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97. 종장
1.
테라의 힘을 사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몸속에 깃든 테라의 힘은 마치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내 지시에 따른다.
우우웅.
전신에 신성력이 넘쳐흐른다.
순식간에 증가한 격 역시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플루토의 압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이 힘을 가지고 리멘과 힘을 합쳐서 플루토를 소멸시킨다.
나는 그것만이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테라, 불쌍한 나의 배신자. 너 따위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던 건가?”
플루토는 자신의 창끝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주신으로서의 격.
다른 고대 신의 모든 격까지 흡수한 플루토에게서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나는 조용히 플루토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시스템 관리자 권한 계승 완료.] [비정상적인 계승이었으나 인과율이 해당 계승을 묵과합니다.]눈앞에 여러 가지의 메시지창이 떠오른다.
성역에 접근하자마자 정지되었던 시스템이 드디어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활성화되니 보다 침착하게 내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은 세계의 주신은 오늘 자신의 소중한 연인을 잃겠구나. 안타까운 일이야.”
플루토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리멘을 바라보았다.
“리멘, 이거 손…….”
한쪽 손을 묶인 채로 전투를 벌이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다.
안 그래도 열세인데, 핸디캡까지 지닌 채로 싸울 수는 없었다.
리멘은 내 말에 싱긋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이따가 다시 잡으면 되니까…… 테라의 격을 계승받았으니, 버틸 만할 거야, 시우.”
리멘과 손을 놓자마자 플루토의 격이 더욱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제법 버틸 만했다.
싸우기에 딱 적당한 긴장감이랄까?
나는 가볍게 몸을 풀면서 플루토를 노려보았다.
지난번에는 체급 차이로 인해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좀 할 만하겠네.”
컨디션은 최고다.
몸도 가볍고, 기분도 적당하다.
이번 전투에서 심판의 검은 들지 않기로 했다. 어중이떠중이들 상대로는 굉장히 효과적이었으나, 플루토 같은 존재에게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어색한 무기는 그저 내 전투만 방해할 뿐.
건틀렛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장갑을 꺼내서 꼈다.
“역시, 시우는 장갑을 끼고 있을 때가 제일 섹시해.”
리멘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칭찬에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서 싸워?”
“그럴 리가. 같이 싸울 거야.”
“템포 따라올 수 있겠어?”
“에덴에서 항상 시우의 옆에 있었는걸. 그리고 시우가 싸움 잘하는 거, 누구 닮은 것 같아?”
“이제야 내 싸움 실력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존재를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리멘이다.
최후의 전투였음에도 긴장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덤덤하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전투의 끝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든,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크게 숨을 뱉어 냈다. 그리고 곧장 플루토를 향해서 쇄도했다.
“오너라.”
플루토의 창끝이 단번에 내 심장을 찔러 온다.
살짝 가슴을 비틀어 창의 궤도를 피하려는 순간, 녀석의 창끝 역시 뱀의 혀처럼 뒤틀리면서 집요하게 쫓아왔다.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푸우우욱.
그냥 맞아 주는 거.
창끝이 내 가슴팍을 찔러 들어온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빠르게 신성력을 끌어올리면서 환부 주위를 재생시켰다.
신성력을 머금은 근육에 창끝이 단단하게 잡힌다.
플루토가 짜증을 내며 창을 빼내려고 했지만, 녀석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 것 같아?
“트롤한테 배운 거다.”
“……뭐?”
“급속 재생시켜서 적 무기 먹어 버리기. 트롤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가 옴짝달싹 못 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잖아?”
“이런 미친놈을- 커허어어억!”
콰지지지직.
퍼어어어엉-!
플루토가 창에서 손을 놓고 뒤로 빠지려는 순간, 나는 녀석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로 녀석의 대가리에 곧바로 니킥을 먹여 줬다.
내 무릎이 녀석의 머리에 닿는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플루토의 몸이 허공으로 높게 떠올랐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토스.”
나는 허공에 떠오른 플루토를 바라보며 히죽였고, 뒤쪽에서 리멘이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녀는 손을 깍지 낀 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플루토의 몸을 내려쳤다.
“스파이크.”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플루토의 본체가 대신전의 바닥에 꽂힌다.
순식간에 대신전의 중앙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먼지 하나 없었기 때문에 플루토의 상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깊은 구덩이 속.
그 안에서 플루토는 두 팔로 바닥을 짚은 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구나. 우리를 쫓아냈던 그 짐승 놈들보다 훨씬 재밌어.”
짐승 놈들이라고 한다면, 아마 지금쯤 지상의 전투에 합류했을 영물들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
하지만 잠시 후, 플루토의 입에서 회색빛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플루토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여유가 사라졌다.
플루토는 바닥에 뿌려진 자신의 피를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리멘, 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가? 지구는 나의 세계다. 에덴의 주신인 네가 간섭할 세계가 아니란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리멘의 공격이 꽤 큰 피해를 준 것 같다.
내가 플루토의 목소리를 들으며 곧장 공격을 이어 가려던 찰나, 녀석의 입에서 내 신경을 건드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주신에 오른 존재가 자폭을 하려고 해? 네 조그마한 세계 따위는 버릴 생각인가?”
리멘이 지금까지 나에게 모든 사실을 숨기려고 했던 이유.
