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3.
내가 교황청에 도착한 지 딱 10시간 뒤.
나는 10시간 동안 부지런히 교황청을 돌아다니면서 리멘의 흔적을 조사했다.
리멘의 힘이 담겨 있는 성유물들.
그래도 몇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10년 전에 한번, 성유물들의 힘이 소멸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부로 알리지는 않았으나, 그로 인해 교단 전체에 비상이 걸렸었지요. 성유물들이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였습니다.
성유물에 담긴 힘은 분명히 리멘의 힘이었다.
소멸했어야 정상인 리멘의 힘이, 조금씩 복구되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와 다르게 이쪽의 성유물이 손상을 입었던 건 아마도 시차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바예르 총대주교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단서를 수집하고 다녔다.
성유물들을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리멘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결정적인 단서를 얻기 위해서는 에덴에 있는 리멘의 성역>으로 직접 들어가야 할 듯했다.
신격으로서 그녀가 지내는 공간.
리멘의 초대 없이는 들어설 수 없는 장소지만, 어떻게든 들어갈 방법을 찾아봐야지.
성지를 제외하고서 다른 장소에도 성유물들이 많았으니까, 벌써부터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부지런히 성유물을 찾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바예르 총대주교가 나를 찾아왔다.
“성하, 분부하신 대로 레온 왕국과 라그하른 왕국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국왕들이 직접?”
“라그하른 왕국의 국왕은 직접 왔으나, 레온 왕국의 국왕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노인은 나에게 서신을 보여 주었다.
그리핀의 인장이 찍혀 있는 서신.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리멘 교단은 들어라. 우리를 기만하는 것도 모자라, 교황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퍼뜨리는 것이냐? 여태껏 그대들이 대륙의 평화에 이바지하였기에 봐줬지만, 더 이상은 가만히 지켜볼 수 없겠구나.」
한마디로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내 신경을 잔뜩 건드리는 어휘로 포장된 서신들.
나는 서신을 성화로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이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주 성급하다니까요?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사는 놈이 아닌가 싶네요.”
레온 왕국의 국왕이라면 전투가 끝나고 항상 내 다리를 마사지해 주던, 하이즈 그놈일 텐데 말이지.
안 그래도 레온 왕국에는 직접 갈 일이 있었다.
“레온 왕국의 왕성 지하에 우리 교단의 성유물이 좀 남아 있죠?”
“예, 그렇습니다. 성하께서 명하신 대로 성유물 중 일부를 레온 왕국의 무기고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명분 좋고.”
레온 왕국은…… 음, 그러니까 위치상 마왕들과의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죽음의 끝’이라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 세워진 왕국이다.
즉, 마기의 위협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는 왕국이란 뜻이다.
애초에 이런 땅에 왕국을 재건한 것도 웃기는 놈이긴 한데, 우리 교단에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성유물을 일부 배치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계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인데, 그놈들이 지금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놈은 나중에 따로 제가 찾아가도록 하죠.”
“미리 입국 절차를…….”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입국 절차. 그냥 거기 왕궁 기습하면 되지.”
누가 날 감히 막겠어?
바예르 총대주교는 고개를 조아리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집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색의 긴 장발.
거기에 늘씬한 몸매.
총기가 흘러넘치는 푸른색 눈동자까지.
누가 봐도 미남자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남자의 정체는 바로 라그하른 왕국의 국왕, 유리.
유리는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 엎어지면서 소리쳤다.
“교, 교황 성하!”
“유리, 오랜만이다!”
“돌아오셨는데 왜 연락 한번 안 해 주셨습니까!”
누가 보면 되게 나를 생각해 주는 놈인 줄 알겠다.
녀석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말을 이어 갔다.
“교황 성하를 다시 뵙는 순간이 이렇게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리멘님께…… 리멘님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위대하신 리멘이시여!”
“유리야.”
“예, 성하!”
“기상.”
내 말에 유리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곧 밝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왕은 국왕인 걸까?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는 유리.
