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
3화
3.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기대하던 감동적인 재회는 없었다.
대신.
“인욱아. 라면 세 개만 더 끓여 줘라. 물은 좀 자글자글하게. 형 입맛 알지?”
감동적인 음식은 있었다.
동생 녀석이 끓여 준 라면과 할머니표 쉰 김치의 조화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에덴에서도 교황이었던 덕에 귀한 건 다 챙겨 먹고 다니긴 했어도 이런 맛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이계에서 고생하다가 10년 만에 집에 돌아와서 먹는 라면.
이건 진짜 안 먹어 본 사람은 모른다.
“진짜 믿을 수가 없네?”
한참 동안 조용히 라면만 끓이고 있던 인욱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가? 나 돌아온 거?”
“그것도 그런데, 그냥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이 5년 만에 돌아오더니, 설명해 주다 말고 대뜸 라면 10개를 처먹고 있잖아. 뭔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 해?”
아, 난 또 뭐라고.
나는 인욱이의 말에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나 혼자 먹어서 삐졌구나.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 혼자 뭐 먹는 거 가만히 못 보는 것 같다? 그래, 너도 좀 먹어.”
옛날부터 인욱이가 식탐이 좀 많기는 했지.
그러나 아무래도 인욱이가 원했던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욱이는 젓가락을 내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곧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편없이 모자란 걸 보면 진짜 우리 형 맞네. 하아. 그래서,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봐. 에덴이라는 세계에서 10년 동안 지냈다고? 그게 지구에서는 5년이고?”
내 딴에는 내가 에덴에서 겪은 일을 다 설명해 준 것 같지만, 인욱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는 옆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넘긴 다음,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형이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으면 된 거 아니냐. 궁금한 게 뭐야?”
“전부다. 10년 동안 저쪽 세계에서 지냈다면 도대체 뭘 하며 지냈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왜 다 빼놓고 말해?”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악마들에게 대부분이 넘어간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었는지.
또,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지.
오늘같이 기쁜 날에, 그 우울하고도 끔찍한 이야기를 굳이 인욱이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앞서 나를 조사했던 이능관리부의 동식 씨와는 달리, 인욱이는 내 가족이니까.
나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을 가족들이다.
그런 그들이 내가 돌아왔음에도 나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얼굴은 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딱히 재미는 없을 건데.”
“형. 세상에서 제일 나쁜 새끼가 어떤 새끼인지 알아?”
“어떤 새낀데?”
“잔뜩 궁금하게 해 놓고 이야기 안 해 주는 새끼.”
“그럼 내가 그런 새끼냐?”
“아니길 빌어.”
주둥아리가 건방진 걸 보니 역시 인욱이 녀석은 여전하다.
다만, 얼굴이 어두운 걸 보니 저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나를 안쓰러워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딱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잘 듣든가.”
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아침에 동식 씨에게 해 줬던 이야기들을 인욱이에게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부분은 자체적으로 검열도 했다.
몽마의 여왕을 몇 조각 내어 죽였는지, 마룡왕의 드래곤 하트는 어떤 방식으로 뽑아냈었는지 등의 잔인한 이야기들은 그냥 적당히 ‘마왕들을 무찔렀다.’ 정도로 순화.
쉽게 말하자면 ‘이세계로 넘어가서 교황이 되어 대륙을 구원한 썰’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에다가, 오늘 아침에 지구로 돌아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더해 줬다.
그렇게 한 30분은 이야기했나?
대치동 1타 강사들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는 실전 압축 요약본을 감상한 인욱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10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너무 부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형?”
“당연하지.”
“왜 당연한 건데.”
“말이 10년이지 7년은 싸우기만 했다니까? 그럼 내가 누구랑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일일이 얘기해 줄까? 너 그거 들으면 오늘 밤 무서워서 잠 제대로 못 잘걸?”
내 말에 인욱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한숨을 내쉰 다음, 나에게 물을 따라 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형 말은 10년 동안 에덴이라는 세계에서 악마들과 싸우다가 돌아왔다는 거잖아? 나중엔 교황이 되었고. 맞지.”
“믿기 힘들겠지만…….”
“믿어.”
“응?”
“믿는다고.”
