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100. 네게로 향하는 길
1.
레온 왕궁의 무기고에서 나침반을 챙긴 나는 곧장 성도의 교황청으로 돌아왔다.
유리와 하이즈는 내가 돌아가기 전, 정식으로 교황청에 방문한다고 했다.
내가 말했던 ‘대륙 평화 회의’의 주최를 공식으로 선언하고, 각 집단 간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함이었다.
딴 주머니를 차려던 놈들이지만 적어도 녀석들은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실수를 한 놈들은 아니었다.
전쟁의 생존자.
생존자라는 뜻은 내가 이루어 낸 모든 업적을 눈으로 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먼저 교황청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성하. 고민이 많으신 듯합니다.”
“아, 바예르 총대주교.”
내가 집무실에 앉아서 나침반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쯤이었다.
차를 들고 들어온 바예르 총대주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성하께서 그리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항상 고민보다는 몸이 앞서셨던 분 아닙니까?”
바예르 총대주교는 웃으면서 내 찻잔에 홍차를 따라 주었다. 그리고 레몬즙을 살짝 짜 넣어 준 다음, 나에게 건네주었다.
“성하께서 좋아하셨던 홍차입니다. 엘프들이 직접 제조하여 매년 성도에 보내고는 합니다. 함께 드시는 디저트는 엘프들과 함께 지내는 페어리들이 만든 타르트입니다.”
가지각색의 타르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침반을 잠시 내려 두었다. 그리고 딸기 타르트를 베어 문 다음, 홍차를 마셨다.
달콤함과 쓴맛의 적절한 조화.
전쟁이 끝난 이후, 평화를 되찾은 엘프들과 페어리들이 나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며 만들어 줬던 그 음식들이다.
맛이 참 좋다.
깨끗하기도 하고.
“차원 간 이동만 가능하면 에덴의 식재료를 공수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따로 품종을 개량할 필요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흠.”
“엘프들의 차와 페어리들의 디저트는 상품성이 높은 품목이기도 합니다. 마탑들이 페어리들의 디저트를 대륙에 공급하기 위해 보존 마법을 열심히 발전시키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마법사들은 원래 화력에 미쳐있는 족속들이었는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네요?”
“무력만큼이나 금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업이나 연구에는 돈이 필요하니까요.”
교단 중에서 가장 금전의 가치를 높이 사는 우리 교단다웠다.
실제로 교단의 재정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여전히 대륙 최강이다.
성물부터 시작해서 주기적인 마수 토벌을 통해 챙기는 부산물들.
교단이 직접 정화한 마수들의 부산물은 아주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하더라.
확실히 시스템이 잘 갖춰 줬다.
헌금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재정 자립을 추구하는 게 옳다.
그래야 덩치를 키우는 것도, 세력을 지키는 것에도 유리하니까.
나는 딸기 타르트를 하나 더 입에 넣으면서 슬며시 눈을 감았다.
“좋네요.”
“레온 왕궁에서 선지자의 나침반을 찾아내셨군요.”
바예르 총대주교는 책상에 놓인 나침반을 살펴보며 말을 이어 갔다.
“원래는 미궁에 갇힌 선지자, 루오를 위하여 리멘 님께서 내려 주신 성유물이었지요.”
“부끄럽게도 성서에 정통하진 못해서.”
“그 이후에도 몇 번 성서에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성서에 이 나침반이 등장할 때마다, 길을 잃은 자들은 길을 찾았습니다.”
어쩌면 저 말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나침반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보이십니까?”
내 질문에 바예르 총대주교는 내 마주편의 의자에 앉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나침반의 자침은 사람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찾고 싶은 길. 그 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잔에도 홍차를 따라서 조심히 마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성하의 나침반을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요.”
“글쎄요.”
나침반의 자침은 여전히 나를 가리키고 있다.
내가 가장 찾고 싶은 것이, 이미 나에게 있다는 뜻일까.
“계속해서 저를 가리키고 있네요.”
“그렇습니까.”
노인은 다시 한번 차를 들이켠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멘 님께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성유물들의 신성력이 약해졌고, 일부 성유물은 성유물로서의 자격을 잃었었지요.”
리멘이 소멸했던 그 순간을 말하는 걸까.
지구의 시간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소멸하게 되면서 분명 시간선이 꼬였다.
아마 에덴에 살던 이들이 그녀의 부재를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바예르 총대주교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결국, 리멘 님의 힘은 조금씩 돌아오더군요. 그건 아직까지도 교단 내의 극비 사항입니다. 모든 신도들이 한마음을 모아 그 고난을 이겨 냈지요.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리멘 님께서 저희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막막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신성력이 사라졌던 상황.
누군가는 리멘이 자신들을 버렸나, 그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덴의 신도들은 한 마음이 되어 잘 버텨 주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여전히 신성력을 유지하고 있다.
“성하께서 이렇게 나타나신 것 역시 그 상황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맞지요?”
“나이가 드시니 혜안이라도 생기신 건지.”