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뭐 하나만 묻자.”
“예?”
“요새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서?”
그러자 유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럴 리가요! 그건 전부 하이즈, 그 자식의 머리에서 나온 계획입니다. 성하께서 이리 정정하게 살아 계신데! 그런 불경스러운 소문을 내고 다니- 끄아아아아아악!”
나는 녀석의 조인트를 가볍게 까면서 실실 입꼬리를 올렸다.
옛날에도 하이즈와 유리는 덤 앤 더머였다.
멸망한 왕국의 왕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녀서 그런가, 복수심에 불타면서도 참 머저리 같은 놈들이었지.
유리는 하이즈에 비해선 그나마 신중한 놈이다.
신중한 놈이니만큼 내가 보낸 서신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직접 온 것일 터였다.
“만약 오늘 네가 여기에 안 왔잖아?”
“예…… 예.”
“왕궁부터 박살 냈을 거야.”
이건 진심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에게는 응당한 피의 징벌이 내려져야 공평한 거다.
내 서슬 퍼런 협박에 유리는 허리를 연신 숙이면서 답했다.
“이리 멀쩡하시니 이 모든 게 리멘님의 자비가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에덴 들를 거다. 네 자손들에게도 똑똑히 전해 둬라.”
머리가 아주 영민한 놈이다.
내 말에 담긴 뜻이 뭔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리면서 말했고, 유리는 몸을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자, 오늘 오랜만에 봤으니 밥이나 한 끼 먹을까?”
“좋…….”
“바예르 총대주교.”
“예, 성하.”
“오늘 저녁은 레온 왕국에 가서 먹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좀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성하.”
이렇게 된 김에 레온 왕국의 성유물 좀 체크를 해 봐야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그것’이 레온 왕국의 무기고에 있을 텐데 말이지.
4.
유리를 데리고 곧장 레온 왕국으로 향했다.
교단의 성도에서 전속력으로 뛰면 한 4시간쯤 걸리는 거리.
아, 물론 어디까지나 4시간은 내 기준에서 4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에덴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달리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우웨에에에에엑.”
“거, 얼마나 뛰었다고 엄살이냐?”
내 오른손에는 유리가 들려 있었는데, 유리는 새하얀 얼굴로 계속해서 토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레온 왕국의 왕궁.
유리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순간,
삐이이이이이익-!
왕궁 전체에 걸려 있던 경보 마법이 울리면서 사방에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왕궁에 침입자다!”
“전 병력 집결!”
레온 왕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핀 문양을 갑옷에 새긴 기사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레온 왕국의 기사들은 처음엔 아주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당장에라도 침입자를 찢어 버릴 것 같은 흉포한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그 기사들 중, 내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교, 교황 성하?”
“모두…… 모두 무기를 내려라! 당장!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당장 무기를 내려!”
“기사단장님! 도대체 저 사제가 누구기에 그렇게 겁을…….”
빠아아아악.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놈 한 명이 자신의 부하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소리쳤다.
“저분은 에덴을 구원한 영웅이신 교황 성하시다!”
물론 기사단장으로부터 뒤통수를 가격당한 부하는 단번에 기절을 해 버렸다.
나는 나를 향해 극상의 예의를 표하는 기사단장과 다른 기사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주며 말했다.
“불청객이라서 할 말이 딱히 없군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늦은 시간에 고생들 하십니다.”
“국왕 전하께 제가 직접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하이즈가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주세요.”
“전하께서는 현재 연회장에서 귀족들과 연회를…….”
“아하, 그래요? 거기에 먹을 건 좀 많습니까? 제가 먼 길을 와서 좀 허기진데.”
“왕국 최고의 요리사들을 초빙하였으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아, 여기 이쪽은 라그하른 왕국의 유리 국왕.”
“허어어어억!”
한밤중에 내가 다른 왕국의 국왕을 데리고 나타난 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기사들이 아주 뒤집어진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지는 게, 아주 흡족했다.