그 당당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까 전에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던 동식 씨도 그렇고, 인욱이도 그렇고.
5년 전의 지구인들이었다면 정신병원에 감금시켰을 만한 이야기들을 왜 이렇게 쉽게 믿어 주는 걸까.
“형 원래 지어내서 말하는 거 못 하잖아.”
“뒤진다.”
“그리고 귀환자 정도야 뭐……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형 이야기를 못 믿어 줄 건 없지. 다만.”
“다만?”
“그냥, 그냥 형이 이렇게 살아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 거야.”
인욱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 나쁘다는 의미의 찡그림은 아니었다.
눈가가 살짝 축축해져 있는 걸 보니, 눈물을 참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새끼, 꼴에 가족이라고.
나도 녀석을 따라서 눈가가 촉촉해지려던 찰나, 녀석은 감동을 일방적으로 깨부수면서 말했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수목장 5년 단위로 계약할걸. 괜히 10년 단위로 계약해 가지고…….”
“수목장?”
“형 이름 붙여 둔 나무 아주 잘 자라고 있는데, 내일 한번 가서 볼래? 시연이가 예쁘게 꾸며 뒀는데. 지난주에 잡초도 뽑고 왔다니까?”
아, 그 수목장?
내 장례까지 치러 줬구나? 허허.
“아, 몰라. 형이 직접 가서 환불받아. 그리고 할머니랑 친척 어른들한테 전화 꼭 돌리고…… 이렇게 되면 부의금도 환불해 드려야 되는 건가? 큰일 났네. 부의금 돌려드릴 돈은 지금 없는데…… 어떻게 하지 형?”
“미안. 형도 죽었다가 살아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게 나와 인욱이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이었다.
삑삑삑-.
누군가 다급하게 현관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벌컥!
한 여자아이가 박력 넘치게 문을 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인욱이가 재빠르게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형이 알아서 해.”
“인욱아 잠깐만.”
콰아아아앙!
내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인욱이는 가차 없이 방문을 닫았고, 나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커진 시연이가,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큰…… 오빠?”
“하하, 우리 시연이! 엄청 예뻐졌네? 오빠 많이 보고 싶었지? 이, 이렇게 좋은 날에 울…… 건 아니지? 응?”
울게 두면 안 된다.
“시연아. 잠깐…….”
“나느으은…… 훌쩍. 큰 오빠 죽은 줄…… 훌쩍…… 알았는데.”
“시, 시연아. 스마일! 응? 오빠가 잘못했어. 오늘 오빠 다시 만난 좋은 날이잖아? 그러니까…….”
시연이가 제대로 울게 되면.
“흐에에에에엥!”
“시연이 뚝! 응?”
“흐에에에에에에엥!”
“안 돼…….”
……경찰 신고는 기본 옵션이었거든.
하아.
큰일 났다.
2.
다행스럽게도 시연이의 통곡은 경찰 신고가 아닌, 윗집 아랫집 이웃분들의 자택 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마 늦은 시간에 이랬으면 진짜 경찰이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웃분들이 정말 친절하셨다.
이웃분들 모두가 시끄러워서 찾아온 게 아니라, 시연이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뛰어왔다고 하셨다.
시연이가 평소에 예의도 바르고 애교도 많아서, 아파트 주민분들이 많이 예뻐해 주신다더라.
아무튼.
내 귀환을 기념하던 시연이의 통곡쇼는 결국 체력적 한계에 맞부딪히며 마무리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울다가 지쳐서 낮잠 잔다는 소리다.
아마 이따가 깨어나면 2차 습격이 시작될 것 같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지 뭐.
“후우.”
시연이가 침대에서 잠에 든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김인욱…… 이 나쁜 새끼.”
시연이 울면 못 말린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 10년 만에 귀환한 형을 모른 척해?
아주 괘씸하다.
나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거실을 한 번 둘러본 다음, 반쯤 열려 있던 인욱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모니터 두 개가 설치되어 있는 책상이 눈에 들어왔고, 뒤를 이어 그 앞에 앉아 있던 인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이는?”
“낮잠.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연이 달래는 거 왜 이렇게 힘드냐?”
“나도 시연이 저렇게 우는 거 오랜만이야.”
