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
30화
10. 블랙 기업 리멘
1.
당장 급했던 문제들을 해결했던 덕분일까?
잠을 아주 푹 잤다.
신성력을 몸에 축적한 이후로 큰 전투가 아니면 신체적인 피로감을 잘 느끼진 못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튼 아주 만족스러운 수면이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푹 잠을 자고 거실로 나서자, 그곳에서는 왠일로 인욱이가 TV를 틀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인욱이가 본인 앞에 놓아둔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들면서 소파에 앉았다.
“아침부터 왠 뉴스?”
“요새 뉴스가 어지간한 미튜브보다 재밌더라. 저러니까 개그 프로들이 망했지.”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심드렁하게 봤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전국 각성자 연합에서는 민관 합동 조사팀을 구성하여 그라운드 제로를 검증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능관리부에서는 ‘논할 가치도 없는 요청’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라운드 제로를 정화한 김시우 각성자가 이끄는 리멘 교단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주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후 목사는 드디어 마귀들을 이끄는 사탄이 지상에 도래했다고 주장하며…….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
아침부터 아주 흥미로운 뉴스를 감상한 인욱이가 넌지시 나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샌드위치를 한입 먹은 다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 놈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고, 한 놈은 이때다 싶어서 한 숟가락 올리는 거고. 뭐 별 이유 있겠냐? 그나저나 저 목사 양반은 참 오래 산다. 나이도 지긋하신 양반이 여전히 힘이 넘치네.”
내 대답에 인욱이는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형 전각련이랑 무슨 일 있었어?”
“별거 없었어. 그냥 그라운드 제로에서 걔네가 보낸 히트맨들 싸그리 분리수거한 정도?”
“……보통은 그걸 보고 ‘별거’라고 말하지 않아?”
“나한테는 별거 아니니까 별거 아닌 거로 하자.”
사실상 반박이 불가능한 논리였다.
내 완벽한 논리에 밀린 인욱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샌드위치를 마저 먹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오후 6시에 첫 영상이랑 같이 미튜브 채널 공개로 돌릴 거야. 알고 있지? 그런데 미튜브 채널명은 그대로 해도 괜찮겠어?”
민수 씨 미튜브의 메일을 통해서 여러 가지 채널명들을 공모받기는 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채널명은 아주 무난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오피셜 리멘.
교단이라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채널명.
‘리멘께서 보고 계셔’, ‘리멘과 성스러운 아이들’ 등등의 아이디어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채널명이 바로 저 ‘오피셜 리멘’이었다.
수많은 채널명을 놔두고 저 무색무취의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래도 명색이 교단 공식 미튜브인데, 묵직한 맛이 좀 있어야지.”
“그래도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긴 해.”
“어차피 유입이 보장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겠냐?”
보다시피 상황이 이렇다.
공중파를 비롯한 TV 채널들에서조차 내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인터넷은 사실상 나와 리멘 교단에 대한 떡밥으로 점령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떡락을 거듭하고 있던 민수 씨의 구독자 숫자도 어제 방송을 기점으로 기적처럼 떡상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교단의 공식적인 행보는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어제 민수 씨와의 인터뷰에서 미튜브를 주된 소통 창구로 선언했으니, 유입에 대한 걱정은 내려놔도 된다는 거지.
인욱이는 이런 내 유창한 설명에 살짝 머리를 기울이더니, 곧 의심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 아이디어 맞아? 너무 베테랑 같은데?”
나는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민수 형제님의 작품이지.”
“……왜, 아예 그냥 민수 형 미튜브를 꿀꺽하지 그래.”
“누가 보면 형이 생양아치인 줄 알겠다?”
“아니었어?”
형한테 아주 그냥 못 하는 말이 없다.
이래서 남동생이랑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인욱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샌드위치로 대강 아침을 때웠고, 인욱이는 그릇을 정리한 다음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다, 형. 형한테 진지하게 물어볼 게 하나 있어.”
“말해.”
“우리집 생활비도 그렇고, 교단 운영할 거면 돈이 좀 필요하지 않아? 미튜브가 돈이 될 수는 있다지만…….”
“미튜브로 수익 창출 안 할 건데?”
