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95. 클라이맥스로
1.
‘회합’이 시작된 지 15분쯤이나 지났을까?
나는 어째서 리멘과 테라가 내 손을 꽉 잡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녀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잡았던 게 아니다.
그녀들이 내 손을 잡았던 건,
「우리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필멸자들에게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을 죽여 영혼을 흡수하는 게 옳다.」
「대륙을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차원의 종복들을 데려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건 어떤가?」
「인간의 고기를 좋아하는 종복들이 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 중 일부는 살려 두는 것이 좋아 보이는군.」
「지구의 인간들은 아주 오랜 세월을 포식자로서 살아왔다. 꽤 재밌는 그림이 그려지겠군.」
나를 막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 앞에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을 바라보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인간의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녀석들은 벌써부터 지구를 점령한 듯, 새로운 질서를 논하고 있었다.
대륙을 다시 만들고, 생태계도 손보겠다는 오만한 발언들.
욕망으로 비틀렸고, 그 욕망으로 인해 쫓겨난 존재들이 지구의 운명을 논한다.
“참아라, 시우. 아직은 때가 아니다.”
테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녀석들의 영혼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 이 자리에서 저 녀석들을 소멸시킨다 하더라도, 편린이 남아 있는 이상 무의미하다. 너도 이미 일전에 경험하지 않았어? 마왕들 말이야.”
“완벽한 소멸을 위해서 내가 참아야 한다?”
“그래. 나라고는 저 병신 머저리들을 내버려 두고 싶겠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감히 내 영역을 넘보고 있어. 나도 너만큼이나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저들은 분명한 악이었다.
신격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격’을 지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목구멍 너머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로 역겨운 새끼들이다.
나는 천천히 이 신전에 모여 있던 신격들을 둘러보았다.
리멘과 테라를 뛰어넘는 격을 지닌 이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껏해야 플루토 정도만 리멘과 테라를 상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이 두 여신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둘은 저들 모두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기를 바란다.
불씨조차 남기지 않게, 아주 완벽하게.
“김시우.”
회합이 이루어지는 도중, 플루토는 나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이곳의 신격들을 대표하여 너에게 제의를 하나 하도록 하지. 꽤 그럴듯한 제안이니 숙고해 주길 바란다.”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걸까?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뜻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플루토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록 네가 다른 차원을 관장하는 주신의 하위신이긴 하나, 그 결속만 해제한다면 온전한 지구의 신격이 될 수 있다.”
“리멘을 버리라는 거지?”
“만약 네가 지구의 신격으로 남겠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너를 위해 기꺼이 배려를 해 줄 수 있다. 신격들은 저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거둘 수 있는 성지를 부여받게 된다. 네가 이곳에서 쌓아 올린 영웅적인 업적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인간들이 동북아시아라고 부르는 곳 전체를 성역으로 주마. 물론, 이곳 베이징을 포함해서 말이다.”
앞서 천사가 내 친구들을 회유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레퍼토리.
플루토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황금 잔과 투명한 유리병을 소환했다.
또르르륵.
그는 잔에 유리병에 담겨 있던 황금빛의 액체를 따랐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음료.
“옛날에 인간들이 넥타르라고 불렀던 음료다. 이 잔을 마시면, 너는 완전한 지구의 신격이 될 수 있지. 기회는 지금뿐이다. 너를 따르는 이들을 지키고 싶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가?”
“좋은 기회?”
“너만의 성역에서는 네가 추구하는 질서가 유일한 질서가 된다. 인간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래, 자치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자치령으로서 너희들의 편에 서라?”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보호를 약속해 주마.”
마치 정복자가 내려 주는 자비인 양 말하는 플루토.
즉, 내가 리멘을 버리면 나머지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 말에 담긴 뜻을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 포기하고 너희들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 주겠다, 이 말이잖아.”
“그래. 너는 그 누구보다 네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느냐? 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조건 아닌가? 내 딴에는 네 체면을 많이 살려 준 거다.”
“허.”
나는 피식 웃으면서 테라와 맞잡은 손을 살짝 놓았다.
리멘이 자기 손을 놓지 말라고 했으니, 방법은 이뿐이다.
테라와 맞잡았던 왼손으로 녀석이 내준 ‘넥타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잔 속의 액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북아시아는 주겠다?”
“우리가 만들어 낼 세계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네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 아니었나?”
“신격이라는 새끼가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면 안 되지.”
잔을 들어 녀석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다음,
주르르륵.
그대로 넥타르를 녀석의 머리 위에 쏟아 버렸다.
황금빛의 액체가 녀석의 흑발을 타고 떨어진다.
모욕적인 순간임에 틀림없었으나, 플루토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크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하하! 그렇게 나와야지.”
“지옥에나 떨어져. 아니, 널 위한 지옥이 있을까?”
“지구에서 내가 관리했던 지역을 지옥이라고들 불렀지. 지옥은 원래부터 날 위한 곳이었다.”
“나르시즘이 너무나도 강한 놈이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잔을 옆으로 던졌다.
그러자 검은색 점액질에 뒤덮여 꾸물거리던 신견 한 놈이 그 잔에 맞았다.
【감히 천한 인간이-.】
이름 모를 그 신격이 점액질을 꿈틀거리면서 화를 내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격을 끌어올려서 녀석을 짓눌렸다.
