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5.
한 번.
딱 한 번이면 된다.
【내가 고작 이딴 마기에 휘둘릴 것 같으냐!】
플루토의 몸으로부터 폭풍이 쏟아져 나온다.
신성력과 마기가 섞이면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파동이,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찢어 버리는 엄청난 파동이 모여 폭풍을 만든다.
우우우웅.
심판의 검에서 흘러나온 리멘의 신성력이 내 몸을 보호한다.
나는 그녀의 힘과 함께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간다.
『시우.』
귓가에 리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의 다 왔어.』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으로 내려앉는다.
찬란하게 빛나던 대신전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그 자리에는 온통 죽음과도 같은 어둠뿐이었다.
플루토의 형상이 일그러진다.
멀쩡하던 형체 곳곳이 어둠으로 물들었고, 몸 곳곳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탐욕으로 가득 물든 이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발악을 한다.
콰아아아앙-!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 덩어리가 내 보호막에 강하게 부딪힌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한다.
유신혁이 그동안 쌓았던 모든 악업이 담겨 있는 마기라서 그런 걸까?
보호막에 흩어지는 마기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지옥을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시우, 아까 전에 나랑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마지막까지 내 손을 놓으면 안 돼.』
내 손에 맞닿은 리멘의 온기가 느껴진다.
아침 햇살처럼 포근한 그녀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슬퍼하고 싶지 않다.
희생을 결심한 그녀가 웃으면서 떠날 수 있게, 나도 웃으면서 보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안 된다.
사실, 아까부터 눈물이 흘렀다.
리멘 역시 내 눈물을 보고 있겠지만, 그녀는 애써 내 눈물을 무시한다.
“고마웠어.”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로 메마른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플루토의 앞까지 도달했다.
어둠과 빛이 뒤섞이는 시야 속에서 플루토의 금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그 검을 나에게 꽂으면 네가 사랑하는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그게 네 운명이다.】
마지막 발악인 걸까?
플루토가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신격의 힘을 흡수한 너를 인과율이 가만히 두고 볼 것 같나? 네놈은 이 세계에서 추방당해, 차원의 틈을 영원히 유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형벌은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하겠지.】
그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검을 든다.
검 끝에서 나와 리멘의 모든 힘이 찬란하게 빛난다.
【그 영원의 시간 끝에…… 결국 너도 우리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유언 참 멋없네. 오래 산 놈이라 유언도 거창할 줄 알았는데?”
【네가 원하는 세계가 존재하려면 내가 있어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라. 세계의 절반, 아니 구 할을 주겠다. 주신! 네가 주신이 되어라. 주신이 되어서, 나를 종으로 부려라. 격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돼. 그러면 네가 사랑하는 여신과 영원 동안 함께할 수 있지 않나?】
내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플루토의 목소리가 간절해진다.
모두를 내려다보던 새로운 주신은 이미 이 자리에 없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았음에도 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버러지 하나만 있을 뿐.
“그거 알아?”
【네놈!】
“난 원래 처음부터 격 따위에 관심 없었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신론자였거든.”
【김시우우우우우-!】
부우우우욱.
있는 힘껏 검을 내리쳤다.
기교도, 화려함도 없이 그저 단순하게 내리쳤다.
우리의 힘이 모두 담긴 검이 불안정한 플루토의 몸을 가른다.
검 끝에 느껴지는 감촉 따위는 없었다.
마치 허공을 벤 듯, 심판의 검은 부드럽게 플루토의 몸을 썰어 버렸다.
심판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하얀 선이 남았다. 그 새하얀 선은 플루토의 몸을 정확하게 양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쩌저저적.
그 선을 중심으로 새하얀 실금들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금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끼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플루토의 몸속 깊숙한 곳까지 퍼져 나간 마기가 심판의 검에 닿으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파아아아아아앙!
플루토의 몸속에 깃들어 있던 모든 격이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그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둔 거대한 격.
그 격은 게걸스럽게 주위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네 선택을…… 반드시 후회하게 되리라…….】
플루토의 몸 곳곳에서 회색빛의 가루가 휘날렸다.
허무한 소멸.
이것만큼 이 녀석에게 어울리는 최후가 또 어디에 있을까.
파스스.
마침내 플루토의 몸이 완전히 소멸했다.
나는 장갑에 묻은 가루를 털어 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시스템을 교란하던 존재가 소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당신은 시스템의 관리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주위의 모든 격을 흡수합니다.] [경고! 당신의 몸에는 다른 차원의 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구의 주신이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경고! 경고!] [추방 시퀀스 실행 중.]눈앞을 붉은색 테두리의 메시지창이 가득 메운다.
그리고 플루토의 통제에서 벗어난 힘들이 내 몸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이어진 끔찍한 고통에 나는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6.
“시우.”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화사하게 웃고 있는 리멘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나에게 무릎을 내준 채로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쓸어내린다.
“……다 끝난 거야?”
내 목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정말 고생 많았어.”
그 말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바라보았다.
서울의 신전과 똑같이 생긴 공간.