“아, 그럼 다른 종교들처럼 기부금을 통해서 운영…….”
“초반에는 헌금도 받을 생각 없어. 이미 이야기 다 끝난 사항이야.”
인욱이는 내 단호한 대답에 한동안 입을 다물더니, 나를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막 신앙심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헛소리하려는 건 아니지? 형 시연이 학원비가 얼마인지 알아?”
“흐음. 원래는 이야기 안 해 주려고 했는데, 특별히 너니까 이야기 해 준다.”
“뭔데.”
나는 곧 인욱이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고.
“……그게 돼? 아니, 진짜 그래도 돼?”
인욱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반문했다.
그리고 나는 인욱이의 질문에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문제없지. 이래 보여도 형이 교황이야. 그리고 이미 리멘이랑도 이야기 다 해 뒀어.”
“그건 형 포교 활동이 아니라 그냥 장사꾼…….”
“어허. 지금 너 신성모독하는 거야? 너 그러다가 레오한테 반으로 접힌다. 조심해라.”
2.
늦게 오른 출근길은 굉장히 쾌적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출근길 말고는 딱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
“교황님.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수 형제님.”
“저야말로 항상 영광일 따름입니다. 아, 그리고 마이스터 길드의 대표도 이미 신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약속 시간 3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요?”
“원체 성실하신 분들이시거든요.”
면허가 없던 탓에 민수 씨의 차를 얻어 타기는 했다.
어차피 민수 씨도 당분간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컨텐츠를 진행할 생각이었다고 하니, 겸사겸사 얻어 탄 셈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라운드 제로로 들어가는 정문은 아니었다.
정문은 현재 그라운드 제로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시민들과 취재를 나온 기자들로 인해서 사실상 막힌 상황.
원래는 그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했던 상황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이런 출입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부에서 만들어 둔 출입구입니까?”
“그럴 리가요. 이런 건 원래 뒤가 구린 놈들이 만들어 두지 않습니까? 여기는 발견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출입구입니다. 원래는 즉시 폐쇄시키려고 했는데, 당분간 저희들보고 사용하라더군요.”
“그라운드 제로에 무엇인가 있던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오늘 민수 형제님께 보여 드릴 생각입니다. 조언을 구할 일도 있구요.”
전각련 놈들이 만들어 둔 비밀 출입구를 이용하게 되었다.
내가 어제 이능관리부 측에 넘긴 범죄자들이 이용했던 통로라고 하는데, 당연히 이능관리부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출입구다.
아마 이곳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이곳이 우리 신전과 가까운 출입구라 이용하고 있는 거지.
나는 희미한 조명이 빛나는 통로를 걸어가면서 민수 씨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혹시 민수 씨도 굿즈 같은 거 판매해 본 적이 있습니까?”
“굿즈라기보다는 뉴비 플레이어들을 위한 장비들을 판매한 적은 많습니다. 실력은 좋지만 명성이 떨어지는 마이스터 길드들과 협력하여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던가, 유용한 소모품을 공동구매하던 식입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경험자가 있다면 여러모로 편할 것 같다.
이능관리부와 협력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교단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이라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한 3분 정도 더 걸었을까?
어느덧 통로는 끝이 났고, 문을 열고 나가니 성역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폐허들 사이로 피어오른 꽃들과 그 풍경에 스며드는 햇빛이 참 아름다웠다.
어제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어제와는 명확히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제야 이곳이 정말로 정화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민수 씨의 말에 흐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가요?”
플레이어만 활동하고 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일반인들이 성역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능관리부에게 출입을 허가받은 사람들이었다.
김 팀장에게 듣기로는 당분간 하루에 최대 1,000명의 인원만 출입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라운드 제로 전부가 정화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아직까지 곳곳에 위험 요소들이 잔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구역 전체를 정화하고 재건 작업까지 완료되면 벽을 허물고 완전 개방을 할 계획이라던가.
한때 이능관리부의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신청이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미리 이능관리부 측에 우선순위로 신청받았으면 하는 인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재앙이 도래한 날부터, 게이트가 토벌될 때까지 이곳에서 총 14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희생되었다고 들었다.
“저분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았으면 합니다.”
