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99. 너의 세계
1.
일단 에덴으로 돌아온 건 맞다.
돌아오긴 돌아왔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지구로 귀환한 지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거죠?”
“예…… 예! 그렇습니다, 교황 성하.”
“표정 풀어요.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네.”
“제, 제가 교단의 신입이라서…… 성하를 뵙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해 보겠습니다!”
“그게 아니…… 아니다, 됐다.”
나는 내 앞에서 본인을 ‘헤론’이라고 소개한 앳된 성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헤론이 이야기해 준 내용대로라면, 이곳의 시간선이 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10년이라.
내가 지구로 돌아간 이후 10년이라…….
아마도 리멘이 소멸하면서 두 차원의 연결이 불안정해진 탓에 발생한 일이 아닐까?
사실, 막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 미리 라파엘로부터 주의 사항을 몇가지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선이 좀 다를 수는 있습니다. 최대 15년 정도 지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간 좌표도 제가 잘 설정해 두었으니, 돌아올 때는 이 시간대로 돌아오실 겁니다.
잘만 이용한다면 타임머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일단 머리 아파서 더 자세하게 물어보진 않았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에덴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에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헤론 경.”
“편히 헤론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래요, 헤론. 아까 그 인파들은 뭡니까? 생각해 보니 교황이 죽었으니 물러나라,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던데.”
내 말에 헤론의 낯빛이 새하얘진다.
왜일까?
“저…… 들으시면 화를 내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교단에서 저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한 거예요? 제가 막 화를 내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그것이…… 교황님의 성정은 뜨거운 성화와도 같아서, 부정한 것들을 모두 태워 버리신다……라고 성서에 적혀 있습니다.”
성서?
성서에 왜 내 이야기가 나와?
“김시우서라는 새로운 말씀들이 추가되어…….”
“……누가 그걸 성서에 담았대?”
“바예르 총대주교를 비롯하여 총주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서 편찬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이후의 일대기를 모두 담았습니다. 아! 저한테도 한 권 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헤론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팍에서 깨끗한 책 한 권을 꺼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누가 자기 흑역사를 읽고 싶겠어?”
“흑역사라니요. 위대한 리멘 교단의 역사이자, 자랑스러운 교황님의 업적입니다.”
“하여튼 그건 대충 좀 넘어가고, 제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게 무슨 뜻입니까?”
“아, 그것은…….”
헤론은 그 뒤로 나에게 현재 에덴의 상황에 대해서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단자나 마왕의 잔당들이 대륙 곳곳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거의 정리가 되었다.
2. 그로 인해 리멘 교단의 영향력이 상당히 감소하면서 왕국들이 리멘 교단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3. 1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교황 성하(나)를 명분으로, 리멘 교단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소문은 딱 봐도 왕국 놈들이 낸 거구만.”
“그렇습니다.”
“지들 배 속 채우는 데 리멘 교단이 사사건건 방해를 하니까, 그렇죠?”
“정확하십니다.”
“욕심이란 게 참 그래요. 물에서 구해 줬더니만,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 이래서 선조님들의 지혜가 참 대단하다니까.”
에덴에는 그런 속담이 없는지 헤론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위기가 영 좋지 않습니다.”
“왕국들 중 목소리가 큰 놈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레온 왕국과 라그하른 왕국입니다.”
“아아, 예전에 내 옆에서 물시중이나 들던 놈들 아니던가? 걔네들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맞습니다. 왕국에서는 교황 성화와 함께 이 세계를 지켜 낸 영웅이라고 칭송받는다고 하더군요.”
호랑이가 없는 산중에는 여우가 왕이라더니만.
딱 그 꼴이다.
내가 심심할 때마다 대가리를 쥐어박았던 놈들이긴 한데…….
음, 내가 지구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입수했던 건가?
간이 그렇게 큰 놈들은 아니었다만, 이렇게 앞장서서 우리 교단을 밀어내려는 걸 보면 눈치를 챈 모양이다.
솔직히 나는 그 녀석들이 욕심을 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이 없었다.
욕심을 부리는 건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이제 슬슬 지들 밥그릇을 챙겼으니 남 밥그릇이 탐이 날 시점이 되기는 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바뀐다잖아.
“그 둘이 앞장서서 리멘 교단을 압박한다라.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이종족 쪽은?”
“그들은 여전히 리멘 교단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멸족의 위기에서 구해 준 존재가 성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같은 동족인 인간이 위험한 거예요. 이종족들은 신의라도 있지.”
대충 에덴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했다.
복구 작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긴 올랐나 보다. 왕국 놈들이 슬슬 움직이려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해는 한다지만 기분은 별로 안 좋다.
녀석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교황 성하.”
내가 고심에 잠겨 있을 때, 헤론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편하게 말해요.”
“완전히…… 그러니까 에덴으로 아예 돌아오신 겁니까?”
그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기대감.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가 보내오는 믿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니에요. 잠시 에덴에 찾을 것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아…….”
“하지만 상황이 이런 걸 보면 주기적으로 제가 들르긴 해야겠어요. 교통정리를 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래도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다.
내가 어떤 개고생을 하면서 구한 세곈데, 개판이 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리멘의 세계가 아니던가?
돌아가는 대로 라파엘이랑 대책을 세워 봐야겠다. 라파엘이라면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아니, 다 떠나서 그냥 리멘만 찾아도 해결될 문제일지도.
그렇게 내가 헤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눈을 빛내며 나에게 이것저것을 묻던 헤론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황 성하, 도착했습니다.”
“오.”
창밖으로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가 보인다.
