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6.
성역의 문이 열리자마자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리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역 안으로 발을 내디딘 우리에게 여덟 장의 날개를 지닌 ‘천사’들이 다가왔다.
천사는 총 다섯 마리.
눈을 가늘게 뜨면서 녀석들의 전투력을 파악했다.
하지만 위험해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었으나,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아마도 전령의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녀석들.
나는 너클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인간 출신이네?”
“그렇습니다. 위대한 분들의 간택을 받아, 그분들의 말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름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나는 내 앞에서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 중국인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이 거대한 도시 전체가 고대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이 ‘천사’만 봐도 그렇다.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천사.
틀림없이 베이징에 살던 이들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싸우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해 달라 하셨습니다.”
“아까까지는 직접 말을 걸었는데 말이지?”
“위대한 분들의 회합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을 제가 대신 전하는 점, 사죄드립니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웃기는 꼴을 바라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내 뒤에서 도시를 둘러보고 있던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관광이라도 시켜 줄 생각인가?”
그러자 ‘천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여러분들을 모시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원하신다면 성역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곳의 모든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였습니다. 불행한 이들이 한 명도 없는, 바람직한 세계 아니겠습니까?”
이 작위적인 도시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도시였다.
우리를 막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병력은 하나같이 웃으면서 무기를 쥐고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분들께서 만들어 내신 질서 속에서 행복합니다. 이 세계에는 분쟁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큰 뜻을 향해 나아갑니다.”
“짐승 우리 속에 갇혀 사는 게 행복이란 말이지? 개돼지나 다를 바 없군그래. 자유의지도 없이, 이렇게 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에이든의 비웃음에 천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영광의 대족장, 에이든 님. 위대한 분들께서는 당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지구를 대표하는 영웅이라고 칭하셨지요. 당신이 헤쳐 온 세계에 비해서는 참으로 행복한 곳이 아닙니까?”
“이딴 게?”
“적어도 이곳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죽어 나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땠습니까? 어린아이, 여자 가릴 것 없는 학살극이 이어졌었지요. 당신도 내심 괴롭지 않았습니까?”
“크하하하!”
그 말에 에이든은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곧 천사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다. 너희들이 아무리 지껄여 봤자, 너희들이 하는 짓은 인간을 그저 가축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과해. 나는 가축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죽더라도 인간으로 죽을 거야. 궤변으로 날 설득할 생각은 미리 접어 둬라.”
“유감이군요. 당신 같은 똑똑한 인간이라면 쉽게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면…… 라파엘, 당신은 어떻습니까?”
“음, 야만인에게 안 통하니 이번에는 지성인을 설득하려는 겁니까?”
라파엘은 웃으면서 천사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에게 조금만 협조를 해 준다면, 당신을 당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로 돌려보내 주겠습니다.”
라파엘이 나에게 협력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곳에 두고 온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마침내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서.
만약 저쪽에서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어떨까?
솔직히 말해서 라파엘을 붙잡을 자신은 없었다.
“회합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새로운 주신께서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주신좌의 힘이라면 차원의 문을 여는 건 일도 아닐테지요.”
“꽤 먹음직스러운 제안이로군요.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새로운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과 싸워 주시면 됩니다.”
“그것참, 재밌는 거래 조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내가 뭘 보고 당신들을 믿습니까?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라파엘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매력적인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이미 교황님과 거래 중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양다리의 대가는 죽음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교황님을 막을 자신이 없습니다.”
라파엘의 대답에 천사는 여전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군요.”
천사의 태도에 기분이 나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현이었다.
“나한테는 왜 안 물어보냐?”
자현이는 검을 휘적거리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이레귤러들은 설득하려고 했던 천사가 자신에게만은 말을 걸지 않아 섭섭했던 모양이다.
자현이의 질문에 천사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 편에서 싸워 줄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그러자 자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이거나 처먹어.”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천사의 이레귤러 포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요.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참혹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천사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에서 신성력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김시우 교황, 당신은 한 명의 신격으로서 회합에 참석할 자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회합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였다.
귓가에 테라와 리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가 지켜 줄게.
여신들이 나를 사지로 몰아넣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넌지시 천사에게 물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성역을 둘러보시든가, 아니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시든가 선택하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역을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저희들도 당장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요컨대 먼저 때리지만 않으면 싸우지는 않겠다…… 이건데.
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저 혼자서 다녀올 테니까 다들 뒤로 빠져 계시죠.”
그러자 에이든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혼자서 괜찮겠어? 저놈들이 뭔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여신님들께서 괜찮다고 하시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전력은 대강 파악했으니까, 미리 가서 전략이라도 세우고 있어.”
