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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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화
5.
수도 없이 뭉개 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앞길을 가로막는 광신도들과 괴물들.
그 모든 것들을 힘으로 짓누르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으아아아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밀어붙여!”
상해에서 출발한 병력들이 합류해 한중일 삼국의 연합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 본대와, 리멘 교단의 병력은 서로 힘을 합쳐서 이 전장을 나아갔다.
이레귤러들은 그들을 보호하며 엄청 영리하게 싸움을 이어 나간다.
-막지 마라, 자현아. 저놈들은 형 몫이다.
-아니, 형님, 형님도 그렇고, 시우 형님도 그렇고, 왜 저한테 하지 말라고만 하십니까?
-그렇다고 하늘에 떠 있는 라파엘보고 내려오라고 할 수 없지 않냐?
-제가 허공답보를 쓰면서 공중전 보여 드려요? 형님은 이런 거 못 하잖아요.
통신 채널을 통해서는 에이든과 자현이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그들은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면서 효과적으로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각자가 각 세계의 정점이었거나, 정점에 가까웠던 자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력은 열세가 되겠지만, 그 시기가 찾아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야만 했다.
“후으읍.”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빠르게 공간을 접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신전.
그곳에 도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반겨 주는 놈들이 꽤 있었다.
“이곳은 우리들의 신전입니다. 아무리 당신이라고 할지라도, 성역에서 신전을 파괴할 순 없을 겁니다.”
지난번 지도자급 회담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백명교 대교구장의 오른팔.
이름?
이름 따위는 모른다.
애초에 물어본 적도,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죽여 버릴 놈의 이름을 물을 필요는 없다. 그것만큼 시간 낭비인 일이 어디 있겠어?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박살 내는 것보다 쉬운 게 어디 있다고?”
“높은 곳에 계신 분들께서 지구를 위해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다. 당신들이 그분들의 거사를 방해하는 걸 좌시할 순 없습니다.”
“축제의 묘미가 뭔지 알아?”
슬쩍 웃으면서 손에 끼고 있던 건틀렛을 해제했다.
저쪽의 머릿수가 아주 많다. 대략 5백은 훌쩍 넘는 숫자다.
게다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백명교 내부에서도 정예들을 끌어모은 것 같다.
나를 향해 말을 거는 저놈 역시 이레귤러급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전력.
그래서 그냥 건틀렛 말고 다른 걸로 한 번에 휩쓸어 주기로 했다.
이번에 리멘이 지구에 현신한 이후, 리멘에게 따로 허락을 받은 무기가 있다.
[성유물 심판의 검>을 소환합니다!] [성유물 심판의 검>이 이단자의 신성력을 감지합니다. 마기를 상대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발휘합니다!]이 미래까지 봤던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 심판의 검>은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다.
이단자들을 세상에서 지워 내는 힘.
이 검이 꽂혀 있던 상해 성지는 리멘이 직접 성유물을 소환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전쟁,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교단 최고의 성검을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잖아?
우우우우우웅-.
심판의 검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새하얀 빛 속으로 내 회색빛의 신성력도 섞여 들어간다.
검이 거세게 진동한다.
그 힘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면서 주변의 공기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축제를 깽판 치는 게 제일 재밌어. 너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 뭐 그런 거지.”
나는 오랜만에 쥐어 보는 심판의 검의 그립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리멘의 사도로서 나에게 허락된 검.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심판의 검은 그 어느 때보다 생소했다.
이 정도쯤 되는 성검에는 일종의 자아가 형성되어 있다.
에덴 최후의 전투에서 나를 도왔던 검이었으니, 이 검은 그 누구보다 내 힘을 잘 기억한다.
그렇기에 이 녀석은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있나 보다.
지이이이잉.
검 끝에 신성력이 잔뜩 응축된다.
그릇된 신성력을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신성력.
그 응축된 신성력 위에 내 격이 뒤덮였고, 곧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오늘도 내가 할 일이 아주 많아서. 그냥 한 번에 몰려들어라. 그래야 베어 버리기 쉽지.”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다.
굳이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어?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곧 백명교의 성기사들이 신성력을 내뿜으면서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희고도 밝은 빛을 위하여!”
“이단을 심판하라!”
그들에게 나는 이단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들이 이단이다.
신성력이라는 같은 힘을 사용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그곳에 있었다.
나를 앞에 두고도 저렇게 장렬하게 돌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나와 같은 이유다.
자신이 모시는 이를 목숨을 바쳐 지킬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너희들의 잘못은 바로 그거야.”
신념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릇된 신념은 질타받아 마땅하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서 부드럽게 칼을 휘둘렀다.
우우우우우웅-!
검 끝에 모여 있던 신성력이 곧 폭풍이 되어 그들을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 신성력의 칼날이 나의 적들을 갈가리 찢어 나간다.
“교화아아아앙!”
폭풍을 뚫고 대교구장의 수하가 뛰쳐나온다.
녀석의 검 끝이 서리빛으로 빛난다.