내 바로 뒤에는 거대한 신목이 자리 잡고 있었고, 잔뜩 만개한 꽃들이 사방을 수놓고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건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에서 리멘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시우의 시간으로는 한 11년 정도 고생했네. 악덕 사장 만나서 섭섭했지?”
“여기 어디야?”
“내가 잠시 만들어 낸 공간. 우리 둘밖에 없어.”
리멘은 천천히 나를 껴안았다. 내 품속에 쏙 들어온 그녀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그동안 시우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아?”
“네가 이끌어 줬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줬던 거야. 나는 시우를 믿었고, 시우도 언제나 나를 믿어 줬으니까.”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끌어안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내 품속에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우는 건 처음 보네.”
“미워?”
“아니, 예뻐.”
“다행이다.”
그녀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주변을 잠식하던 플루토의 모든 격이 그녀의 몸속에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리멘은 나를 위해서 플루토의 격을 모두 흡수했다.
온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같이 있을 수 있어?”
“5분 정도.”
“너무 짧아.”
“길면 더 힘들어.”
어쩌면 그녀는 지금 이 순간조차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나조차도 이렇게 아픈데, 자신의 계획대로 성공했을 때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면…… 그녀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아팠을 것 아닌가?
나는 그녀의 눈물 젖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별의 시간 5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든다.
그녀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녀가 소멸하지 않는 방법은 정말 하나도 없을까?
머릿속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런 내 상념을 잠재우는 건 언제나 리멘이었다.
“그때, 미래의 시우가 찾아왔었다고 했지?”
“……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시우가 내린 결정이 뭐였는지 알겠더라.”
리멘은 내 손을 잡은 채로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사방에서 꽃잎들이 휘날린다.
“아마 그 시우는 나를 대신해서 모든 격을 흡수했을 거야. 나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아마 지금쯤 시우도…… 그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부정할 순 없었다.
차라리 차원의 틈을 헤매며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자기가 실패했다고 했지.”
녀석의 말을 떠올려 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리멘의 손을 잡으라고 했던, 그 절절한 경고를.
“그 실패가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
“당연히 모르지.”
“그 세계선에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없었을 테니까.”
“왜?”
“인과율이란 게 원래 그래. 지구의 주신인 시우를 추방시키게 되면, 이 세계의 신격은 결국 나만 남게 되거든. 인과율이 다른 세계의 신이 주신이 되는 꼴을 볼 것 같아? 나도 시우와 함께 차원의 틈으로 추방되었을 거야.”
“끝까지 혐과율이라니까.”
애써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리멘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그 녀석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시우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당연한 걸 묻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리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리멘을 찾으러 갔겠지.”
“차원의 틈은 우리가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넓어.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나를 찾을 거야?”
“그래도. 영원의 시간을 헤맨다 해도.”
“역시, 내 교황님이야.”
리멘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미소를 짓는다.
울면서 웃는 그녀의 표정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시우, 나 소원 하나만.”
“말해.”
“살짝 허리 좀 숙여 줄래?”
“어떻게, 이렇게?”
“딱 좋아.”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이 포개진다.
그렇게 일 초, 이 초, 삼 초.
그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서 입술을 뗀다.
“좀 부끄럽…….”
그녀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하려 했으나, 나는 다시 그녀를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녀와의 작별이 너무 슬퍼서.
그렇게라도 내 눈물을 숨기고 싶었다.
“시우.”
천천히 입술을 뗀다. 입에 남은 여운이 아쉬워서인지 차마 말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나를 봐 줘.”
리멘은 내 두 손을 부드럽게 잡는다. 그 따뜻한 온기에 겨우 눈을 뜬다.
그녀가 웃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하게, 그렇게 웃고 있다.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파아아앗.
우리에게 허락된 5분이 지났다.
조금씩 그녀의 몸에서 찬란한 빛 가루가 휘날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형상이 조금씩 흩어진다.
나는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았다. 마지막 순간에 울고 있으면 그녀가 속상해할 테니까.
“나도 사랑해.”
지금까지 속에 묻어 두었던 진심을 꺼냈다.
내 대답에 리멘은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 너무나도 듣고 싶었어.”
“진작에 말하지.”
“지금이라도 들었으니 다행이야.”
리멘의 형상이 흐려진다.
나의 세계가, 그렇게 흐려진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안녕, 나의 교황님.”
그 말을 끝으로 리멘의 모습이 완전히 내 눈에서 사라졌다.
“아.”
더 이상 리멘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했던 그녀의 힘이,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독한 상실감이 몰려온다.
내 절반을 차지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우우우웅.
고개를 숙여 내 손에 남은 그녀의 마지막 흔적을 바라본다.
그녀를 닮아 새하얗게 빛나는 작은 빛 가루.
그 빛 가루를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손을 다시 폈을 때, 그 작은 가루조차 보이지 않았다.
리멘이 나를 떠났다.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끝났다.
행복했던 이야기의 결말이라기에는 지독히도 아픈, 그런 결말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