“뷔페가 차려져 있는데 그냥 가기도 좀 뭐해. 가기 전에 몇 놈 잡아먹어도 되냐?”
그러자 플루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끼리 해우를 나눌 시간은 주는 게 어떻겠나? 그래서…… 내 제안을 거절할 생각인가 보군.”
“내가 우리 여신님과 약속을 했어.”
“그것참, 유감이군. 아직 인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큰 물결을 보지 못하는구나.”
나는 나를 향해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플루토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었다.
그리고 한껏 비웃음을 담아서 말해 줬다.
“난 여전히 인간이다.”
“누가 그걸 믿겠나? 넌 이미 신격이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인간이다. 그냥, 인간들 중에서 좀 특이한 놈일 뿐이지.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 녀석들과 손을 잡는다?
그건 그저 내 사람들을 이 녀석들의 관상용 금붕어로 바치는 꼴이다.
그제야 나는 테라와 리멘이 나를 왜 이곳으로 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신격들이 모였다고 해서,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저놈들 중에서는 나에게 잡아먹힐 만한 놈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협상은 결렬이다.”
“아쉽게 되었어. 네가 우리 편에 섰다면…… 더욱 완벽한 질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플루토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더니, 곧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천사들을 향해 말했다.
“손님들 돌아가신다. 밖까지 조심히 모셔다 드리도록.”
“알겠습니다, 죽음의 아버지시여.”
천사들은 나와 두 여신 앞에 멈춰 서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곳에서 나가기 전, 나는 플루토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얼마든지. 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려무나. 너와 네 두 보모의 영혼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반드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비틀린 신성함으로 가득 찬 이곳을 불로 태우면 제법 괜찮은 장면이 연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쫓겨났다.
2.
“용케 살아 돌아왔어? 당장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대한민국 본대의 천막으로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겨 준 건 술을 마시고 있던 에이든이었다.
“좀 쉬고 있지 그랬냐.”
나는 천막 안의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에이든에게 말했다.
그러자 에이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은 이미 충분히 잤다.”
“내가 너랑 헤어진 지 몇 시간이나 지났지?”
“6시간. 정화자의 본대도 베이징 근처에 도착했다. 전투를 준비 중이라더군. 자, 봐라.”
에이든은 자신의 옆에서 날아다니고 있던 드론 하나를 잡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라파엘의 드론.
그 와중에 라파엘이 새로운 드론을 생산해서 정찰을 돌렸던 모양이다.
우우우웅.
드론에 내장되어 있던 홀로그램 장치에서 빠르게 영상이 출력되기 시작한다.
영상 속에는 마수, 마족 들을 비롯한 정화자의 군대가 보였다.
“상급 마수들과 망자의 군대라.”
무명 그놈이 꽤 신경을 쓴 모양인지, 에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최정예 언데드들과 마수, 마족 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저 군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 없다. 즉, 무명 놈이 지금까지 이 어마어마한 군대를 서부 지대에 숨겨 뒀다는 의미기도 했다.
“라파엘이 정화자 본대와 대한민국 본대가 붙었을 때를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도 제공했다.”
“결과는?”
“이레귤러를 제외한 전력을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 본대의 완패다. 저것들은 재앙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무명, 그 자식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상황을 준비했다는 건 틀림없다.”
에이든의 전략가적인 기질은 굉장히 뛰어나다.
수차례의 대회전을 경험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뭐…… 딱 봐도 끔찍한 군대다.
전력 비교가 큰 의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성역을 침범하기에는 충분하겠어.”
“적의 주 전력은 어땠지? 그 신격이라는 놈들 말이야.”
“몇몇은 정말 위험하긴 한데, 신격 모두가 위협적인 건 아니었어.”
여기까지 와서 승산을 따지진 않기로 했다.
어차피 퇴로란 없었다.
만약 저 녀석들이 이곳에서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것대로 끝이다.
“여신님들께서 뭘 준비하고 계신지가 중요하겠는데…… 혹시 이야기를 들은 거 있나?”
“아니.”
“그것참.”
에이든은 술병에 남아 있던 술을 남김없이 비웠다. 그리고 병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신앙의 영역이군. 어쩔 수 없지. 나도 여신님들을 믿는 수밖에.”
“너, 무신론자라면서.”
“어쩌겠어?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걸.”
테라와 리멘은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
그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상황을 준비해 왔을 테니, 분명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가로저어 그 불안감을 떨쳐 내는 것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성역을 뚫고 들어가는 거다.
테라는 나를 이곳에 데려다주면서 성역을 무너뜨릴 방법을 알려 주었다.
-성역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신전 모두를 무너뜨리면 돼. 간단하지? 녀석들이 새로운 주신을 추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으로 3일이야. 3일 안에 모든 신전을 무너뜨려 줘. 모든 신전이 무너지면, 그 이후부터는 나와 리멘이 해결할 거야.
우리들은 여신들에게 틈을 만들어 주면 된다.
아까 전에 보았던 성역의 병력을 생각해 봤을 때, 그 틈을 만들어 주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긴 한다만…….
“언제 우리가 유리한 전쟁을 했다고.”
그래도 여기까지 뚫고 들어오는 데 병력 손실이 크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천막 밖으로 펼쳐진 성역의 경계를 주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황님.
귓가에 라파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이어 한 가지 소식이 들어왔다.
-정화자가 성역을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눈을 살며시 감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이제 움직입시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