내 말에 동료들은 못 미더운 표정을 지었으나 순순히 따라 주었다.
에이든은 도끼를 어깨에 올려 둔 채로 말했다.
“네가 3시간 내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싸그리 박살 내 주마.”
“든든하네.”
“복수는 해 줘야 편히 눈감지 않겠어?”
“……나 아직 안 죽었는데.”
그렇게 해서 상황 정리는 끝.
동료들에게 이것저것을 당부한 나는 다시 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합에 참석하는 방법은?”
그러자 천사는 빙긋 웃으면서 손을 휘둘렀다.
사르르륵.
그러자 허공에 구름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생겨났다.
그 계단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드리워진 구름까지 이어져 있었다.
회합이라.
……쫄지는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
7.
계단을 올라 마침내 구름 위로 올라섰다.
신성력으로 충만한 곳.
올라서자마자 신격들이 내뿜는 엄청난 격이 사방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보호자는 꼭 있어야지.”
“혼자 사지로는 안 보내.”
현신한 테라와 리멘이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여신은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
오른손은 리멘이.
왼손은 테라가.
두 여신의 신성력과 격은 보호막처럼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만약 둘이 없었다면…… 다른 신격들의 격에 압도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름 위의 신전이라.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네.”
나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테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상력이 빈곤한 거지 뭐. 욕심 가득한 놈들이 애써 신성해 보이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 거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무나.”
“테라, 베이징이…….”
“이미 늦었어. 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미 영혼을 빼앗긴 자들이야.”
그들을 구제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오른손을 잡고 있던 리멘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긴장하지 마, 시우. 우리가 있는 이상 저들은 너를 함부로 할 수 없어.”
“상황이 이런데 긴장을 안 할 수가 있을까?”
사실상 적의 아가리로 들어온 셈이다.
녀석들이 아가리를 닫아 버리는 순간, 나는 곤죽이 되어 죽을 게 뻔하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수준의 격이었다.
“귀하신 분께서 초대장을 받아 주셨군그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전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의 신격이 한 명 걸어 나왔다.
전신에서 어두운 신성력을 흩뿌리는 존재.
바로 플루토였다.
플루토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목소리를 주고받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지 싶어. 우리 교황님께서 보호자 두 분과 함께 이곳에 오셨으니…… 일단은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인가? 곧 유폐될 주신과 이계의 주신의 조합이라! 제법 잘 어울려.”
플루토가 히죽거릴 때, 리멘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허여멀건한 새끼가 어딜 자꾸 말을 붙여? 나에게 말을 걸 거면 최소 주신좌에 앉고나 해라, 이 잡신아.”
“리멘, 우리들은 당신에게 이미 몇 번의 기회를 주었다. 당신의 그 조그마한 세계로 돌아갈 기회를 말이지. 하지만 거절한 건 당신이다. 약속 하나 하지. 주신좌에 앉자마자 너를 취해 주마.”
그 말에 테라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탐욕스러운 다른 형제들이 너를 주신좌에 앉혀 준다던?”
그러자 플루토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곧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리될 것이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힘으로 억누르면 그만. 아직 다른 형제들은 힘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지. 그에 반해 나는 예전의 힘을 모두 되찾았다. 멍청한 인간들이 벌여 준 전쟁 덕분이다. 나는 수많은 죽음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테라,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플루토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오면서 말을 이어 갔다.
“합일을 위한 영혼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내 힘도 함께 강해진다. 인간들은 이걸 보고 일석이조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녀석의 말에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 누구 물어본 사람?”
“……뭐?”
“우리들은 그런 걸 보고 보통 설명충이라고 한단다.”
내 심드렁한 말에 플루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재밌는 놈이구나. 여신 둘이 너를 보호해 준다고 해서 겁이라도 상실한 거냐? 그래, 뭐 지금은 손님이니 그 무례를 용서해 주마.”
그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잠시 후, 사방에서 격을 지닌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던 놈들.
추잡한 욕망으로 억겁의 세월을 견뎌 내고, 마침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추방자들.
그들 중에는 플루토처럼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끔찍한 괴물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저마다 높은 격을 지니고 있는 신격이란 점은 똑같았다.
“시우.”
리멘은 내 오른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저 일그러진 이들을 꼭 눈에 담아 둬. 욕망에 뒤틀린 신격들의 말로가 어떤 건지, 똑똑히 기억해야만 해.”
“……리멘.”
저 많은 신격들을 어떻게 해야 처리할 수 있을까?
내 눈으로 직접 적들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려고 한다.
나는 지금 내가 이 긴 이야기의 종장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시우.”
다시 한번 리멘이 나를 부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까지 내 손을 놓지 마. 그것만, 딱 그것만 기억하는 거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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