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유가족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술을 뿌렸고, 또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누군가는 소리 내어 울었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위로하면서 조용히 흐느낀다.
이곳은 애초에 그런 땅이었다.
리멘이 비석에 남긴 글귀대로, 꿈이 잠시 쉬고 있는 땅.
그리고 나는 내가 모시는 신의 뜻에 따라,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저분들도 분명히 교황님과 리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
나는 민수 씨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조용히 유가족들을 지나 신전으로 향했다.
비밀 출입구가 워낙 신전에서 가까웠던 탓에 신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교황 성하.”
내가 신전 앞에 도착하자마자 레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레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긴 했으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
내 말에 레오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아침부터 많은 분들이 신전에 들어오셔서 리멘께 기도를 드리고 가셨습니다. 지구에 형제들이 생겼다는 것이 기쁠 따름입니다.”
“내가 말했던 대로 헌금 같은 건 안 받았지?”
“성하께서 예상하신 대로 많은 분들이 리멘께 예물을 드리고 가겠다고 하였으나, 겨우 달래어 돌려보냈습니다.”
“잘했어.”
“하지만 신도들의 예물을 거절하는 건 그들의 진심을 무시하는 처사일지도 모릅니다.”
레오가 살짝 아쉽다는 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레오의 말에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끝까지 신자들의 예물을 받지 않겠다는 건 아니야. 순서가 있다는 거지. 레오 너도 잘 알잖아?”
“……리멘께서는 언제나 저희들이 스스로 서 있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요.”
“바로 그거야.”
에덴에서의 리멘 교단은 꽤 특이한 교리를 지닌 교단이기도 했다.
한 명이 1년에 낼 수 있는 헌금의 총액을 제한하는 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리멘의 앞에서는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교단의 재정이 굉장히 빠듯할 것처럼 여겨지는 교리기는 했지만, 대신 리멘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들을 허락했다.
성물을 제작하여 판매할 수 있는 축성소 역시 그녀가 허락해 준 것들의 일부고.
레오는 내 뜻을 이해했는지 곧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께서는 접견실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빨리 들어가자. 손님만 두는 건 예의가 아니지.”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셨던 신성석을 두고 왔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신성석을 관찰 중일 듯합니다.”
“그래? 잘했네.”
나는 서둘러서 신전 현관 우측에 자리잡은 접견실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향하려고’ 했다.
우리 뒤쪽에서 걸어 나온 세 남자가 우리의 앞을 막기 전까지 말이다.
“반갑습니다, 김시우 님. 전국 각성자 연합의 상무 이사직을 맡고 있는 강병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올빽으로 넘긴 머리와 검은색 정장.
거기에 화룡정점으로 안경 너머로 자리 잡은 실눈까지.
솔직히 좀 감탄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빌런처럼 생길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힘을 쓰려던 레오를 제지하면서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던 강병수라는 놈에게 말했다.
“이곳이 신성한 신전 앞이라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형제님.”
“이야기가 끝나면 저도 신전에서 리멘이라는 분께 기도를 드려 볼까 합니다.”
“거참 재밌는 형제님이시군요.”
가까운 시일 내로 접촉할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일 줄은 몰랐네?
“레오야.”
“예, 성하.”
“민수 형제님 모시고 접견실에 들어가 있으려무나. 손님께는 좀 늦는다고 전해 드려.”
“……알겠습니다.”
레오는 군말 없이 민수 씨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고, 신전 앞에는 결국 나와 전각련 놈들만이 남게 되었다.
강병수는 접견실로 들어서는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으로 종이를 접었다는 분이 바로 저분이십니까?”
“우리 대주교가 재능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견식해 보고 싶습니다.”
“여차하면 제가 대신 보여 드릴 수도 있는데, 어떠십니까 형제님?”
“하하!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종이가 되는 취미는 없습니다.”
전각련의 상무 이사쯤 되는 놈이라서 그런가, 확실히 쉽게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는군.
대충 왜 왔는지는 알 것 같다.
전후 협상 같은 걸 하려고 온 모양인데, 저렇게 유들거리는 면상은 워낙 꼴 보기 싫어서 말이지.
나는 강병수의 실눈을 보면서 실실 쪼개 준 다음, 녀석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맞다. 니네 광산 달더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