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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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화
3.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내 시야를 가린다.
이 어둠을 마주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원래 이리도 두려운 걸까?
나는 손을 뻗어서 어둠을 휘적거렸다.
그러나 그 손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탄식조차 어둠과 적막함에 뒤덮인다.
주위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내 몸속에서 꿈틀거렸던 격조차 이 어둠 속에 잡아먹힌 것만 같다.
가만히 서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곳은 플루토가 만들어 낸 세계.
아니, 어쩌면 그 녀석이 유배당했던 세계일지도 모른다.
출구는 어디일까?
두려움 따위 느낄 시간이 없었다.
빨리 이 어둠 속을 나아가 플루토를 소멸시켜야 한다.
화르륵.
그때, 내 왼손에서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라 어둠 속을 밝힌다.
어둠은 그 불꽃조차 잡아먹으려 했으나,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어둠을 거뜬히 이겨 낸다.
그제야 이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으으으으.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땅.
땅 곳곳에서는 점액질로 만들어진 팔이 튀어나와 힘없이 허우적댄다.
지옥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시우.』
귓가에 리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여기는 어디야?”
『플루토가 지구에 있을 때 관장했던 세계. 지구의 모든 영혼들이 안식을 맞이하는 곳. 그리고 이제는…… 부서져 가는 세계.』
리멘은 허공에 작은 태양 같은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자 오로지 흑색으로만 가득했던 세계가 색깔을 부여받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지상에서의 다채로운 빛깔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흑색, 회색.
칙칙한 색깔로 가득 찬 이곳에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으으으으으.
다시 한번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혼이 안식을 맞이해야 할 장소였음에도 이곳에는 오로지 고통과 절망뿐이었다.
“나갈 수 있을까?”
출구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아 리멘에게 물었다.
그러자 리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너를 죽이는 건 포기했고, 버려진 세계로 던져 버린 걸 보면, 싸우기는 싫다는 거지. 시우와 나를 이 세계에 가둬 둔 채로 주신좌를 공고히 하고 싶은 걸 거야.』
한마디로 이길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아주 당연하다.
녀석은 지구의 주신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와 동귀어진을 하는 건 극히 피하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이 세계에 우리를 던져 버린 거다.
파아아앗.
흑색 땅 위에 성화로 만들어진 길이 생겨났다.
『그 길을 따라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길 위를 걸어갔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이 세계 위에 내 발자국이 남겨질 때마다 서서히 망자들의 비명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편……하게…….】
【우리가 왜…….】
【구……해……줘…….】
그 목소리는 내 머릿속을 집요할 정도로 괴롭힌다.
바닥에서 뻗어 나온 앙상한 팔들이 내 다리를 부여잡는다.
『우리가 저 망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안식은 오로지 하나뿐이야. 플루토를 소멸시키면 이 세계는 사라질 거야.』
“리멘.”
『응.』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내 질문에 리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그 방법뿐이었으니까.』
“왜?”
『나는 시우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시우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주 오랫동안 그 행복을 만끽하기를 바라고 있어. 지금까지 나는 시우 덕분에 너무나도 행복했으니까.』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방에서 들려오던 비명과 신음 소리도 조금씩 리멘의 목소리에 묻힌다.
『시우가 이 모든 업을 짊어지고 스스로를 잃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아까도 말했지? 시우가 지켜 낸 세상에는 시우도 있어야 한다고. 그걸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야.』
“……그 세상에는 네가 없는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다.
처음에는 그녀를 원망했으나, 지금은 그녀에게 온통 고마운 것뿐이다.
결국, 그녀 덕분에 내 가족들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녀는 이미 내 삶에서 너무나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대부분이 결국 그녀로부터 왔다.
『시우.』
“리멘이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그렇게 행복하진 않을 거야. 그것만 알아 둬.”
그녀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려 온다.
이렇게나 가슴이 아려 왔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누군가 내 심장을 날카로운 검으로 잔뜩 헤집는 것만 같다.
아까 플루토가 내 심장에 꽂아 넣었던 창도 지금처럼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다.
남겨지는 자.
남겨지는 자를 홀로 내버려 둔 채로 떠나려는 자.
그 둘 중 누가 더 아픈지 따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렇기에 앞을 향해 걷는다.
나의 여신이,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내린 결정이기에 묵묵히 따른다.
결국, 이 모든 선택은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에 내린 결정일 테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건?”
『플루토를 붙잡아 줘. 그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아 줘. 그거만 해 주면 돼. 아, 다 도착했다.』
어느새 내 앞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구덩이가 보였다.
그야말로 무저갱.
바닥이 없는 구덩이.
그러나 그 구덩이 너머에서는 희미하게나마 플루토의 신성력과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구덩이가 지구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라는 것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원래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땅을 헤매야 하는데…… 다 내 도움인 거 알지?』
리멘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슬픈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애써 무덤덤한 척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그녀에게 뭐라고 책망할 수조차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여신이 마지막으로 결심한 일을 이루어 주는 것.
