈들 같구만.”
에이든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촉수를 도끼로 베어 내면서 침을 걸쭉하게 뱉었다.
“이딴 놈들이 지배하는 세계라면 볼 것도 없지.”
“제 스승님을 모셔 왔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음?”
“제 스승님께서는 미지의 적을 상대하는 것을 즐기셨거든요.”
자현이 역시 검을 아름답게 휘두르면서 얼굴 없는 괴물들을 잘라 내 갔다.
말이 성소지, 그냥 괴물 굴이나 다름없는 장소.
그래도 이레귤러들만 데려온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성소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괴한 유기물들로 뒤덮인 성소의 중심.
그곳에는 회색의 신성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대한 수정처럼 빛나고 있는 돌에서는 엄청난 신성력과 함께 격까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이것이 결계의 중심인 건 틀림없었다.
나는 이레귤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신성석 앞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귓가에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들의 성역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도착했구나. 너를 위해 준비해 둔 게 많다. 네가 이 문을 여는 순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플루토의 목소리였다.
그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
신성석 너머로 그의 존재감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신성석 앞에 선 순간, ‘문’을 어떻게 여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초대장이었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열 수 있는 문.
신성석에 담겨 있는 신성력과 격>을 흡수하면, 신성석은 기능을 정지할 것이다.
격>을 흡수하는 능력은 이미 나에게 있다.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문.
【이번에는 네가 침략자구나. 우리의 성역에 침범하는 자들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의 일원이 되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소멸당하거나. 네가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나는 플루토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신성석 위에 손을 올렸다.
신성석은 마치 살아 있다는 듯이 에너지를 방출한다.
신성력, 적의, 격.
그 모든 것들이 꿈틀거리며 내 몸을 잠식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멘의 가호가 나를 지켜 준다.
[패시브 스킬 신성 보호 Lv. Max>가 사이한 정신 조작을 방어해 냅니다.]리멘의 힘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내 정신을 잠식할 수 없다.
우우우우웅.
내 회색빛 신성력이 그 신성석 안으로 스며든다.
그러자 잠시 후, 나의 신성력이 신성석을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곧 가. 기다려.”
【기대하마.】
쩌저저적.
신성석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었던 것이 빠르게 뻗어 나간다.
틈에서 뻗어 나간 균열이 마침내 신성석 전체로 퍼졌을 때.
쨍그랑-!
신성석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소’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곧바로 성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탈출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리가 깊숙이 뚫어 둔 구멍의 벽을 타고 탈출하면 끝이었다.
우리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허.”
“햐.”
에이든과 자현이가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보았다.
신성 결계는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징, 아니 한때 ‘베이징이었던 것’의 베일이 벗겨졌다.
도시 전체에 드리워진 회색빛 구름.
구름 위에는 신전처럼 보이는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상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민간인들이 보인다.
지극히 작위적인 분위기.
그 도시를 보고 있자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든 것이 오로지 고대 신을 숭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곳.
고대 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있는 시민들과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얼굴 없는 괴물들까지.
이딴 게 성역이라?
“……지랄하고 있네.”
성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옥이 마침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