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98. 네가 없는 세계
1.
전쟁이 끝났다.
리멘이 플루토의 모든 격과 함께 소멸한 이후, 나는 자연스레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내가 지상에 도착했을 때, 모든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내가…… 내가 왜?”
“의무병! 의무병!”
“아아아, 아아아아아!”
고대 신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며, 곳곳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고대 신들이 지구로 데려온 괴물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건 정화자 역시 마찬가지.
정화자들이 데려온 키메라들과 언데드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으나 기쁘지가 않았다.
그저 공허함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뿐.
찬란했던 성역은 이제 없었다.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무너져 내리는 도시뿐.
거짓된 신성은 사라졌으나 그 빈 공간을 죽음과 절망이 다시 채우는 중이었다.
나는 비명과 신음 소리로 가득 찬 그 길을 힘없이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시우!”
“형님!”
나를 발견한 이레귤러들이 빠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에이든과 자현이.
그 둘의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에이든의 근육질 상체 곳곳에 화살이 박혀 있었고, 깊어 보이는 중상이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자현이의 흰색 와이셔츠는 아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딱 봐도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해냈구나.”
“형님을 믿고 있었…….”
그러나 그들은 내 표정을 마주하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생들 했어.”
에이든은 한참 동안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바랐던 대로 전쟁이 끝났다. 네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거라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지?”
“그 대가로 소중한 걸 잃었어.”
“……무엇을?”
“내 절반.”
힘겹다.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럽고 힘겹다.
생살을 도려낸 듯한 지독한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리멘이 없다.
이제 나에게선, 리멘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르륵.
손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리멘이 소멸하면서 모든 신성력이 사라졌을 줄 알았으나, 회색의 성화는 여전하다.
격이 사라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우, 이제 전장을 정리해야 한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해.”
에이든은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대충 꽂아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주위의 돌 하나를 들고 와서 그 위에 걸터앉았다.
“병력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어째서?”
“시스템이 정지되었어. 더 이상 플레이어들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해.”
“힘이 완전히 소멸한 건가?”
“그건 아니다. 다만, 아주 훌륭한 가이드가 사라진 셈이지. 나나 자현이는 원래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었기에 상관이 없지만.”
주신좌 자체가 아예 소멸하게 되면서 변화가 생긴 걸까?
이 변화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확인해야 할 듯싶었다.
애초에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주신이 관장하는 개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정말 많았다.”
“고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자, 다음 계획이 뭐지?”
“다음 계획?”
“목표가 있을 것 아니야.”
목표.
……지금의 나에게 또 무슨 목표가 더 있을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쉬고 싶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제는 없어.”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에이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내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어어억.
배에서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다.
“연인과 헤어진 놈처럼 그렇게 기가 죽어 있으면 뭐가 달라지냐? 정신 차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네가 지금처럼 얼빠진 표정으로 있어선 안 돼.”
에이든은 내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말을 이어 갔다.
“공공의 적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아귀다툼이 시작될 거야. 네가 중심을 잡아 줘야 한다. 지금까지야 정화자랑 고대 신 놈들 덕분에 인류가 힘을 합쳤다만, 그 적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 안 해 봤어?”
“저 역시 에이든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시우 형님, 이렇게 계실 때가 아닙니다.”
“빨리 전장을 수습하고, 승리를 선언해라. 그리고 너를 중심으로 이곳의 질서를 바로잡아라. 네가 지금 신경 써야 할 일은 오직 그뿐이야.”
나는 나를 향해 열변을 토해 내는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에이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에이든.”
“왜?”
“리멘이 플루토와 함께 소멸했다. 내가 아니라 그녀가 이 세계를 구했다.”
내 말에 에이든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존재가 지켜 낸 세계다. 그 세계가 망가지는 걸 정녕 네 눈으로 지켜볼 셈이냐?”
어쩌면 에이든은 짐작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겉으론 그저 생각 없는 야만인으로 보이는 놈이지만, 눈치가 그 누구보다 빠른 녀석이니까.
나는 에이든의 말에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녀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은 상실감에 잡아먹혀 있을 때가 아니다.
리멘은 스스로를 포기하면서까지 내 소중한 이들을 지켜 주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나에게 남긴 유산.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딱 한 가지다.
그녀가 나에게 남겨 준 유산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나를 위해서 그녀가 했던 선택이 빛이 바래 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을 주위를 둘러보며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2.
적들이 사라진 이후의 전장 수습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모든 적들이 소멸한 덕분에 바다와 하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에 보급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
“보급품의 양은 충분합니다!”
“보급품을 분배받은 후, 배정된 장소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드릴 겁니다.”
이세민 씨가 데려온 상해의 각성자들이 앞장서서 혼란스러운 전장을 수습한다.
사실 수습이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대피시키는 거니까.
더 이상 베이징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무너져 내렸으며, 역사를 자랑하던 유적지 역시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되었다.