“고마워, 리멘.”
모든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처럼 언제나 내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어떤 길로 가야 내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마지막 산책이 끝났어.』
이만하면 충분하다.
나는 리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끝내러 가자.”
『응.』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깊은 무저갱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모든 걸 끝낼 시간이었다.
4.
다시 눈을 떴을 때, 아까 전의 대신전이 보였다.
주신좌에는 플루토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와 리멘이 빠르게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구의 시간으로는 4시간이라. 생각보다 빨리 넘어왔구나.”
벌써 4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나 보다.
나는 플루토가 앉아 있는 주신좌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플루토가 멀쩡해 보여서가 아니다.
플루토의 앞에 익숙한 인간 하나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전리품을 챙긴 거냐?”
“저, 잡혔습니다, 교황님. 저 좀 구해 주십쇼.”
“그냥 그대로 죽어. 귀찮게 하지 말고.”
유신혁.
나와 함께 대신전에 도착했던 유신혁이 아주 형편없이 망가진 몰골로 플루토의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꼴이 참 우스웠다.
유신혁 저놈은 미친놈이니까 죽음이 다가와도 웃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웃고 있다.
플루토는 유신혁의 몸을 걷어차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이 녀석이 누구인지나 알고 데려온 거냐?”
“알 필요 있냐?”
“그래, 알 필요야 없지, 하하하!”
플루토는 유신혁의 목덜미를 잡은 채로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유신혁의 다리를 타고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몸 곳곳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있어서 가만히 내버려 둬도 금방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유신혁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여러분들은 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르실 겁니다.”
“한때 우리의 형제였던 놈의 파편이 이놈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그놈은 지구의 시간을 관장했던 배신자였지. 크로노스. 지금 생각해도 열이 받는구나. 하지만 이제는 용서할 수 있겠다. 결국, 그놈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오랜 숙원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플루토의 몸에서 이제는 아예 검은색으로 변한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음습하고도 징그러운 신성력.
저걸 ‘신성력’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쾌할 정도로 진득한 힘이, 유신혁의 전신을 덮어 가기 시작했다.
유신혁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노려본다.
“제가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번 생에서 교황님과 많이 못 싸웠다는 겁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이나 해 봐. 듣기만 하게.”
“무덤이나 하나 만들어 주십쇼. 잡초가 무성하고, 관리도 안 되는 무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침을 한 번씩 뱉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무덤 말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다는 듯, 녀석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녀석의 부탁을 곱씹었다.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마지막 순간까지 영 알 수가 없는 놈이다.
내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서인지, 유신혁이 다시 한번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같이 저주받은 놈들은 그런 모멸과 증오를 받는 게 마땅합니다. 교황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용서받을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짓을 벌이진 않았겠죠.”
“너를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국, 당신의 손으로 죽이는 겁니다.”
플루토의 신성력이 유신혁의 전신을 먹어 치운다.
살짝 벌려진 틈.
그 사이로 유신혁의 마지막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 즐거웠습니다.”
그 말로 끝,
콰지지지직.
유신혁의 몸에서 파육음이 들리면서 플루토가 유신혁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그 순간, 플루토의 몸에서 강대한 격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시간의 권능도 내 손에 들어왔…….”
그러나 그때였다.
플루토의 몸에서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또다른 기운이 흘러나온다.
어두우면서도 강력한 욕망이 느껴지는 에너지.
마기.
그건 분명히 마기였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이런 장난질을!”
마기가 본인의 통제에서 벗어났는지, 플루토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할 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윽.
그 마기에 닿은 대신전이 부식되기 시작했다.
유신혁의 격을 흡수하면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트로이 목마. 지구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지? 테라가 나에게 말해 줬어.』
어째서 여신들이 유신혁이 이곳에 있는 걸 막지 않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마기는 신성력과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
그건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만약 한 존재의 내부에 마기와 신성력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내부에서부터 갈갈이 찢겨져 나간다.
그리고 그건 신격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시 심판의 검을 들어.』
어째서 플루토가 유신혁의 힘을 탐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싸우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플루토는 저걸로 무너질 놈이 아니다.
시간을 준다면, 어떻게든 마기를 제거하고 본인의 힘을 회복하려 들 터였다.
그리고 회복한 플루토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늘어나 있겠지.
우리에게 주어진 결정적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우우우우웅.
리멘의 말에 따라 검을 소환한다.
마기를 상대로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심판의 검.
그 검신 끝에 나와 리멘의 모든 힘이 담긴다.
유려한 검술?
이제 그딴 건 필요 없다.
그저 우직하게 베어 버리면 된다.
사르르륵.
검을 움켜쥔 내 손 위에 리멘의 손이 부드럽게 놓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랑하는 나의 교황, 이제 이야기를 끝낼 시간이야.』
마침내 그토록 미루고 싶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