“늙은이의 감입니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끝낸 바예르 총대주교는 다시 한번 홍차를 마셨다.
“성하.”
“예.”
“성하께서 듣고 싶은 대답을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리멘 님께서는 여전히 실존하십니다. 그리고 성하라면, 리멘 님을 반드시 찾아내실 겁니다.”
어쩌면 나에게 부족했던 건 리멘이 있다는 확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 노인은 나에게 부족했던 그 확신을 불어넣어 준다.
만약, 아주 만약.
리멘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변함없이 그녀를 믿고 있던 이들 때문이 아닐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앙심을 부여잡고 있던 이들.
그녀가 구원했던 이들이 결국 그녀를 구원한 게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복잡한 생각 끝은 결국 확신으로 귀결되었다.
리멘은 존재한다.
“나침반이 성하를 가리키는 이유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리멘 님의 뜻일 터이니…… 하지만 이 노인네가 감히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예르 총대주교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침반이 성하를 가리키고 있다면, 성하께서는 이미 그 길 위를 걷고 계시는 걸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 길을 이미 걷고 있다라.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예르 총대주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조언 고맙습니다.”
“조언으로 생각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하께 확신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잡생각이 달아났네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의심하지 말자.
설사 너무나도 먼 길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그 끝에 리멘이 서 있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나는 나침반을 다시 손으로 잡았다.
“지구로 돌아갈 때 이 나침반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바예르 총대주교가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잊으셨습니까? 에덴의 모든 성유물은 응당 성하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가져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맞지요. 하하.”
에덴으로 오길 잘했다.
마음이 너무나도 편해졌다.
나는 웃으면서 다시 타르트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기분 탓일까? 아까보다 타르트가 더 달콤해진 것 같았다.
“바로 돌아가실 겁니까?”
“1주일은 꽉 채워야죠. 혹시 모르니 성유물도 더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럼 제 부탁을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잠시 뒤 이어진 그의 부탁에,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2.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교황청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은 나는 집무실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손님은 다름 아닌 똘망똘망한 눈을 지닌 흑발의 어린 소년이었다.
기껏해야 여덟 살은 되었을까?
시연이보다 그 어린 소년이 나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한다.
“리멘의 어린 종이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이 소년을 처음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반가워. 이름이 뭐야?”
“아무르라고 합니다. 성은 없습니다.”
“그래, 아무르. 만나서 기뻐. 나이는 어떻게 돼?”
“여덟 살입니다!”
아무르.
이 소년은 선지자였다. 그것도 내가 봤던 선지자 중, 나와 가장 끈끈한 실로 묶인 선지자.
즉, 내 뒤를 이을 새로운 교황이라는 뜻이다.
아무르의 뒤에 서 있던 바예르 총대주교가 아무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즐거움입니다. 리멘 님께서 제게 장수를 허락하신 것도 이 아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지요.”
“귀엽네요.”
“성하의 뒤를 이어 리멘 교단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교황이 될 아이입니다. 현재는 대륙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리멘이 원하는 ‘교황’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비춰 주는 존재다.
내가 과연 리멘이 원하는 그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활약했던 시기는 대륙 전체가 전쟁에 신음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분쟁은 있겠지만 대륙을 멸망시킬 정도의 전쟁은 더 이상 없다.
대신 대륙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상흔들이 남아 있었다.
이럴 때의 교황은 그 누구보다 상처를 잘 돌봐주는 이여야만 한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아무르에게 물었다.
“나에게 묻고 싶은 건 없니?”
내 질문에 아무르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님을 뵙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뻐요.”
“나도 아무르를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뻐.”
내 뒤를 이을 소년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정말 싱숭생숭하다.
가만히 아무르를 보고 있자니 나 말고 다른 존재와도 닮은 것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존재.
리멘.
아무르는 리멘과도 닮아 있었다.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느꼈어?”
내 질문에 아무르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꿈이다.
평범한 어린아이가 했었다면 칭찬을 해 주고 넘어갔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린아이의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르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 소년이라면 그 꿈을 실현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르에게 주어진 선지자로서의 운명이었다.
“좋은 꿈이네.”
“꿈이 아니에요!”
“응?”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있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치료할게요.”
“아아,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네!”
“그래, 그렇게 될 거야.”
나는 내가 리멘 교단의 미래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에덴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리멘은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에덴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성하.”
내가 아무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그저 웃으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바예르 총대주교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예.”
“성하께서 이 아이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평화 회의를 개최하신다지요?”
그 말을 듣고 단번에 속뜻을 깨달았다.
즉, 바예르 총대주교는 이번 평화 회의에서 아무르를 내 공식적인 후계자로 선포해 달라는 뜻이었다.
“총주교회의 뜻은요?”
“만장일치로 아무르를 다음 교황으로 선정했습니다. 아무르는 리멘 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니까요.”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기 전에 오랜만에 교황 노릇 좀 해 볼까요?”
나에게 남은 시간은 6일.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