신성력과 마기가 부딪히면서 생긴 후폭풍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그렇게 베이징 곳곳에서 구호물자 배급을 비롯한 전후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이레귤러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되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은 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세계를 위협하던 적들은 모두 소멸하였으며, 더 이상 여러분들을 위협할 적은 없습니다.”
일종의 종전 선언이다.
우리가 승리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
에이든이 걱정했던 전후 질서에 대해서는 나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원래 서로의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다.
각성자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그다음의 전쟁은 각성자들끼리의 전쟁이 될 터였다.
고대 신들이 모두 소멸하였으니 게이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정말로 게이트 현상이 사라졌다면……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화합과 평화?
웃기지도 않는 소리.
에덴에서도 그러했고, 지구의 모든 역사가 이 이후의 상황을 알려 준다.
공공의 적에 맞서 싸웠던 친구들은 이제 서로의 이익으로 인해 분열되겠지.
그리고 그 분열은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그걸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막을 방법에 대해서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저희 리멘 교단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지키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여러분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경고장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의 경고장.
굳이 길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기자들이 내 말에 담긴 뜻을 해석해서 잘 전달해 줄 터였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발언권을 에이든에게 넘겼다.
그러자 종군기자 중 미국 출신으로 보이는 기자가 에이든에게 물었다.
“에이든 하워드 님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전쟁이 끝났으니 미국 국적을 다시 취득하실 예정이 있으신지.”
단도직입적인 질문.
벌써부터 전후 질서를 가정해 둔 질문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가 멸망할 예정이었는데, 사람이란 게 역시 참 간사하다.
“흐하하!”
에이든은 기자의 질문을 듣고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라파엘을 슬쩍 쳐다보면서 말했다.
“미국으론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국적이라면 모를까, 미국 국적이라. 글쎄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진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유라…….”
에이든은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제 친구 할머님께서 해 주신 된장찌개가 먹고 싶습니다. 이유는 그뿐입니다.”
“된장……찌개?”
“대한민국의 소울 푸드입니다. 이만하면 답변은 충분하지요?”
에이든은 내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 답이 불만족스러웠는지 기자는 옆에 있던 라파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라파엘 역시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사람에게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시 돌아간다는 건…….”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라파엘이 나에게 들려주었던 말을 잠시 떠올렸다.
-돌아갈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대로 제 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라파엘에게 나는 그저 축하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한다.
라파엘이라면 결국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겠지.
그렇게 기자들이 이레귤러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기자회견은 천천히 마무리되어 갔다.
모든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이레귤러들의 거취.
그 말인즉슨, 벌써부터 차기 패권 다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리멘 교단이 여전히 건재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옆에는 친구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딴생각?
할 수 있으면 해 보라지.
리멘이 지켜 낸 이 세계를 누군가 지옥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녀석을 지옥으로 보내 줄 테니까.
3.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는 리멘 교단의 병력을 데리고 빠르게 서울 신전으로 복귀했다.
비행기로 선양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지하 통로를 이용하니 금세 돌아올 수 있었다.
“성하, 최종 보고를 드립니다. 사망자 1,029명. 부상자 2,501명, 부상자들은 모두 재단 산하의 병원으로 이송하였습니다.”
“……고생 많았다. 레오, 너도 가서 진료 봐.”
“괜찮습니다.”
나는 신목 앞에 서서 레오의 보고를 전해 들었다.
신목은 여전히 푸르렀다.
“성하.”
“응?”
“리멘님께서는…… 정말로 소멸하신 겁니까?”
레오의 질문에 나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그러자 레오가 잠시 동안 말을 멈춘다. 그러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레오는 천천히 신목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태초에 어머니께서 필멸자들을 매우 사랑하였으니, 자신의 일부를 담아 생명의 나무를 빚으셨노라.”
레오가 신목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신목에는 리멘님의 힘이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한데 성하, 리멘님께서 정말 소멸하셨다면, 신목이 이리 푸르겠습니까?”
리멘은 소멸했으나 어디까지나 내 몸에 깃들어 있던 리멘의 신성력만 사라졌을 뿐, 레오나 루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신성력은 소멸하지 않았다.
“레오, 너 지금…….”
“저희들은 리멘님께서 여전히 존재하신다고 믿습니다.”
문득 마지막 순간에 리멘이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 떠오른다.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나를 찾을 거야?
그 질문에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래도, 영원을 시간을 헤매도.”
그 말을 덧붙였었지.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이 슬픈 결말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 어떨까?
근거 없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희망에 자꾸만 마음이 동한다.
“리멘이 소멸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 리멘을 찾을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레오는 그제야 뒤돌아선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답했다.
“답은 제가 아니라 성하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실낱같은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레오야.”
“예, 성하.”
“나는 찾아야겠다.”
나는 그 실낱같은 희망을 기꺼이 부여잡기로 했다.
내 대답이 듣기 좋았을까?
레오가 보기 드물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하셔야지요. 그리하셔야 성하다우신 겁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