신성석이 군데군데 조각되어 있는 성벽.
그리고 그 성벽 위에서 창을 든 채로 서 있는 성기사들.
헤론이 미리 연락을 넣어 둬서일까? 우리의 마차가 가는 길 앞에는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성기사들이 직접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교황 성하!”
“교황 성하!”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성기사들이 일제히 칼을 높이 들어 올리며 예를 갖춘다.
화사한 햇빛에 검들이 새하얗게 빛난다.
“리멘의 종들이 리멘께서 임명하신 첫 번째 사도를 맞이하옵니다.”
“성하께 리멘의 영광이 있기를!”
“리멘의 영광이 있기를!”
성도.
리멘 교단이 직접 통치하는 교단 직할령의 수도이자, 리멘 교단의 교황청이 존재하는 도시.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온통 리멘의 흔적으로 가득한 도시에, 드디어 내가 돌아왔다.
2.
거의 뭐 퍼레이드였다.
나는 성도의 성벽을 지나,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교황청까지 걸어서 갔다.
이 세계에 내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일종의 선포기도 했다.
성도에 머물고 있던 모든 시민들이 열렬히 나를 반겨 주었다.
하늘에서는 꽃가루가 휘날렸고, 누군가는 내 귀환을 보면서 오열하기도 하더라.
이렇게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이 많으니 기분은 당연히 좋았다.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서 대신전까지 무려 1시간은 걸어온 것 같다.
나를 좋아해서 울어 주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잖아?
그렇게 내가 신전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교황청에 도착했을 때,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바예르 총대주교.”
내가 임명한 교황의 대리자, 바예르 총대주교를 위시한 여러 대주교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귀환을 반겼다.
바예르 총대주교는 천천히 다가와 내 손을 움켜쥐었다.
“살아생전 제가 교황 성하를 다시 뵐 날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10년이나 지났다는데, 바예르 총대주교는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리멘님의 은혜입니다.”
노인은 계속해서 내 손을 쓸어내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우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해진다.
이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나 기다렸는데, 에덴을 너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그렇다.
바예르 총대주교는 한참 동안을 나를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놓아주면서 말했다.
“성하의 집무실은 여전히 비워 두었습니다.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 두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먼저 모시겠습니다.”
“쓰지도 않는 걸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를 해 뒀어요? 바예르 총대주교가 좀 쓰시지.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아, 책상은 좀 닳나?”
“성하는 여전히 변함없으십니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간 교황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둘이서 좀 걷죠.”
바예르 총대주교는 내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파악한 것 같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의 대주교들에게 말했다.
“성하와 함께 잠시 교황청을 둘러보겠습니다. 그러니 다들 각자의 위치에 가서 맡은 바 소임을 하고 계시지요.”
“예, 총대주교님.”
대주교들은 순순히 총대주교의 명령을 받든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주교들 모두가 나와 함께 전장에서 싸웠던 전우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섭섭해하는 걸 내가 가만히 두고 볼 수야 있나.
“이따가 저녁에 다 같이 식사라도 합시다, 여러분. 총대주교에게 물을 게 아주 많아서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교황청 음식도 먹고 싶네요.”
그러자 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철저히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예, 성하!”
이렇게 보면 참 사람들이 순박하다니까?
같이 밥 먹자는 이야기에 저렇게 좋아하고 말이야.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다음, 바예르 총대주교와 함께 교황청을 걸었다.
“그동안 신경을 못 써 줘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아, 라파르트 대주교가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합니다. 루나랑 레오도, 그리고 리스도. 에덴에서 넘어온 이들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나 지났군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바예르 총대주교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격차는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바예르 총대주교도 내가 없는 교황청을 이끌며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레오, 루나, 라파르트 대주교.
그리고 나를 위해 기꺼이 지구로 넘어온 천 명의 성기사들까지.
교황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전력들이 지구로 넘어온 이후, 분명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예르 총대주교는 웃으면서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고.
“바예르 총대주교.”
“예, 성하.”
“일주일 정도 있다가 돌아갈까 합니다.”
그렇기에 속이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함께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섭섭할 수도 있는 말이었겠지만, 바예르 총대주교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께서 이곳에 다시 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들은 행복할 뿐입니다.”
“이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성하께서는 분명히 찾으실 겁니다. 성하께서는 그런 분이시니까요.”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 교황청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을 개선시켰고, 또 어떤 일들을 행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또 무엇인지.
지금쯤이면 팔십을 훌쩍 넘었을 노인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그렇게 그의 안내를 받으면서 어느새 내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바예르 총대주교는 내 집무실의 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요새 왕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걱정이 큽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어차피 며칠 동안은 성도에서 리멘의 흔적을 찾아볼 계획이다.
리멘의 성유물이 가장 많이 있는 장소였으니, 흔적이 있다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곳에 잠시 머물 계획이라면…… 오랜만에 교황으로서 몇 가지 일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의자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예르 총대주교를 향해 말했다.
“온 김에 교황으로서 역할도 좀 하고 가겠습니다.”
“역할이라고 하시면…….”
“교통정리를 좀 해 드려야겠죠? 괘씸하기도 하고.”
집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대륙 지도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리멘 교단의 교황으로서 레온 왕국의 국왕과 라그하른 왕국의 국왕을 만나겠습니다. 그 둘에게 교황의 직인이 찍힌 서신을 보내 주세요. 서신 내용은 10시간 내로 당장 튀어 와라, 내가 찾아가기 전에……. 음,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흩어진 기강은 바로잡으면 된다.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에덴에서의 일주일은 아주 보람찰 것 같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