내 스스로 계속 부정했지만, 난 이미 저 이야기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덤덤하다.
리멘이 희생할 생각이라는 걸 귀로 들었음에도, 그저 덤덤할 뿐이다.
“탐욕에 물든 신격만큼이나 위험한 게 어디에 있을까. 왜, 같이 죽을 생각을 하니까 겁이 좀 나나?”
“테라나 너나, 둘 다 멍청해도 너무 멍청하다. 지상의 피조물들에게는 절대자가 필요하다. 위대한 존재가 직접 이끌어 주는 것만큼 완벽한 질서가 어디에 있지?”
“그래서 너를 싫어하는 거야.”
리멘의 몸에서 새하얀 불꽃이 솟아오른다.
그녀의 신성력이, 그녀의 격이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한 차원의 주신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
그 힘이 단숨에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우.”
불꽃 속에서 리멘이 나에게 말했다.
“아까 내가 격을 소멸시키는 마지막 방법에 대해서 따로 안 알려 줬지?”
하늘이 성화로 물든다.
곳곳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으나 리멘의 형상만큼은 또렷했다.
“동등한 격을 지니고 있다면, 등가교환을 통해서 격을 소멸시킬 수 있어. 테라가 건네준 격과 내 격을 합치면…… 저 불완전한 주신 정도는 충분히 소멸시킬 수 있을 거야.”
언제부터 이런 결말을 생각했던 걸까?
나는 리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키려는 세상에 그녀가 포함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해 줄 거지?”
리멘은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녀가 여태껏 나에게 했던 질문 중 가장 대답하기 싫은 것이었다.
괴롭다.
그러나 그녀가 이미 결심했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물론.”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의 뜻을 따르는 것, 그뿐.
나는 힘겹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후.
화르르륵-!
하늘에서 빗발치기 시작한 새하얀 화염들이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멘의 순수한 신성력, 격.
그 모든 것이 나에게 깃든다.
리멘의 형상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녀는 테라처럼 소멸한 게 아니었다.
『함께 가자.』
귓가에 리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혼자 두지 않아. 약속할게.』
리멘의 마지막 신탁.
한때는 원망했으나,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의 마지막 부탁.
나는 그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화르르륵.
오른손에서는 회색빛의 성화가 타올랐고, 왼손에서는 새하얀 성화가 타올랐다.
“그래, 가자.”
두 빛깔의 성화를 몸에 휘감은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몸을 휘감은 불꽃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했다.
2.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플루토에 맞선다.
푸우우욱-.
라파엘이 만들어 줬던 무기 중 가장 내가 애용했던 무기, 천망이 리멘의 힘을 담은 채로 플루토의 육신을 꿰뚫는다.
“내 편에 섰다면 더 좋았을 것을.”
플루토는 수십 개의 팔을 만들어 내며 수십 기의 천망을 모두 손으로 움켜쥔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빛에 닿는 순간, 인간이 만들어 낸 병기는 모조리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녀석의 신경을 분산시켜 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콰아아아아앙.
모든 힘을 담아 플루토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손끝에 묵직한 타격감이 전달된다.
“크으으윽.”
그러나 플루토는 바닥에 다리를 고정시킨 채로 그 충격을 고스란히 견딘다.
타격이 없는 건 아니다.
주먹을 녀석의 복부에 꽂아 넣을 때마다, 녀석의 격이 빠르게 줄어든다.
그러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플루토의 격을 소멸시키는 만큼 내 몸속의 격도 함께 소멸하고 있었으니까.
“한 가지를 또 제안하지.”
“아가리 다물어.”
“여기서 멈춘다면 그간의 무례는 모두 용서해 주겠다. 절반, 지구의 절반을 너와 네 여신에게 주마. 주신의 권능도 반씩 나눠 가졌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아가리 다물라고.”
플루토는 슬슬 급한 듯 보였다.
공멸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녀석은 리멘과 공멸한다.
그 사실은 이미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지켜 주려는 리멘의 마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주먹을 꽂아 넣었다.
지금까지 꽤 버티던 플루토의 몸이 저 멀리로 튕겨 나갔다.
플루토가 어째서 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지, 그건 일찍이 깨달았다.
내가 저 녀석을 공격할 때마다 격을 상실하듯, 저 녀석 역시 마찬가지다.
나를 공격하는 건 스스로의 격을 깎아 내는 행위였으니까.
플루토와 리멘의 차이라면 딱 한 가지다.
플루토는 계속해서 신격으로서 존재하고 싶어하지만, 리멘은 플루토와 함께 소멸할 생각이다.
소멸을 피하려는 자와 이미 소멸을 선택한 자.
그 둘의 차이는 확연할 수밖에.
『나는 괜찮아.』
리멘의 목소리를 애써 묻으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땅을 딛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볼품없게 땅에 처박혀 있던 플루토의 몸 위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화아아아아악.
플루토의 몸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주위의 빛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었고, 그 속에서 플루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로 해서는 듣지 않겠구나. 어쩔 수 없지. 끝이 없는 어둠을 너에게 선물하마. 그 깊디깊은 어둠이 네 영혼을 무저갱까지 끌어내릴 터이니…… 그 어둠이 네 결말이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곳에 갇혀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파아아아아앗.
시야가 암전되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