나는 기사들의 옆을 지나치면서 천천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연회장이 어느 쪽입니까?”
그러자 얼빵한 표정이 잘 어울리는 한 신입 기사가 오른쪽을 가리키면서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쪽으로 쭈욱 가시면 됩니다, 교황 성하!”
“오, 고마워요.”
“교황 성하께서는 제 어린 시절의 은인이시자 평생 제가 닮고 싶은 영웅이십니다!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정말 감동입니다!”
내가 그래도 에덴에서는 아직 먹어 주는 것 같다.
나는 나를 향해 뜨거운 열정을 보여 주는 그 신입 기사의 등을 다시 한번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보기 좋네요. 혹시 직접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영, 영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얼빵한 신입 기사, 내가 돌아간 이후 아마 호되게 당할 것 같다.
저기 기사단장 표정 좀 봐라.
내가 없었으면 당장에라도 이 기사를 반쯤 죽여 뒀을 것 같다.
그렇게 왕궁 침입 5분 만에 훌륭한 가이드를 구한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회장을 향해 걸어갔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왕궁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드워프들의 솜씨가 보였다.
“하이즈 그놈이 원래 드워프들이랑 친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너네 왕궁에는 뭐 없냐?”
“저희는 엘프 부족들과 인접해 있어서……. 엘프들이 직접 꾸며 준 정원이 있습니다. 왕궁의 자랑이지요.”
유리는 살포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는 놈.
원래도 잘생겨서 싫었는데, 왕까지 되니까 더 재수가 없다.
“한데 성하.”
“왜?”
“정말 저녁을 얻어먹으러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혹시…….”
잠시 말을 끊는 유리.
나는 손을 내저으면서 짜증을 냈다.
“짜증 나니까 말 끊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대답해 줄게.”
“저랑 하이즈에게 죗값을 받으시려고…….”
“죗값? 죗값은 당연히 받아야지. 우리 교단의 뒤통수를 취려고 했으면서…… 가만히 내가 넘어가 주길 바랐던 건 아니지? 에이, 설마.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잖냐.”
죗값은 최소 백 년 할부로 받을 계획이다.
지구로 돌아갈 생각만 하는 바람에 에덴의 정세가 어떻게 흐를지 꼼꼼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내 탓이 크다.
이번이야말로 에덴의 질서를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
나는 이번 일주일을 아주 알차게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않겠어?
“도, 도착했습니다!”
연회장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신입 기사는 나를 향해 넙죽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교황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리멘의 축복이 당신께 있기를. 고맙습니다.”
“허어어억!”
내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는 신입 기사.
……이게 열성 팬을 둔 스타의 기분이려나?
뭔가 이상하긴 한데.
아,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나는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찬란한 샹들리에.
딱 봐도 비싼 장신구를 끼고 춤을 추는 귀족들과 요리와 술을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하인들까지.
“애초에 하이즈 녀석이 방탕한 생활을 즐기지 않았습니까? 교황 성하께서 직접 가르침을 내려 주시는 것이…….”
“하이즈 얼굴에 똥칠한다고 해서 내가 너를 덜 혼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옙.”
유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연회장의 한가운데에서 즐겁게 연회를 즐기고 있던 하이즈를 발견했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걸까?
아주 행복해 보인다.
“어이, 하이즈.”
천천히 녀석을 향해 걸어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이즈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쨍그랑.
녀석이 들고 있던 유리잔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교, 교황?”
아주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해 주는 나의 옛 부하.
나는 녀석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빚쟁이라도 본 표정이다.”
“……여긴,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아니, 진짜로 돌아온 거…….”
“그건 반말이고.”
“……에요?”
귀여운 녀석.
뭐, 따지고 보면 빚쟁이는 맞지.
내가 녀석한테 받을 게 있으니까.
“우리 교단이 너희 왕국에 지원해 줬던 성유물 다 털러 왔다. 불만 없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