이레귤러급에 준하지만, 나와 녀석에게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너에게 격을 내려 주지 않은 네 신을 탓해.”
푸욱.
격을 이용해서 녀석의 다리를 묶은 다음, 곧바로 심판의 검으로 다리를 베어 냈다.
근본적인 격의 차이.
플루토와의 전투에서 격의 차이를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아주 잘 배웠다.
“내가 원래 몸으로 배우는 건 아주 잘하거든.”
나는 다리를 잃은 채 버둥거리는 그 녀석을 바라보면서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억울해하지 마라. 너는 그놈들에게 그저 쓸 만한 장기말이었을 뿐이잖아.”
“대교구장께서 너를 반드시-.”
녀석은 입안에 담긴 말을 끝내 완성시키지 못했다.
내가 곧장 검을 내리쳐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운 좋은 단역 주제에 말이 왜 이렇게 많아.”
구구절절한 유언을 들어 줄 시간은 없었다.
백명교의 대교구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대강 눈치챘다.
그녀는 아마 성역의 중심에 위치한 대신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후, 곧장 심판의 검을 신전의 바닥에 꽂아 넣었다.
신전과 연결된 일종의 지맥을 따라서 신성력이 중앙 결계에 공급되는 구조.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내가 신전의 지맥을 헤집으면서 신전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을 때쯤, 저 멀리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중앙의 신성 결계가 약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무명, 분명히 그놈의 작품이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진득한 마기의 냄새가 풍겨 왔다.
“곧 보자고.”
쿠르르릉.
신전이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붕괴되는 신전을 뒤로하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6.
다른 신전을 부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전투에 대한 보고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한국 3팀 전멸.
-일본 2팀 전투 불가. 뒤로 빠지겠음.
-리멘 성기사단 2팀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요하 방어전과 비교했을 때, 처절하고도 슬픈 보고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적진의 한복판이다.
고대 신 놈들의 세례를 받은 정예들이 도사리고 있는, 그야말로 마굴 같은 곳.
희생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의미 없는 게 아니다.
콰르르르르르릉!
나는 서쪽에 위치한 마지막 신전을 무너뜨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힘이 부치는 걸 느껴 본 적이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지구로 넘어온 이후, 이 정도로 피곤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 신전의 지맥까지 휘저어 버리자 귓가에 라파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앙 지역의 결계가 희미해졌습니다.
라파엘의 목소리에서조차 피로가 묻어 나온다.
전투가 시작된 지 벌써 5시간이 지났다.
라파엘이 아무리 슈트를 통해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한들, 피로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라파엘의 기본 체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가 개발한 약물을 통해서 피로를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있을 뿐.
“바로 돌입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세민 씨는…….”
-순 리를 완벽하게 소멸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듯하지만, 여전히 전장에서 활약 중입니다.
이세민 씨가 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중상을 입었는데 계속 싸우고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이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을 모양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의 가족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세민이 어째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지 잘 안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를 이곳에서 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에이든, 자현이, 두 사람 상태는?”
그러자 통신 채널을 통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아직 거뜬하다.
-내공이 슬슬 바닥을 향해 가긴 하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혈도를 역류시키면 되니까요. 동귀어진 정도는 충분합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이레귤러들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전략무기에 준하는 이레귤러들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소리는 그만큼 이곳의 환경이 끔찍하다는 뜻이다.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라파엘.”
-예, 교황님.
“이세민 씨를 데리고 잠시 전장에서 후퇴하세요.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데려가십시오. 외과 수술은 라파엘이 직접 하고,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라파엘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뒤로 후퇴해서 집중적으로 케어를 받고 전장에 복귀하는 게 옳은 판단이다.
내가 중앙 결계 내부로 진입한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될 테니, 소중한 이레귤러들이 개죽음당하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에이든과 자현이는 나와 함께 중앙 결계 내부로 들어간다. 레오, 루나.”
-예, 성하.
-말씀하세요.
“지휘권은 리스한테 이양하고 너희들도 따라 들어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레오와 루나에게도 내 신성력이 흘러들어 갔었다.
내 신성력을 품은 그 둘이라면 저 중앙 결계 내부에서도 버틸 만할 거다.
나는 빠르게 내부 진입 인원을 선발한 후, 희미해진 중앙 결계를 바라보았다.
결계가 희미해져서일까?
그 안쪽에서 엄청난 힘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성역 전체를 유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신성력과 격.
지옥으로 변한 외부보다 훨씬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질 터였다.
잠시 자리에 멈춰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다.
그들의 희생이,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것들이 무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교황!”
“형님!”
“성하아아아!”
저 멀리서 피를 뒤집어쓴 내 동료들이 달려온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에덴에서 짊어졌던 짐보다 더 무거운 것들이 내 어깨에 올려져 있었지만, 에덴에서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무게를 같이 짊어 줄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지 않은가?
그러니 이번에도 해낼 것이다.
“슬슬 들어가자.”
저들과 함께.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