“마지막이 언젠데?”
“3년 전 형 장례식 때.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텐데 진짜 서럽게 울었어. 시연이 달래느라고 첫째 이모랑 할머니가 고생 많이 했고.”
“나 사라진 건 여기 시간으로 5년 전이잖아?”
“처음 2년 동안은 형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
인욱이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고,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기대감 뒤에 애써 묻어 두었던 미안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한 만큼, 가족들도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겠지.
우리 3남매는 꽤 애틋했었다.
특히, 부모님 두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후로는 더더욱.
타다다닥.
인욱이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방 안을 조금씩 채워 갈 때쯤이었다.
“고마워.”
인욱이는 여전히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그 말에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인욱이는 본인이 말한 게 좀 쑥스러운 모양이다.
금세 화제를 돌린다.
“지구로 돌아오면 하고 싶었던 거 있어? 앞으로 뭐 하고 지낼 거야?”
“글쎄다. 일단 생각 중.”
“하고 싶었던 거 없어?”
“하고 싶었던 거야 많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보았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셔야 합니다.] [남은 제한 시간: 89일 14시간 32분]가족들과 재회하느라고 애써 무시하고 있던 시스템 메시지 창.
사실, 지구에 돌아와서 내 상태가 어떤지 자세히 확인도 안 했다.
저 메인 퀘스트야말로 지금의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신도를 모아라.
말이야 참 쉽다. 에덴에서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다들 리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교리를 받아들였다. 굳이 내가 뭔갈 안 하더라도 내 밑의 사제들이 알아서 신앙을 전파했으니, 전도란 걸 해 봤을 리가 있나.
아까부터 생각은 계속 했었는데 아직 갈피는 못 잡겠다.
어떤 식으로 신도를 확보해야 할까?
내가 잠시 입을 다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궁리하려던 찰나.
-오크들은 던전, 게이트, 웨이브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몬스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크들의 급소에 대해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인욱이의 모니터 화면 속에서 슈트를 입은 남자가 검을 든 채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슈트와 검이라.
나에게는 마포대교에 매달려 있던 와이번만큼이나 어색했지만, 인욱이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인욱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영상을 확인한 다음, 처음 보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언갈 시작했다.
나는 그런 인욱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미튜브 영상 편집하고 있지. 형 실종되고 나서부터는 이걸로 돈 벌었어. 나름 적성이 맞더라고. 일도 꽤 많이 들어와.”
영상 편집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더니만, 아예 이쪽으로 진로를 잡았구나.
적성에 잘 맞다니 다행이다.
미튜브야 내가 에덴으로 납치당하기 전에도 대세였으니 모를 리가 있나.
그런데 도대체 이건 무슨 내용의 영상인 걸까?
게임? 게임이라기에는 너무 리얼한데.
“형은 잘 모를 수도 있겠네.”
내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자 곧 인욱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능관리부에서 지구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말 안 해 줬어 형?”
“그냥 대충 지구에 귀환자들이 좀 있다랑, 몬스터들이 등장한다, 이 정도? 자세한 건 내일부터 알려 준다더라.”
“흠.”
인욱이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 갔다.
“형 옛날에 웹소설 많이 봤잖아.”
“어.”
“거기에서 보면 레이드물 있지? 막 지구에 게이트 나오고, 몬스터 나오고, 던전 같은 거 나오는 거. 그냥 그 소설들이랑 비슷해졌다고 생각하면 편해. 그리고 그에 맞춰서 미튜브 트렌드도 바뀐 거고.”
그렇게 말한 인욱이는 모니터 화면을 잠시 정지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슬쩍 화면 속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새는 저 사람들이 컨텐츠야. 플레이어(Player)들이라고 불러.”
“친숙한 이름이네? 쟤네도 막 시스템 창 쓰고, 스킬 쓰고. 맞지?”
“웹소설 많이 읽어서 그런가 적응이 빠르네?”
“아아.”
당연히 적응이 빠르지.
그 시스템 나도 쓰고 있었는데.
리멘이 이야기했던 ‘지구에서 가져왔다’라는 말과 관련이 되어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다음, 가만히 그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났다.”
“뭐가?”
“신도를 확보할 방법.”
아주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